78화
Role―Playing Game.
특히 돈슨의 게임은 달마다 역변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촤좌좡!
촤좌좌장―!
그런 돈슨의 패치 중에서도 빅뱅은 역대급으로 손꼽힌다.
기존 RPG의 틀 자체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리미터가 해제된 느낌이다.
『수많은 도전 끝에 라테일을 격파한 원정대여! 그대들이 진정한 라프레의 영웅이다!』
빅뱅 패치 이후 카쿰은 전투력 측정기가 되고, 라테일은 동네북이 되어 하루종일 울린다.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자체 부활템까지 추가돼 실패 확률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우와ㄷㄷㄷㄷㄷㄷㄷ
―결국 이걸 깨네
―펑이조! 펑이조! 펑이조! 펑이조! 펑이조!
―솔텔을 해버리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안 된다.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존 단풍잎스토리의 상식을 뒤엎는 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나야 나! 펑이조라구~ 단풍잎스토리 근본은 나잖아!!"
흥분해 소리칠 만도 하다.
라테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떼거지로 몰려가도 우르르~ 비석을 꽂았다.
카오스 난이도 추가와 핑크린 등으로 인해 입지가 좁아지긴 했어도 라테일은 라테일이다.
그만한 상징성이 있는 보스 몬스터를.
─거품팡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우와ㄷㄷ 이걸 성공할 줄 몰랐네
"거품이 천 개 고맙고. 나머지 미션풍도 얼른 내놔 이 새끼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
―돈 밝히는 것 봐
―그래도 오늘은 ㅇㅈ
―솔텔 수고했다 이 자식아!
무려 홀로 쓰러뜨리는 기염을 토한다.
빅뱅 패치로 인해 평균적인 화력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이건 아예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특히 와닿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펑이조 솔텔 미쳤다ㄷㄷㄷㄷㄷㄷ
아이템에 무슨 생돈을 펴바르나 했더니 결국 일을 저지르네 └응 그래봤자 오정환 미만잡
글쓴이― 응 아니야. 다시 펑이조 시대임
└솔텔? 라테일을 혼자 잡았다고?
└6인텔로 나대던 그 보라충이랑은 격이 다르누ㅋㅋㅋㅋ
일반 유저들에게는 컬쳐쇼크다.
패치 내용을 인식하고 플레이하는 헤비 유저의 수는 극소수다. 절대 다수는 라이트 유저고, 그들이 우러러 마지 않던 라테일을 솔로 레이드 해버렸다.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에서도 펑이조의 주가가 단박에 오르게 된다.
여기저기서 글도, 영상도 퍼가며 기세를 탄다. 그 의미는 이전보다 훨씬 더할 수밖에 없다.
─와 펑이조 방송 폼 돌아왔는데?
2천 명이나 보네
이제 민심 회복했다고 보면 되나?
└피크때는 3천도 봄
글쓴이― ㄹㅇ?
└솔텔할 때 4천따리도 찍었지ㅋㅋㅋㅋ
└요즘 단풍잎스토리 시청자가 많아졌잖아
게임 방송의 시청자는 적다. 단풍잎스토리로 한정하면 특히 말이다. 한때 가장 잘 나갔던 펑이조도 2천 명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정환으로 인해 달라졌다. 전체 시청자 수가 몰라보게 늘어났다. 다시 왕좌를 되찾게 되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펑이충신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썸 타고 연애할 때 단풍잎만 미친 듯이 한 보람이 있네!
"당연하지. 내가 단풍잎스토리 그 자체인데!"
아직 이전의 위세가 완전히 돌아온 게 아님에도 불구.
파이가 커진 덕을 톡톡히 보며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근데 왜 진 거 같지?'
오로지 정진! 정진! 정진!
초심으로 돌아가 현질을 때려 박았다. 빅뱅 패치 특유의 파워 인플레이션이 솔로 레이드를 가능케 만들었다.
─확실히 빅뱅 패치가 미친 패치긴 하네
그냥 딜러 상향 평준화만 시키는 줄 알았더니
돈 쏟아부은 만큼 세지니까 펑이조 같은 지갑 전사들 시대가 와버림└무슨 라테일을 혼자 잡아ㅋㅋ└1인 군단!
└한 마리의 알파카도 아니고
└레고 삼켜도 운명의 수레바퀴 있어서 부활 씹거눙!
그 결과.
단풍잎스토리는 바야흐로 1인 군단의 시대를 맞이한다. 마치 달빛조각사의 위드처럼 솔로 레이드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 게임 소설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RPG 유저의 로망과도 같다.
이를 실현시키고 있는 펑이조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스공 3만 나로 ㅍㅌㅊ?
─[추천요청] 등록금으로 현질 박은 내 인생 레전드. Real ─요즘 1티어 직업 순위 정리해준다ㄱㄱㄱㄱ.
.
.
그리고 이는 게임 밸런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전까지와는 밸런스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피눈물 흘리는 직업 1위……
그건 바로 성기사
위협의 재발견으로 레이드 해결사 되나 싶더니
파티 레이드 붕괴로 다음 패치까지 고난의 행군 시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윽시 X병신 직업!
└드디어 빛 보나 했더니;
└그래도 아직 핑크린에서 필수로 끼긴 하더라
평균적인 화력이 오르자 레이드 파티의 규모는 작아졌다. 애매한 파티 스킬보다 강력한 딜러 한 명이 환영받는다.
그 중심에 있는 건 표창 도적. DPS가 강력하며 생존력이 높다.
최근 단풍잎스토리에서 고평가받는 직업의 특징이다.
─해적은 존나 애매해졌네
딜은 뭐 표도랑 비슷하게 세긴 한데
생존 스킬이 하나도 없으니까 성직자 없으면 참피처럼 죽어나감└?? 성직자를 끼면 되지 글쓴이― 요즘 BJ들 방송 보면 랭커 파티에선 안 끼더라 └펑이조는 혼자서도 잡는데ㅋㅋㅋ
└ㅇㅇ 해적이 존나 애매함
원래부터 직업 이미지가 좋지는 않았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도적. 좋게 말해도 가성비가 뛰어난 정도의 장점이다.
무슨 이마트 떨이 상품도 아니고, 상위 호환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애매하다.
오정환이 플레이하며 위상이 조금 오르는 듯했지만.
─오정환 복귀가 기대되지 않는. EU
오정환은 개인의 힘이라기 보다는
레이드 공략과 공대 통제가 강점이었음
지금 같은 솔로 메타에서 장점이 되지 않음 ㅅㄱ
└해적도 ㅈ망했고
글쓴이― 그렇지
└확실히 혼자 잡는 게 뽕맛이 있음ㅋㅋㅋ
└오정환은 그냥 보라나 하자……
돈을 때려붓는 만큼 강해진다.
빅뱅 패치는 해적과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 하위권은 몰라도, 상위권 경쟁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빈약한 생존력. 1인 군단과도 같은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오정환이 복귀를 해도 예전 같을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보라에서 잘 나가고 있다.
아싸리 복귀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는데.
* * *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캐릭을 처음부터 다시 키우는 건 어떨까요?
다시 단풍잎을 시작하자마자 대뜸 들은 첫 마디.
그것이 여론이라고 자각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음, 그렇구만.'
딱히 납득할 것도 없다.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니까. 그도 그럴게 단풍잎스토리를 처음 해보는 게 아니다.
"빅뱅 스노우볼이 상당히 크게 굴러가나 보네요."
―빅뱅 스노우볼ㅋㅋㅋ
―바로 그거임
―요즘 직업 티어가 완전히 바뀌어서……
―솔플 가능한 직업이 대세에요!
두 번째 해보는 거지. 빅뱅 패치.
여느 게임이 그러하듯 대규모 패치는 직업간의 밸런스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해적이 나쁜 건 아닌데.'
컨트롤이 어려우며, 생존력이 빈약하다.
그것은 빅뱅 전에도 부각되던 단점이다. 전자는 알아서 메꾸면 되고, 후자는 힐을 받으면 해결된다.
그 힐을 받을 성직자가 없다. 솔로 레이드를 하게 되니 생기는 필연이다. 해적이 가진 두 가지 단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
─zl죤법사S2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패치 전에도 솔쿰 잘하지 않았음?
"노말 카쿰은 유혹도 안 쓰고 위협적인 패턴 자체가 없잖아요."
펫이 물약만 빨아줘도 생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라테일 등, 상위 보스들은 까다로운 패턴이 따라붙는다.
'유혹 걸리는 순간 빼도 박도 못하고 죽는 거지.'
전사들은 체력이 많다.
도적들은 비 사이로 막가급 회피율을 보유했다.
그에 반해 해적은 그냥 아무것도 없어서 죽어야 한다.
그 외에도 온갖 폭딜에 조금만 삐끗해도 죽는다. 롤 마냥 포지셔닝을 잘 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해적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키우란 거네요."
―이해가 빠르네
―역시 갓정환!
―요즘 레벨업 속도 빨라서 150까진 금방 찍어요~
―표도가 그냥 신임 표도ㄱㄱㄱㄱ
시청자들이 다른 직업을 추천하는 이유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일은 없다.
'키우는 데 돈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둘째 치고.'
표도는 펑이조의 직업.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가뜩이나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마당에 기싸움이 밀린다.
너무 과민반응 아니냐?
적어도 시청자들은 그리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한 번 주도권을 내주면 되찾아오는 게 쉽지 않다.
─표도만렙향하여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해적 하면 솔텔 같은 건 절대 못하는데……
"100개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누구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
―패기 보소
―아무리 오정환이라도 흠ㅋㅋ
무엇보다 단풍잎 본좌로서 가오가 안 산다. 들어오는 도전은 마다하지 않는 주의다.
'그런 느낌.'
BJ로서 대외적인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스포츠에 강팀충이 많듯, 인터넷 방송도 그런 게 있다. 민심을 위해서라도 강하게 나가는 것이 옳다.
그리고 어차피 이길 거니까.
해적은 애정을 가지고 키운 직업이다. 이전 생에서도 비슷한 난관을 겪었고, 시행 착오 끝에 극복에 성공했다.
이번 생에서는 그조차 겪을 필요가 없다.
* * *
"씨발……."
분당 판교에 위치한 한 술집.
장연수는 곱창에 소주를 까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속내를 내뱉는다.
'오정환 그 새끼와 엮인 이후로 풀리는 일이 없어.'
자신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획기적인 수익 모델과 이를 실현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 단풍잎스토리의 매출을 배 단위로 끌어올렸다.
그 보상.
초고속으로 승진해 부장을 달고, 이제는 총괄 디렉터를 넘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일어난 몇몇 사태로 물거품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오정환 그 새끼만 아니었어도……"
"오징어 추가라고요?"
"아뇨, 그게……."
"5번 테이블 오징어 추가요!"
술집 내부가 워낙 시끄럽다. 화에 못 이겨 혼잣말을 지껄인 게 오해를 낳는다.
'진짜 되는 일이 없네!'
직원 아줌마가 떠나버린 탓에 취소하기도 애매하다.
그냥 먹고 죽자.
장연수는 소주를 한 병 더 까며 회상한다.
얼마 전의 사태.
오정환이 돈슨 본사를 발칵 뒤집었다.
결과적으로 일단락은 됐지만, 그로 인한 영향은 남아있다. 특히 자신의 승진 여부에 말이다. 장하권 이사의 눈에 반쯤 나버렸다.
인간인 이상 원한을 가지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위이잉~
그렇게 소주를 까던 와중, 소매 속 핸드폰이 계속 울린다. 무시할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모를 직감 탓에 받자.
"여보세요?"
<부장님! 지금 오정환이……>
"그 새끼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
부하 직원과 이심전심해버렸는지 같은 화두를 꺼내온다.
또다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바냐!'
엮이고 싶지도 않다. 오정환이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안주 없이 소주가 넘어간다.
<들어보세요.>
"뭘 또."
<그 자식한테 이 갈리는 거 부장님뿐이겠습니까? 기회가 왔습니다.>
유명하니 뭐니 해도 결국 일개 유저다. 그런 오정환에게 단풍잎스토리의 여러가지가 좌우되는 걸 직원들도 못마땅해한다.
기회만 있다면 빅엿을 먹이고 싶다.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
이를 갈던 와중 최근 그가 단풍잎스토리에 복귀를 알렸다.
<해적이 솔로 플레잉이 힘들도록 설계해두었잖아요?>
"그렇지."
<밸런스로 징징대면 이참에 역공각을 한 번 보죠.>
두 병째 까버린 소주마저 잊을 만큼 장연수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