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00화 (100/846)

100화

'작'

내 방송의 베이스는 애드리브.

느낌대로 하는 편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큰 틀은 정해 놓고 진행한다.

'원래 상처받은 여자만큼 남자가 껄떡대기 쉬운 상대가 없어.'

감히 넘볼 수 없던 그녀에게 틈이 생긴다.

위로해주면 호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잘해주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다. 큰손들이 앞다투어 별풍선을 쏘게 되는 이유다.

툭 치면 넘어올 것 같거든. 뭔가 할 만해 보이거든.

'실제로 여캠들이 그 심리를 노리고 많이 써먹지.'

소위 말하는 '별풍 호구'를 만드는 노하우가 존재한다.

시청자의 심리를 생각보다 훨씬 잘 꿰고 있다.

어디서?

업체에서.

여캠들 보면 다 히스토리가 하나씩은 있는데, 그게 다 컨설팅을 해주는 것이다.

없어도 하나쯤 만들어온다. 자연스레 생겼다면 효력은 배가 된다.

리아와의 새드 엔딩은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슬사랑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오빠 안녕하세요^^ 방송 재밌게 보고 있어요~

―오빠?

―(덜렁덜렁)

―찐인 거 같은데

―와 여캠이 정환이 방송도 보네ㄷㄷ

근데 그건 그거고.

내 컨설팅은 아무한테나 남발하는 싸구려가 아니다. 최근 러브콜이 유독 잦아졌다.

"100개 감사합니다. BJ 하시는 분인가 보네요. 시청자분들 가셔서 추천 한 번 눌러주고 오세요"

왜 저러는지 모를 것 같아?

정말로 평소 내 방송을 챙겨보는 애청자라면 기특하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두 번 봤겠냐고.'

빨대 꼽는 거지.

시청자 빨아가고 싶어서.

그 목적을 안다고 대놓고 무시하면 책 잡힌다.

─이슬사랑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ㅠㅠ 그러려고 온 건 아닌데 무심하시당

"아 그래요? 그러면 다음부터는 방송 끄고 와주세요."

―들킴ㅋㅋㅋㅋㅋㅋㅋ

―대기업 빨대 공짜로 꽂으려 하누

―이쁘던데……

―정환이 너무하다 진짜

소위 말하는 '갑질'.

이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오해받는 것도 적잖이 문제다. 나는 그럴 의도가 없는데 마녀사냥을 당할 수 있다.

'이 정도 해주면 충분하겠지.'

적당히 먹이를 던져준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 같은 느낌이다. 의도를 들켰다는 걸 인지시켜 접근하지 못하게 만든다.

─여캠헌터707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슬이 가슴 개크던데 수박 만함ㅋㅋ

"수박?"

―아ㅋㅋ

―아가 밥통은 못 참지

―수박 여캠ㅗㅜㅑ

―리아도 그렇고 글래머한테만 반응하네ㅋ

이건 조건 반사고.

세상에 큰 거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겠어.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메리트가 없을 뿐이다.

'어차피 다 의젖이야.'

대한민국 여자의 대다수가 A컵인데, 왜 여캠들은 하나 같이 묵직할까?

그 해답은 머리를 굴려볼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데뷔 전에 일부러 채워 넣는다. 단물 빠진 후에, 성형해서 재데뷔하는 경우도 있다.

업계의 사정을 알다 보니 흥미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저 여자 별로 안 좋아해요. 그리고 게임 해야 하니까 보라쪽 이야기는 자제 부탁드려요."

―크흠;;

―아들은 좋아하는 거 같은데

―이 새끼 폰으로 보고 컷한 거 아님?

―가슴만 크긴 하더라ㅋㅋ

그러더라고.

세상은 넓고, 예외는 많은데 확인해봐야지.

싹이 보였으면 다른 애드리브가 나올 수도 있었지만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물론 그것과 상관이 없다. 애초에 한동안 쉴 작정이다. 보라 방송은 심력 소모가 극심하다.

『아이템의 잠재능력을 재설정합니다.』

그래서 간만에 가벼운 게임 방송.

아이템부터 풀세팅으로 맞추고, 여러가지 콘텐츠를 진행해볼 예정인데.

『공격력 증가량 : +1263』

『공격력 증가량 : +2822』

『공격력 증가량 : +978』

.

.

.

"아니, 시발 이거 버그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슨 또 쳐들어가겠누

―X됐다!

―정환이 큐브운 시발ㅋㅋㅋㅋ

게임 방송은 자금 소모가 극심하다.

미라클 큐브.

빅뱅 패치 때 출시된 캐시템이다. 아이템이 가진 잠재 능력을 일깨워준다.

'단풍잎 돈지랄의 시발점이 되는 시발 같은 아이템이지.'

1개에 1천 원.

만족할 만한 옵션을 뽑으려면 수십에서 수백 개는 써야 한다.

모자, 옷, 장갑, 망토, 신발, 허리띠, 반지X4 등 장비가 스무 개에 가깝다는 걸 고려하면 돈 몇백은 우습게 깨진다.

모든 것이 캐시로 돌아가는 돈슨화를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섰음에도 한계는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돈슨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의미가 없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1. 기간 연장형 아이템 영구화

2. 큐브의 잠재능력 등급업 확률을 종속시행으로 바꾸기

3. 신규 직업 토론 게시판 신설 및 한 달 내 피드백

이런 굵직한 사안 외에 기타 등등.

흔히 말하는 뻔한 상술을 막아두었다.

큐브 같은 지나친 사행성 캐시템이 남아있긴 하지만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유니크』

STR : +9%

STR : +6%

STR : +6%

공격력 증가량 : +3482

"돈슨님 정말 감사합니다. 힘 21% 최상옵……, 근데 나 해적이야 이 개새끼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힘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큐브 한 개 한 개에 영혼을 담아서 돌리세요!

―군인 한 달 월급이 30분만에 날아가네

단풍잎스토리 최대의 콘텐츠이기도 하니까.

BJ 입장에서는 머리 쓸 일 없어져서 편하다.

'좀 까놓고 말해서 단풍잎 방송을 왜 보겠어?'

와 데미지 세다! 개쩐다!

그런 감동이 이어지는 것도 10분 정도지, 보다 보면 숫자만 우르르 떠가지고 눈만 아프다.

메인 콘텐츠는 보다 가시적이며, 자극적이어야 한다.

스타크래프트 안 보는 사람도 마인 대박 터지면 X됐다 소리 나오듯이 말이다.

─메이플큰손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이거 받고 무기도 ㄱㄱ?

"하……, 큰손님 정말 감사합니다! 방금 봄이한테 돈 좀 꿔달라고 톡 보내려다 말았어요."

―갑자기?

―봄이둥절

―이래서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지

―??? : 니들은 이런 거 하지 마라

큐브는 운빨이다. 글자 그대로 랜덤으로 옵션이 뜬다.

망하는 상황이 나오기가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원래 남 X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재밌지.

돈을 물 쓰듯이 썼는데 보람이 없으면 그것만큼 웃긴 게 어딨겠어.

측은하다 보니 평소보다 풍도 잘 터진다.

그렇게 무한동력이 이루어진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고공 행진을 밟아나간다.

다 큰 틀을 정해 놓고 진행하는 방송이다.

결과물이 좀 안 나오는 거?

그조차 예상 내였다고 생각은 하는데.

"진짜 어이가 없네 어이가. 내가 돈슨이었으면 진작에 옵션 하나 띄워줬다. 인정? 어 인정~."

―혼자 어 인정 ㅇㅈㄹㅋㅋㅋㅋㅋ

―실성했누

―1시간만에 수십 만원이 날아갔는데 멘탈 나갈 만하지 ―완전 적자 방송 아님?

알고도 빡치는 개X 같은 시스템이라 문제다. 아무리 큰 틀을 잘 구성해도 결국 방송은 애드리브와 운빨이 9할이다.

콘텐츠 짜기 쉬우니까.

시청자들에게 잘 먹히니까.

그래서 하는 거지 돈 먹는 하마이긴 하다.

별풍선을 받아도 금방 사라져. 손익분기점을 넘는 게 불가능하다. 물론 보람이 아예 없는 돈지랄은 아니다.

『유니크』

몬스터 방어율 무시 : +30%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데미지 : + 30%

몬스터 방어율 무시 : +15%

공격력 증가량 : +25423

큐브는 사라져도 아이템은 남는다.

돈을 쏟아붓다 보면 운명의 여신이 불쌍하다고 한 번쯤 웃어줄 때가 있다.

─닭도리탕매니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무슨 떠도 거지 같은 것만 뜨네ㅋㅋ

―ㄹㅇㅋㅋ

―저게 다 보공이었으면……

―총뎀이나 공격력이었어도 괜찮은데

―정환이 운 레전듴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의미로 웃고 있다.

채팅창 상황.

랜덤으로 뜨다 보니 필요하지 않은 옵션이 몰아 뜨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몬스터 방어율 무시.

일련의 옵션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면 말이다. 까놓고 말해 대박이 뜬 거지만 일단 표정 관리를 좀 한다.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2000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옛다

"오랜만에 2천 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힘들 때 돕고 살아야지……."

불쌍한 척을 해야 본전 회수가 가능하니까.

결론부터 말을 하면 '방어율 무시'는 현재 시점에서 가장 사기적인 옵션이다.

'방어력 공식이 변경됐거든.'

단풍잎스토리 역사상 최대의 대형 패치, 빅뱅 업데이트는 기존의 시스템 자체를 뒤엎었다.

방어력 공식도 그중 하나로 고정 수치에서 %로 바뀌게 된다.

『데미지가 1만이다?』

빅뱅 전 : 1만 ? 500= 9500

빅뱅 후 : 1만 × 90%= 9000

대략 이런 식으로 말이다.

과거에는 일반 몬스터가 방어력 300 이하고, 보스 몬스터도 1000이 넘지 않아 영향이 미미했다.

'절대적인 데미지가 낮았기 때문에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는데.'

빅뱅 패치의 메인인 파워 인플레이션.

절대적인 데미지가 오르면 고정 방어력은 있으나 마나 해진다는 걸 게임사에서 캐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생긴 변화겠지만.

"저는 솔직히 이 옵션 마음에 들거든요? 라테일 몇 분 컷 하나 내기 한 번 해볼래요?"

―ㅋㅋㅋㅋ?

―정신줄 놨네

―그거 지지에요 지지!

―못 맞추면 뭐할 건데?

빅뱅 패치 초기만 하더라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게임의 기본 상식은 나 같은 랭커들이 계산을 해보고, 실험을 한 후에야 퍼지는 것이다.

'이것도 다 효율 계산을 해봤었지.'

추억이다.

이미 알고 있는 입장에서 한몫 단단히 땡겨본다.

* * *

오정환의 최근 방송.

BJ로서의 입지는 분명 날이 갈수록 탄탄해지고 있다.

신인 취급? 그런 이야기도 이제 옛말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기업'이 된 것은 사실인데.

"뭐? 뭘 하고 있다고?"

"단풍잎스토리라고……."

"설마 게임?"

"단풍잎 아시는구나! 혹시 모르시는 부분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그 행보가 여전히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서 문제다.

보이는 라디오.

파프리카TV의 콘텐츠 중 하나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실상은 거대한 이권이 얽혀있는 복마전이다.

보통은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설사 운이 좋아 인기를 모아도, 정치라는 풍파에 시달려 알아서 접게 돼있다. 혹은 기존 세력의 휘하에 들어가거나.

"내가 시발 그걸 알아야 돼?"

"아닙니다……."

"그딴 초딩 게임이나 하고 있으니까 답답해서 하는 소리잖아!"

오정환은 극히 드문 이레귤러.

자신의 실력만으로 성장해, 어느새 박힌 돌들도 쉽게 넘보지 못할 성세를 구축했다.

'대체 뭐 하는 새끼야?'

고작 그 정도의 이야기였다면 견제를 하면 그만이다. 통할 때까지 계속.

문제는 행보가 아예 예측이 안된다는 부분이다.

보라는 돈이 된다.

게임 방송으로 푼돈 긁어모으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말이다. 그 노하우를 가진 심익태로선 답답해 뒤지기 직전이다.

"이슬이 너도 실패했다고?"

"실장님이 걔 좀 혼내주세요!"

"닥쳐 이년아."

"따따블을 불러도 씹어?"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흥미 자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쪽 세계를 잘 모르거나."

"그러고 하는 게 단풍잎이라……."

다른 업체들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방해가 되면 모를까.

매 방송을 터무니없이 흥행시키는 그의 능력은 탐이 난다.

'하다못해 스타크래프트를 하던가 씹새끼가!'

그런데 단풍잎스토리 같은 초딩 게임의 대명사나 하고 앉았으니 복장이 터질 만도 하다.

오정환의 능력이 얼마나 한 가치를 지녔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심익태는 더욱 그렇다.

물론 이는 불법적인 것.

서로 대화가 통해야만 성립시킬 수 있는 것이다. 워낙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니 깊이 연관될 기회조차 생기지 않았다.

'저렇게 자유분방한 타입은 족쇄가 있어야 돼 족쇄가.'

지금까지는 말이다.

오정환을 끌어들여야 한다.

통제 가능한 말로 만들기 위해 확실한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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