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개인 방송은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그만큼 더 몰입도가 높으며, 시청자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오정환 이 새끼는 피도 눈물도 없나;;
여캠이 지금 지 때문에 울고 불고 난리가 났는데
그냥 생으로 집에 가버려?
가다가도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님?
└진짜 안 올 줄이야……
└독한 새끼임 진짜
└열혈 호구들 반응 어떰?
글쓴이― 너무 서럽게 우니까 열혈들도 뭐라 못하더라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방송.
랜선 너머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누군가의 일이다.
그럼에도 즐겁고, 그럼에도 화가 난다. 오정환과 리아의 합방은 수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이건 진짜 대본일 수가 없다
눈 부은 거봐
가짜로 저렇게 울 수 있으면 배우 해야지
└ㄹㅇ
└안 와서 어케 됨?
글쓴이― 지금 시청자랑 술방 중
└오정환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둘의 사이다.
커플링이 연결되며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만나자 생각보다 분위기가 미묘했다.
오정환의 말실수. 그로 인해 닫혀진 마음.
실낱 같은 틈을 비집어 여는 과정이 시청자들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내가 여캠 육수짓 3년차인데
리아는 정환한테 마음 있는 거 확실함
비즈니스로 합방하는 거면 저런 분위기가 나올 수가 없음└그걸 누가 모름?
└그걸 아니까 이 지랄이지
└여캠이 좋아해주는데 토까는 게 남자냐고!
└씹 나였으면 진짜 확ㅋㅋㅋㅋ
얼굴만 봐도 콧대가 높아 보이고, 실제로도 높은 여캠이다.
말 거는 것도 황송한데 툭툭― 신경질을 건드린다.
두 사람의 티키타카와 감정선.
분명 무르익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진전될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쓰잘데기 없는 약속을 이행하고 있으니 폭동이 날 만도 하다.
─이 시각 오정환&리아 합방의 유일한 승자……
그건 바로 낭낭하게 또래오래 챙긴 하와와!
└아 치느님은 못 참지
└치킨 사려고 집 간 거였눜ㅋㅋㅋㅋㅋ
└리아 오열
└봄이 싱글벙글^^
오정환이 떠나고도 수 시간 술방이 이어졌다.
기다리는 시간을 겸한 것이었으나 결국 오지 않았고, 방송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무성한 추측만을 의문만을 남기고.
커뮤니티에서는 새벽 내내 화제가 불탄다. 태양이 떠오르고, 잠에서 깬 유저들이 가세하자 더더욱 크게.
* * *
여캠.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보고, 호기심에 가보기도 하는 방송이지만 의외로 알려진 건 없다.
'그야 알려지면 큰일 나니까.'
구조가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다. 일반BJ와는 아예 다르다고 보면 된다. 소위 말하는 '별창'은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막말로 누가 쏴줄 건데?
어떤 호구가 수백, 수천, 수억씩 쏴줘?
그 호구를 물어와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리아― 3시간 전
부재중 전화 (12)
어젯밤.
내가 한 역할이 그런 감이 있다.
너무 훌륭했던 나머지 칭찬을 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겠지.'
3시간 전까지 울린 걸 보면 꽤 늦게까지 깨어있던 모양이다.
참고로 나는 그 길로 돌아가서 푹 잤다.
나라고 매번 드라마를 찍는 게 아니니까. 시청자 입장에서는 재밌을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연출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런 똥꼬쇼를 매번 펼칠 수는 없다.
방송 자체도 난이도가 있는데, 여캠과 깊이 엮이는 건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다.
'업체측이 꽤 악랄해.'
일반적인 여캠의 수명은 길어야 2년이다. 호구를 잘 꼬셔도 자신의 인생을 몇 년씩 허비해줄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철 장사. 콩깍지가 씌었을 때 뽕을 뽑아야 한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케이스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여캠이 생각보다 힘들어.'
물론 생각보다다.
졸업하고, 자격증 따고, 면접 보고, 생지옥이 펼쳐진 취업 시장에 비하면 상팔자지.
하지만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직업의 특수성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나는 이를 알고 있다.
여자들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남자에게 호감을 가진다.
여캠은 이것에 보다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된다.
'못생긴 남자BJ들이 예쁜 여캠 많이 사귀는 이유지.'
절반 이상은 비즈니스지만, 진심인 케이스도 꽤 흔하다.
그것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 쪽이 매달려서.
자만은 아니지만 나도 꽤 경험이 있다. 대부분은 순간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직업의 특수성과 방송의 분위기가 사람의 감정을 헷갈리게 만든다.
<저 있잖아요. 별풍선 어제 살면서 제일 많이 받았어요.>
<근데 하나도 안 기뻐요. 왜 그런지 알아요?>
혓바닥이 꼬인 것 같은 목소리. 몸 상태가 영 아니라는 게 스피커 너머로도 느껴진다. 통화가 아닌, 음성사서함에 남겨진 리아 씨의 메세지다.
'술이 많이 챘네.'
술방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원래 술 먹고 사고 치는 건 BJ라면 한 번쯤 해보는 통과 의례다.
세상일이 그러하듯 그 피해자가 자신이 되면 굉장히 곤란해질 뿐이다.
<혹시 돈 때문에 그래요? 풍 받은 거? 저 필요 없어요. 다 드릴 수 있어요.>
<이거 방송도 아니고…… 저 진심이에요. 정환씨가 좋아요.>
술주정이 생각보다 길다. 중간쯤 가니 말인지, 울음인지 구별이 안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후의 이야기는 들어봤자 별로 의미가 없다.
'이 처자 큰일 날 처자네.'
인터넷 방송의 세계는 무섭다. 특히 여캠은 약점을 잡히기 쉬운 포지션이다.
말 한 번, 행동 한 번 잘못한다?
평생 목줄이 되어 이용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석이라고 너무 솔직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BJ의 기본적인 소양이지만 이번만큼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토독, 톡!
내가 그런 악인은 아니니까.
음성사서함은 좀 그렇고 카톡으로 메세지를 남긴다.
'드라마는 찍지 않았지만.'
현실에는 다음 날이라는 게 존재한다.
* * *
자극적인 사연일수록 기억에 깊이 남는다.
김치 드라마에 막장 요소가 많은 이유일 것이다.
"저희 애들이 데뷔한 지 거의 반년 다 돼가고 있는데."
<예.>
"홍보 한번 들어가야 되잖아요? 솔직히 좀 많이 늦었지."
그만큼 부작용도 크다. 평범한 드라마들이 명함을 내밀기 힘들게 된다.
"예, 스케줄은 저희 쪽에서 맞출 테니까……."
<당연히 해드리고 싶은데 요즘 상황이 여의치 않아요.>
"……."
최근 심익태는 자신의 휘하 여캠의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소 협업을 하는 업체들의 협조가 미진한다.
'젠장할.'
딱히 거부 의사를 비춰온 게 아니다.
물장사는 상부상조가 원칙.
서로 앙심을 품는 건 자폭하자는 소리밖에 안된다.
<물론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이 시국에 괜히 무리하게 합방 진행하다가는 여캠 수명만 크게 날립니다~.>
역지사지를 해봐도 안 하는 게 옳다. 최근 진행된 합방들은 전부 성적이 저조하다. 비교 대상이 워낙 자극적이었기에 일어난 참사다.
─리아 합방 보고 여운 때문에 붕 떠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네;;
다른 방송 보고 달래려다 눈만 배림ㅅㅂ
└나도 그럼;
└돈 밝히는 별창 성괴ㅋㅋㅋ
└리아가 진짜 선녀야
글쓴이― 내 말이
얼마 전 오정환과 리아의 합방.
그 후폭풍은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까지의 방송과 궤를 완전히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림의 떡.
모니터 속의 그녀.
별풍선을 넣으면 미소 짓고 춤 춰주는 별창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와닿았다.
─요즘 별창들 존나 꼴보기 싫지 않음?
성괴랑 왜 자꾸 합방 하는 거야?
물빨 그리우면 콜팝TV를 가지 파프리카TV를 보겠냐고ㅋ└오피 가서 떡이나 치던가
글쓴이― ㄹㅇㅋㅋ
└우욱 씹
└근데 진짜 만족이 안되긴 함ㅋㅋㅋㅋ
'진짜'를 보자 나머지가 다 '가짜'로만 느껴진다.
다른 여캠들에 대한 관심까지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민심. 묵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고인물인 보라판의 특성상 다른 시청자들도 영향을 받는다.
'하; 수금시킬 년들이 한둘이 아닌데.'
심익태로서는 애가 탄다.
자신의 장사가 스톱되고 말았다.
여캠은 수명이 짧고, 관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때문에 한철 장사를 모토로 한다. 인기BJ와의 합방으로 인지도를 높인 후, 큰손을 유입시켜 바짝 땡기는 방식이다.
천년만년 땡기면 안돼?
여자라는 생물은 질리기 마련이다.
연예인들도 수명이 있을지언데, 여캠들은 말할 것도 없다.
<수습이 좀 길어질 것 같은데 그렇게 싹 보이는 년 아니면 바로 업소쪽으로 돌리시죠?>
"그 방법도 있기는 있지."
<아무튼 저희도 이번을 계기로 애들을 골라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괜히 어설프게 아무나 받았다가 또 시청자들이 지랄하면 골치 아프거든요~.>
"……."
그렇게 한 번 단물을 쪽 빨아먹는다.
그리고 콜팝TV나 업소처럼 수위 높은 쪽으로 돌려 한 번 더 쪽 야무지게 빨면 달달한데.
'젠장할.'
그것이 힘들게 됐다.
오정환으로 인해 업계 구조가 변하리란 전망이다.
방금 통화가 연결된 상대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신경 쓰는 분위기다.
BJ업계는 변화가 빠르다. 바뀌는 걸 두려워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일련의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억울한 기분을 숨길 수 없다.
"어, 어떻게 잘 되셨나요? 헤헤"
"철꾸야."
"네, 형님!"
"너는 학습 능력이라는 게……."
대가리를 확 움켜쥔다. 결코 작은 대가리가 아님에도 한 손에 잡힌다. 그 악력은 일반인이 견딜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때리기도 지친다.'
말귀를 알아어야 보람이라도 있지.
적당히 깨지지 않는 선에서 고문을 마치고 놓아준다. 물티슈에 머리 기름기를 쓱쓱 닦으며 심익태는 생각한다.
아쉽다.
오정환이 만약 자신의 것이었다면.
벌 수 있는 돈의 단위는 10억, 100억 정도로 끝내지 않을 수 있다.
'정기 빼먹는 년들 골라서 붙여주면 알아서 잘 살릴 것 같은데.'
리아는 자신의 시선에서 평범한 여캠이었다.
얼굴이 꽤 반반하긴 하지만, 풍 수급에 적극적이지 않아 수익성이 낮다.
"오정환이랑 한번 잘 지내봐."
"손 봐주라는 말씀이시죠?"
"너는 학습 능력이라는 게……."
그럼에도 오정환은 스토리를 만들어 방송을 흥행시켰다. 그런 전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실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굳이 내 것으로 만들지 않아도, 내 편으로 만들면.'
써먹을 수 있으니까.
다이렉트가 아니기에 수고비는 들 것이다.
자금 순환에 불편한 점이 생기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가치가 넘친다.
"지난 합방으로 말문은 텄으니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철꾸야."
"네, 형님!"
"니가 인방 대통령이잖아."
"아니, 뭐 헤헤……."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는 거지. 못하는 부분은 몰라도 잘하는 부분에서는 응?"
"저, 절대 실망 끼치지 않겠습니다."
대가리를 까득 잡힌 채 벌벌 떨고 있어도, 방송만 켰다 하면 만 단위가 보장되는 인기BJ다.
그 휘하에 수많은 인기BJ가 소속돼있다.
철꾸라지 엔터테인먼트.
대형 크루의 힘을 활용하면 못할 것도 없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심익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