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BJ시상식
한국 사람들의 특징.
하지 말라고 할수록 청개구리다.
그리고 게임에 엄청난 경쟁 심리를 가진다.
─킹해적맨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해적 시작함ㅋㅋㅋㅋ 현질 100만원 지를 예정!
"해적 힘들 텐데……, 그럴 바에 반만 나한테 주고 내 방송이나 보지 크흠! 아, 아닙니다."
―아뿔싸!
―속 마음이 나와버렸누ㅋㅋㅋㅋ
―100만원은 탐날 만하지
―이미 미션풍으로 땡기지 않음?
어제 땡긴 건 어제 땡긴 거고, 오늘은 또 오늘의 땡김이 있어야지.
한 가지 필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원래 그래.'
LCK에서 특이한 픽이 나오면 유행하듯.
단풍잎스토리에서 내 방송도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해적이 유행을 탄다. 한 명의 딜러가 아닌 1인 군단.
개개인의 화력이 대두되는 빅뱅 패치가 어울려진 결과다.
『수많은 도전 끝에 라테일을 격파한 원정대여! 그대들이 진정한 라프레의 영웅이다!』
이렇듯 혼자서도 대형 보스를 격파할 수 있다.
소환수라는 컨셉도 멋있어 보인다.
아무리 말려도 시청자들이 따라할 만도 하다.
"1시간 20분 컷 나왔네요. 아이템 계속 갈아 끼면서 기록 단축 노려보겠습니다."
―헐 어제보다 20분이 줄었어
―펑이조는 1시간 29분 걸리고 좋아했는데ㅋㅋㅋㅋㅋ
―걔는 뭔데 경쟁심 느낌
―X밥한테 관심ㄴㄴ
실제로 해적이 좋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보는 해적의 전성기. 그것은 바로 빅뱅 패치 직후였다고 생각한다.
'피격 후 무적 시간 때문에 컨트롤이 편해졌지.'
다른 직업에게는 단순히 생존률이 오르는 정도지만, 해적의 경우 통통배의 내구도 관리에도 큰 도움을 준다.
그 전까지는 컨트롤빨로 어찌저찌 써먹었다면 지금은 누가 해도 평타는 친다.
객관적으로도 충분히 좋은 직업이다. 일반 유저가 써도 어디 가서 무시 받을 일은 없다. 랭커 중의 랭커인 내가 쓸 때는 솔직히 사기라는 느낌까지 받는다.
"펑이조님도 열심히 하는 건 아는데…… 표도는 한계가 있을걸요? 혼자 하면 궁수한테 샤프도 못 받고."
―아ㅋㅋㅋㅋㅋㅋㅋ
―역전됐누
―표도 쓰레기 직업 ㅇㅈ
―꼬우면 킹갓해적 하던가~
솔로가 됐다는 건 해적에게 유리한 환경이다. 표도가 최대 화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궁수의 샤프라는 치명타 버프를 받았을 때다.
'그에 반해 해적은 치명타 의존률이 낮아서.'
단언할 수 있다. 솔로 레이드는 해적이 표도보다 우월하다고. 물론 돈을 쏟아부으면 격차가 좁혀지는 것도 사실이다.
펑이조[CH 13] : [슬피우드 기부왕의 훈장] 너무 돈이 많아서 따버렸다^^
빅뱅 패치의 특성. 파워 인플레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채팅창에 귀여운 아이템 자랑이 하나 떠오른다.
─펑해조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그저 Wls
"Wls가 뭔진 모르겠지만 저도 비슷한 알파벳이 떠오르긴 했어요."
―찐ㅋㅋㅋㅋㅋㅋ
―우욱 씹
―펑하다 추이요
―그래도 단풍잎BJ 중에 나름 잘 나가는데ㅋㅋ
근데 원래부터 Wls이긴 했어.
누가 봐도 Wls에 해당하는 특성을 하나부터 열까지 갖추고 있는데 일일이 증명하기도 애매하다.
'그게 뭐 잘못은 아니긴 해.'
그리고 BJ업계에서는 딱히 드물지도 않다. 직업 특성상 내향적인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걸어오는 시비는.
오정환[CH 08] : [핑크빈 슬레이어의 훈장] 아 손이 미끄러졌네ㅋㅋ
마다하지 않는 주의다.
나도 아싸 기질이 다분하다 보니 잠자고 있던 Wls이 조금 새어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느이 집엔 이런 거 읍제??
―(돈으로 못 삼)
―성인 둘이 유치하게 증말……
'슬피우드 기부왕의 훈장'은 슬피우드라는 마을에 가장 많은 기부를 한 유저에게 주는 훈장이다.
매월 초 기부금이 초기화되기 때문에 유지하려면 적잖은 금액이 필요하다.
'그래서 Wls을 한 거겠지만.'
나에게 명함을 내밀려면 조금 더 고급진 것을 가져와야 한다.
이를테면 '핑크빈 슬레이어의 훈장'처럼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물품.
사실 어느 쪽도 결국은 만렙 훈장보다 안 좋아서 쓸데없는 뻘짓, 즉 Wls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펑이조[CH 13] : [리스공항 기부왕의 훈장] 키사마ㅏㅏㅏㅏㅏㅏㅏㅏ
물론 장난이다.
BJ들끼리 원래 이러고 노는 거지. 한 분야의 파이가 커지려면 배우도, 스토리도 풍부해져야 한다.
'고인물은 아무리 커도 썩기 마련이거든.'
내가 보라와 게임을 병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스토리가 알아서 생긴다면 그 빈도를 줄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달의 뒤편으로 와요~ 그댈 숨겨줄게요~!」
안타깝게도 세상이,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 * *
파프리카TV.
2006년도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여 향후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국내 최대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다.
"누가 될 것 같아?"
"글쎄……, 쟁쟁하지."
2012년도에 이미 7년 차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만큼 역사와 전통이 쌓였고, 나름대로 시상식까지 진행한다.
그렇다.
파프리카TV의 시상식.
그 진행식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년간을 총결산하여 각 분야의 최고BJ를 뽑는다.
누가?
운영자가.
대부분의 분야는 정해졌지만 두 분야만큼은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시사/학습 부분은 해머부인 앉히면 될 것 같은데……."
"그분은 그냥 고정이고. 문제는 게임 부분과 보라 부분을 누구한테 주냐지."
명확한 기준은 없다. 꼴리는 대로 적당히 주면 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적당한 게 가장 어려울 뿐이다.
당연하다. 사실 시상을 적당히 한다는 것부터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시청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으니까.
"게임은 그냥 양땅 주면 되지 않을까?"
"초딩들한테 인기 많긴 해."
"재미는 없지만."
"슬슬 줄 때 됐잖아~."
2007년도에 처음 방송을 시작하여, 다음 해에 베스트BJ를 달고, 6년째 BJ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본인이 이끄는 크루도 있으며, 시청자도 1만 명을 넘나드는 대기업이다.
시청자층이 초딩!
콘텐츠도 마인크래프트 원툴!
회사 입장에서 수익에 도움은 안되지만 인기 하나는 정말 많다.
"문제는 역시 보라지."
"그러게……."
팀장급 운영자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이유다.
자신들이 밀어주는 BJ 위주로 수상을 꾸리고, 아쉬워할 만한 인원에게 한 명씩 쥐어준다.
파프리카TV 특유의 Secret 방식. 적절한 선에서 해먹는 노하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분야만큼은 주먹구구식으로 정할 수가 없다.
"김군 하나 챙겨주라고 사장님이 말씀하셨는데."
"철꾸라지를 주는 게 맞지 않아?"
"김군을 토크쪽으로 돌리자!"
"그건……, 힘들지."
보이는 라디오. 파프리카TV의 대표 콘텐츠다.
해당 분야의 수상자가 된다는 건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여론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BJ들도 일련의 사정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 물밑에서는 여론전이 펼쳐지고 있다.
"마아아아―!!"
"왜 또 지랄이십니까 형님."
―지랄이래ㅋㅋㅋ
―존대말+욕
―대상 하나쯤 먹어야 얌전해질 듯?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대상은 누구누구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운영자들이 이를 의식한다면,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방법도 있다.
─쿤☆의정부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올해는 무조건 김군이 받겠지??
"의정부 형님 천 개 감사합니다. 근데 뭐…… 굳이 말할 필요 있나? 막말로 나 말고 누구 줄 건데~!"
대놓고 말하든. 간접적으로 말하든.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는 목적 하나는 일치한다.
파프리카TV를 주름잡는 대기업 크루들.
그들의 기싸움이 보라판을 뒤흔들고 있다. 시청자들의 대리 전쟁까지 펼쳐지며 매우 치열하다.
"어차피 하나는 줘야 돼."
"매년 있는 일이지."
"올해는 더 복잡해서 문제지만……."
예삿일이다.
그 정도는 운영자들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평소라면 그것까지 감안해 이미 정했겠지만, 올해는 한 가지 더 변수가 생겨버렸다.
오정환. 갑작스레 치고 올라온 이레귤러.
여론을 의식한다면 결코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존재다.
"그냥 제외하면 안돼?"
"안돼. 심사 방식에 지랄하는 놈들 나와."
"확실히 요즘 대세기도 하고 주는 편이 자연스럽긴 하지."
"김군을 안 줬으면 깔끔했는데……."
"사장님한테 말해보던가."
권한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눈치를 봐야 하는 중간 관리직은 골머리를 썩고 있다.
그리고 시상식 날은 다가온다.
* * *
"예, 예……. 혹시 저도 받는 게 있나요? 아~~ 말할 수가 없는 부분이라고요?"
파프리카TV의 시상식.
파프리카TV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연례 행사로, 그 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BJ에게 트로피와 소정의 상금을 선사한다.
'표면적으로는 말이야.'
대부분의 시상식이 다 그럴 것이다. 역사와 전통이 있다면 제대로 굴러가지만, 반대로 없다면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해서 문제다.
까놓고 말해서 파프리카TV는 후자.
원래는 99.9%였는데 차후에는 95%까지 희석된다.
휘휘~ 저으면 그래도 이게 고깃국이 맞구나 건더기가 보이는 정도로.
<미리 밝히면 분란의 소지가 있어서요.>
"그렇네요. 제가 그날 약속이 있어서 여쭤본 거에요."
<네? 아니, 그…… 꼭 오셔야 되는 건데;;>
현재 시점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방송 지표와 시청자 투표 등도 심사 과정에 포함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의미가 없다.
'어차피 지들 꼴리는 대로 뽑거든.'
굳이 참석할 의미가 있을까? 가봤자 들러리+1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고 있던 건데.
<후……, 이거 원래 말하면 안되는데 포함돼 있습니다.>
"예?"
<오정환님이 상을 하나 받으실 거에요. 그러니까 꼭 오셔야 합니다.>
내가 받는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나쁜 사람이라도, 우리쪽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원래 그래.'
인생이 다 그런 거지.
파프리카TV가 워낙 인맥 사회라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수확이다.
<오정환님 아직 방송 1년 차시죠?>
"예, 뭐 반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시상식이 아무나 오는 자리가 아닙니다. 검증된 BJ분들과 그 지인분들에게만 초대권을 돌아가는 거라서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무조건 오셔야 되는 거에요.>
"아~ 그렇구나. 몰랐죠. 이제부터 주의하겠습니다."
가기 싫어서 일부러 모른 척했던 건데 회사 생활 FM으로 하시는 분이다.
목소리톤부터가 입사 2년도 안 된 짬찌 운영자.
'이런 걸 단박에 알아챌 정도니 나도 참 고이긴 고였구나.'
올해도 참석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한동안 바빠질 듯싶다. 가기 싫었던 건 딱히 귀찮아서만이 아니다.
파프리카TV의 시상식.
즉, BJ들이 우글거리는 자리다.
그것도 검증이라는 거름망으로 걸러진 이들이 말이다.
'신경전이 대단하지.'
랜선으로도 싸우는데, 현실에서는 오죽할까?
참여하게 된 이상 나도 예외가 아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야 한다.
베테랑이 아닌 짬찌.
방금 그 운영자보다도 덜 먹은 입장이다.
필연적으로 수많은 풍파에 시달리는 신인이다.
'참으로 많은.'
그만큼 시상식이라는 자리는 무겁다.
동시에 뜻하지 않은 기회도 생긴다. 모든 것은 나 하기에 달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