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94화 (94/846)

94화

공지― 『형님들 휴방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ㅠㅠ』

엊그제 합방 이후로 배가 좀 아프네요

불닭에 깡소주까지 마시니 위가 무리를 했나 봅니다

괜찮아지는대로 공지 올리겠습니다……

철꾸라지 방송국에 올라온 휴방 공지. 그 내용은 정상 참작을 해줄 만도 하다. 그도 그럴 게 당시의 방송은 적잖이 폭력적이었다.

[Best Comment]― 배가 아플 만하지ㅋㅋㅋ 죽 쒀서 개줬는데 └화병임?

└ㄹㅇㅋㅋ

└오정환은 멀쩡하던데 이 새끼 푸파 본좌 자리 내놔야 함

자신의 위를 폭행했다.

캡사이신 액기스인 불닭과 깡소주, 간장까지 퍼마셨으니 괜찮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휴방에 민감한 팬들이라도 이해해줄 수 있다.

평소였다면 말이다.

─철꾸라지 결국 런하네ㅋㅋㅋㅋ

또 그건가?

오정환 보면 튀어라 퇴구런!

└퇴구쉨ㅋㅋㅋㅋㅋㅋㅋ

└시합에선 이겼지만 승부에선 처발렸지

글쓴이― ㄹㅇ

└어떻게 지 방송에서 저 꼴을 당하냐?

철꾸라지의 승리로 종결되었던 방송. 그러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되며 여론은 크게 반전되었다.

대결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다시 재고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민심도, 심판관도 오정환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방송 다시 보면 모를 수가 없다니까?

철꾸라지는 리아 거들떠도 안 보는데 정환은 계속 챙겨줌이러는데 어떻게 안 반하고 배김?

└표정만으로 모든 게 이해되네

└철꾸라지랑은 그릇이 다름

└둘이 썸 타고 있었누ㄷㄷ

└이게 그 NTR인가 뭐시기냐?

처음에는 혹시나 했던 이야기다. 점점 더 살을 붙여가며 완성되었다. 오정환에 대한 화제라면 귀를 기울이는 여타 커뮤니티에도 퍼졌다.

그렇게 화제가 커지자 장본인들 사이에도 진전이 생긴다.

지난 합방의 애프터.

한 번쯤 가져보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열혈 오빠들만 허락해주면……, 마음속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싶어요."

물론 쉽지 않은 문제다.

'여캠'은 일반적인 BJ들과는 다르다. 극소수의 큰손이 수입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수입에도 지장이 생긴다.

남자BJ와 단독 합방처럼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콘텐츠를 여캠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이유인데.

―흠;;

―다른 형님들 생각은 어때요?

―회장님 생각이 중요하죠ㅎ

―허허…… 아우들 생각부터 들어보고

열혈은 별풍선 랭킹 1위부터 20위까지 총 20명이나 된다.

그 모두의 의견을 일치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실질적인 결정 권한은 회장·부회장에게 달린다.

―리아가 하고 싶다면 뭐……

―흠;; 이런 건 신중해야 하는디

―남자BJ들 다 늑대 아닌가요?

―늑대는 나이 처먹고 띠동갑한테 껄떡대는 열혈들이고ㅋㅋㅋ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열혈까지 달 정도로 별풍선을 쏘는 이유.

99%는 사심일 수밖에 없고, 신경 쓰이는 여자가 남자랑 단 둘이 있는다면 반대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다.

아무리 오정환의 이미지가 괜찮은 편이고, 일부 열혈들이 옹호한다고 해도 쉽사리 허락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 * *

합방.

지금까지 한두 번 해온 콘텐츠는 아니다.

'하율이도 그렇고, 민하씨도 그렇고, 하다 못해 우리 똥강아지도 그렇고.'

여성 게스트와의 합방은 최근 내 방송의 주력 콘텐츠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유별날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 신경 써야 하는 요소가 있다.

─울릉도인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지금 리아네 가고 있는 거에요??

"네, 지금 택시 타고 가고 있습니다."

여캠.

일반인은 물론 일반BJ와도 다른 규율이 적용된다.

열혈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찮았는데.'

이 정도까지 와버리면 안 해도 문제다. 어디서 듣고 온 시청자들이 10초 단위로 묻는 광경이 눈에 훤하다.

―안 하면 그건 그거대로 귀찮아지니까

「저 귀찮아요?」

―아니 시청자가 해코지할 수 있다는 거죠

「네! 설득해볼게요」

―그냥 이해를 구해보라는 차원에서;;

이는 나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반대할 수 있는 것도 열혈이지만, 그 귀찮음을 짊어져야 하는 것도 열혈이다.

'여하튼.'

방송적으로도 하는 편이 낫다. 내가 뭐 남캠 새끼들처럼 여기저기 씨 뿌리고 다닌 것도 아니고.

이래 봬도 매 방송 깨끗하게 해왔다고 자부한다.

"씨방 학상 여자 만나러 가는 거여?"

"예, 뭐."

"라떼는 말이야~."

"……."

―ㅋㅋㅋㅋㅋㅋㅋㅋ

―기사 아저씨 신났네

―아재 서유?

―80년대 연애썰 레전듴ㅋㅋㅋㅋ

물론 이 정도로 보수적이진 않지만, 적어도 캥길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허락 또한 떨어진 것일 것이다.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그렇지가 않아.'

괜찮다고 하는 사람 중에 정말 괜찮은 경우는 생각보다 많이 없다.

게다가 아재들이 한 번 삐지면 달래는 게 어려워.

"학상 듣기 지겨운가벼?"

"아, 제가 좀 졸려서."

"씨방 전화할 때는 목소리에 생기가 넘치더니 크흠!"

"……."

케바케가 있기는 하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유치해진다는 말이 근거 없이 생긴 것은 아니다.

80년대 연애썰이 잠시 끊긴다.

'물론 택시 기사 아저씨들은 항상 혼자 다니니까 심심해서 그렇겠지.'

인터넷 방송이 보편적인 시대가 아니다 보니 설명에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입장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여캠과 방송을 하려면 말이다.

끼익―!

택시가 멈춰 선다.

카톡을 통해 전해 받은 주소지의 바로 근처에 말이다.

"화면 노출을 하면 주소지가 특정될 수도 있어서 잠시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려 놓을 테니 양해 좀 해주세요."

―ㄲㅂ 우리 동네 같았는데

―그걸 어케 암ㅋㅋㅋㅋ

―너무 오바 아님?

―과민 대응 오반데

집단 지성이라는 게 생각 이상으로 무섭다. 시청자는 물론, 커뮤니티에까지 사진이 올라가면 아는 사람이 무조건 한 명은 나올 수밖에 없다.

'신경 쓸 게 진짜 많아.'

나야 뭐 기본적으로 알고 있고, 지키고 있지만 실수하는 BJ도 적지 않다.

혹은 방송 어그로를 위해 일부러 흘리거나.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이다. 사생팬에 의한 스토킹 내지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심각성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그조차도 별일은 아니다.

가장 곤란한 건 상대가 전문 업체일 때. 주소지 자체가 없거나, 허구인 경우는 정말이지 골 때린다.

띵동딩~♪ 띵동딩~♬

직접 알려준 시점에서 그럴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큰 원룸 내지 작은 투룸인 듯한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른다.

'리아씨 집이 맞길 빌어야지.'

가끔 있어서 그렇다. 여캠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업체 측에서 주거 공간을 꾸며 놓는 경우 말이다.

"방송 중이에요? 아."

"오는 길에 카메라 가려뒀으니까 괜찮아요."

"그게 아니고; 네, 들어오세요……."

사전에 설명을 들었으면 모를까. 현장에서 알아버리면 이도 저도 못하고 애매해진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네.'

여기저기 생활의 흔적이 보인다.

만약 그조차 짠 거면 진짜 대단한 거고.

실제 있었던 사례 중에 집주인에게 양해를 받아 빌린 경우까지 본 적이 있어서 의심병이 좀 있다.

"현관과 안쪽의 갭이 좀 있네요."

"왜 그런 것만 봐요."

"아!"

―맞을 말을 왜 해!

―나만 봐달라잖아ㅋㅋㅋㅋㅋ

―벌써부터 달달각 잡누

―열혈들 극대노^^

집안을 구석구석 살피면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

알고 있지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 필요했다.

'그냥 그런 자취방이네.'

여자방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환상 따위는 안 가진다.

심한 경우는 쓰레기장이야. 애완동물이라도 키우는 순간 생존 게임이 돼버릴 정도다.

여기저기 급하게 치운 흔적이 있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그대로 안쪽 방에 들어간다.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여기서 방송하시는구나."

"제 방송 본 적 없어요?"

"솔직히."

없다.

여캠을 내가 왜 봐.

하지만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인지는 안 봐도 안다.

'자신은 다르다는 거지.'

선정적인 방송을 지향하는 여캠이 있는가 하면, 토크 위주로 방송을 진행하는 여캠도 있다.

후자의 입장에서 다른 취급을 받고 싶은 건 이해는 한다.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1일각인가요? ㅋㅋ

"100개 팬가입……, 고맙다. 제 방 열혈이에요."

"아, 그래요? 반가워요~."

이해만.

솔직히 내 입장에선 별 차이 없다.

그리고 오늘 방송은 여캠이라는 걸 의식하고 있는 편이 옳다.

『매니저』

metal746― 리아만의회장

dksehd― 리아뿐인별밤

sjc0723― 리아♡사케

『열혈팬』

cxcsd25― [리아]굿모닝

tprtmaos― 리아♡막연

.

.

.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열혈들의 참석률이 대단히 높다. 여캠과의 합방이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 방송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분명 많을 텐데, 오해하지 말라고 결말부터 미리 말씀드릴게요."

―???

―스포 에반데

―응 구라

―이 새끼 또 뭔 지랄을 하려고ㅋㅋㅋㅋㅋ

아무리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부족하다.

생방송인 이상 사고가 터질 여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열혈 아재들 삐지면 못 말려.'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하던 그 기사 아저씨처럼 말이다.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저는 12시 땡 치면 갈 거고, 연애쪽의 발전은 기대하지 마세요. 상관없죠?"

"……네?"

한 가지 마법을 걸어둘 생각이다.

* * *

오정환과의 합방.

이를 진행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열혈들을 설득했는지 모른다.

"네, 상관없어요."

"삐졌어요?"

"아뇨. 열혈 오빠들한테도 그럴 거라고 얘기했었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지난 이틀간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쩜 이리 무신경할 수가 있어?'

자신이 열혈 눈치를 봐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선을 그을 필요는 없잖아?

방송 이전에, 한 명의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일단 음식이라도 하나 시키죠. 뭐 좋아해요?"

"아무거나 시켜요."

"정말 아무거나요?"

아니, 방송인으로서도 마찬가지다.

빈말로라도 봤다고 해줄 수 있는 거잖아?

설사 거짓말이었어도 자신은 믿었을지 모른다.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환상에서 확 깨어나 버린 기분이다.

역시 파프리카TV의 남자BJ들은 다 똑같은 놈들이다.

'화, 진짜…….'

타는 속을 냉수를 마셔 달랜다.

머그컵을 내려놓고 채팅창을 보자 반응이 좋지 않다.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표정 썩었네ㅋㅋㅋ

―선 그으니 당연히 빡치지!

―이게 대본이 아니라고??

―오정환 이 새끼 열혈들한테 쫄았나 보네ㅋ

이미 방송은 시작되었다. 벌써 수천 명의 시청자가 들어와 있다. 오정환과의 관계는 어긋났을지라도, 방송적 홍보라는 토끼는 잡아야 한다.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신감이야.'

환상에서 깨어나니 보인다. 못생긴 건 아니지만, 잘생겼다고도 할 수 없는 외모. 이미 박힌 미운털에 쐐기를 더한다.

『오후 09:01 2012―02―25』

시간도 이미 늦었다. 12시까지 별로 남지도 않았다.

3시간 정도라면 충분히 시청자를 속이고 방송에 임할 자신이 있다.

'니가 나를 이용하겠다 이거지?'

독한 마음을 먹고 시작한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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