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스토리 속 스토리
이변의 징조는 사실 방송 중에도 나타났다.
─오정환 게스트랑 달달한 거 나만 느낌?
철꾸라지 안 볼 때 계속 시선 주고 받는데
└나도 느낌!
└그래서 뭐 어찌라고?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광적으로 흥분한 철빡이들 때문에 묻혔을 뿐. 그리고 워낙 은은했기에 방송적으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신경 쓰는 기류는.
방송적 반전은 어느 정도 예고돼있었다는 소리다.
"사실 그때 속으로 고민 많이 했어요."
BJ리아의 방송.
철꾸라지의 방송이 종료된 후 얼마 안 있어 켜졌다. 게스트로 출연한 여캠이 방송 어그로를 이어받는 건 당연한 보상이다.
소위 수금 타임이라고 부른다.
방송을 재밌게 봐준 시청자들에게 별풍선을 받는다.
보통은 오빠, 오빠 하며 큰손들을 유치시키는 데 혈안이 되는데.
─오늘 합방 출연한 BJ리아 입장 정리. txt
합방 처음이라 솔직히 붕 떴다
오정환이 신경 많이 써줘서 살았다
그래서 오정환 선택하고 싶었지만 철빡이들이 무서웠다 └막줄 말한 적 없는데?
└대놓고 주작하누ㅋㅋㅋㅋ
└찐 새끼들 여자어 모르네
└저기서 더 말했으면 철빡이 새끼들 폭동 남
그럴 기미는 없고, 오히려 철빡이들이 실망할 말만 남기고 간다.
이례적인 일. 합방이 익숙하지 않아 지나치게 솔직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
지가 돈 벌기 싫다는데 뭐?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던 소신 발언은 방아쇠가 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말 하지 마~ 제발 그녀를 욕하지 말아줘.>
그 진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정환이 불렀던 노래.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연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절묘하다.
─노래방 대결 부분 다시 보는데 감성 미쳤네ㄷㄷ
<기꺼이 난 그녈 위한 바보로 살래>
<언젠가 그녀가 날 떠날 걸 잘 알아>
이미 어떤 결말을 맞을지 알고 부른 곡이었음……
└와 그런 해석이 되네
└진짜면 개소름인데;;
└철빡이들이 겁줄 걸 알았던 거?
└응 어차피 100점 못 받으니 포기ㅋㅋㅋㅋㅋㅋㅋ
그런 파문.
일어난다 해도 금세 다시 조용해지기 마련이다.
철꾸라지 팬덤이 가진 엄청난 화력이 이를 가능케 만든다.
"빨리 좌표 찍어!"
"이미 찍었는데……."
"근데 왜 진화가 안되는데?"
"저쪽 화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처음에는 잔잔한 파문에 불과했다. 하지만 던져진 돌이 완전히 입수해야 연못이 범람하듯 시간이 흐르자 넘쳐흐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실망했다는 건, 다른 모두가 만족했다의 동의어니까. 평소에 생지랄을 떨고 다닌 업보를 고스란히 돌려받는다.
─이래도 철꾸라지 주작이 아님?
「빵또아 까줄 때 표정. jpg」
「노래 듣고 있을 때 표정. jpg」
「느그 주인님 바라보는 표정. jpg」
인간의 표정을 못 알아보는 그 팬덤
아 그저
.
.
.
가축^^
└존나 한심하게 쳐다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통 까고 토컨 하는데 당연하지
└어케 참았누?
└또 ㅊㄲㅇ 지랄해봐라ㅋㅋㅋㅋ
승부욕이 과열되다 보니 당초의 목적이 퇴색되었다.
여캠에게 호감을 따기 위해 벌인 대결이었고,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취한 건 오정환이다.
철꾸라지의 손을 들어준다?
주작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된다.
여론은 철꾸라지에서 오정환쪽으로 완전히 등을 돌린다.
─주작이든 강압이든 지금 가장 괘씸한 건
철빡이 새끼들이지
이 새끼들 여론 통제 ㅅㅂ
누가 봐도 오정환한테 빠진 게 보이는데
└아니 진짜
└지가 여자면 철빡이한테 사심 가지겠음?
└철빡이가 여자면 또 모르짘ㅋㅋㅋㅋㅋ
└근데 난 리아도 괘씸한데
철꾸라지는 물론 그 팬덤도 뭇매를 맞는다. 아무리 광적이어도 나머지 전부를 적으로 돌렸는데 상대가 될 리 없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주작이든, 강압이든 왜 그땐 속였냐?
비난 여론이 리아에게 향할 뻔하기도 했으나.
─리아 욕하는 놈들은 생각이 없냐??
<그렇게 말하지 마~ 제발 그녀를 욕하지 말아줘>
오정환이 처음부터 말했잖아……
└아니 복선이 거기까지 있다고?
└바보니까 괜찮대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
└디테일이 어이가 없다;;
└대체 어디까지 내다본 거야 오정환!
피격 대상에서 피해간다.
모든 화살은 철꾸라지로 향한다.
분명 완벽한 승리로 끝났을 합방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 * *
개인 방송은 규모마다 지향해야 할 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작은 방송은 그날 재밌게 즐기면 끝이지만, 큰 방송이라면 멀리 내다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달려라공대생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어제 레전드 합방 실화냐
─퀵뷰좀요TT님, 별풍선 50개 감사합니다!
리아 어제 방송 킨 거 봄?
─ehsRKtm77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합방을 하랬더니 드라마를 찍고 왔누……
.
.
.
이렇듯 말이다.
철꾸라지와 진행했던 합방. 세심한 공을 들여 깔아둔 떡밥은 의미가 있었다.
'딱히 이미지 망가지는 걸 두려워했던 게 아니야.'
내 얼굴이 뭐라고.
콘크리트에 간다고 별 차이 있겠어?
그러는 편이 방송적으로 스토리가 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철꾸라지가 만든 스토리에 대항하기 위해, 나는 나만의 스토리를 구상했다.
어느 쪽이 정답이었는지는 대중이 판단할 영역이다.
─리아♡사케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리아방 열혈인데 어제 너무 미안해서;;
"천 개 정말 감사합니다. 저 완전 괜찮고 리아씨도 다 알고 있을 거에요."
―노래로 때려 박는데 알 수밖에 없지……
―씹새끼
―합방 가서 여자 후리고 오네
―열혈이 지지해주는 커플링ㄷㄷ
처음부터 준비한 건 아니다.
하다 보니 애드리브로 나왔고, 우연히 시기적절하게 떠오른 노래 한 곡이 스토리를 완성시켰다.
'그런 게 인방의 묘미지.'
실시간이라 힘든 점이 있다면, 실시간이라 떠오르는 감성도 있다.
배우처럼 대본을 정하지 않기에 보다 솔직하며 보다 와 닿게 된다.
보라판 특유의 과몰입.
BJ 입장에서 골치 썩는 요소이긴 하지만, 이용할 재량이 있다면 비단 나쁘게만 볼 요소는 아니다.
─울산너굴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그래서 시발 술방 예고한 거 맞냐고!!
"백 개 감사합니다. 제가 거기까지 바라본 선곡은 아니었는데 못할 건 또 없죠."
―뭔 소리임?
―아 노래 가사
―ㅋ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더 과몰입하네ㅋ
그때 술이나 한잔 사주면 돼.
마지막 가사 때문에 그럴 것이다. 자연스레 그려지는 스토리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자연스럽게 안 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실제 그림도 마찬가지겠지만, 큰 그림일수록 인정받는 게 더 어렵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런 거면 다행이지.
아예 처음부터 엇나갔을 수 있다. 이를테면 여캠이 나에게 호감을 하나도 안 가졌다던가.
─아도니스K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술방 띱! 천개 검ㄱㄱㄱ
"오 미션이에요? 저는 땡큐지만 리아씨 생각도 들어봐야죠."
―들어볼 것도 없음
―완전 빠졌던데ㅋㅋㅋ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임?
―우와 여캠을……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일은 없다.
여캠에 대해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빠삭하니까.
'원래 여캠들이 그래.'
스스로를 비운의 여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애들이 많다. 아닌 애들도 있지만, 대충 첫인상만 봐도 파악할 수 있다.
리아는 그런 타입이었고, 그에 맞춰 즉석 플랜을 짰다.
합방에 익숙하지 않은 신인이라는 점도 점수를 따기 쉬운 포인트였다.
"근데 너무 연애쪽 감정으로 몰고 가지 마세요."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설사 당시에는 그랬어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 수 있다.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상대가 철꾸라지였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맥이네
―선녀 효과 오지자너~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그것도 그거고, 흔들다리 효과라는 게 있어서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는 흥분과 사랑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위기에 놓인 남녀는 끈끈해진다고 한다.
처음 경험하는 합방.
만 명이 훌쩍 넘어가는 시청자.
그런 상황에서 신경을 써주면 호감을 안 느끼기도 어렵다.
─리아♡막연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위로는 해줬으면 좋겠음
"리아님방 열혈 형님들이 그걸 원하신다면, 제가 동생으로서 챙겨줄 수는 있어요."
―이 새낔ㅋㅋㅋㅋㅋ
―어제도 마음 없는 척 존나 껄떡대놓고
―근데 정환이는 안전하지 ㅇㅈ
―님 혹시 게이임?
처음부터 말을 했지만 귀찮다.
하물며 일반인도 아니고 여캠. 감정만 앞서 저지르다가는 뒤끝이 안 좋을 수 있다.
'열혈들의 허락이 있다면 괜찮겠지.'
시청자들을 실망시키기도 뭣한 일이다. 나로서도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확인해보고자 한다.
그녀가 느낀 감정이 정녕 진지한 것인지.
* * *
여캠.
파프리카TV를 대표하는 콘텐츠 중 하나로 손 꼽힐 만큼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 것치고는 시청자가 적다. 선정적이며, 그들만의 방송이라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다.
"철꾸야."
"네, 형님."
"요즘 별풍도 많이 터지고 먹고 살 만하지?"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어!?"
체중을 실은 발차기에 그대로 밀어 넘어진다.
아픔만 따진다면 그리 대단할 게 없지만 공포 분위기 조성에는 이만한 게 없다.
'이 새끼들은 쿨 돌 때마다 패야 돼.'
그래야 주제 파악을 하지.
심익태는 잽싸게 일어나는 철꾸라지를 보며 그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린다.
때는 2년 전.
철꾸라지가 사고를 거하게 쳤을 때다. 파프리카TV에서 영구 정지를 당하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되었다.
"철꾸야."
"네 형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아, 아닙니다! 제가 그……, 못하고 싶어서 못한 게 아니라……."
"형이 너를 싫어해서 때리는 게 아니잖아."
"네, 그렇습니다."
"잘하자~ 응?"
대부분의 BJ들이 그러하다.
시청자들이 펑펑 쏴주는 큰 돈. 씀씀이는 헤퍼졌는데, 돈줄이 막히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콜팝TV에서 방송을 하게 된 연유다.
처음에는 녀석의 팬들이 관심을 가져줬지만 결국 플랫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형 때문에 목돈도 만지고, 파프리카TV에 복귀도 했으면 잘해야지.'
실망시켜서야 쓰겠어?
못 쓸 만한 녀석이 되지 말라는 소리다. 물론 철꾸라지 정도면 제법 이용 가치가 있으니 버릴 생각은 없다.
단순한 화풀이.
그리고 긴장감을 주기 위한 응징이다.
얼마 전, 자신의 지시로 기획했던 합방은 상상치도 못한 결말을 맞았다.
"저, 형님."
"왜?"
"변명하는 건 아니고…… 제가 방송을 재밌게는 잘하는데 여자랑 그런 거는 잘 못하거든요. 헤헤;"
방송 무대도, 기획도 자신들이 했음에도 불구.
오정환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꼴이 돼버렸다.
당초 목적대로 그의 뒷배를 끌어내는데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확실히 그냥 껄렁껄렁하기만 한 녀석은 아니야.'
수많은 인기BJ를 만나봤지만 이만큼 대범함을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공을 들여 데뷔시킨 BJ임은 분명해졌다.
"그게 되는 녀석을 구해봐야겠지."
"오정환을 역시 영입할까요?"
"야."
"네, 형님!"
"넌 학습 능력이라는 게 없냐? 생길 때까지 조금만 처맞자."
파프리카TV에서 가장 돈이 되는 건 여캠이다.
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인기BJ의 영향력이 필수 불가결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매번 이슈를 만들어내는 오정환은 더할 나위 없는 인재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겠지.'
상처가 티 나지 않도록 배에만 세 번 찜질을 해준 심익태는 손을 털며 일어난다.
히끅거리며 마른 침을 질질 흘리는 철꾸라지를 내버려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