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파프리카TV BJ 페스티벌.
시상식은 하나의 이벤트를 병행한다.
근엄한 분위기에서 탈피해, 시청자들도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기 위함이다.
<제 4회 파프리카TV BJ 페스티벌을 지금부터! 여러분의 뜨거운 환호! 함성과 함께 시자아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
익숙한 외침과 함께 막을 올린다. 현장에 착석한 수많은 관계자 및 BJ들의 박수갈채가 세차게 울린다.
"더 세게."
"……."
"손바닥이 터지도록!"
그런 소리가 인위적으로 나올 리가 없다.
행사에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인 진헌은 반강제로 자신의 몸을 고문 중이다.
'시발!'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말이다.
악에 받쳐야 주위의 템포에, 사수의 으름장에 간신히 따라갈 수 있다.
"곧 시상이 시작될 거란 말이야."
"예!"
"박수의 크기는 내가 팔을 들어서 표시를 해줄 테니까 그 정도로 치면 돼. 참고로 방금 게 최대야."
휴…….
그 이상으로 치라고 했으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뻔했다.
지금도 양손이 얼얼해서 확 때려치고 나가고 싶은 기분이니까.
'물론 진짜로 하진 않겠지만.'
딱히 할 깡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고 많은 아르바이트 선택지 중에서 이곳을 굳이 택한 이유가 있다.
진헌은 보고 싶었다.
파프리카TV BJ들의 실물.
영상학과에 재학 중이기에 안다. 사진에 사진빨이 있듯, 영상도 캠빨이 존재한다는 걸 말이다.
'특히 여캠!'
방송 속에서는 거의 연예인급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수려한 여자BJ도 있다. 현실에서 볼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히 잡고 싶다.
그런 이유를 제외해도 그냥 궁금한 것이다.
연예인 실물과 마찬가지로, BJ 실물을 보는 경험도 한 번쯤 해보고 싶던 건데.
<2011 파프리카TV BJ대상 게임 부문입니다. BJ양땅!>
사수의 팔이 70도가 넘어가게 올라간다.
그만큼 유명한 BJ.
진헌도 은근히 팬이었던 터라 마음속으로 우러나서 박수를 친다.
'……어?'
양팔에 조금 힘이 빠진다. 단상 위에 올라온 그녀의 모습은 자신이 알고 있던 바와 달랐으니까.
흔적이 남아있긴 하다.
의식하고 보면 같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명백히 하위 호환이 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너 처음이냐?"
"어."
"익숙해져. 생각보다 별 거 없어~."
자신과 같은 아르바이트인 재훈.
나이도 같다 보니 자연스레 말을 텄다. 그는 지난 해에도 시상식 일을 도왔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행사 시작 전에 이야기를 나눴다.
BJ들? 직접 보면 별 거 없어.
하지만 사람마다 외모를 보는 기준은 다르다.
무엇보다 알고 있다. 연예인들도 실물이 가끔 아쉽다. BJ들도 그럴 수 있으리라 감안하고 봤음에도.
<네~ 축하드립니다! 파프리카TV BJ대상 게임 부문 수상자는 양땅TV입니다!>
차이가 너무 심하다. 아무리 캠빨이라 쳐도 말이다.
진헌이 실망하게 된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연예인들은 특별한 게 있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연예인이구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를 떠나 특유의 아우라를 풍긴다.
'없네.'
길거리를 거닐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인A,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느새 무미건조해진 표정으로 박수 치는 기계가 되어있다.
물론 끝이 아니다.
연예인 중에도 오라가 옅은 사람이 있다.
애초에 양땅은 게임BJ지, 여캠이 아니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2011 파프리카TV BJ대상 음악/댄스 부문입니다. BJ잔나!>
여캠들은 정말 예쁘다.
시상식에 나오는 이는 Top of Top.
기대를 해도 괜찮을 거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는데.
"……."
"봐봐. 별거 없다니까."
본인이 맞나?
알아보기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캠빨을 넘어, 이 정도면 사기가 아닐까 화가 난다.
'나는 그렇다 쳐도 열혈들은 난리가 나겠네.'
지금 이 자리는 파프리카TV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다.
여캠의 실물이 실망이라면 파장이 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딱 그 정도의 이야기.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 이 화려한 무대도, BJ들의 세계 또한 말이다.
<2011 파프리카TV BJ대상 보이는 라디오 부문입니다. 예능인 김군!>
아르바이트를 명목으로, 그리고 평소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 유명인 실물을 보고 SNS에 감상을 올리는 게 취미다.
BJ에 한해서는 신경을 꺼도 되겠구나.
'저 돼지는 또 뭐야? 북한 김정은처럼 생겨 가지고.'
확신을 하는 경험·계기가 생겼을 뿐이다.
잇따라 올라오는 BJ들도 딱히 느낌이 있지 않다.
사수가 팔을 완전히 꺾어 하늘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변변찮다.
짝짝짝!
짝짝짝짝―!
길고 길었던 수상이 끝나간다.
더 이상 손바닥을 학대하지 않아도 된다.
본래의 서빙 알바로 돌아가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한숨을 내쉰다.
'내가 죽을 때까지 파프리카TV에 팬가입이라도 하나 봐라.'
특히 여캠은 거들떠도 안 보리라.
굳은 의지로 마음속 깊이 맹세까지 하려던 찰나.
"저, 스태프 오빠……."
아리따운 드레스를 입은 여성.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차원이 다르다. 단언컨대 이만한 수준은 오늘 본 적이 없다.
'아니.'
연예인 중에서도 드물다. 걸그룹에서나 느낄 수 있는 황송함. 진헌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무, 무슨 일이시죠? 제가 도와드릴게 있나요?"
"여기 떡볶이 어딨어용?"
"……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혹시 숨겨진 의미가 있는 말인지. 곱씹어보기도 전에 연이어 확정타를 날려온다.
"음식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아, 그…… 뷔페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요, 맞아요~ 떡볶이도 분명 있겠죠?"
"메뉴 목록은 잘 모르는데 비슷한 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없을 수도 있고.
자신이 담당이 아니기 때문에 모른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는 머릿속 상태도 아니다.
'BJ는 뭐지? 모르겠다.'
진헌은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 * *
찾아오게 되었다.
파프리카TV의 시상식.
행사장 하나는 언제나 그렇듯 으리으리하다.
'이런 데 돈 안 아끼는 건 마음에 들어.'
물론 속사정을 안다. 파프리카TV가 통이 크다기보다는, 대외적인 시선을 엄청나게 의식한다.
KBS, SBS 등 방송사 시상식처럼 있어 보이게 열려는 것이다.
나오는 식사의 수준도 높아서 가볼 만한 것도 사실이다.
"너무 맛있어요! 저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그래, 많이 먹어."
이를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있다.
우리 봄이가 아주 신바람이 났다.
기껏 해준 화장이 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그럴 줄 알고 입 주위는 기본 화장만 해뒀지.'
피부가 워낙 깨끗하기 때문에 명암 처리만 무너지지 않으면 상관은 없다.
접시에 한가득 퍼온 음식을 볼따구가 터져라 쑤셔 넣는다.
"저 오늘 배가 터질 때까지 먹을 거에요."
"안돼."
"헐, 왜요!"
"그 접시까지만 먹어."
나의 선고에,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정말이냐고. 진심이냐고.
안타깝게도 리얼 참 트루다.
'니가 배를 볼록하게 하고 있으면 데리고 다니는 내가 많이 곤란해지잖아.'
경찰관 앞에서 꺼억―! 트림을 한다고 해결될 오해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사건이 생기는 것 자체가 문제야.
이래 봬도 이쁘장하다. 친히 화장을 발라주면 나름 여자여자하다. 봄이도 체통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관리다.
"그치만, 그치만! 뷔페에 가면 본전을 건져야 된다고 배웠어요!"
"그래."
하지만 이곳은 음식점이 아니다.
일단은 파프리카TV의 시상식.
보는 눈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장소다.
'보기보다 무서운 곳이야.'
자신의 방 내지 스튜디오에서만 볼 수 있는 BJ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것만으로도 생길 스토리텔링이 어마무지하다.
이를테면 실물.
생각보다 너무 실망인데?
캠과 카메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오빠 고기 안 먹으면 저 먹어도 돼요?"
"그래, 많이 먹어."
"많이 먹지 말라면서요!"
원판이 개쩔면 상관이 없다. 문제는 애매하게 잘생긴 경우. 그러니까 일반인 중에서 ㅅㅌㅊ면 각오를 해야 된다.
캠은 좁은 공간을 찍는데 반해, 카메라는 넓은 공간을 찍는다.
렌즈의 배율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이때 공간이 압축되는 효과가 생겨 피사체와 배경 사이의 거리가 줄어든다.
'납작하고 뚱뚱하게……, 그냥 단적으로 말하면 못생겨 보인다고.'
평소 캠에 장난을 안 친 사람도 봉변을 당한다.
장난을 쳐온 사람이라면 R.I.P.
위로의 말밖에 건넬 게 없다. 하도 BJ들이 공개 망신을 당하니 차후에는 카메라의 기종을 바꾼다.
캠과 그렇게 큰 차이가 없고, 어느 정도 보정 효과가 있는 것으로 말이다.
현재는 그렇지 않다. 실물보다 더욱 안습한 화면이 나갈 것이다. 일련의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대처도 못 할 것이 없다.
<2011 파프리카TV BJ대상 신인상 부문입니다. BJ오정환!>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이유.
당연히 봄이 밥값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단상에 오를 차례라는 걸 진행자가 알려준다.
"느긋하게 다녀오세요!"
"그래, 또 퍼오지만 마."
"헉!"
신인상을 받게 되었다. 방송 시작 1년 미만에게만 쥐어지는 명예.
'보통은 크루 소속 BJ들이 독차지하는데.'
딱히 밀어줘서라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으니까.
그 안에 뜨고, 전업BJ를 결정한다?
경력 있는 신입 혹은 크루 소속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미가 있다.
"파프리카TV의 샛별이죠? BJ오정환님은 통통 튀는 매력과 방송에 대한 열정으로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러가지 콘텐츠를 소화하고…… 오? 비쥬얼까지 덤으로 잘생기셨네요."
"감사합니다. 원래는 안 생겼는데 날이 날이라 덤으로."
양 뺨을 손으로 톡톡 두들기자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온다.
메이크업에 신경 썼다는 뜻이다.
'화면빨이 잘 받는 효과도 있고.'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필수다.
다른 사람들은 안 하고 있다 보니 괜시리 주목받는다.
짝짝짝짝―!
적당한 박수 소리와 함께 단상에서 내려온다.
시야에 보이는 광경.
입에 무언가를 가득 담은 채 물개 박수를 치는 봄이의 뒤에.
'사람이 많지.'
그리고 그 태반이 BJ다. 보기보다 무서운 장소라는 건 과장이 아니다.
설마 사탕이라도 주고 유괴하나?
봄이에 한해서는 가능성이 있지만, 더욱 악랄한 수법이 있다.
"직원분이 접시를 가져갔어요."
"그래."
"절대 제가 먹은 게 아니에요!"
바로 흑역사 제조.
사람의 약점을 잡아낸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무서울 수밖에 없는 행위다.
'이런 이야기를 성인이 된 봄이한테 들려준다거나.'
생각만 해도 사악하다.
그래봤자 결국은 장난.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파프리카TV의 시상식.
모든 유명BJ들이 모이는 장소.
일거수일투족을 유념해야 하는 이유다.
"안녕하세요. 수상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BJ준호씨죠?"
"어……, 아시네. 하하하;"
실수를 하지 않아도 재미난 일이 많이 일어난다. 말을 걸 타이밍을 보고 있었을 하이에나들. 내려오는 와중에 이미 살폈다.
'뚫어져라 보고 있더라고.'
긴히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봄이는 긴히 먹고 싶은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빠……."
"응?"
"저 한 접시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제발!"
"먹어."
"아싸!"
"대신 택시 타고 집에 가서."
이제부터는 어른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