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86화 (86/846)

86화

"오빠 봄이에요 봄이!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봄이가 왔어요!"

2월 말.

때는 개학을 눈앞에 둔 시즌이다.

그에 따라 학업에 열중하던 봄이의 족쇄가 잠시 풀렸다.

"몸에 좋아?"

"몸에 좋아요!"

"맛도 좋아?"

"맛도 좋아요!"

"그래."

"꾸웨엑……."

바람 불면 날아가 버릴 만큼 잔뜩 흥분해있다.

이빨 자국이 욱식욱신할 정도로 깨물자 그제서야 얌전해진다.

"저 진짜 이러다가 탈모 올 것 같아요."

"웃기지 마!"

"꾸웩―!"

탈모는 신체 내분기계 이상에 의한 원형 탈모증과 유전적 기질에 의해 발현되는 남성형 탈모증으로 구분되며, 전자의 경우 심한 우울증 혹은 영양 부족이 원인이기에 치유가 되지만 후자는 대한민국 남성의 절반 이상이 가지고 있어 고치고 싶다고 고칠 수 있는 증상이 아니다.

'여자들은 안 갖고 있잖아.'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받은 거야.

무료 두피 마사지랑 타액 좀 발랐다고 탈모 걱정하는 건 정말 복 받은 소리다.

"천만 탈모인을 향해 사과해."

"사과해야 되는 거에요?

"그래,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죄송합니다."

탈모가 있고, 없고를 떠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얼마나 철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실언이었는지 이 기회에 가르쳐준다.

'여하튼.'

봄이의 시간이 널널해졌다.

방송 복귀를 슬슬 생각해봐도 된다.

안 그래도 각을 만들어주려고 하던 참에.

『하와와의 방송국!』

─시상식 봤습니다……

─언제 돌아오냐 봄이야ㅠㅠ

─공부 바쁜 건 아는데 가끔은 좀 켜죠!

.

.

.

적절한 이슈가 터졌다.

시상식에 데리고 갔던 봄이를 몰래 촬영해서 올린 사람이 있었다.

노리고 있던 바이기도 하다. 봄이의 실물은 내가 인정한다. 화장까지 친히 했으니 더더욱이다.

'원래 될놈될이지.'

조금만 더 육성을 하면 크게 될 포켓몬이다.

그 미래의 가능성을 끌어왔으니 호평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BJ실물 별로라는 놈들 뭐임? ㅋㅋ

[직촬맨이 캡처한 짤. jpg]

하와와 실물이나 보고 가라

└와ㅋㅋㅋㅋㅋ

└진짜 졸예네

└저 얼굴로 하와와한 거야?

└캬 봄이는 인정이짘ㅋㅋㅋㅋㅋ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올라온다. BJ 실물이 논란이 되던 참에 종결을 시켜버린 것이다.

물론 운이다. 몰래 촬영한 사람이 있었던 덕분이다.

그조차 상정을 하고 있었으니 괜찮다.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야.'

인위적인 것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작정하고 이슈를 만들라면 만들 수는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적당히 판을 깔아주고, 기다리면 하나쯤 얻어걸리게 돼있다.

실제로 연예인들이 복귀각을 재는 방식이기도 하다.

연예인 XXX 근황. jpg

이런 식의 글들 태반이 기획사 측에서 낸 것이다.

대중들의 반응을 보고, 관심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저 맛있는 거 엄청 사도 돼요?"

"그래."

"진짜, 진짜요?"

"그래."

"진짜, 진짜, 진짜요?!"

봄이가 콧구멍을 벌렁대며 잔뜩 신나 한다.

딸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가는 아버지의 기분이 아마 이런 거겠지.

'안됐을 때를 대비한 2차 플랜인데.'

냉장고도 비었겠다. 둘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본인이 워낙 기대하고 있으니 안 가기도 뭣하다.

"눈을 좀 더 땡그랗게 떠봐."

"땡그랗게!

"죽자고 뜨지 말라고."

"꾸웩!"

간단한 메이크업으로 치장한다. 저번 방송이나, 시상식처럼 풀메를 하고 가면 이상하잖아.

'누가 장 보러 가는데 풀메를 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아니다.

결국 판은 내가 깔아줘야 하고, 그 디테일은 컨설턴트의 재량에 달렸다. 사소한 것에서 실수를 할 만큼 아마추어가 아니다.

"오빠, 오빠 대박이에요!"

"그래."

"방금 아주머니가 연어 초밥에 세일 스티커 붙였어요! 우리가 쓸어 담아야 돼요!"

"그래, 그래."

둘마트에 도착.

8시에 딱 맞춰온 보람이 있다. 봄이가 방방 뛰며 세일 스티커가 붙은 연어 초밥팩을 보여준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30% 깎은 게 정가야.'

동네 스시집이랑 가격이 비슷해.

둘마트 퀄리티 감안하면 아마 적절할 것이다. 오래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봄이의 희망과 달리 두어개만 짚고.

"가라 봄이몬!"

"가서 싹 쓸어올게요!"

냉장실, 혹은 냉동실에 저장해 하나씩 꺼내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들을 사 담는다.

연어 초밥을 제외해도 닭꼬치와 찌개류 등 괜찮은 게 많다.

'일일이 음식을 해 먹거나 사 먹을 수도 없잖아.'

양을 1인분씩 시킬 수도 없고. 애초에 배달이 되는 음식점 수도 적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게 둘마트는 정말 좋은 선택지다.

"오빠, 치킨도 세일이 붙었어요!"

"안돼, 내려놔."

"히잉……."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면 안 된다.

여러가지 선택지가 많은 만큼, 함정 카드로 분류되는 것도 적잖이 있다.

'치킨은 그냥 시켜 먹는 게 제일 맛있어.'

특히 튀김옷을 입힌 것. 집에 가서 먹으면 눅눅해져 있다. 돈 약간 더 들더라도 배달해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 완전 노다지에요!"

"신나?"

"벌써부터 행복해요~."

그런 것들을 제외해도 사갈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알아서 발굴해오도록 임무를 맡기고, 나는 내 단골 코너에 찾아간다.

'둘마트에 무슨 단골이 있겠냐만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한 곳만은 다르다. 찾는 사람이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아! 저번에 말씀하신 주류 입고 되었습니다."

바로 주류 코너.

양주와 위스키 등을 취급하는 직원은 전문 지식이 필요해서 잘 바뀌지 않기에 친하게 지내두면 여러모로 이득이 된다.

'술이 새로 입고 되면 알려주기도 하고.'

선택지가 여럿 있을 때 원하는 쪽으로 조절을 해주기도 한다. 술이라는 게 종류가 워낙 많아서 직원의 권한이 은근히 크다.

"저번에 추천해주신 게 엄청 잘 나가더라고요."

"현지에서는 엄청 유명하거든요. 아는 사람들은 알아보나 보네."

"들은 아니고 한 명인데 박스떼기로 다 사갔어요."

"……."

둘마트가 은근히 한국 주류 시장에서 가지는 파이가 크다. 둘마트에서만 구할 수 있는 술도 있다 보니 경쟁도 은근히 심하다.

'든든한 아군을 한 명 만들어두면 좋다는 거지.'

나는 나의 노다지를 캔다. 봄이의 노다지와 합쳐지자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미는 것도 무거워질 만큼 수북이 쌓인 카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봄이야 너무 해맑게 다니지 마."

"네."

"시무룩하게 다니지도 말고."

"그럼 어떻게 다니란 거에요!"

한 마리의 봄이.

아장아장 뛰어다니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외모 하나는 정말 특출나다.

'메이크업이 가벼워도 본판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서.'

귀여운 느낌으로 예쁘다. 하는 짓도 그렇고 애새끼 같긴 하지만 이 나이대에서는 봐줄 만하다.

"어디 아이돌 연습생인가?"

"너무 어린데?"

"요즘은 다 어렸을 때부터 하잖아."

데리고만 다녀도 화제가 될 수 있는 외모다. 화장까지 하고 온갖 곳을 쏘다녔으니 이야기가 안 나오면 더 이상하다.

"옆에 있는 남자 보니까 연예인은 아닌 거 같아."

"매니저일 수도 있지!"

"그런가?"

"……."

지나가던 행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가 귀싸대기 맞으면 존나 아플 텐데.

'나는 메이크업을 안 하고 왔으니까 그럴 수도 있어.'

외모가 뛰어나다고는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아서 괜찮다.

봄이가 좋아하는 연어 초밥을 하나 빼서 자리에 돌려 놓는다.

"오빠, 저 너무 신나요!"

"왜 또."

"둘마트 가면 사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이렇게 마음껏 살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어렸을 때 한 번쯤 꿈꿔볼 만한 일이다. 그 동심이 지켜지고 있을 때 이루어주었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재밌다.

'봄이의 방송 수익은 어머님께 세뱃돈처럼 묶여있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많지 않다. 평소에는 누려보지 못했을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이유.

찰칵!

누군가 몰래 셔터를 찍는다.

엄연한 불법 행위. 시상식과 달리 이곳은 사적인 자리다.

'직촬과 몰카의 차이지.'

당연하게도 불법이다. 평소였다면 멱살을 잡고라도 삭제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의도적으로 노리고 왔기에 환영하는 바다.

이미 발화된 화제를 키워준다는 느낌. 여자BJ의 평상복 차림은 관심을 모으게 돼있다.

봄이의 방송 복귀에 한층 더 탄력을 불어 넣어줄 장작이다.

"만족했어?

"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먹기 전에 죽으면 안되지."

"맞아요. 저 오늘 배 터지게 먹을 거에요!"

물론 그거 하나 찍자고 식량을 무더기로 사 모은 건 아니다.

봄이의 행복한 쇼핑을 허락한 이유.

'먹을 걸 사는 이유는 당연히 먹기 위해서지.'

한동안 한집 살림을 할 예정이다.

* * *

BJ하와와.

데뷔와 동시에 수천 명의 시청자를 기록하며 하나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신인BJ다.

하지만 갑작스레 잠적.

요근래 근황이 뜸하다 못해 묘연하다.

이대로 복귀를 안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까지 오가던 참에.

─ㅁㅊ 트위터에 하와와 사진 또 올라왔네

[봄이 사복 차림1.jpg]

[봄이 사복 차림2.jpg]

둘마트 갔다가 제대로 찍힌 듯ㅋㅋㅋㅋㅋㅋ

└이왜진?

└사복 졸귀네ㅋㅋ

└근데 옆에 남자 누구

글쓴이― 누구긴 ㅅㅂ 오정환이겠지

이따금 올라온다.

유명인의 일상 생활.

아이돌, 가수 등도 당연히 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사기 마련이다.

시기가 워낙 공교로워서 문제다. 안 그래도 SNS를 타고 날아올랐다. 2단 도약을 하자 대중들의 관심은 하늘을 찌른다.

「김삿갓」

1일 전。

#여캠#실물#BJ하와와#실화냐

[봄이 사복 차림1.jpg]

[봄이 사복 차림2.jpg]

헐 뭐임

뭔데 이렇게 많이 봄?

17, 211 리트윗 4, 951 마음에 들어요

사진을 찍은 일반인의 계정도 덩달아.

재미삼아 찍은 사진 몇 장 때문에 자고 일어나니 유명인이 돼있다.

물론 이는 좋은 일만은 아니다. 커뮤니티에서는 비판적 견해도 보인다. 엄밀히 따졌을 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인데.

[Best Comment]― 나만 아니면 돼애애애엑~!

└이거지ㅋㅋㅋ

└아무튼 잘 봄 ㅅㄱ

└7ㅓㅓ억

언제나 그렇듯 공공의 이익이 보다 높은 가치로 추구된다. 올린 사람만 조금 희생을 하면 되는 일이다.

중요한 건 사진 속 장본인의 행보.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녀의 방송 데뷔, 홍보 기타 등등의 모든 것이 한 남자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다.

─킹리적 갓심) 오정환이 빌드업을 짠 것이다

시상식에 나타난 하와와.

하루 뒤 오정환과 둘마트 데이트?

하와와 복귀를 위한 포석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제발

└제발ㅋㅋ

└속아주겠다고!

└봄이 보는 맛에 하루의 노고를 녹였는데……

└ㄹㅇ 대체할 인재가 없음

최근 파프리카TV 신인상을 수상하며 더더욱 주가가 올라간 오정환.

그라면 이 세간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 맹목적인 믿음에 보답한다.

공지― 『BJ하와와 관련한 이야기』

최근 SNS에서 이야기가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물에 대해서는 한 차례 이슈가 된 바가 있어 혼란스러운데……

.

.

.

스크롤을 쭉 내려 결론부터 보면 방송 예정이 곧 있다.

영악한 시청자들은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그가 공지를 올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Best Comment]― 봄이가 남친이 있다고??

[Best Comment]― 동거 중 실화냐……

[Best Comment]― 엄마는 정환이 믿는다^^

설마 하는 동시에 만에 하나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 가능성을 한사코 부정하기에는 짚이는 바가 있다.

단기간에 인기가 급상승한 여캠. 그럼에도 잠수를 타야만 했던 사정.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음에도 복귀를 하지 않는 이유까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퍼즐이 딱딱 들어맞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