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BJ와 여성팬
그루피라는 게 있다.
서구권에서 연예인, 특히 락 밴드들을 쫓아다니는 열성적인 여성팬을 일컫는다.
'groupie'라는 용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룹(group)을 쫓아다니는 여자라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이제는 사생팬의 상위 호환격 의미로 사용되지만.'
한국에서도 상당히 보편적으로 쓰인다. 피해? 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긴 한데 보통 BJ와 프로게이머 등이 많이 당한다.
그들의 목적은 스타와 직접적인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니까.
"저 혹시 누군지 아세요?"
"아~!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솔직히 몰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아냐고!
―혹시 썸녀 아님?
―썸녀면 ㅇㅈ
무슨 썸녀야.
아내의 유혹도 아니고 점 찍고 돌아오기라도 했겠어?
'그냥 튀고 싶어서 하는 말이겠지.'
못 알아보는 것은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게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내 팬카페의 회장.
그게 대체 누구야?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리사수의은혜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와 코코망이님이네 졸예ㄷㄷ
―아 그 환순이?
―코망이는 ㅇㅈ이지
―올~
―와 환순이는 진짜 거를 타선이 없네ㄷㄷ
아이디 정도는 말이다. 당연하게도 얼굴은 모른다.
미인이었다는 사실이 놀랄 만도 하지만.
'딱히 드문 일도 아니라서.'
순서를 달리 생각해야 한다.
알고 보니 예쁜 애가 아니라, 예쁜 애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다.
사람을 무작정 의심한다?
세상에는 킹리적 갓심이라는 게 있다.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십중팔구는 그루피의 성향을 가졌다.
"코망이 알지! 그동안 오빠 도와주느라 고생했고,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가."
"네 히히."
그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또 아니다.
나는 나쁜 사람이다!
그렇게 대놓고 악역을 자처하는 악당은 이제 미디어에서도 흔치 않다.
'요즘은 그런 게 오히려 역클리셰가 돼버려.'
여자들이 인기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과 맥락이 이어진다.
사랑과 착각하기 쉽고, 사랑을 하면 자연스럽게 몸을 섞고 싶어진다.
이렇게 과정을 알고 나면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선을 긋는 것이다. 애초에 여지 자체를 주지 않으면 착각할 일도 없다.
"스물한 분이 총 네 테이블로 나눠져 있고, 제가 계속 옮겨 다닐 예정입니다. 한 테이블에 몰려있으면 너무 중구난방이 돼버려서."
―한두 명이 아니니까
―진행 잘하네ㅋㅋ
―그래서 코망이는 몇 번 테이블?
―환순이 보고 싶다!
특별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에 너무 오래 있지 않는다.
'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말이야.'
반대로 말하면 유도할 수도 있다. 그런 의도로 저지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발을 쏙 뺀다.
남캠 새끼들의 99.99%가 저지르는 만행이다.
"동석 좀 해도 되죠?"
"당연하죠 오빠!"
"꺄~~."
물론 나는 그럴 능력도 없다.
까놓고 말해 잘생긴 것도 아니고, 여자들의 환심을 살 만큼 비위를 잘 맞춰주지도 못한다.
'잘 쳐줘야 실물 보고 실망하지는 않는 정도지.'
남캠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족하다. 그래도 가끔 환상이 지나친 애들이 있다.
다행히 분위기가 그리 가라앉아 보이진 않는다.
"오빠 이거 드셔 보셨어요?"
"아직."
"아~ 해보세요."
"아~."
―이 새끼ㅋㅋㅋㅋㅋ
―호강하네
―부럽누
―환순이들은 왜 하나 같이 이뻐? 말이 돼?
오히려 좋다.
괜찮다.
나도 가끔은 호강을 해야지.
'맨날 꼬추 새끼들이랑 있는데.'
땀내 나게 하루종일 게임 얘기만 할 수는 없잖아. 예쁜 여성팬들이 와준 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사실 당연하다.
이렇듯 공개된 자리. 방송에 나와도 상관없을 만큼 자신감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여긴 완전히 꼬추 파티네요."
"헤헤헤."
"남자들끼리 뭉쳤어요 형!"
다음 테이블.
여섯 명의 꼬추들이 앉아있다.
팬미팅 신청에 당첨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기 오정환환환이 누구에요?"
"저, 저에요……."
"아~ 다름이 아니라 열혈분들께는 한 분씩 인사를 드려야 되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쫄아있누
―나 같네
―헐 학식 같은데
누가 봐도 미필 학식 같은 친구가 한 명 쭈뼛주뼛 손을 든다.
솔직히 말해서 어색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초면부터 우하하! 팡파레~! 하는 인싸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어색해하면 방송 진행이 안 되기 때문에 말을 걸어줘야 한다.
열혈 대우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중요하게 보는 영역이다.
본래 스무 명의 참가자. 그중 넷은 열혈팬 중에서 받았다. 특별 대우라는 게 있어야 별풍선을 쏘는 보람이라는 게 생긴다.
"형은 근데 안 먹어요?"
"내가 먹고 있으면 방송 진행이 안 되잖아. 그래서 배를 채우고 왔어. 물론 돈은 냈지만 X발."
―X발ㅋㅋㅋㅋㅋㅋㅋㅋ
―5만원 사요나라
―저기 사장님만 이득이네
―단체 손님 개꿀이긴하지~
방송이라는 게 양날의 검이다. 하물며 검증이 안된 인터넷 방송은 꺼려질 수 있다.
쟤는 뭔데 우리 식당에서 방송해?
'실제로 차후에는 문제가 많이 일어나지.'
상부상조다. 째째하게 굴면 안 된다.
그런 인식이 박히면 방송을 하는 BJ 모두가 피해를 본다.
"저기."
"예, 손님!"
"이쪽부터 이쪽 테이블까지 와인 한 보틀씩 주시고, 마지막 테이블은 여섯 명이라서 글라스 하나 더 주시고."
"어떤 걸로 드릴까요?"
"스파클링 있어요?"
"스파클링……? 없네요. 리스트 중에서 골라주셔야 하는데."
"그럼 화이트 와인에서 모스카토 쪽으로."
보통 포도주 하면 레드 와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외국에서 많이 마신다고 하니까 일종의 로망 같은 것이 생기는데.
'한국 사람 입맛에는 보통 안 맞아.'
깊은 풍미가 있다.
그런 식으로 포장하면 좋긴 하겠지만 그런 것도 마셔본 사람이나 느끼는 것이다.
처음부터 꿀꺽꿀꺽 맛있게 마실 만한 술은 아니다.
그에 반해 화이트 와인.
기본적으로 달달해서 상상했던 맛이랑 비슷하다. 술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저희 안 시켰는데……."
"제가 시킨 거예요. 입맛에 맞으면 추가하셔도 돼요."
"헐~ 감동이에요."
"오빠 대박이다 진짜!"
특히 여자들이 좋아 죽는다.
팬미팅 인원의 대부분이 여성인 만큼 각 테이블에서 좋은 반응이 쏟아져 나온다.
* * *
이미지라는 게 있다.
하루이틀로 티나지도 않고, 하루이틀로 쌓이지도 않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 영향은 분명 막대하다.
─현재 갓정환 팬미팅 상황. 요약
[팬과 합석한 오정환 캡처. jpg]
人당 5만원 뷔페
테이블마다 와인시켜줌
돌아다니면서 부족한 거 없냐고 계속 묻는 중ㄷㄷ
└와 저게 다 얼마야
└이래서 갓정환 갓정환 하는구나
└심지어 지는 안 먹고 방송 진행함
└그저 인방계의 빛……
사실 방송의 시청자와 흥행만 생각하면 이미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
오히려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그게 좋다고 몰려오는 앰생들이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대기업이 됐을 때. 대외적인 취급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아무리 세탁을 시도해도 몸에 배인 지린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방금 오정환 팬미팅 미담ㄷㄷ
원래 20명 오기로 했는데
어떤 년이 지 친구 데리고 오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해주고 착석 시킴
└ㅁㅊ 개념 밥 말아 먹었네
└멋지다!
└파도 파도 미담만……
└다른 BJ였으면 일단 짜증부터 냈을 듯ㅋㅋㅋ
반대로 평소에 잘한 BJ들.
특정 사건이 계기가 되어 긍정적인 이미지가 구축된다. 어쩌다 한 번 잘했다고 쌓을 수 있는 공 든 탑이 아니다.
그 일보를 충분히 내디뎠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 큰 팬미팅이 커뮤니티에서 호평을 듣고 있다. 물론 이토록 화제가 형성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니, 환순이들 수준 봐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환순이 테이블 캡처. jpg]
오정환 이 새끼
여자 싫다는 이유가 있었네
└존나 많으니까
└돈 주고 고용한 거 아님?
글쓴이― 그랬으면 좋겠음 제발
└그 코망이라는 팬카페 회장이 제일 졸예던데
여자.
그래서 예쁨?
남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주제다. 특히 인터넷 방송은 저렴한 측면이 있다.
채팅창이 저질이야. 여자가 있을 거라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더욱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정환 팬카페 회장 미모. jpg
[팬캅페 회장 정면 캡처. jpg]
ㅗㅜㅑ
└아니 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는 대체 왜 인기가 많은 거임?
└드라마 찍잖아……
└ㅅㅂ 한 명만
혹시가 정말이었던 경우.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타게 된다. 방송적 시너지가 있는 경우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오빠가 장공 구한다고 했을 때요~."
"어, 어."
"제가 다섯 장이나 구해드린 거 기억 나요? 그때 친구들한테 수소문해서 모은 건데 히히."
―정성 보소
―아니, 왜 오정환만 인기 있음?
―저렇게 이쁜 애가
―말도 엄청 귀엽게 하고 취향 저격ㅠㅠ
성장하는 건 BJ만이 아니다.
팬들도 연차가 쌓이면 보는 눈이 생긴다.
예쁜 여자가 나온다고 무조건 침을 질질 흘리지 않는다는 소리다.
쟤 야심 있는 거 아님?
뜨고 싶어서 발악을 하네ㅋㅋ
방송의 파급력을 알게 되자, 여자의 의도가 순수한지 경계심부터 든다.
─코코망이는 ㄹㅇ 찐 환순이네
팬카페도 만들고
방송도 계속 도와주고
진짜 웬만큼 열성팬 아니면 저렇게 못할 텐데
└원래부터 방송도 챙겨보고 도네도 많이 하던 애지
글쓴이― 나도 좀
└정환이 엄청 좋아하는 눈치임ㅋㅋㅋㅋㅋㅋ
└커플링 밀어주자!
하지만 스토리가 있다.
자신과 같은 시청자A가 당사자가 되니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민심은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자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저는 팬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귀지 않아요. 썸녀로도 발전을 안 하니까 자꾸 그런 쪽으로 몰아가시면 채금 드릴 수도 있습니다. 누적되면 강퇴되니까 조심하시고."
―헐
―선 긋는다고?
―응 마음 있는 거 다 알아~
―?? 정색 에반데
결국 결정권은 BJ에게 있다.
묵묵부답.
참하고, 자기 좋아해주고, 헌신적인 여성팬의 호의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테이블로 넘어간다.
"오빠 정말 여친 없어요~?"
"나였으면 무조건 고백했는데."
"여기가 팬미팅이지, 미팅 자리는 아니거든?"
물론 이는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도 있다.
참석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그중 적지 않은 수가 이성적 호감을 보인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흥미 요소였다.
여성팬들이 정환이를 엄청 좋아하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도를 넘기 시작해서 문제다.
"오빠 저도 단풍잎 하는데~."
"아, 그래. 열심히 해."
"오빠 그러지 말구~ 저 진짜 오빠 좋아한단 말이에요."
―찐 고백임?
―와ㄷㄷ
―오정환 표정 썩었는데
―부러우면서도 뭔가 좀 무섭다;;
어색했던 자리가 익숙해진다. 들어가는 알코올의 영향도 은근히 크다. 노골적인 대쉬를 하는 팬까지 속출하며 난장판이 벌어진다.
─오정환은 팬미팅도 막장 드라마화 돼가냨ㅋㅋㅋㅋㅋㅋㅋ지들끼리 싸우고 난리도 아니네
└미친년들 많음
└처음엔 부러웠는데 갈수록 무서워……
└쟤들 다 돈 밝히는 거겠지?
└코망이는 까지 마라 ㅂㄷㅂㄷ
그런 자리이기에 더더욱 빛이 난다.
팬들간의 싸움을 중재하고, 방송 정상화에 힘쓰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친다.
안 그래도 그녀의 손을 들어주던 민심이 확실하게 기울어진 순간이다.
─팬미팅 수고 많아쓰!
─술 먹인 게 에바였나 봐
─코망이는 착하던데 너무 아쉽다ㅠㅠ
─코망이랑 합방 한 번 하면 안돼요? ㄹㅇ 대박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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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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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 입장에서 도저히 무시하기 힘들 만한 여론이 조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