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다음 날 아침.
돌아가는 리아를 배웅해준다. 마음 같아서는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아침 시간대고, 사람 눈이 많아서.'
설마 하는 일은 애초에 안 하는 게 낫다.
길가다 팬이 알아보기라도 하면 귀찮은 정도로는 안 끝난다.
"오해 풀려고 만났다고 하면 알아주지 않을까요?"
"너 지금 표정이 어떤지 알아?"
"네?"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댄다. 손거울이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옆에 있는 남자와 잤습니다, 라고 얼굴에 써있어.'
사람은 감정이 있는 동물이다. 하루동안 살을 섞으면 티가 안 날 수가 없다. 데리고 다니면 배덕감이 장난 아닐 것이다.
"어젠 제가 진짜 미쳤나 봐요……."
기본적으로 멍청한 애는 아니다. 부끄러운지 코트의 소매 끝을 말아 올린다. 얼굴을 붉히며 아래로 팔짱까지 끼자.
'얘는 그냥 뒀으면 남자들에게 당하고 다녔겠다.'
철벽인 척하면서 섹스 어필은 겁나게 하네.
허리가 당겨지고, 풍만한 가슴은 강조된다.
야한 몸매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대로 입술을 맞춘다. 윗입술을 삼키자 혀를 넣어온다.
정신 상태와 상관없이 몸을 너무 가볍게 허락한다.
"기분이 어때?"
"좋아요. 끝내주게 황홀해요."
"정신 못 차리고 또 와라 응?"
"꼭 올게요 헤헤."
생판 남이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신경을 안 쓰기도 뭣하다. 이쪽 업계에 그냥 두면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계약 끝나면 나랑 갱신하잔 거지.'
정신을 차렸을 때 다시 설명을 해줬다.
상호 간에 오해의 여지가 있다면 그건 뭐 사기꾼밖에 되지 않는다.
침이 발라진 대상을 대놓고 뺏을 수는 없다.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뒤탈도 안 생긴다. 계약이 종료된 후에 연락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마음이 안 변하면."
"그전에는 오면 안돼요?"
"왜?"
"왤까요."
본인은 다른 쪽에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지만.
피식 웃으며 허벅지에 손가락을 톡톡 두들긴다. 해달라고 안달을 하고 있다.
'설명을 좀 더 진득히 할 걸 그랬나.'
사실 꼬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른 거 다 제쳐두고, 팩트만 나열해도 내 쪽이 조건이 좋다.
사금융과 연결된 수상한 아저씨들보다는 낫잖아?
수수료도 말도 안되게 처먹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민을 해야 하는 건.
"오빠한테 오면 고생할 수도 있는데?"
"어제처럼여?"
"그런 고생 말고."
문제는 실제로 고생을 시킨다는 사실이다.
별풍이 안 터져.
큰손이 안 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개고생'이다.
'여캠들이 왜 2년을 못 버티냐면.'
연예인들도 겪는 직업 수명. 복잡하고 난잡하기 그지없는 업계 사정.
이런 요소들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건 자기 관리다.
여캠은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매력 자체가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퇴물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만다.
"젊음이라는 게 무한히 유지되는 축복이 아니야."
"오빠."
"응?"
"방금 확신했는데 오빠 조금 꼰대끼가 있는 것 같아요!"
"……."
아니, 인생 선배로서 충고 좀 하겠다는데~
그런 진짜 꼰대 같은 설교를 하려는 게 아니다.
'요즘 애들은 정말 버르장머리가 없어.'
나 때는 말이야~
그 중요성을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상관없기도 했다.
남자들은 관리를 하든, 안 하든 큰 차이 없잖아?
오히려 친숙한 이미지라고 포장할 수도 있다.
"여자들은 해야 돼."
"헬스하고 있으면 아저씨들 말 걸던데 오빠도 취향이……."
그런 거 아니라고!
이게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는 걸 왜 몰라주니.
'뮤소나라던가 몇 명 있거든.'
데뷔 1년 차때는 괜찮았는데, 한두 해 지나니 역변해서 동네 아줌마가 되어있다.
그렇게 돼버린 후에는 땅을 치고 후회해도 늦는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예쁜 여자 사진들. 요즘 세상이 정말 좋아졌다는 찬사가 나오게 하지만, 걔네들도 몇 년 후에 다시 보면 누구세요?
그만큼 자기 관리라는 게 어렵다.
와 운동해야지! 세상에 이거 모르는 사람 없다.
실제로 행하고, 지속하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고되다는 소리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자신 있나 봐?"
"오빠 마음에 들려면 항상 맛있는 상태를 유지해야죠~."
우리 먹거리로 건강한 식사를 하는 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바와는 조금 다르긴 한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무엇이든 마음에서 우러나는 게 가장 성과가 좋다. 사랑받고 싶은 여자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나에게 목을 매게 만든 것도 계산이 있었다.
"허벅지가 엄청 아플 거야."
"허리도 아파요."
"방송 해명은 오빠가 할 테니까. 집에 가서 푹 쉬고, 다음에는 큰 장난감으로 예습해와."
"아 진짜! 잊어줘요~ 그건."
그렇다고 배가 부른 상황에서 또 먹을 수는 없고.
적당히 인사를 하고 콜택시가 올 때까지 노가리나 까려던 찰나.
멍! 멍!
어디서 개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개소리와 봄소리가 동시에 울린다.
"봄이야."
"봄이에요!"
"봄이가 왔어?"
"봄이가 왔는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봄이와 눈이 마주쳤다.
추리닝을 폼으로 차려입은 게 아니라는 듯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크흠.'
혹시 교육적으로 안 좋은 장면을 목격한 건 아닌지.
살짝 찔리는 바가 있다 보니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오빠 저 분명히 말했는데!"
"응?"
"저 또래오래인데 또래오래!"
"……."
또래오래 같이 생겨가지고.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던 통화가 장본인으로서는 상당히 진지했던 모양이다.
"바삭한 튀김옷이 입안에서 부서지는 상상을 10번이나 하면서 오빠를 기다렸단 말이에요."
"꼭 그걸 해야 돼?."
"그러고 나서 먹으면 2배로 맛있어요~."
나 또래오래 먹는 상상함ㅋㅋ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대뜸 신세한탄을 해오는 걸.
"뭘 그렇게 재밌게 쳐다봐."
"오빠 평소에 이런 느낌이구나."
"원래 이래. 봄이야."
"네!"
"인사해. 알아서 적당히."
"??"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무리 낯 두꺼운 짓을 많이 해봤어도 어린아이의 순수함에는 이길 수가 없다.
'크고 나서 알면 어떡해.'
사춘기 찾아와서 나를 쓰레기 보는 눈으로 쳐다보면 참기 힘들잖아.
물론 도덕적으로 그렇게 잘못되진 않았지만 제 발이 저려서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참에.
"안녕? 언니는 리아라고 해."
"안녕하세요! 저는 봄이에요."
"언니도 BJ하고 있어. 나중에 보면 아는 척해줘?"
"저 기억력 좋아요. 한 번 보면 절대 잊지 않아요!"
5초만 빨리 만났어도 큰일 날 뻔했네.
망각이라는 신의 축복을 타고 나지 않은 듯싶다.
'대가리를 한 대 때려야 하나.'
세상 서러운 표정을 안 봐도 돼서 다행이지만, 비슷한 일이 생기면 고려해보는 수밖에 없다.
둘의 사이가 제법 맞아 보이니 기우라고 생각한다.
"엄마한테 치킨 한 번 시켜 달라고 하지."
"엄마가 저 요즘 굶기고 있어요."
"왜 또."
"제가 살이 조금 쪘다는 사실을 들키고 말았어요……."
우결때 꾸역꾸역 처먹더라.
그 후폭풍을 감내하고 있다.
시무룩한 표정이 정말이지 귀엽다.
'어머님이 워낙 참되신 분이라.'
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신다.
하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먹고 싶은 걸 못 먹으니 억울하다.
"그럼 치킨 사주면 안되겠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어째서?"
"곧 개학이에요. 학교에 다니면 저는 공부를 할 거고, 공부를 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거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명 홀쭉해질 거에요."
"아 그래?"
"그러니까 지금 영양을 비축해 놔도 괜찮을 거에요!"
워낙 필사적으로 말을 하니 안 사줄 수도 없다. 어차피 밥은 먹어야 하고.
한 마리 뜯는 정도는 어머님도 눈감아주실 것이다.
"언니도 같이 가요!"
"나도?"
"……."
이건 좀.
지금도 가시방석인데 시내까지 나가면 나는 감당 못 한다.
'들키는 건 둘째 치고.'
불편해. 컨셉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그러한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이.
"저는 배불러서 괜찮아요."
"그, 그래?
"오빠가 준 거 너무 커서 배가 꽉 찼어요."
"……."
안 읽은 걸 수도 있고.
혀를 빼꼼 내밀며 멀리서 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든다. 타는 그 순간까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둘이 맛있는 거 먹었어요?"
"그래."
"왜 저는 주지 않은 거에요!"
"또래오래 먹을 거잖아."
"그건 그래요."
기본적으로 똑똑한 아이다.
아무 의미 없이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여자들이 무서워.'
새로운 인생, 새로운 크루도 관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 * *
최근 보라의 생태계.
오정환의 난입은 큰 변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정환 리아랑 화해했다네 ㄷㄷ
통화해서 오해 풀었다고
방금 방송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본인피셜임
└리아피셜은?
글쓴이― 없
└그렇게 꺼억꺼억 울었는데 한동안 쉬겠지
└오정환도 독하다 진짜……
손대는 콘텐츠마다 대박을 터트리고 있으니까.
게임뿐만 아니라 보라에서도 날이 갈수록 '평가'가 높아진다. 단순히 인지도가 높은 게 아니라, 믿고 보는 보라BJ로 정착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얼마 전 여캠과의 합방은 순수한 대박으로 보기 힘들다.
─오정환피셜을 절대 믿으면 안되는. EU
1. 증거는 ㅇㄷ?
2. 머기업을 하꼬가 어케 거절함?
3. 혼자만 방송 켜고 해명한 게 수상함
그냥 이 새끼는 삔또 상하니까 리아 엿 맥이려고 한 게 맞음ㅇㅇ└응 뇌피셜
└리방 물소 새끼 빡쳤눜ㅋㅋㅋㅋㅋ
└오정환 요즘 개깝치긴 함
└리아만 불쌍타 ㅠㅠ
결말이 애매했다. 평소와 같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적인 타협점을 가졌다.
일부 시청자들이 납득하지 못할 만도 하다.
자신들의 눈에 안 보였다. 확실한 화해인지 알 수 없다.
커뮤니티에 비판적인 여론이 이는 이유이기도 한데.
─리아가 진짜 정 많은 타입이더라
닳고 닳은 년들만 있는 여캠에서 드문 인재임
바로 팬클럽 가입함 ㄹㅇ
└1개?
글쓴이― 닥쳐 예비 큰손이시다
└예비 큰손 ㅇㅈㄹㅋㅋㅋㅋ
└리아방 고정인데 큰손 유입 X되긴 하더라
적어도 금전적인 관점에서는 손해가 아니었다.
시청자는 BJ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별풍선을 통해서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다시 방송 활동을 시작한다. 수많은 팬들이 위로를 하기 위해 찾아온다.
개중에는 흑심을 품은 이들도 있다. 자신의 마음을 숫자로 표현하게 된다. 리아의 방송은 풍족하기를 넘어 순위권에 오른다.
[일간 별풍선 랭킹]
1. BJ리아★
2. 예능인[김군]
3. 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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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풍선 수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반대로 비공식 통계 사이트 중에는 존재한다.
일간 랭킹 1위를 한동안 독차지하며 여캠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까진 년이 순진한 척 오지게 하네. 별풍 받으려고.'
'쌍커플도 저거 한 거 아니야? 존나 티나~.'
'저 오빠 능력 쩐다.'
'함 대주면 해주려나?'
누구나 원할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살려줄 귀인.
여캠에게 있어 인기BJ와의 합방은 그런 것이다.
별로 인기도 없던 년인데?
나랑 하면 훨씬 잘될 것 같은데?
오정환에 대한 관심이 하늘을 찌르는 방아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