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본명 김유빈.
예명 '리아'로 파프리카TV에서 여캠으로 데뷔한 그녀는 방송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헤헤……, 제가 이런 엄청난 오빠들 사이에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ㄱㅇㄷ
―내가 허락한다!
―검스 하앜
―진짜 존예네ㅋㅋㅋㅋㅋㅋ
물론 겉보기에는 말이다.
방송 전에 세세한 지시 사항을 전달받았다.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어떤 식의 반응을 해야 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알고 방송에 임한다.
"형님들~ 이렇게 예쁜 여캠 보셨습니까? 아 봤다구연? 사실 저도 본 거 같긴 해연 헤헤."
자신을 두고 두 사람이 대결을 펼친다.
그 주제는 여러가지. 솔직하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철꾸 오빠 손만 들어주면 되는 거잖아.'
파프리카TV에서 방송을 하는 이상 모를 수가 없는 대기업BJ다.
그의 방송에서 잘 보인다?
유입 시청자가 단번에 늘어나며 방송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실물 딱 보니까 여캠 중에서 넘버 뜨리 안에 들어가요."
"에이~ 오바가 심한 오빠다."
"진짜 농담 아니에연 앰창 까고."
―앰창을 왜 까ㅋㅋㅋㅋ
―별창이라?
―오바 오빠? 라임 보소
―ㅋㅋㅋㅋㅋㅋㅋ재밌는데
그래서 오게 된 자리이기도 하다. 이만한 기회는 흔히 오는 게 아니니까. 철꾸라지의 라인을 타는 건 분명 옳은 선택이다.
"마아아―!!"
"네."
"너는 왜 가만 있는데?"
"저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에 반해 상대쪽 BJ.
리아도 들어본 적은 있다. 최근 떡볶이녀다 뭐다 해서 떠들썩하다.
'김군 오빠가 한 오뎅녀랑 비슷한 거 아니야?'
본 적은 없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일 것이다.
보라BJ들, 그리고 남캠들이 어떤 방송을 하는지.
BJ로서 들은 것도, 경험한 것도 많다 보니 모를 수가 없다.
"니가 지금까지 갈아탄 여자가 몇 명인데? 이 새끼 또! 또! 선비질이네 여자 앞이라고."
"그건 방송이잖아요."
상진상스러운 인간들이다. 방송이 아니라면 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하지만 그들의 라인에 타야 시청자 유입이 가능하고, 돈이 된다.
'쟤도 뭐 다를 거 없겠지.'
그렇기에 여성BJ들은 대기업BJ들에게 잘 보이지 못해 안달이 나있다.
자신도 하지 않으면 경쟁 자체가 안되다 보니 이 자리까지 나오게 되었다.
─간장닭도리탕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우결 했던 하와와는? 걔는 뭐 여자가 아님?"
"지금 17살 꼬맹이에요. 한 5년 후에 21살은 돼야 여자로 보이겠죠."
―ㅋㅋㅋㅋㅋㅋㅋ
―이걸 엿 먹인다고?
―근데 22살 아님?
―이 새끼 뭐 중졸인가 산수도 못하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생각보다 흥미롭다.
'인방에서? 정말?'
동명의 예능을 알고 있다. BJ끼리 콘텐츠를 해봤다니. 그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기는데.
"아니, 여자는 스무 살 넘으면 만으로 세게 돼있어. 그렇지 않아요?"
"네? 아…… 그런 것도 좀 있는 것 같아요."
―미친놈인갘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라 몰랐다!
―왜 갑분달
―여기서 리아로 갈아탈 각을 보네 ㄷㄷ
정신을 놓고 듣다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말을 걸어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미소 짓는다.
"마아아아―!! 여기가 늬집 안방이가?"
"아니, 왜요?"
"달달각 잡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저 여자 별로 안 좋아한다니까요ㅋㅋ"
혹시 성적 소수자?
방금 전까지 작업에 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태세 전환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뭐, 선 긋는 거야?'
쉬운 여자로 생각된 건지.
어장이라도 당한 것 같아 기분이 상하려던 찰나.
"솔직히 귀찮아요."
"오~ 뭐 인기 많다 그거지?"
"그게 아니라 감정이 들쭉날쭉해지는 게 싫어요. 만약 연애를 하게 되면 정말 설레는 사람하고만 하고 싶어요."
"마아아아―!! 인생이 뭐 그리 쉽나?"
이유를 알게 된다. 그의 말에 담긴 속사정이 무엇인지.
자신도 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정말……, 그래.'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전부를 바쳐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면.
팬들의 질타를 받는다 하더라도 가까워지고 싶다.
"니가 여자랑만 방송하니까 일부러 여캠 모셔온 건데 이러면 곤란해?"
"그런 거에요? 전 몰랐죠 킼."
"됐고! 넌 띄바 보라를 몰라. 진짜 남자다운 게 뭔지 보여줄 테니 각오하고 있어. 아시게떠연?"
진행되는 대결은 그녀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 * *
철꾸라지와의 합방.
예정된 흐름으로 흘러간다.
'원래 이래.'
방송이 자극적이어서 그렇지 패턴만 놓고 보면 늘상 비슷하다. 수위 조절 안 하는 디스전과 쓰잘데기 없는 승부 말이다.
"형님들 불닭, 붉닭볶음면 3개! 스피드 푸파 가겠습니다."
―겨우 3개?
―스피드면 ㅇㅈ이지
―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인방 대통령! 햇병아리한테 매운 맛 보여주는 큰 그림이네
푸파.
푸드 파이트의 줄인 말이다.
철꾸라지가 가장 즐겨하는 콘텐츠다.
'X됐네.'
X될 거면 혼자 X되지. 꼭 남을 물귀신처럼 끌어 당긴다. 일단 승부를 하기로 한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
"준비하고 그러면 시간이 걸릴 텐데."
"네."
"편의점에서 넉넉하게 다섯 개만 사다 주실 수 있어요? 1층 맞은편이라 그렇게 멀진 않아요."
"그럴게요."
"너 뭐 또 시발 뒤에서 궁시렁대는데!"
어차피 해야 한다면 망가지는 건 피해야지. 해당 음식의 필수적인 대응책을 부탁했다.
"잠깐 뭐 필요한 게 있어서 부탁 좀 했어요."
"마~ 니 또라이가? 여캠한테 심부름을 시켜?"
―여캠한테ㅋㅋㅋㅋㅋㅋㅋㅋ 레전듴
―온갖 폼은 다 잡더니 ㅉㅉ
―이 새끼 가부장적이네
―마음에 드는데?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여캠이고 나발이고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여하튼.'
중요한 건 승부. 끓는 물이 부어진 불닭 컵라면이 익기 시작한다. 아무리 승부를 위한 음식이라도 맛없게 먹는 건 사양이다.
예열을 생각해 미리 물을 버린다. 나와 철꾸라지의 앞에 각각 3개의 컵라면이 놓인다. 이것을 먼저 해치우는 쪽이 이기는 간단한 방식이다.
"리아가 없어서 오히려 좋아!"
"그래요?"
"자 여러분들 참교육 한 번 시키겠습니다. 일단 1라운드! 불닭볶음면 3개 스피드 푸파 카운트 해주세요."
채팅창이 얼려진다.
매니저 한 명이 5, 4, 3…… 마지막 1이 떠오르기도 전에 손이 잽싸게 움직인다.
'오랜만에 하니 재밌네.'
불닭볶음면 3개. 잘 비벼졌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통각이 제 기능을 할 때는 이미 승부가 끝난 후니까.
마치 100m 달리기처럼 조금이라도 빨리 스타트를 끊는 게 중요하다.
이를 해냈고, 철꾸라지가 얼타고 있을 때 후루룩―! 마시고 있자.
"빠샤아아아아아!!"
괴랄한 괴성과 함께 판을 뒤집어 놓는다.
글자 그대로.
컵라면을 뒤집어엎어 책상 위에 쏟아버린다.
―철꾸라지 필살기 시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드러
―사스가 갓구!
―개밥 식사하네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늘어놓으면 확실히 먹기 편하다.
물론 알고 있었다. 이런 미친 짓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안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저 지랄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지향하는 편이다.
"마아아아아아―!!"
"오~ 인정."
"개쳐발라쬬? 개쳐발라쬬? 푸헤헤헤헤헤!"
간발의 차이. 개밥처럼 퍼먹은 보람이 있었는지 3초 차이로 승리를 내주고 만다.
띵동~♪
그리고 초인종. 절묘한 타이밍에 부탁했던 심부름이 도착한다.
"그걸 다 먹은 거에요? 맵겠다……."
"매운 거 알면 그거 하나 줘요."
"기다리세요. 제가 까드릴게요."
치직!
비닐이 찢어지며 내용물이 드러난다.
그대로 덥석 물어 입안을 환기시킨다.
'불닭 먹었을 땐 이게 직효야.'
빵또아라는 아이스크림이다. 기름기를 닦아주는 빵과 캡사이신을 녹여주는 우유가 전부 포함되어 매운맛을 빠르게 중화한다.
"마아! 그건 또 언제 사왔는데?"
"매울 거 같아서 아까 부탁했어요."
"우유 1리터 마셨다 개때끼야!!"
―ㅋㅋㅋㅋㅋㅋㅋㅋ
―다 흘리면서 처먹었네
―젖 먹는 신생아누ㅋㅋㅋㅋ
―아 그래서 심부름을 ㄷㄷ
굳이 음식을 드럽게 먹을 필요 없잖아. 우유 1L씩 마시면 속이 느글거리기도 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맛있게 먹는 게 낫지.'
그냥 내 신조다. 그렇다고 승부를 등한시한 것도 아니고 최선의 최선을 다했는데 졌을 뿐이다.
"야 니는 안 맵냐?"
"빵또아 먹어서."
"띄바 새끼야! 난 안 먹은 줄 아세연?"
"좀 잘 먹긴 해요."
"하긴 시상식 뒤풀이때 양주 조오오올라~ 잘 마시더라. 난 목이 매워서 못 삼키겠던데."
얼굴만 보면 누가 진 건지 모를 정도지만.
철꾸라지가 여름철 개 마냥 혓바닥을 헥헥 댄다.
─철99업님, 별풍선 109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대결 술빵 콜?
"멍멍! 멍멍! 당연하죠 형님!!"
"……."
진짜 개인가?
백구 리액션은 파프리카TV의 전통이긴 하다.
'그리고 미션도.'
시청자 형님이 쏴주신다는데 당연히 따라야지.
이긴 쪽에 3천 개. 승부욕을 자극시키기 충분한 액수다.
"깡소주로 오케?"
"오케."
"나중에 양주가 아니라 졌다면서 떼쓰지 마라?"
"댁이나 마시다가 앰뷸런스 부르지 마요."
"마아아아―!!"
20.1도의 참이슬 오리지널.
소위 '빨간 거'로 유명한 그것이 맞다. '어른들이 무조건 찾는 거 있잖아.'
나름대로 가오를 부린 선택 같다.
근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질 일은 없다.
꼴꼴꼴!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기세로 들이삼킨다.
그것도 잠시.
인상을 잔뜩 쓰면서 크아아아~! 외침과 함께 화장실로 뛰어간다.
―토컨ㅋㅋㅋㅋㅋㅋ
―우웩!
―철꾸라지 초사이언2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토는 반칙 아님?
뱉어내고 다시 먹겠다.
더럽기도 하거니와 일종의 반칙이지만 그러려니 한다.
'어차피 이겼거든.'
그냥 물이다. 40도 위스키에 얼음만 조금 녹아도 밍밍한데 20도를 누구 코에 갖다 붙여. 삼다수 마시는 느낌으로 가볍게 비운다.
"마아아아!!"
"다 마셨어요."
"이걸 5초만에 어떻게 마셔. 니 주작했지?"
"주작은 변기에 토하는 게 주작이고요ㅋㅋ"
1승 1패.
그리고 3천 개 킵.
동점 스코어로 따라붙은 건 좋지만 애시당초 의미가 없다.
"일부러 맞춰주면서 아쉽게 이기는 그림 보여주려고 했는데."
"부들부들 중이세연??"
"마아아!!! 이거 안되겠네. 제대로 참교육 한 번 시켜줘야 쓰겄다아."
―ㅋㅋㅋㅋㅋㅋㅋ
―조곤조곤 은근히 빡치게 하네
―철꾸 찐텐으로 빡침 ㅇㅈ?
―오정환 이 새낔ㅋㅋㅋㅋ
상대가 작정하고 별별 짓을 다 하고 있다. 종목 선택권도 없다면 승률은 더더욱 낮아진다. 적진에 들어온 시점에서 그 정도는 예상을 해야 한다.
'이 방송의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을 테니까.'
대결 따위는 보여주기다. 결과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 틀 안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스토리를 추구해야 한다.
어떻게?
새로운 스토리가 머릿속에 구상되어 있다. 나는 컨설팅도 특기지만, 그보다 애드리브를 더 잘한다고 자부한다.
"힘들지 않아요?"
"네? 저는 구경만 하고 있어서……."
"아뇨, 그거 말고."
"……."
"저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해요. 편하게."
소크라테스도 현대에 태어났으면 드라마 한 편 찍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