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보라큰손님, 별풍선 1004개 감사합니다!
히힛! 섹시 댄스 가능?
"가능하나? 잘 못할 거 같은데."
"저 여캠이거든요?"
"오~ 그럼 한 번 보죠."
"아……."
―고단수ㅋㅋㅋㅋㅋㅋㅋ
―함정에 빠졌죠?
―(기립 박수)
―잘 추겠지 여캠인데ㅋㅋ
방송은 막힘없이 진행된다. 시청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걸 넘어, 여캠과의 합방에 필요한 요소까지 전부 말이다.
'그래서 어렵지.'
단순히 흥행을 한다고 다가 아니다. 여캠이 가진 매력을 어필시켜야 한다. 옛날 생각이 나서 조금 신경 써주고 있다.
「C. R. A. Y. O. N. 팝! 두둠칫 두둠칫 둠칫 둠칫~☆」
댄스곡이 흘러나온다.
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리아씨를 감상한다.
─웰치스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귀찮다면서 뚫어져라 쳐다보누
"크흠! 평가를 해야 되니까 그렇죠."
속물적인 이유도 조금은 있다. 여캠의 공연을 직관하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
'원래 사귀는 게 귀찮은 거지, 즐기기만 하면 어떤 남자기 싫어하겠어.'
그리고 사람마다 다 매력이 다른 법인데.
그 점을 기준으로 유심히 관찰한다.
"후……, 후……. 어때요?"
"별로에요."
"아! 저 진짜 화내요?"
"그러니까 제가 돋보이게 만들어드릴게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열심히 춘 보람.
기특하긴 하지만 내 커트 라인을 넘기에는 한참 멀었다.
'한두 명 봤겠냐고.'
이래 봬도 눈이 좀 높다.
외모 4점, 의상 2점, 춤 2.5점, 포인트 2점.
낮은 부분을 보완한다면 그럭저럭 봐줄 만한 수준까진 갈 수 있다.
"여캠 안 본다면서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여캠을 안 본다는 거지, 여자를 안 보는 건 아니에요."
"여자친구한테 이런 거 시켜요?"
"왜 시키면 안 돼요?"
의첸이라는 게 있다. 의상 체인지.
조금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확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마다 매력이 다르잖아.'
까놓고 말해서 꼴림 포인트 말이다.
리아씨의 경우는 바스트를 강조하는 편이 옳다. 춤을 출 때도 하체보다 상체를 많이 움직이는 걸 추천한다.
―))
―춤 추니까 사람 늘어나는 거 보소
―((
―))
―((
―열혈들이 제일 신났누ㅋㅋㅋㅋ
채팅창이 리듬을 탄다.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 그러하다.
'여캠방 특유의 문화인데.'
가슴과 엉덩이가 흔들리는 걸 표현하는 이모티콘이다. 솔직히 처음 보면 역겨운데 따라하다 보면 은근히 흥겹다.
"후……, 후……. 하란 대로 하긴 했는데."
"채팅창 반응 보여요?"
"네. 어머……."
"왜요? 뭐가 많이 늘어났어요?"
춤울 추는 2분 남짓한 시간. 팬가입이 족히 100개는 터졌다. 1개나 10개 단위가 많다 보니 별풍선의 총액은 그리 많지 않지만.
'홍보에서 중요한 건 질보다 양이지.'
들뜬 열기가 가라앉은 후 남게 될 진짜팬.
그들 중에는 일반팬도 있고, 큰손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일단 수가 많은 편이 유리하다.
─강냉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니 하다 하다 여캠 코디도 하네ㄷㄷ
"제가 봄이 화장도 시킨 사람인데 뭘 못하겠어요."
―아 코건 ㅇㅈ이지
―그때 진짜 어이가 없었는데
―그걸 정환이가 한 거임??
―세상에ㄷㄷ
이렇듯 해당 여캠의 매력을 잘 어필하면 질적인 부분도 충족되기 쉽다.
실제 비즈니스로 엮인 방송을 진행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이다.
'페이로 받는 경우도 있지만 여캠의 수익 일부를 받는 경우도 있어서.'
철없을 때 목돈에 혹해서 저질렀던 흑역사가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으니 안 좋은 짓이라는 자각도 부족했다.
그 경험을 좋은 쪽으로 살려보고자 한다.
─[C9]족구사랑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철꾸라지 NTR 오졌다ㅋㅋㅋㅋㅋㅋ
"히."
"이제 모르는 척은 안 하기로 했어요?"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다 아는 거 같은데ㅋㅋㅋㅋㅋㅋㅋ
―히토미 꺼라……
―철꾸라지 오열!
―현실 NTR ㅗㅜㅑ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안 나올 수는 없다.
'현실에 NTR이 어딨어. 그런 건 소라넷에나 있지.'
시청자들은 신경 쓴다. 여캠과의 합방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다른 BJ와 스토리가 있다면 억측을 낳기 쉽다.
"철꾸라지 오빠랑은 그냥 오빠, 동생 사이라서……."
"저랑은요?"
"정환씨요? 글쎄요. 어떻게 될까요?"
―요오망한 것……
―열혈들 오열ㅋㅋㅋㅋㅋㅋㅋ
―표정 관리 500배!
―현실 히토미가 여기 있었누
때로는 자극적인 향신료가 되기도 한다.
BJ간의 대립은 민감한 주제임이 틀림없지만.
'애초에 상대가 철꾸라지고.'
그 지랄을 해놓고 정상적인 연애를 바란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을 만나야지.
리아씨의 가치를 올리면 올릴수록 더해진다.
* * *
오정환과 리아의 합방.
세간의 따듯한 시선만 기대할 수 없는 커플링이었다.
─오정환 이 씹새끼는 위아래도 없네ㅋㅋㅋ
감히 인방계의 하늘이자 철와대의 주인인 철꾸라지가 침 바른 여캠과 썸을 타?
개씹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ㅋㅋㅋㅋㅋ
└감히 '철꾸라지'가 침 바른 여캠한테 '오정환'이 손을 대냐고야ㅋㅋㅋㅋㅋ└위아래 있는데?
└지금 두둠칫에서 위아래로 댄스곡 넘어감
글쓴이― ㄹㅇ? 그건 봐야지
극한의 공격성을 지닌 것으로 악명이 높다.
철꾸라지의 팬덤은 무서워서도 피하지만, 더러워서도 많이 피한다.
그냥 엮이지 않는 것이 상책. 얽혀서 좋은 꼴 보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두 팬덤의 싸움을 다른 크루에서도 넌지시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 확 찍혔으면 좋겠다."
"오정환 저 새끼는 신인이면 신인답게 행동해야지."
"리얼 싹수가 없다니까?"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으니까.
위협적으로 커버린 신인 오정환을 끌어 내린다면 철꾸라지를 응원해줄 만하다.
그리고 이는 분명 잘 먹혀 들어가는 듯했다.
─리아 보면 볼수록 아깝네
이목구비 오밀조밀해서 싼티도 안 나고
학교도 본인피셜 세종대라는데ㄷㄷ
└여캠이? 근본 있네
└철꾸라지는 지잡인데ㅋ
글쓴이― 지잡도 아님. 이사장이 100억 횡령하다가 사학비리 터져서 폐교됨└철꾸라지는 인생도 레전드눜ㅋㅋㅋㅋㅋ
중간까지는 말이다. 광팬들은 BJ에게 자신을 대입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작게 보면 즐거울 때 같이 웃고, 슬플 때 같이 우는 애청자라는 느낌이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 과하면 문제가 된다. 명절날 친척들처럼 시시콜콜 참견한다.
마찬가지로, 항상 좋은 쪽의 이야기만 해주지는 않는다.
─철빡이 필독)) 철창인생 4년차가 선언합니다
여캠 '리아'는 철꾸라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른 싼티 나는 물빨 잘해주는 여캠 알아보십시오
우리도 좀 보게
└악성 팬덤이누ㅋㅋㅋ
└철빡이들이 그럼 그렇지
└배 아파서라도 그 꼴 못 보자너~
└같이 좀 보자고ㅋㅋㅋㅋㅋ
솔직히 너한테 가기는 좀 될성부른 처자가 아니냐?
오정환의 방송이 진행되면 될수록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인터넷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큰손도 있지만, 절대 다수는 평범하다. 좋아하는 BJ가 너무 다 가져버리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오정환이 리아 가져봤자 안되는. EU
그래서 철꾸라지보다 간장 잘 마심?
그래서 철꾸라지보다 불닭 잘 먹음?
그래서 철꾸라지보다 면상 두꺼움?
철꾸라지 판정승! ^오^
└아 ㅇㅈㅇㅈ
└오정환 X밥이었넼ㅋㅋㅋㅋㅋ
└뭐 하나 이기는 게 없누
└주위에 여자 좀 많으면 어쩔 건데~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적절한 밸런스다.
철빡이 군단이 오정환에 대한 공격을 멈췄다. 아니, 개중 몇몇은 까러 갔다가 도리어 팬이 됐다.
철꾸라지가 한사코 자극적이라면, 오정환은 은은한 감성의 매력이 있다.
평소 자신들이 보던 합방과는 다른 느낌으로 괜찮다.
"내가 보기엔 그냥 여캠으로 싸운 게 패인이야."
"웃통 까고 토컨이라도 안 했으면 실드라도 쳐보지……."
철꾸라지 휘하의 알바들도 손을 놓았다. 되도 않는 개소리로 옹호글을 올리는 것도 지친다.
그렇게 인위적인 손길이 사라진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하자 까일 이유가 하나 없다.
─여자들이 오정환한테 빠지는 이유 알겠다
이 새끼 무심한 척하면서 신경 개잘 써줌ㄷㄷ
└응 대본
글쓴이― 저게 대본이면 방송 천재짘ㅋㅋㅋㅋㅋ
└방송 천재는 맞음
└대학 연애 같이 달달해서 볼 만해
호평일색.
항상 전투 태세인 갠방갤에서는 드문 반응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방송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간다.
'뭐야, 말만 까칠하게 하구.'
처음에는 완전 정색했던 그녀도 어느새 얼굴 근육이 풀렸다.
헤실헤실.
방송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여캠.
보는 입장에서는 한없이 편하다.
앉아서 예쁜 척하면서 돈만 받으면 되네.
─아우디매니아님, 별풍선 2000개 감사합니다!
가슴 뽕?
"어머, 2천 개!"
"뽕이었어요?"
"아니거든요."
―정색ㅋㅋㅋㅋㅋㅋ
―2천 개 주고 물어보면 ㅇㅈ이지
―저분 큰손임
―큰손에게 노려지는 리아 ㅗㅜㅑ
그걸 대체 누가 쏴줘?
한두 푼도 아니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래서 업체가 존재한다. 인기BJ와 합방을 하기 위해 목을 맨다. 그 부담에서 벗어나자 정말로 날아갈 것 같다.
'진짜 맞는데. 터치 함 해보지 바보.'
무엇보다 호감이 간다. 여캠이라는 직업은 특수하다.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는 것이 힘들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른다.
여캠을 해오며 숱하게 겪어온 선입견이다.
"정환씨 저 있잖아요……."
"잠깐만요."
"네?"
지금껏 소극적이었던 리아다.
빙하처럼 굳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리자, 진심으로 다가갈 생각이 든다.
시청자들도 침을 삼키는 것조차 잊은 채 두 사람의 다음 진도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짝!
가벼운 박수 소리.
딱히 유별나지 않다. 집중하지 않았다면 놓칠 수 있었을 만큼 가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애써 잊고 있던 기억을 상기한다. 다시 한번 환상에서 깨어나게 되는 순간이다.
"꼭 지금 가야 할 필요 없잖아요? 어차피 막차도 끊겼는데. 네? 그러지 말구 더……."
온화하며, 인자한 미소. 모든 것을 이해해줄 것 같은 포용력.
하지만 단 하나만은 들어줄 수 없다는 듯 완고하다.
이윽고 시계는 12시를 가리킨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다.
손을 덜덜 떨면서도 마지막 자존심이 붙잡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에이, 쇼지?
―오정환 이런 거 잘함ㅋㅋㅋ
―갑분싸 오지네
―응 대본~
시청자들도 그렇다고 하니 설마 하는 생각뿐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겠지. 조금만.
조금만 더.
2월 말.
날은 아직 쌀쌀하다.
주위에 24시간 카페도 없는 이곳에서 30분 가까이 서성였을 가능성은.
"우리 분위기 좋았는데 이러는 게 어딨냐고……."
나지막한 목소리다. 제대로 된 방송 진행도 안 됐었다. 그럼에도 2만 명에 가까운 시청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우네
―와 아니;;
―열혈들 빡치겠다ㅋㅋㅋㅋ
―지켜보고 있겠지 좀만 기다려봐요!
설마 하고 있던 시청자들.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노심초사 초인종이 안 울리나 귀를 기울여보지만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뚝, 뚝.
결국 참지 못하고 터트린다.
닭똥 같은 눈물이 닦을 반응도 하기 전에 흘러넘친다.
─채팅창을 얼렸습니다.
BJ와 매니저만 채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매니저가 서둘러 채팅창을 얼린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나아지겠지.
아니, 그전에 돌아올지 모른다. 시청자들이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오정환이라면 이것조차 설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이 다 되도록 기다렸지만 드라마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