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89화 (89/846)

89화

한때 세상의 심금을 울린 커플이 있었다.

─이걸 간다고?

─방송감 미쳤넼ㅋㅋㅋㅋㅋㅋ

─여기까지 바라보고 있었냐고 오정환!!

.

.

.

하지만 Fiction.

허구로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아직도 분분하다.

이걸로 정말 끝이 맞냐?

드라마에는 끝이 있어도, 현실에는 분명 없기 때문이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헤어진 커플들이 다시 만나는 경우는 딱히 드물지도 않다.

"여기가 어딘지 기억하시는 분들 계세요?"

굳이 물어볼 것도 없다. BJ가 카페의 안을 쭉― 카메라로 비치자 서버 과부하로 채팅창이 잠깐 멈춰버릴 정도로 미친 듯이 올라간다.

―아

―모를 리가 있겠냐고……

―개새끼야ㅠㅠ

―아니 여길 다시 올 생각을 하네

떡볶이녀 1화.

그 시작을 알렸던 카페 안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연히 내게 오나 봐~ 봄 향기가 보여. 너도 같이 오나 봐~ 저 멀리서 니 향기가~!」

―이걸 또?

―이게 어떻게 우연이야!

―카페 사장이 미쳤어요

―씹인싸네 카페 사장이 인맥ㄷㄷ

익숙한 BGM이 울려퍼진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들었을 노래. 당시에도 이목이 팔려 누구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다시 듣자 감회가 새롭다. 잠자고 있던 감정이, 추억이 울린다. 그 환상에서 시청자들이 깨어나기도 전에.

"무슨 인싸에요. 그냥 미쳐 가지고 부탁드렸던 건데."

"하하……, 정말 당황스럽긴 했죠."

"제가 원래 방송에 관해서는 물불을 안 가려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식입니다."

지난 방송의 후일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힌다.

장본인인 오정환과 피해자인 카페 사장의 입에서 직접 말이다.

─미친 새끼 아니냐고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

BJ가 드라마를 찍고 있어

└'우연히 봄'

└와 저런 비하인드가 있었는지 첨 알음

└개소름ㄷㄷ

└시청자들 과몰입하는 거 보면서 존나 웃었겠지?

일련의 사실을 모두가 아는 건 아니다.

몰랐는데?

커뮤니티에는 또다시 화제에 불이 붙는다.

워낙 소란이 됐던 화제인 만큼 자연스럽다. BJ 입장에서 방송을 어찌 진행했는지 비교를 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제가 여기서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남자 쪽은 물론 여자 쪽도 있다.

지금은 순진무구하게 테이블을 탁탁 두들기고 있지만 당시에는 시청자들의 심장을 옥죄었다.

―ㅠㅠ

―해맑으니 오히려 슬프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

―이렇게 사형 선고를……

드라마. 결말이 정해진 픽션.

하지만 '떡볶이녀'도 잘 짜여진 각본이라고 보는 것은 공교롭다.

드라마 같은 거지, 진짜 드라마는 아니니까.

배우들은 연기가 실패하면 리테이크(RE―TAKE)를 통해 보완한다.

생방송인 인터넷 방송은 불가능한 구조다.

"머릿속으로 얘가 봄이가 맞나."

"진짜 봄이가 맞아요~."

"다른 여자랑 바뀐 게 아닌가 수십 번 생각했다니까요?"

연기가 아닌 진심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시청자들의 상상은 틀리지 않았다. 대략적인 뼈대는 준비해도, 결국 진행되는 스토리는 배우의 애드리브에 크게 갈린다.

―찐텐 맞았네!

―대본 소리하던 놈들 쏙 들어갔죠?

―감정 없이는 연기 못하지 ㄹㅇ

―과몰입 좀 작작햌ㅋㅋㅋ

카페 안을 한 차례 돌아본다. 시내로 나가 길거리를 거닌다. 지난 드라마에서 자신들의 행적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여기 바나나빵 살짝 탄 부분이 노르스름해서 너무 맛있었어요."

"그래."

"사실 한 개 더 먹고 싶었는데 나중에 혼날까 봐 눈치가 보였어요."

"오늘은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먹어."

"히히, 진짜요?"

그 자체만으로도 심금을 울린다. 별거 아닌 단순한 데이트지만 지난 방송의 한 장면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 달달해서 당뇨 걸리겠다

―ㅋㅋㅋㅋㅋㅋㅋ

―이 커플 찬성이오!

―여기 뭔데 이렇게 많이 봄? ㄷㄷ

자칫 루즈해질 수 있었던 3일차 방송.

막판 포텐을 미친 듯이 터트리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성공한다.

『현재 시청자 순위』

1. 오정환_ ?24, 892명 시청

2. 예능인[김군]_ ?4, 175명 시청

3. LetTheKillingBegin_ ?1, 369명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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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간 시청자를 싸그리 빨아먹는다. 순위표가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물론 이는 결과론적으로 말했을 때 그렇다는 소리다.

─현재 난리 난 김군 사태 요약. txt

1. 리벤지 한다고 방송 킴

2. 오정환한테 청자 수 밀림

3. 방송 내내 표정 썩창

지도 쫄리고 민심 안 좋아지니까 게스트한테 무리수 두다가 X됨ㄷㄷ└응 관심 없어 └지금 시발 그딴 거 얘기할 때임?

└그딴 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정은 닮은 돼지 새끼 이제 작작 나대겠누

초반에는 나름 치열했다.

타이밍 좋게 선수를 치기도 했거니와, 아이돌 게스트라는 승부수를 던졌기 때문이다.

소속사의 관리를 받는 연예인. 아무리 듣보라도 시청자의 흥미를 끈다. 그리고 김군 특유의 선정적인 방송이 더해진다.

"야, 장난 갖고 왜 그러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빠가 자꾸 하니까……."

"너 때문에 갑분싸 오잖아. 시청자들 보고 있는데 그만 좀 즙 짜!"

하지만 과유불급이었다. 아무리 듣보라도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일반인처럼 마음껏 희롱해도 뒤탈이 없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김군이 진짜 X된 게ㅋㅋㅋㅋㅋㅋㅋㅋ

게스트는 싫은 눈치인데

계속 터치하다가 울려버림

일반인도 아니고 연예인 게스트

지도 상황 파악하고 수습하려 하는데 매니저한테 전화 옴ㄷㄷ└연예인 매니저? 진짜 X됐네

└에휴 븅신

└그 새끼는 관심도 없는데 보고가 왜 자꾸 올라오누

글쓴이― 남 X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으니까!

이미지 형성이 중요한 신인.

사적인 연애도 금지되는 판국에, 방송에서 스킨십이라니 허용될 리가 없다.

<이러시면 대단히 곤란합니다.>

"아, 예. 예…… 알고 있죠. 그게 제가 술이 들어가다 보니까."

<지금 그게 변명이라고 하는 소리입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변명하려는 건 아니고요……."

연예인들이 김군의 방송에 출연하는 이유.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이고, 질이 좀 낮더라도 인지도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그 질이 너무 낮다. 불량배와 하등 다르지 않다면 오히려 어울리는 게 손해다.

김군은 뒤늦게 후회하지만 사태를 주워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군 앞으로 방송 어떻게 하냐?

술김에 실수로 스킨십한 거다?

술김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하면 안됐음

그쪽 바닥에서 완전히 신뢰를 잃는 거ㅇㅇ

└니가 뭔데 그쪽 바닥 타령임?

└쿤견들 이 악물고 실드 치죠? ㅋㅋ

└연예인 건든 건 X된 거 맞지

└됐고, 그 돼지 새끼는 미사일이나 그만 날리라고 그래

하다못해 어그로라도 끌렸으면 모를까.

경쟁자에게 뒤쳐지고, 민심까지 뒤를 돌자 도망치듯 방송을 종료하는 수밖에 없다.

오정환과의 동시간 대결에서 또다시 참패를 맛본다.

* * *

─김군 추하게 방종ㅋㅋㅋㅋㅋㅋ

─오정환 보면 튀어라 김군런!

─??? : 너무 커서 미사일인 줄 알았지~

─젖군쉨 지 버릇 개 못 줬누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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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 방송 갤러리.

그곳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BJ를 향한 비난글이 쏟아진다.

인기BJ조차 예외가 아니다. 방송이 부진하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다. 보라BJ로 살아남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어지간히 지랄을 해대서.'

사실 마음 같아서는 꼴도 보기 싫다. 극성 커뮤니티는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눈을 돌리는 것도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군은 그냥 터질 게 터진 거임

왜 별명이 젖군이겠음?

젖을 하도 쳐밝히니까 그렇지

대기업이라 여캠들은 뭐라 말 못한 건데 연예인은 어림도 없지 └맞말 개추

└삐빅! 쿤견들이 발작할 게시물입니다

└진짜 주제 파악 못함

└기쁨조 끼고 놀던 알 바 아니니까 미사일만 날리지 마라 ㅇㅇ;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그들의 시선을 모르면 트렌드에 맞출 수 없고, 장기적으로 이탈해버리는 부작용까지 생길 수 있다.

'연예인들이 왜 악플 때문에 고통받는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지 공감이 가.'

그런 세계에 사는 이상 마주서야 하는 게 숙명이다.

김군도 아마추어가 아닌 만큼 알아서 잘 이겨낼 것이다.

아님 말고.

여하튼 방송의 목적을 이루었다. 개학까지 남은 짧은 기간. 봄이가 개인 방송을 하는데 불편함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철꾸라지― 30분 전

부재중 전화 (2)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나.

봄이가 없어도 방송은 계속해야 한다. 보라BJ로서 살아남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시청자층이 워낙 고인물이라서.'

BJ들끼리 엮이지 않을 수가 없는 구조다.

잠잠하면 몰라도, 상대가 커넥션을 취해오면 한사코 무시하기가 힘들다.

기본적으로 적은 안 만드는 편이 낫다. 그게 허락되는 건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 때.

아직 보라판에서 내 지지 기반은 탄탄하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여보세요?"

<마아아―!!>

"아~ 방송 뒷정리 때문에 바빠서, 방송 중에는 폰을 꺼두거든요. 신경을."

스피커로 괴성이 들려온다.

전화 좀 못 받은 게 뭐가 대수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BJ업계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소홀히 대해지는 걸 애들이 못 참아.'

워낙 저질스러운 방송을 한다. 정신적 창녀라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그러한 세간의 평가를 본인들도 알고 있다.

나 돈 많아!

유흥업소에서 돈을 뿌리며 자존감을 채운다.

그런다고 밑 빠진 독이 채워질 리가 없기 때문에 성격이 까탈스럽다.

<됐고!>

"예, 말씀하시죠."

<햄 보러 온다고 하지 안 캈나? 밥 함 무야지?>

며칠 전, 시상식이 끝나고 술자리를 가졌을 때.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집적대고 있다.

'그런 말을 해도 될 만한 위치의 사람이긴 하지.'

철꾸라지는 보라판의 대기업.

내가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이미지가 있다. 워낙 오래 해왔고, 영향을 끼친 점도 많기 때문이다.

"저 간장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마아아아―!!>

"농담이죠ㅋㅋ 뵈러 가야 하는데 제가 최근에 너무 바빠서 시간이 안 났습니다."

물론 악영향.

방향성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보라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것도 사실이다.

'납득하겠지.'

3일이나 생방송을 이어갔다. 일거수일투족이 방송됐던 만큼 속일 것도 없다. 그럼에도 지랄을 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니 김군 모가지 한 번 땄다고 목에 힘 이빠이 주고 있지?>

"한 세 번은 딴 것 같은데……."

<마아아―!!>

용건을 말해온다.

그동안 집적거린 이유.

또 크루 이야기를 꺼내려는 건가 싶었다.

<임마. 니가 보라BJ로 인정을 받으려면 햄 방송에 한 번 나와야 하지 안 캈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자 목표치를 낮춘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전부터 이야기는 있었는데.'

보다 노골적이며, 구체적으로 되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소리다. 이번에는 아예 시간과 장소까지 특정하고 있다.

<햄이 콘텐츠를 하나 구상했는데 너는 그냥 몸만 와서 얘기 좀 하다 가면 된다.>

"정말요?"

<와. 햄 못 믿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이는 일종의 기싸움. 절대 순수한 의도라고 해맑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뭐, 여러가지 있지.'

그렇고 그런 업계다 보니 일일이 열거하기도 귀찮다.

그러면 거절하는 게 상책인가?

상대에게 빌미를 주는 꼴이다. 설사 철꾸라지가 공격해오지 않더라도 큰 틀에서 마찬가지다.

일명 철빡이.

고인물 시청자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신들이 보라의 중심이라 여긴다. 자신들에게 인정 못 받으면 일류로 쳐줄 수 없다. 어차피 이는 언젠가 한 번은 넘어서야 할 관문이었다.

"그럼 정말 몸만 한번 가보겠습니다."

적진으로의 단독 출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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