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09화 (109/846)

109화

팬미팅은 성황리에 끝났다.

방송 흥행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도 잡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약간의 물의를 빚었다는 부분이다.

물론 대놓고 예상했던 사태다.

내가 괜히 사고가 없을 수가 없고, 돌발 상황이 안 나오면 오히려 조마조마하다고 여긴 게 아니다.

─치즈●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어제 진짜 고생했으ㅠㅠ 난 못 가서

"천 개 고맙습니다 부회장 형님! 솔직히 좀 고생하긴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개고생했지……

―뭘 하든 드라마가 되누

―김치 드라마?

난장판이었다.

술을 괜히 먹였나?

와인 한두 잔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 됐다.

'애초부터 그럴 애들이었을 수도 있고.'

지나간 일을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다행히 큰 사태로 번지진 않았다. 후속 대처에 진땀을 뺐거니와.

─소나무킹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코망이가 엄청 고생했짘ㅋㅋㅋㅋㅋ 여자 싸움은 여자 아님 못 말림―코건 맞지

―코건 코망이었구연~

―여자 싸움 개무서워;;

―어제 진짜 충격이었음 ㄷㄷ

어시스트가 훌륭했다.

나로서도 솔직하게 당황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각 테이블마다 경쟁하듯 나왔다.

'보통 이러지는 않는데.'

팬미팅을 어디 한두 번 해봤을까? 생X랄이 날 걸 예상을 했을 정도다.

이만한 X랄은 나조차도 겪어본 적이 드물다. 보통 진정시키고, 선 그으면 알아서 납득한다.

팬들도 바보가 아니고, 방송이 켜져 있는데 쪽팔려서라도 그만두게 돼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해도 되겠지?

그런 집단 심리가 발발한 건진 몰라도 유별났다. 코망이가 도와준 것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지만.

─보라고인물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코망좌랑은 합방 안 해요? 본인도 하고 싶어하는 눈치던데……

"그런 눈치인지 어떻게 알아요. 억측하지 마세요."

표하지 않을 수 없어서 문제다.

민심.

BJ 입장에서도 한사코 무시하기는 힘들다.

'뭐, 솔직하게 고맙기도 하고.'

당연히 고맙다. 자칫 잘못하면 방송을 중지할 뻔했으니까. 그 본인까지 난장판에 참전했다면 배로 골치 아팠을 것이다.

문제는 영향력이다.

일반 시청자가 아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내 방송에 한해 셀럽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봄이사냥개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봄이가 왜 자기는 뷔페 안 데려가 주냐고 서러워했어요!

"우리 봄이 왔으면 신나 가지고 구석구석 싸돌아다녔죠~ 안 그래도 한 번 데리고 가려고요."

―무조건이지ㅋㅋㅋ

―근데 언제?

―말로만?

―아 희망고문 에반데

마치 봄이처럼 말이다.

그 똥강아지도 처음부터 방송을 한 건 아니다.

출연하며 유명세를 탔고, 내 시청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그건 의도한 거지.'

의도하지 않아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지인이 아니고, 로봇처럼 잉~츠크 잉~츠크 컨트롤하는 게 불가능하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방송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BJ와 달리 이해타산적인 합의점을 찾기 힘든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생각도 알겠고, 저도 인정할 건 인정해요. 근데 제가 코망이를 몰아붙이는 건 방송 콘텐츠로 이용하자는 소리밖에 안돼요."

민심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BJ는 방송이라는 이름의 배를 모는 선장이다. 몇몇 선원들이 원한다고 항로를 무작정 수정할 수는 없다.

본래 예정된 콘텐츠를 진행한다.

오늘은 3월 1일.

대한민국이 독립을 선언한 국경일임과 동시에 어떤 이들에게는 참 특별한 날이다.

"우리 봄이가 내일부터 등교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제가 놀아주기로 약속을 했어요."

―봄이는 ㅇㅈ이지!

―지금 바로 합방?

―좋긴 좋은데……

―코망이도 같이 놀지ㅠㅠ

2012년은 윤년.

2월이 29일까지 있고, 3·1절까지 이어져 살판이 났지만 방학은 결국 끝이 있다.

'어림도 없지. 바로 개학.'

어엿한 고등학생으로 발돋움한다. 밥 한 끼 사주는 것이 뭐 대수겠냐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는 시청자들에게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연히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그럼 봄이 이제 방송 안 해요?

"네, 안 합니다. 학업에 몰두해야 할 나이니까 구구절절 설명은 안 할게요."

근 1주일가량 열심히 방송을 했다. 솔직히 본인한테는 노는 핑계거리였겠지만, 적어도 시청자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그러기가 힘들다. 요즘 고등학생이 보통 바쁜 게 아니다. 아무무 마냥 새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지 살기도 바쁠 것이다.

「떡볶이. jpg」

「순대. jpg」

「치킨. jpg」

「소세지 야채볶음.. jpg」

.

.

.

"안 그래도 의문의 카톡을 대량으로 보내오고 있어요. 속칭 위꼴사라고 하죠."

―꼴리는 사진ㄷㄷ

―(위가)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봄이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그전에 놀고 싶다.

배 터지게 꾸역꾸역 먹고 싶다!

그런데 자기만 안 데리고 갔으니 심통이 날 만도 하다.

그래서 다음 날인 오늘.

그 뷔페에 다시 들리기로 했다. 콧구멍이 벌렁벌렁해진 봄이와 말이다.

"봄이에요 봄이! 봄이가 왔다구요!"

"봄이는 왔지만 봄방학은 끝났네?"

"그런 거예요……."

―시무룩

―세상 다 잃은 표정이네

―팩트 폭격!

―애한테 뭔 짓이야ㅋㅋㅋㅋㅋㅋ

그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학생이었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한다.

'맛있는 거 꾸역꾸역 꾸역꾸역 꾸역꾸역 처먹고.'

힘냈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봄이가 보낸 대부분의 꼴리는 사진이 포함되어있을 곳으로 향한다.

"봄이야."

"네!"

"신나게 먹어. 내일부터 못 먹으니까."

"아니에요! 분명히 신나는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아빠 미소를 지으며 도착한다.

맛있는 것들이 수십 개나 모여져 있는 봄이의 천국에 말이다.

"저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요!"

"그래."

"빠르게 첫 번째 접시를 완성해서 올게요!"

"화이팅!"

뷔페에 가면 흔히 있는 유형이다.

전략가 타입.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많이 먹을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한다.

'부질없지만.'

무슨 푸드파이터도 아니고. 일반인이 작정하고 먹어봤자 별 차이 안 난다.

하지만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다.

"오빠 제가 한 바퀴 둘러보면서 느낀 바가 있어서 말씀드리려 해요."

"그래."

"이곳은 정말 맛있는 뷔페 같지만……."

"같지만?"

"떡볶이가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결 같은……

―당연히 없지

―역시 떡복이녀ㅋ

1~2만원대 뷔페에는 떡볶이가 있다.

가격이 싸고, 배가 잘 차고, 중독성까지 있으니 안 둘 리가 없다.

'근데 5만원대 뷔페에 떡볶이가 있는 건 사장이 양심이 없는 거야.'

애초에 먹으러 올 사람도 없겠지만 말이다.

물론 얘라면 떡볶이만으로도 충분히 본전을 건질지도 모른다.

"여기 대게도 있고, 스테이크도 구워주고, 육회도 있고 맛있는 거 많아."

"조금 시무룩해요."

"이따 밤에 사줄게."

"정말요?"

먹고 싶은 게 가장 맛있는 거지.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페트병처럼 돌려 따주고 싶지만 경사스러운 날이기 때문에 참는다.

첫 접시를 단숨에 해치우고 두 번째 접시를 받아온다.

전략은 벌써 때려치운 듯 본격적인 식사에 가까운 푸짐한 스케일이다.

"오빠 거도 먹어. 대게 까줄 테니까."

"저 오늘 완전 호강하고 있어요."

"내일부터 급식만 먹을 텐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급식도 뷔페라고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요~."

"배식 아줌마랑 친해지기라도 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하면 더 주는 거 ㅇㅈ

―우리 봄이라면 충분히 해내지~

―그저 ^급^

진짜 급식충.

머리에 피도 안 말랐기 때문에 잘 먹는다.

간만에 행한 봄이와의 데이트는 분명 보람이 있었다.

* * *

─팬미팅 수고 많아쓰!

─술 먹인 게 에바였나 봐

─코망이는 착하던데 너무 아쉽다ㅠㅠ

─코망이랑 합방 한 번 하면 안돼요? ㄹㅇ 대박각인데!

.

.

.

열화와 같은 반응.

방송국 게시판을 조금만 뒤져도 관련글이 무더기로 나온다.

원했던 바다. 시청자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따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우리 서은이 어쩌나?"

"……."

"그렇게 자신만만했는데 결국 실패했네? 아깝게 되긴 했지만 결과를 냈어야지."

평소 이상으로 치근덕거린다. 터치까지 해오는 심익태를 차마 떨쳐낼 수 없다.

'앞으로 조금, 조금이었는데……'

방송적 주목을 받았다. 채팅창의 반응도 좋아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며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오빠는 이해해. 다른 업체 애들도 있더라? 걔네도 오정환 꼬시려고 안달이 났었겠지."

"그러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기회 좋지. 그런데 어떡해? 상환 기간이 이제 코앞인데 크흐흐."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노골적인 대쉬를 해왔다.

한두 명이 아닌 탓에 난장판이 돼버렸고.

《자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저는 팬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귀지 않아요. 썸녀로도 발전을 안 하니까 자꾸 그런 쪽으로 몰아가시면 채금 드릴 수도 있습니다. 누적되면 강퇴되니까 조심하시고.》

오정환이 나서 선을 그었다.

타당한 조치임이 맞지만, 그 덕에 오히려 주목을 받은 것도 있지만, 목적 자체가 막혀버리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서은아."

"네……."

"이쁘니까 남자들이 잘해주지? 근데 돈 주고 먹는 애들은 별의별 진상이 다 있어."

"……."

"지금은 애기 같아도 이 남자 저 남자 거치면 몰라보게 상할 텐데 크~ 감당되려나?"

변태 같은 성희롱에 추행까지 받아도 반항할 수 없다.

평소처럼 매몰차게 떼어내려고 해도 덜덜 떨리는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죄, 죄송해요……."

"응?"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서은이 겁먹은 거야? 괜찮아! 너처럼 때 묻지 않은 애들은 선택지가 많거든."

"어떤…… 거요?"

"그냥 가벼운 촬영이야~. 오빠가 좋은 곳 소개해줄 테니 영상 몇 편 찍고 끝내던가."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성공하고, 이 지긋지긋한 아저씨와 결별하려 했지만 그것이 요원해졌다.

'X발…….'

자신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는지.

후회를 한다고, 운다고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든 최대한 덜 몸 상하고 끝내는 것만이 최선이다.

"저, 저 있잖아요……."

"응?"

"무슨 짓을 해서든 이번 주 안에 성공시킬게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분명 가능성은 보였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 채팅과 방송국의 민심도 그렇고, 자신을 한사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방송 콘텐츠로 이용하자는 소리밖에 안된다며 말까지 했으니까…….'

시간을 투자하면 확실히 넘어오게 만들 자신이 있다.

단기간에 해내기 위해서는 성적으로 유혹하는 방법뿐이다.

저 더러운 새끼 밑에서 몸을 파는 것보다는 낫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참으면 지나갈 일이다.

서은은 독한 마음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러한 서은의 생각을 모를 리가 없다.

애초부터 장대하게 파 놓은 함정이었다.

한 번은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평생을 빠져드는 늪 같은 세계.

그것은 인생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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