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최근 펑이조는 방송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니, 전행 30%가 왜 이렇게 비싼데? 이 새끼들 미친 거 아니야?!"
오정환한테 처맞아서?
하루이틀 피멍이 든 게 아니다. 슬슬 적응도 됐고, 사실 별 피해를 본 것도 없다.
인방에서 싸움은 곧 콘텐츠.
단기적인 관점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뉠 수 있어도 결국은 전체 시청자 수가 많아져서 Win―Win이다.
평균 시청자 수가 반년 전보다 훨씬 늘었다. 오정환도 딱히 적대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방송적 콘텐츠로 살리고 있다.
어차피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단풍잎에 인생 ㅈ박는 것밖에 없기도 하다. 단풍잎 외길 인생만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
그 행보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펑룡인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저 새끼들 단합한 거 아님? 아무리 서버가 달라도 스티어스보다 3배는 높은데
"내 말이 맞잖아! 개X발 새끼들이라니까? X발! X발! X발! X발! X발……."
―펑이조 개빡쳤네ㄷㄷ
―이건 빡칠 만도 함
―뭐지? 시세 조작인가?
―으 3장만 사면 되는데
X발!
주문서가 너무 비싸.
필요한 주문서를 구입하기 위해 자유시장을 뒤졌더니 이게 웬걸?
평소의 3~4배 수준으로 가격이 올랐다.
불특정 다수의 유저들이 판매한다는 걸 생각하면 한참은 의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니, X발 이거 무조건 발라야 되는데. 지금 바르면 대박 날 삘인데.'
그런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Feel'.
직감이 속삭이는데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주문서가 한 순간 빛났지만 아이템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문서가 한 순간 빛나더니 신비로운 힘이 그대로 아이템에 전해졌습니다.』
『주문서의 힘에 의해서 아이템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봤지만 실패.
아니, 그 이상의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30% 주문서는 실패시 절반의 확률로 아이템 자체가 파괴된다.
모니터 자체도 파괴할 뻔했다.
시세의 3~4배를 주고 샀는데 실패까지 하니 분노해 미칠 만도 하다.
그러한 펑이조의 모습을 즐거운 듯이 감상하고 있다.
"낄낄낄낄낄! 이 새끼 병신인가?"
광석의 입장에선 재밌다.
방금 전 펑이조가 산 주문서들. 전부 자신의 본캐와 부캐 상점에서 팔던 것이다.
겨우 상점 하나 굴려서 수익이 날 리가 없다. 총 일곱 곳의 지점을 두고 있고, 이는 매점매석의 의혹을 줄이는 용도로도 요긴하다.
상점 하나에서 수십 장씩 팔면 의아하잖아?
하지만 여러 곳에서 조금씩 팔면 그러려니 한다.
이는 실제로 시세를 조작하는 방법이기도 하며, 펑이조는 그 낚시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보셨어요? 이런 식이지 말입네다."
<고작 10분만에 10만원을 벌다니……. 비상하다 비상해.>
"펑이조 고 간나는 머리도 나쁘고, 참을성도 없어서 가장 봉으로 삼고 있습네다."
방송을 보고 있었다. 전신 갑옷 행운 주문서를 구하는 걸 알았다. 그 즉시 자유 시장에서 관련 주문서를 모두 매입하고, 자신의 상점에 진열했다.
'남조선 간나 새끼들은 돈도 많은데 빨아먹어도 되지.'
등에 빨대 하나 꽂고 쪽쪽.
펑이조뿐만 아니라 여러BJ들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다. 개중에는 안 산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샀다.
BJ들은 방송을 진행해야 한다. 돈을 펑펑 쓰는 것이 콘텐츠이기도 하다.
양심의 가책 또한 없으니 오히려 사업을 확장하는데 이른다.
「지금 네 글자가 혼줌 구하고 있음」
「고급 잠재강화 주문서 2배로 올려놔요!」
「지작 슈혼목 있는 사람? 구해조가 무조건 살 기세다」
「크흐흐 오늘 완전 노다지네요」
.
.
.
개인이 아니다. 조직을 이루고 있다.
단톡방에는 여러 조직원들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스카니아 시장의 절반 이상.
아니, 마음먹고 움직이면 거의 전부를 아우른다.
그 자금력과 정보력이 스카니아 3대 세력으로 손꼽히게 만들었다.
'다 좋은데…….'
사재기 장사는 기본적으로 순이익이 많지 않다.
하루종일 뼈 빠지게 해도 떨어지는 것은 몇 푼 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2~4배. BJ들이 원가의 몇 배씩이나 주고 싹쓸이를 해주니 쏠쏠하다. 조선족인 그들에게는 정말 노다지나 다름없다.
「오정환 백줌 구하고 있습니다」
「걔?」
「크엑! 걔는 간 보다가 결국 안 사던데……」
「그 자식은 흥정할 생각까지 한다니까?」
그런데 단 한 명.
자신들의 노림수에 걸려들지 않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광석은 그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칼빵 확 쑤시면 피 토하며 처죽을 놈이.'
조선족은 세계에 흩어진 재외동포 중 하나지만 유독, 아니 유일하게 한국인과 마찰이 잦다.
대놓고 한국을 증오하는 이들까지 심심찮을 정도다.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
13억 인구의 경쟁 사회에서 태어난 탓에 개인주의의 성향이 강하다.
사회에 녹아들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잇속부터 챙긴다.
이는 중국인들이 가진 특징이지만 조선족은 그 성향이 보다 짙게 묻어난다.
중국에서는 중국인에게 무시 당한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의 시선이 언짢다.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의 특성상 어느 외국인이 와도 불편함을 겪고, 친해지면 오해라는 것을 대부분 깨닫는다.
조선족은 개인주의의 성향이 지나치며, 교육 수준도 낮다는 오해를 안고 산다.
"이형! 제가 형님 돈 벌게 해주지 않았습네까?"
<어, 뭐 그렇지…….>
"오정환이라고 노다지가 하나 있는데 같이 비용돈 좀 벌어봅시다."
그 오해가 풀리지 않은 광석은 자신이 보기에 너무나도 편하게 살고 있는 한국인을 증오한다.
그들을 뜯어먹는 것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계산적으로 봐도 오정환은 큰손. 그냥 놓치기는 아쉬움이 남는 물고기다. 잘 돌아가지 않는 짱구를 열심히 굴려 계획을 짠다.
* * *
최근 자유 시장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움직임.
바보도 아니고, 펑이조도 아닌데 모를 수가 없다.
'고레벨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알아.'
펑이조의 경우는 모를 수 있다.
근본이 없으니까.
하지만 단풍잎스토리를 오랫동안 했거나, 인맥이라는 게 존재하면 다 안다.
자유 시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그들이 얼마나 큰 돈을 챙기는지.
물론 학생이었던 당시 기준으로 그렇다는 소리다.
'절대적인 기준에서도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직장인 월급을 상회한다.
게임 내 장사는 상상 이상으로 돈이 된다.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들이 할 만한 짓은 아니고.
─지존도적s2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자시 장사꾼들 다 조선족 새끼들인데 ㅡㅡ
"100개 감사합니다. 사실 알 만한 분들은 다 알죠."
―조선족?
―그런 말하면 시진핑핑이가 화내요!
―ㄹㅇ? 단풍잎에도 작업장이 있어?
―진짜면 소름인데 ㄷㄷ
시진핑 주석께서 화내면 무섭긴 하겠지.
그런데 내가 말하려는 건 딱히 1초를 투자하려는 게 아니다.
'그래도 중국인들은 꽌시라는 게 있어서.'
친한 사람한테는 마음을 연다. 알고 보면 걔네도 다 사람이고, 억압당하는 걸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착해질까 봐, 뱃속이 허전해질까 봐 말조심하는 거지.
하지만 조선족은 마음을 열 사람이 없다.
중국인도, 한국인도 그들을 가까이 안 둔다.
자기들끼리만 있으니 성격이 배배 꼬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측은하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민을 가져줄 이유가 안 보인다.
'닭과 달걀의 관계라는 게 있잖아.'
어느 쪽이 먼저 잘못을 한 거냐?
그런 식의 관점을 가질 주제가 아니다. 다른 재외동포들은 한국인들이 다 신경을 써준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정(情) 문화라는 게 있다. 적당히 X랄했으면 인권 단체들이 알아서 실드 쳐준다.
X랄을 해도 너무 극심하게 하다 보니 얻은 인과응보다.
"제가 채팅창을 쭉 보고 있는데……, 펑이님과 네 글자님 등 단풍잎BJ분들 대부분이 피해를 보고 있나 보네요."
X랄까진 할 수도 있다. 한국인들이라고 다 착한 게 아니니까.
그런데 X랄에 이어 염병까지 해버리면 선 넘는 거지.
'한국의 유서 깊은 문화인 알아서랑 적당히를 어련히 잘 지켰어야지.'
적당히 한 스푼 몰라?
한국은 돈만 벌면 장땡인 중국이 아니다.
눈치껏 뜯어먹었으면 몰라도 이렇게 대놓고 일을 벌리면 싸우자는 소리다.
다른 BJ들은 순진해서 속을지 모른다. 근데 나는 산전·수전·공중전에 각개전투까지 다 해본 놈이다.
BJ로서 게임을 하다 보면 원래 거지 같은 상황들을 마주치게 돼있다.
"제가 원래 이런 오지랖 잘 안 부리는데 다른 단풍잎BJ 팬분들 있으면 부탁 좀 드릴게요."
―뭘?
―선전포고ㄷㄷ
―드디어 펑이조 잡나요?
―속보) 단풍잎 PK 선언!
단풍잎에 PK가 어딨어.
그런 무식한 짓은 안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다름이 아니다.
'개인이 단체에 맞서는 것만큼 멍청하고 띨빵한 짓이 없거든.'
이긴다 해도 상처뿐인 승리다. 어쩌다 감정 조절이라도 실패하면 사고로 연결된다.
대외적인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BJ의 입장상 골치 아프다.
그렇다면 해결법은 간단하다. 똑같은 단체를 만들어서 대항한다. BJ끼리 상부상조하자는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디코 다 들어오셨어요?"
<예, 말씀하세요!>
<네…….>
<펑이! 펑이!>
보이스 채팅.
디스코드에 BJ들을 초대했다.
시청자들이 전령이 되어 어찌저찌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
'BJ와 시청자는 바늘과 실이야.'
반드시 따라다닌다.
BJ의 괴로움을 시청자들도 느낀다.
즉, 이번 사태의 당사자는 이 자리에 모인 7명만이 아니다.
<흠…….>
<아~ 시청자들도 단풍잎을 하니까?>
<그럴 수만 있으면 좋죠! 저부터 팬클럽 애들한테 말을 해볼게요.>
즉시 피드백이 된다.
모인 BJ들 하나하나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최소 수백 명의 시청자를 거느린 중소에서 중견급 BJ들이다.
'그리고 방송을 오래했지.'
애청자들이 많다.
BJ에게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아낌없이 써줄 수 있는 이들 말이다.
"제가 보기엔 장기전이 될 것 같거든요? 생각 없이 방송에서 막 뱉지 말고 필요한 아이템을 팬분들께 부탁하자 이거죠."
<펑이! 펑이!>
―생각 제일 없는 놈 입갤ㅋㅋㅋㅋㅋㅋ
―양심은 있눜ㅋㅋㅋㅋㅋㅋㅋㅋ
―말 잘 듣눜ㅋㅋㅋㅋㅋ
―아이디어 괜찮네!
방송을 하는 BJ들은 상대가 마음만 먹으면 행동을 읽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렇지 않고, 물밑에서 지원해 상대의 노림수를 흘릴 수 있다. 피해를 보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다.
의견 통합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남은 건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뿐이다.
<팬카페에 공지 하나씩들 올리죠?>
<확인.>
<저도 일단 열혈들한테 단톡 돌렸어요.>
어렵지 않다.
오래된 BJ들은 팬들과의 연결점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저는 고민 좀 해볼게요."
<네?>
"제가 듣보잡이라 아직 그런 게 없어요."
<…….>
―듣보잡 입갤ㅋㅋㅋㅋㅋㅋ
―펑피셜) 오정환인지 오징어인지 알 바 아니다
―자칭 '유명BJ'들 단체로 오열!
―취미로 머기업을 하는 사람이다……
방송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다. 콘텐츠도 여러가지 하다 보니 특정 시청자와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
믿고 맡길 사람이 있어야 성립하는 계획이다. 그 점에 있어 다른 BJ들에 비해 아쉬운 입장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코코망이♪님, 별풍선 200개 감사합니다!
헐ㅠㅠ 오빠 팬카페 없구나!! 혹시 제가 만들어도 될까요???
"코코망이님이면 믿을 만하죠. 괜찮으시면 부탁드릴게요."
지금부터 해나가면 될 일이다.
자유시장을 매크로로 점거한 사재기 장사꾼들에 대한 연합 전선이 구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