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80화 (80/846)

80화

솔로 레이드

─라테일의 오른쪽 머리가 위기를 느끼고 물러납니다.

1단계를 격파.

라테일 도전의 시작은 무난하게 막을 올린다.

"화력이 되는 건 확실해 보이죠?"

―와

―12분만에……

―펑이조는 14분 걸렸는데ㅋㅋㅋㅋ

―중계하다가 펑이조 방에서 블랙 먹음 ㅠㅠ

전투력 측정기 역할도 겸한다. 작정하고 때리면 되는 샌드백. 방송을 키고 하루종일 아이템을 보강한 보람이 있다.

'과정도 다 방송이야.'

아이템 맞추는 것도 강화의 한 종류다.

단순히 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문서 작이나 큐브질도 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인기가 있는 돈지랄!

콘텐츠로 살려서 제법 재미를 봤다.

그렇게 모은 수천 명의 시청자와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두면 되는데.

─Maplestory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근데 1, 2단계는 몰라도 3단계부터는 죽을 맛일 텐데……

"확실히 라테일은 3단계 시작이 국룰이긴 하죠."

녹록지가 않아서 문제다.

이렇듯 샌드백인 1, 2단계는 어렵지 않지만 3단계부터는 정말 피가 말린다.

'숱하게 해왔으니 모를 수가 없지.'

단순히 인원 수가 적어졌을 뿐, 라테일 자체는 정말 셀 수도 없이 격파해왔다. 그 패턴은 숙지하기를 넘어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정도다.

『동굴이 울리면서 라테일이 나타났습니다!』

반응해봤자 의미가 없어서 문제다.

3단계, 라테일의 본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유혹이란 패턴은 알고 있어도 눈 뜨고 코 베인다.

"한 번은 의지로 풀어낼 수 있긴 하지만 그 이후부터가 문제죠."

―의지 없으면 그냥 죽어야지

―ㅇㅇ 죽으면서 깨야 함

―표도는 회피율 쩔어서 살 수 있는데……

―해적은 그런 거 안됨ㅋㅋㅋ

두 번째부터는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다. 걸리는 순간 자유 의지를 박탈당하는 유혹은 사실상의 즉사기다

'파티 플레이는 1번 입장자가 유혹을 받아주지만, 솔로 플레잉은 그게 안 되니까.'

아무리 운명의 수레바퀴가 있어도 그것이 마스터키가 되진 않는다. 부활하고 버프를 재정비하는 사이 필연적으로 딜로스가 생긴다.

무엇보다 돈이 들어. 돈슨의 상술에 놀아나는 꼴이다.

최악의 경우 주구장창 죽다가 캐시 아이템만 날리게 된다.

─유혹에 걸려 움직임을 제어당합니다!

이렇듯 말이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 걸리게 된 이상 사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운명에 맡겨야 한다.

"운 좋게 살았네요."

―이걸 사네

―올ㅋ

―운이 좋았음

―또 걸리면 무조건 죽어서 문제

운명의 여신이 내 편을 들어줬다. 그렇게 한 번 살았지만, 라테일은 그리 녹록한 상대가 아니다.

─유혹에 걸려 움직임을 제어당합니다!

세 번째 유혹이 온다.

영웅의 의지는 아직 쿨타임. 쏟아지는 번개에 꼼짝없이 죽는 듯했지만.

"또 운이 좋았네요."

―???

―전생에 무슨 나라를 구했나

―이게 말이 됨?

―이 새끼 돈슨 똥꼬 빠는 이유가 있었네!

돈슨 행사에 몇 번 출석하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친 사고가 더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운으로 산 게 아니다.

'아이템이 있어.'

생존률을 올려주는 잠재 능력. 빅뱅으로 인해 추가된 옵션이다. 당시에는 오직 나만이 활용했었다.

화이트 마리듀크 (+9) ☆☆☆☆☆

장비 분류 : 전신

물리 방어력 : +121

STR : 7

DEX : 37

회피율 +5

ⓤ잠재 옵션

피격 후 무적 시간 : +2초

DEX : +6%

DEX : +6%

장비창을 열어 마우스 커서를 살짝 올린다.

찰나의 순간.

하지만 1만 명이 넘어버린 시청자 중 한 명은 눈치를 채기 마련이다.

―이 새끼 템자랑하네

―인성 보소

―템빨임?

―오 유니크템! 근데 잠재 옵션이 쓰레기ㅋ

물론 못 챌 수도 있다. 채팅창이 워낙 빠르게 올라갔다. 혹은 중계방에 있던 유저만 알아챈 걸 수도 있고.

'여하튼.'

일반적으로는 달지 않는다. 빅뱅 패치의 백미인 잠재 옵션.

DEX +9%라는 달달함을 포기하고 뭔지도 모르겠는 요상한 옵션을 말이다.

쿠구궁―!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다.

단풍잎스토리의 피격, 데미지를 입는 방식은 독특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뭔가 좀 이상한 점 없어요? 깜빡깜빡이 너무 길다던가."

―그렇네

―그런가?

―잘 모르게뜸

―내가 아까부터 길다고 했잖아 ㅡㅡ

꼭 저런 애가 한 명씩 있다.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자기는 그랬다고.

'그런 게 좋은 거야.'

눈썰미가 있다는 뜻이니까. 게임에는 반드시 꿀이 있고, 그 꿀은 작은 변화를 알아채냐 알아채지 못하냐에서 보통 갈린다.

피격 후 무적 시간 : +2초

뭔 개씹소린가 하고 넘어갈 만한 옵션.

깜빡이는 무적 시간을 2초 증가시킨다는 뜻이다.

이는 생존기가 없는 해적에게 한 줄기 동아줄과도 같다.

─유혹에 걸려 움직임을 제어당합니다!

10초간 행동 권한을 박탈당한다. 본래라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야 하지만, 약간의 요행이 겹치는 것으로 살 수 있다.

타악!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고드름. 약 2천의 데미지로 맞을 만하다. 동시에 3초의 무적 시간을 선사한다.

"즉, 3번 정도만 버티면 살 수 있다는 거죠."

―그런 효과가?

―이건 진짜 몰랐다

―표도처럼 비겁하게 안 피하고 다 맞아버리네

―상남자ㅋㅋㅋㅋㅋ

생존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유혹은 물론 평소에도 몸을 지키는 시간이 늘어난다.

즉, 딜로스가 최소화된다.

─라테일의 다리를 격파했습니다!

그 결과.

굳건이처럼 버티던 다리가 부숴진다. 체력이 빈약한 꼬리는 그보다 쉽게 격파할 수 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라테일이 학살 중입니다!

물론 희생이 없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덜 맞는 개념이다.

강력한 공격이 연이어 떨어지면 죽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거품팡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ㅁㅊ 펑이조보다 적게 죽넼ㅋㅋㅋㅋㅋㅋㅋ

"100개 감사합니다. 아이디 보니 펑이님 팬이신가 봐요."

―ㅋㅋㅋㅋㅋㅋ

―어쭙잖은 회피보다 더 좋은데?

―웬만하면 안 죽음

―피격 후 무적 옵션이 개사기네!

애초에 죽는 것이 당연하다. 파티 단위로 잡아야 하는 대형 보스를 솔로잉 하는 셈이니 말이다.

'문제는 얼마나 죽느냐지.'

허용 범위 이내.

운명의 수레바퀴로 만회가 가능하다. 영웅의 의지와 번갈아 사용하며 딜로스를 더욱 줄인다.

─라테일의 꼬리를 격파했습니다!

라테일의 부위가 하나하나 해체 수순을 밟아나간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선택도 아니다.

* * *

오정환의 라테일 레이드.

세간의 관심도 대단하지만, 가장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이들은 다름이 아니다.

"이걸?'

"아니……."

"신박하네. 잠재 능력으로 돌파구를 찾다니."

단풍잎스토리 부서의 직원들이다.

오정환의 레이드.

이에 관심을 가지는 건 딱히 유별날 일은 아니다.

자신들이 만든 보스 몬스터.

공략 과정은 개발자 입장에서도 흥미진진하다. 그 가능성이 낮다고 점쳐졌다면 더더욱 말이다.

─라테일의 날개를 격파했습니다!

보란 듯이 격파하고 있다.

생존력이 빈약해야 할 해적이 혼자 라테일을 잡아내는 기염을 토한다.

"너 이거 만들 때 상정했어?"

"아니;"

"대단한 놈이긴 해~ 핑크린 때도 그렇고."

핑크린때처럼 꼼수를 쓰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그러지라도 않는 이상 직업이 가진 한계가 발목을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젠장…….'

장연수의 표정이 굳는다.

만약 또다시 사용했다면 이번에야말로 문제시할 작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웬걸?

꼼수는커녕 정정당당하다.

새로운 시스템을 적절하게 활용해 생존력이 빈약하다는 한계를 극복했다.

─라테일의 왼손을 격파했습니다!

정말로.

라테일의 왼손이 떨어졌다는 건 더 이상의 유혹에 걸릴 위험이 없다는 뜻이다.

라테일 배꼽 아래의 중앙선을 넘지 않기만 하면 된다. 고작 그 정도 공략법을 모를 오정환이 아니다. 라테일은 단단한 샌드백 신세로 전락한다.

"깰 수 있다고 봐?"

"글쎄요."

"깨지 않을까? 2시간 30분이면 뭐."

"이미 어려운 부위는 다 떨어뜨렸으니 시간 문제긴 하지."

물론 조금 많이 단단하긴 하다.

2시간 30분의 제한 시간. 그 안에 27억이 넘는 라테일의 체력을 혼자 다 까야 한다.

아무리 최근 파워 인플레가 극심해졌다고 한들, 빅뱅 이전에도 랭커급 6인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잡던 강력한 보스 몬스터다.

두두두!

두두두두두―!

이를 처음으로 고안해낸 이다. 스카니아 제1의 강력한 화력을 자랑했다. 잠시간 휴식 기간을 가졌다고 해도 근본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2시간도 안 걸리겠는데?"

"해적이 화력 하나는 제일 센 직업이라……."

"근데 저렇게 안 하면 화력 뽑기 힘들어."

개발부의 직원들이다.

단풍잎스토리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그들의 손을 거쳤다.

당연하게도 해적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안다.

DPS 하나는 현존하는 최강!

대신 생존력이 빈약하다는 게 단점이다.

그렇게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직업은 아니다.

쿠구궁―!

번개가 내리친다. 7천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데미지.

다른 직업은 체력만 깎이지만 해적에게는 한 가지 체력이 더 있다.

"봐봐. 피한다니까?"

"오……."

"이러니까 딜을 잘 박지."

"미친놈이긴 하다. 무슨 도타나 롤도 아니고 고작 단풍잎에."

통통배를 탄 해적은 강력하다.

통통배를 탔을 때에 한정하면 말이다.

통통배의 체력 = (자신의 레벨 ― 120) x 3000 + (배틀쉽 스킬 레벨 x 6000)

만렙 기준으로도 체력이 30만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상을 초과하는 데미지를 받으면 배가 펑―! 하고 터져버리는 웃기지도 않는 리스크를 가졌다.

뭐야, 씨발 돌려줘요!

1분 30초를 생으로 기다려야 배가 수리된다.

물론 공격 수단이 없어지는 건 아니고, 총으로 도도도도―! 쏴재끼면 되긴 하지만.

'약하지.'

직원들의 대화를 장연수도 듣고 있다. 복수심에 불타올라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맨정신이라 할지라도 상상이나 해볼 법한 일이다.

쿠구궁―!

번개가 내리칠 때. 그 직전에 통통배에서 내려온다.

데미지를 입는 건 피할 수 없지만, 통통배의 내구도는 지킬 수 있다.

"잘 봐. 내려오면서 문어도 깔아."

"그러게. 왜 그러지?"

"스킬 딜레이 캔슬하는 거겠지. AOS게임에서는 드물지도 않긴 한데……."

물론 이는 어느 정도 보편화된 컨트롤이다.

내구도가 약점이니, 내구도를 최대한 지킨다. 필드 사냥 중에는 충분히 신경 쓸 수 있는 부분이다.

레이드 중에는 신경 쓰기가 어렵다.

이를 당연한 듯 해내며, 선딜이 있는 스킬까지 빠듯하게 활용해 화력을 극한까지 뽑아낸다.

─라테일의 가운데 머리를 격파했습니다!

라테일을 솔로로 잡아낼 만도 하다. 레이드를 시작한 지 벌써 1시간이 넘었음에도 눈을 떼지 못한 채 감상하고 있는 이유다.

"RPG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인기가 있을 만도 하다."

"WOW에는 좀 있을걸?"

"우리는 돈슨이잖아."

효율이 떨어지는 스킬은 대개 버리기 마련이다.

귀찮아서라도!

특히 해적은 인기가 적은 직업답게 쓸데없는 잡스킬이 엄청나게 많다.

끼룩끼룩~

평타 한 방 분량의 고사리손인 갈매기까지 소환한다. 이미 소환한 문어들과 합치자 제법 든든하다. 정말 1인 군단이라 부르고 싶을 지경이다.

"확실히 잘한다. 아이템이 좋은 거랑 상관없이."

"원래부터 유명한 랭커였다니까~?"

"야, 야."

"아, 부장님……."

그러기가 힘들다.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상사가 저 BJ에게 원한이 있다는 사실. 좁은 사내에서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

하지만 그 또한 눈이 있다.

어떻게든 트집거리를 잡기 위해 방송을 보고 있던 장연수.

돈슨의 간부급 직원이기 이전에 한 명의 개발자로서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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