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85화 (85/846)

85화

조금, 아주 조금만 머릿속 나사를 조여보면 알 수 있는 이야기다.

파프리카TV의 보라, 여캠 등, 별풍선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터진다. 천만 원, 2천만 원 정도가 아니라 상식을 아득히 벗어났다.

'물론 잘 버는 건 파프리카TV만이 아니지.'

현재는 몰라도 차후에는 생긴다. 토이치TV, 뮤튜브, Mixer 등.

실시간 스트리밍이 가능한 방송 플랫폼들 말이다.

그곳에도 대기업 스트리머가 있다. 일반 직장인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많이 번다.

그 자체는 얼핏 비슷하나 두 가지의 중대한 차이점을 내포한다.

1. 한 시청자가 극단적으로 많이 쏘진 않는다.

2. 수익은 시청자의 수와 비례한다.

당연히 예외는 있지만 규격을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다. 수천 만원을 쏘는 시청자가 널려있으며, 100명도 안 보는 여캠이 몇 억씩 버는 방송 플랫폼은 전세계를 뒤져봐도 파프리카TV가 유일하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있긴 있어.'

콜팝TV, 윙크TV, 판다TV, 실버라이브 등 들어본 적이 없어도 왠지 알 것 같은 느낌의 성인 방송 플랫폼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일반 방송 플랫폼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오직 성인 방송 플랫폼에서만 일어난다.

열혈이라는 시스템 때문 아니냐?

집 팔고, 빚 얻어서 별풍 쏜다는 그 호구들이 먹여 살리겠지.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인생에 고민 한 점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인간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냐고.'

물론 있다. 내 방송만 해도 무리해서 쏘는 사람 몇 명 있다.

하지만 규모가, 인원이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정도를 아득히 벗어났다. 인위적인 손길이 더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음지에서 자신의 활동을 철저히 숨긴다.

밀접한 관계를 가진 동업자, 혹은 하수인을 통해서만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형님이 어떤 분이냐면 내가 재작년에 사고를 좀 쳤거든."

"좀 친 게 아니지 말입니다?"

"마아!"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듯, 적당한 진실과 적당한 허구를 던져주면 그런가? 하고 넘어가 버린다.

파프리카TV에서 터지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별풍선.

그것이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원유다.

"콜팝TV로 방송 플랫폼을 옮겼었는데 그때 도움을 주시고, 파프리카TV 복귀까지 손을 써주신 대단한 형님이야."

"아, 뭘 또 옛날 일 가지고."

"형님이 안 도와주셨으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합니다. 한 잔 받으시죠."

철크루의 회식 자리인 줄 알았던 술자리. 남자가 오자마자 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철꾸라지와 크루원 모두가 그의 심기를 의식하고 있다.

'그 철꾸라지가 얌전해졌을 정도면 말 다 했네.'

방송은 물론, 사석에서도 안하무인인 철꾸라지가 말이다.

그 정도로 남자가 가진 힘이 크다는 방증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 대화에서 추측할 수 있는 행실. 이미 힌트는 차고 넘치게 주어졌다.

"너도 푼돈으로 끝나고 싶지 않잖아?"

"먹고 살 만큼은 버는데요."

"마아―! 그게 푼돈이라는 거야 이 세상물정 모르는 새끼야."

마지막 확증까지.

살다 살다 철꾸라지한테 세상물정 모른다는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철꾸라지는 알 바가 아닌데.'

문제는 눈앞의 남자. 술을 마시면서도 눈길은 나를 향해있다. 마치 내 반응을 떠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오정환이라고 했지? 요즘 뜨는."

"전자는 맞는데 후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겸손한 친구네. 이 새끼처럼."

"아야야야! 귀는! 귀는!"

"막 나가는 놈들이 많은 세계잖아. 그치?"

하지만 아직 본 이야기가 시작된 건 아니다. 적어도 상대는 그리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이야기가 진행되면 쉽게 물러서진 않을 거거든.'

그런 세계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해야 한다. 적당한 진실과 적당한 허구를 섞은 기만 작전.

"잘 마시네."

"숙취 때문에 평소에는 잘 안 마시는데 모처럼 귀한 술을 까주셔서."

"크~ 그렇지. 발렌타인은 21년산부터인 거 알지?"

씨발!

주당 입장에서 되요~ 돼요~ 수준으로 불편하기 때문에 굳이 짚고 넘어가자면, 21년산이라는 건 1921년산을 가리킨다.

'21년을 숙성한 건 21년이지, 21년산이 아니야.'

무슨 와인도 아니고.

양주를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허세를 부리려고 마시는 경우가 대다수라 지적하면 아마 화낼 것이다.

"역시 향이 깊네요. 21년이라."

"그렇게 알아주면 사주는 보람도 있지! 니들 뭐 하냐 잔 안 채우고?"

"근데 저도 제 템포가 있어서 물 좀 마시면서 먹겠습니다."

"양주 먹을 줄 아네~ 양주는 안주랑 먹는 게 아니거든!"

한국에서 양주를 즐기는 사람의 수는 적다. 심지어 2012년도이니 만큼 더더욱 희소하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생기는 공감대.

'는 개뿔이.'

발렌타인을 메인으로 마시고 있는 시점에서 애주가 탈락이다.

하지만 그건 내 입장.

자신을 심익태라고 밝힌 남자의 입장에서는 재미있을 것이다.

양주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

잘난 척도 잘난지 알아봐야 할 맛이 생긴다. 양주라고는 골든 블루나 윈저밖에 안 마셨을 놈들을 데리고.

"이 새끼들은 양주맛을 모른다니까?"

"소주 두 잔이, 양주 한 잔 아닙니까 행님?"

"봐봐 이런 식이야."

"그럴 수 있죠. 저도 친한 형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이런 거 어디 가서 배우지 못하거든요."

"아는 형?"

술을 적셨으면 평소에 얼마나 재미가 없겠어.

대화를 자연스럽게 받으며, 내 의도를 서서히 확장시킨다.

"사업이라도 하시나 봐?"

"아, 예. 좀. 발이 넓으셔서."

"그래? 명함 같은 건 있고?"

"제가 따로 들고 다니진 않고, 대천쪽에서 일하십니다."

"대천?!"

은어다. 물장사를 하는 사람들만 알아듣는.

남자가 그쪽이라면 어련히 알아서 머리를 굴릴 것이다.

'관례 같은 게 있어서.'

동종업자가 침 발라둔 먹잇감에 손을 대지 않는다.

만약 댄다면 그것은 선전포고. 오해였다며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세계가 아니다.

"흠……, 형분이 술을 잘 아시나 보네."

"저는 어깨너머로 배운 정도죠."

"집에 좀 귀한 술이 있어?"

"저번에 가보니까 별게 다 있더라고요. 발렌타인 30년부터 시작해서 희귀 NAS들도 있고, 아 NAS는 숙성 기간을 표기하지 않은 보틀을 말하는 건데."

"알지, 알지! 뭐 그런 걸 설명까지 하고 그래 크흠!"

X문가들은 발렌타인 30년이 최고의 술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수준에 맞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모를 만한 용어를 끼어넣어 위축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기꾼 수법이긴 하지.'

사람 하나 납득시키는 데에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 실제로 다 알아들은 듯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인다.

험악하게 생긴 것 치곤 너무 허접이라 김이 빠질 정도다.

* * *

오정환이 떠나고 난 술집.

철꾸라지가 잡은 룸 안에서는 여전히 술잔이 오가고 있다.

"말이 좀 통하지 않습니까? 멍청한 녀석은 아닙니다 행님."

"그렇지."

"쬐~끔만 교육시키면 되겠죠?"

"니처럼 멍청한 녀석이 아니라서 문제지."

"……."

오정환을 초대한 이유.

1차는 철꾸라지의 크루에 묶어두기 위함이다.

2차는 그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 장사를 하고 싶어서다.

'싹은 있어.'

이미 선례가 있다.

철꾸라지는 보이는 그대로라 못 써먹지만, 김군이나 퀘이처럼 여캠과 감정선을 잘 만드는 BJ는 사업적인 가치가 크다.

여캠들을 데뷔시킨다. 열혈 호구들을 빨아먹는다. 그리고 자신이 이를 뒷받침한다.

오정환은 최적의 인재다.

김군, 퀘이보다 훨씬 유망하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임자가 있다면 손을 댈 수 없다.

"니들은 어떻게 여캠이랑 드라마 한 편 못 찍냐."

"제 인생이 드라마입니다 행님."

"범죄 드라마 말고 이 새끼야!"

파프리카 TV의 크루.

겉보기에는 친분 있는 BJ들끼리 뭉친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뒤를 봐주고, 수익을 챙겨주는 뒷배가 누구인지에 따른 나눔이다.

철꾸라지는 분명 인기BJ다. 하나 그런 것치고는 실속이 적다. 본인은 몰라도 뒤를 봐주는 심익태의 입장에서 말이다.

'AV에 나올 만큼 야한 애들을 데뷔시키면 돈을 쓸어담는 건데.'

철꾸라지가 시원찮으니 새로운 인재가 필요했다. 오정환은 가히 적절한 인선이었다. 방송 컨셉이 딱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그에게 다른 뒷배가 있다면?

그 가능성을 생각 못 했던 심익태는 아차 싶다. 누군가 침을 발라뒀다면 영입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고 보면 이상하긴 했습니다."

"뭐가?"

"너무 갑자기 떴어요. 무슨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그렇긴 하죠. 고작 반년만에."

"흠……."

크루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 윤곽이 뚜렷해진다.

방금 전, 본인이 했던 이야기까지 더하면 거의 확실하다.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 그거지.'

작정하고 데뷔시킨 녀석일 수도 있다. 머릿속에 스친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 않다. 오정환의 영입을 술자리에서 꺼내지 않았던 이유다.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감이라도 남의 집 감이면 따면 안 되듯, 이쪽 업계에도 비슷한 불문율이 있다.

하고 있는 장사가 여캠 말고도 한둘이 아닌 만큼 신중해야 한다.

"당분간은 손대지 마."

"그래도 크루 영입 정도는……."

"야."

"네, 형님!"

"술 취했냐?"

"아닙니다. 말대답해서 죄송합니다……."

행보관 앞에 선 병장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있다.

그런 철꾸라지를 보며 크루원 모두 혈중 알코올 농도가 자체적으로 낮아진다.

'저 망나니한테 목줄을 채우다니.'

'대체 어떤 관계인 거야?'

'눈밖에만 나지 말자…….'

심익태에 대해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같은 크루라 하더라도 영입 시기가 다르며, 인기와 충성도에 따른 차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여하와 관계없이 깨닫는다.

결코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될 상대.

그런 심익태와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나눈 오정환은 대체 어떤 놈인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본 놈은 아니야.'

BJ라고 해봤자 현실에서는 별거 없다. 적당히 윽박지르면 십중팔구는 쫄기 마련이다. 나머지 1, 2할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를 뿐인데.

"야."

"네, 형님!"

"그 자식 꼬셔서 합방 한두 개 진행해봐."

"아까는 손대지 마라고……."

"응?"

"아, 아닙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오정환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심익태는 천천히 떠보고자 마음먹었다.

* * *

SNS에서 야기된 소문.

그것은 때로 미디어보다 더 엄청난 파급력을 낳는다.

자극적이어서?

그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가장 큰 건 신뢰성이다.

미디어가 대중들에게 편협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의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시상식에 하와와 왔나 보네ㅋㅋㅋㅋㅋ

「직촬맨」

5시간 전。

#파프리카TV#시상식#여캠#BJ#실물

대뜸 떡볶이 어딨냐고 묻더라고요

약간 4차원이긴 한데 예쁘긴 겁나 예쁩니다;;

오후 11:30 · 2012년 2월 20일 · TwittDeck

└이건 무조건 봄이지!

글쓴이― ㅇㅇ 실물 졸예라나 봐

└컨셉 확실하누ㅋㅋㅋ

└아 떡볶이는 못 참지~

실망을 한 직후였다면 더더욱.

각 커뮤니티에 여캠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높아진 이 시국에, 오직 한 명의 BJ만이 정반대의 평가를 듣는다.

한 SNS의 직촬로부터 야기됐다. 그 BJ의 얼굴이 왠지 낯설지 않다.

시간이 지나 달래지던 감정의 여운이 다시 북받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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