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단풍잎스토리.
대한민국의 국민 RPG.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게 칭해져도 과언이 아니다.
'근데 국민과, RPG가 들어간 시점에서 한 가지가 필연적이지.'
게임의 난이도가 낮다. 초딩 게임이라는 멸칭이 붙을 만하다. 물론 대중성에 초점을 두는 MMORPG의 특성상 다른 게임들도 큰 차이는 없다.
그것이 당연했던 시기.
새로이 출시된 해적이란 직업은 매력적이었다.
말뚝딜과 동꼽 사냥의 개념에서 벗어나 컨트롤이 딜링에 영향을 미쳤으니까.
─해적왜함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이펙트 보고 의식해서 피하는 거에요?
"당연하죠. 많이 하다 보면 조건 반사로 익어요."
―헐
―보고 피하는 거였음?
―내가 160해적인데 텔하면 배 2~3번씩 깨짐
―신기하네ㄷㄷ
딱히 신기할 것도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이다.
RPG에서는 드문 플레이지만, AOS에서는 일반적인 개념이다.
'엄밀히 말하면 상위권에서만.'
당연하게도 RPG는 실력순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랭커 중에도 컨트롤에 신경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런 별거 아닌 플레이. 롤로 치면 마스터만 달아도 개나 소나 하는 거.
하고, 안 하고의 차이로 해적의 딜링 기대치가 갈린다.
쿠구궁―!
번개가 내리치기 직전. 마지막 한 방을 쏘고, 통통배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문어와 갈매기를 소환하며 떨어지는 번개를 맞는다.
일련의 플레이가 약 0.5초 사이에 이루어진다.
너무 느리면 소환수를 못 부르고, 너무 빠르면 자체 딜로스가 유발되기에 세심한 타이밍이 요구된다.
"이걸 해주면 확실히 딜이 조금 더 나와요."
―미친놈아……
―소환수가 셈?
―난 귀찮아서 안 소환하는데
―저거 소환하는 게 의미가 있나?
물론 과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귀찮은 짓거리를 계속해도 데미지가 획기적으로 세지는 건 아니다.
'많이 쳐줘도 1.4배겠지.'
소환수의 데미지는 본체의 30%가량이다.
통통배가 덜 터지는 것까지 감안하면 그 정도일 것이다. 극도의 귀차니즘을 감수한 것치고 리턴이 크다고는 보기 힘들다.
툭!
투둑―!
하지만 효율면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본래라면 스킬 한 방이 낭비되는 잔몹 처리. 이를 소환수가 대신해서 처리해준다.
'그리고 30%가 작은 것도 아니야.'
말이 30%지, 웬만한 고레벨 유저보다 세다는 소리다. 파워 인플레가 인권 논란을 일으키게 만든다.
두두두두두―!
툭! 투둑―!
문어권이 인권보다 앞서는 세상!
빅뱅 패치 이후로는 딱히 드물지도 않다.
여하튼 데미지를 극한까지 뽑아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라테일의 왼쪽 머리를 격파했습니다!
그 결과.
라테일의 삼두(三頭)가 하나씩 떨어진다.
사실상 라테일의 솔로 클리어에 근접해졌다. 물론 이는 왼팔을 떼낸 시점에서 확정이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클리어를 하냐지.
그 속도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와 존나 세네
―이 속도면……
―펑이조보다 빨리 깨면 500개 쏨!
―1시간 30분컷 가능할 것 같은데??
생존력에서 기인한 변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순수한 화력 다툼이다. 가장 강력한 해적이 가진 포텐셜을 전부 이끌어냈다.
두두두!
두두두두두―!
엄청난 속도로 쏘아진다. 문어와 갈매기의 보조도 떨어진다. 그렇게 오른쪽 머리까지 부숴지고 남은 건 오른팔 하나다.
"사실 해적이 그렇게 좋은 직업은 아니에요."
남들이 안 쓰는 직업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면 게임이라는 게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한 가지 가능성을 남겨준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면 된다. 이렇듯 헛짓거리 존나게 하면 안 좋은 직업도 할 만해진다.
'난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꼭 편하고 좋은 길만이 왕도가 아니다.
불편하더라도, 갖가지 방법으로 더 빠르게 갈 수 있다면 그것도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실제로 정답이 맞다. e스포츠에서 익히 증명된 사례니까.
누군가 인정을 해주든, 해주지 않든 내 안의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다.
『수많은 도전 끝에 라테일을 격파한 원정대여! 그대들이 진정한 라프레의 영웅이다!』
정말 숱하게 들어봤다.
30인으로도, 12인으로도, 6인으로도.
하지만 단신으로 격파를 하는 건 확실히.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메이플아재님, 별풍선 10, 000개 감사합니다!
─S2파워법사S2님, 별풍선 2, 000개 감사합니다!
.
.
.
다른 감상이 들 수밖에 없다.
주르륵 떠오르는 후원.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따름이다.
"미션풍과 클리어풍 정말 감사합니다! 리액션을 하기 전에……,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갑자기?
―뭔데ㅋㅋㅋ
―해적으로 이걸 깨네
―갓정환……, 그는 도덕책
너무 오래전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회귀를 한 지도 어언 반년가량이 지났다.
'적응을 했다는 거지.'
당시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과거의 나와 공감대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해적이란 직업은 정말 오랫동안 무시를 받아왔다. 랭커인 나는 몰라도, 일반 유저들은 속으로 삭혀야만 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오늘은 기점으로 단풍잎스토리에 해적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
―인정합니다
―갓정환! 갓정환! 갓정환! 갓정환! 갓정환! 갓정환!
구태여 선언할 것도 없긴 했다.
* * *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오정환의 솔로 라테일.
이는 펑이조에 비하면 뒤쳐진 시도이긴 했으나.
─오정환 솔로텔 성공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섭 최초 해적 솔텔ㄷㄷ
─우리는 오정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오정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
.
.
그 임팩트는 비교가 안 된다. 인지도 자체가 넘사벽이기도 하거니와, 결과물도 사실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오정환의 솔텔이 대단할 수밖에 없는. EU
'가난한 자를 위한 도적'
'시한부 딜링 머신'
천대 받고 무시당하던 해적으로 솔로 레이드를 성공함└시한부 딜링 머신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별명은 존나 잘 지었네
└해적의 한계를 벗어나다……!!
└믿고 있었다구 젠장!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돈만 쳐바른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펑이조의 첫 솔로 라테일 성공은 딱 그 정도의 임팩트였다.
할 지랄도 드럽게 없구나!
인정한다, 너는 승리한 병신이다!
단풍잎스토리에 수천 만원의 거금을 때려부었기에 가능했다.
─오정환 보고 해적 하는 놈들 100% 후회함
통통배 컨트롤 따라하다 오열ㅋㅋㅋㅋ
└그게 그렇게 어려움?
글쓴이― ㅇㅇ 해보면 토 나옴
└한 5분, 10분은 집중하겠는데 1시간 단위는……
└해적 해본 사람이 있어야 알지ㅋㅋ
그에 반해 오정환.
오히려 저평가 받아 온 감이 있다.
해적 수가 워낙 적고, 단풍잎 자체가 피지컬과 동떨어진 게임이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다.
[Best Comment]― 표도, 해적 컨트롤 차이 키보드로 알려줌표도 컨트롤 : Shift(꾸욱!)
해적 컨트롤 : Shift→Shift→Del+Hm+Pup→Del→Shift→Shift→Del 공격 보고 통통배 하선+소환수 딜레이 캔슬+무빙까지 해야 함└꾸욱!
└동전 꽂았누ㅋㅋㅋㅋㅋ
└펑이조 어리둥절행
└그냥 꾸욱 할랭……
솔로 라테일의 격파를 계기로 알려진다.
이전까지도 유명했지만, 아무래도 개인이 주목 받기는 힘든 시스템이었다.
레이드라는 게 으레 그렇다.
특히 단풍잎스토리.
네모난 2차원 화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캐릭터 위치나 안 헷갈리면 다행이다.
─펑이조 보다 오정환 보면 확실히 다르긴 하네
장담하는데
펑이조는 해적 했으면 사냥도 제대로 못함
└그래서 안 하잖아
글쓴이― 코건 맞지ㅋ
└걔는 표도 들고도 잘 죽음
└'현질'과 '랭커'의 차이가 느껴지나?
두 사람의 차이.
본래부터 있었던 그것이 솔로 레이드를 계기로 확실하게 정리되었다.
볼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신컨.
동전 하나로 대신할 수 있는 발컨.
이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시청자들의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다.
『게임 카테고리 시청자 순위』
1. 오정환_ ?7, 672명 시청
2. 양땅TV_ ?6, 893명 시청
2. 펑이조_ ?1, 917명 시청
.
.
.
가시적인 시청자 수로 즉각 반영된다.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로 되돌아간 것이다. 뒤늦은 시작에도 오정환은 펑이조를 가볍게 추월했다.
'그래.'
이를 지켜보고 있던 장연수.
부글대던 감정은 어느새 차분하게 식었다. 한 명의 개발자로서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서 일들이나 해."
"업무……요?"
"그래, 괜찮으니까."
그도 처음부터 수익 모델에 혈안이 됐던 게 아니다.
대부분의 게임 개발자가 그러하듯,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부질 없었을 뿐.
회사는 수익이 나는 걸 원한다. 유저는 그냥 자극적이면 장땡이다.
적어도 개발자 입장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세심하게 밸런스를 고려해 만든 직업보다, 간편하고 다 때려 부수는 직업이 더 잘 팔리고 인기가 있다.
'미워할 수가 없네.'
해적은 장연수의 손길이 들어간 직업이다.
당시에는 직급이 낮았고, 부여받은 작업을 수행한 정도지만 신입 개발자로서 들뜨지 아니할 수 없었다.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개발자로서 성향이 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다를 뿐이다. 어느 쪽도 틀린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길을 알아봐 준 유저에게 한 명의 개발자로서 리스팩트가 생긴다.
「저 오늘은 시간 될 것 같아요.」
「연수씨가 사주는 거에요?」
여자쪽의 관계도 풀렸고.
방금 온 카톡을 보며 장연수는 자신도 모르게 히죽 웃는다.
* * *
풀리지 않은 쪽도 있다.
이번에야말로 단풍잎스토리 최고의 BJ로 자리매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쒸발 이 새끼들은 눈이 사시야? 병신이야? 표도는 컨트롤이 쉬운 줄 아나……."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온다.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팩트) 쉽다
―팩트) 동전 하나로 씹거눙
―표도는 좀ㅎㅎ
―이 새끼 롤하면 브실골 탈출 절대 못할 듯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시선도 변해버려서 문제다.
솔로 라테일? 가만 보니 현질만 쳐바르면 개나 소나 하는 거네.
대단한 기록에서, 한심한 기행이 되고 말았다. 비교 대상이 생긴 탓이다. 오정환이 또다시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서있다.
"4차 전직도 못했을 놈들이 뭘 안다고! 롤? 그딴 거 하면 무조건 다이아 찍지. 단풍잎 랭커가 우습게 보이냐?!"
―랭커도 랭커 나름이지……
―풋! 현질충
―흠ㅋㅋ
―얘는 또 시청자랑 싸우고 있네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시청자를 몇 명 강퇴 한다고 끓는 속이 풀릴 리가 없다.
이전처럼 또 오정환의 방송 시간을 피해 쥐 죽은 듯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누군지 알아? 보여줘?'
상대에게 넘어간 주도권.
다시 되찾아오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더 많이, 더! 더! 더! 돈을 때려박아 아이템을 만들고 딜을 키운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큼.
설사 상대가 오정환이라 해도.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펑이조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