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10화 (110/846)

110화

시청자 데이트

3월.

새로운 달이 왔다는 건, 새로운 콘텐츠를 해야 한다의 동의어다.

안타깝게도 그럴 기분이 전혀 아니다.

"봄이야……. 우리 봄이 보고 싶다. 우리 봄이 어떡하냐. 지금쯤 학교에서 급식 꾸역꾸역 먹고 있겠지."

―(석식 시간)

―급식충이 급식 먹는 게 어때서ㅋㅋㅋㅋㅋ

―우리도 보고 싶어

―금단 현상 오지게 오나 보네ㅋㅋㅋ

봄이를 못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부터는 야자라는 개쓰잘데기 없는 것이 생겨서 하루종일 급식 꾸역꾸역 먹다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하교를 한다.

'만날 수가 없잖아.'

완전한 급식충이 돼버렸다. 학교 끝나면 학원 가고, 학원 갔다 오면 침 질질 흘리면서 TV 잠깐 보다가 곯아떨어지겠지.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삶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봄이수호대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학교 그만두게 하고 방송 시키자!

"개소리하지 마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녀야만 한다. 사회의 기초적인 상식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대학도 가는 편이 낫다.

'어른들이 하는 틀에 박힌 소리가 아니라.'

빌게이츠는 대학을 중퇴했고~ 성공에 학업은 상관이 없고~, 백분 동의하지만 그 핵심적인 내용을 알 필요성이 있다.

빌게이츠도 수 틀리면 복학할 생각으로 휴학한 거였고, 학업은 필요 없어도 경험 자체는 의미가 크다.

요즘 BJ라고 하면 여러 갈래로 나뉜다.

게임BJ, 먹방BJ, 보라BJ, 어쩌고BJ 기타 등등.

근데 결국은 시청자랑 소통하는 게 절반 이상이고, 그 소통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

"라떼는 말이야~ 학교 안 가면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어.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어도 학교는 다녀야지."

―단호박이네

―그저 '꼰'

―지도 안 가면서

―봄이 아빠 납셨눜ㅋㅋㅋㅋㅋㅋㅋ

우리나라 성인 대부분이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다른 진학을 고려한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라도 경험은 쌓아두는 것이 옳다.

그런 게 없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

'대학 안 가고 바로 사회 생활해도 상관은 없는데.'

어른들이 말하듯 공부가 가장 편하니까, 우리 봄이 고생시키기 싫으니까 공부하라는 거지.

사회 생활로도 당연히 기본 상식을 쌓을 수 있다.

문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별풍선만 받으면 사람이 미쳐버린다.

시각이 편협해지며, 착각과 교만에 빠지기 쉽다.

도복X, 오X, 잼X 등 페미 선언하고, 군인 비하하고, 직장인 비하하는 애들이 그래서다.

─껄덕거리는오정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님은 영국 서섹스 대학교에서 여자꼬심과라도 다녔나 봐요 X발련아!

"……."

―아 서섹스 대학교 알지ㅎㅎ

―미들섹스 대학교도 있자너~

―봄이 타령 하면서 화제 돌리는 거 보소

―이 새끼도 은근히 기만이라니까?

물론 나는 안다.

멀쩡한 애들도 미치기 쉬운 세계라는 걸.

그렇기에 더욱 정신적 수양이 선결 과제로 요구하고 있다.

'선입견이 생기기 쉽거든.'

내가 팬미팅에서 당했던 것 이상으로 여캠들은 자주 고생한다.

그게 일부라는 걸 인식하고, 직업 특이성을 생각하고, 품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저번부터 자꾸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가 다시 한 번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팬이랑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녀 관계로 발전 안 합니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부러워할 것 없다는 소리다. 그런 사람들은 팬이 아니라 그루피다.

유명인과 친해져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고 싶다. 그런 욕망을 사랑과 착각해선 안된다. 어지간히 이쁜 게 아닌 이상.

─치즈●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코망이는 이쁜 데다 정환이 참팬이던데……

"크흠……. 그때 바빠서 경황이 없었는데 예쁘긴 하더라고요.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쁘긴 이쁘더라고. 그날 나온 인원들 중 가장 두드러졌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봐도 레벨이 상당하다.

'그런데 체구가 아담해서.'

솔직히 취향은 아니다. 평소였다면 그렇다는 소리다.

봄이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인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코코망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갑자기? 쑥쓰러운데ㅎㅎ

"아 있었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

―완전 괜찮아요ㅎㅎ

―본인이 괜찮대잖아!

분위기도 잘 맞춰주고.

X랄도 멍석 깔아주면 안 한다고 정색하는 애들도 있다.

'사실 있는 거 알았어.'

한 번 떠보려고 던진 말이다. 팬미팅 때도 알아봤지만 윤활유 역할을 잘 해준다.

방송적으로 너무 톡 튀지 않는다면 같이 콘텐츠를 진행하는 것도 해볼 만하다.

─전우협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니, 지가 한 말을 1분만에 번복하네 우디르도 기겁할 기세ㄷㄷ

일부 몰지각한 시청자 사이에서 비판적인 견해도 올라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오해는 접어두는 편이 옳다.

'뒤지기 싫으면.'

결코 말을 번복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뱉은 말을 지키는 편이다.

웬만하면.

─코망이랑 합방할 때까지 숨 참는다……

─코망♡정환 합방 기원 <5일차>

─초심 찾아라 진짜 BJ가 민심도 무시하누ㅉㅉ

.

.

.

그런데 시청자들이 하도 원하니까 그렇지.

항로를 무작정 수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씹새끼들아! 방송국에 글 올린 건 니들이 아니야? 다 첩자야?"

―ㅇㅇ 첩자임

―(시청자의 속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그 화전양면전술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지들도 좋으면서 나한테 그래.

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 몸은 솔직하다.

방송국 게시판에는 그 흔적이 수십 개나 남아있다.

'그리고 사심이 있는 게 아니잖아.'

어디까지나 BJ와 팬의 관계에서 돈독해지자는 뜻이다.

오빠오빠 하다가 아빠가 될 수도 있는 거지만, 오빠오빠 하는 시점부터 문제를 제기할 건 없다.

─코코망이♪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저는 합방 괜찮아요! 오빠랑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ㅎㅎ

"100개 고맙다! 코망이도 이렇게 괜찮다고 하는데 니들이 왜 X랄이세요."

―???

―님선

―이 새끼 난전 오지게 잘하네

―피아식별 못하게 해버리누ㄷㄷ

원래 BJ는 개소리를 잘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정치판과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이 어째서 365일 개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지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이 이성적인 사고를 못 하게 되거든.'

그때 분위기 잘 잡아서 휘몰아치면 지난 일은 유야무야 묻히고, 결과라는 먹음직스러운 목적만이 남는다.

코망이도 괜찮다고 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방송에 필요한 부분이다. 새로운 콘텐츠는 방송에 활력을 준다.

언젠가 한 번 하려고 했던 건데, 마침 기회도 왔고 꼴리기도 하니 적당히 진행한다.

"쪽지로 오빠 톡디 보탤 테니까 시간 한 번 맞춰보자. 당장 하자는 건 아니니 부담 가지지는 말고."

―네ㅎㅎ

―올~

―이 새끼 사심 만땅이네

―데이트 하는 거? 개재밌긴 하겠닼ㅋㅋㅋㅋㅋ

정말로 한 번쯤 진행하려고 했다. 시청자와의 합방은 신선하며, 독특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느낌이라서.'

다른 시청자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가벼운 느낌으로 진행한 콘텐츠였다.

* * *

단풍잎스토리는 방학이 제철이다.

그런 말이 있을 만큼 변동이 크다. 괜히 급식 게임의 대명사로 이름을 떨치는 게 아니다.

실제 게임 내 화폐의 현금화 비율이 적게는 2배에서 많으면 5배 이상으로까지 껑충 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정직하게 따르는 것이다.

반대로 개학에는?

수요가 줄어드니 가격 또한 떨어진다. 아이템매니아의 현거래 유저들이나 민감할 환율 변화는 그렇다 치고.

"3월이니까 날씨가 풀……, 리기는 개뿔이 존나게 춥네 에취!"

―ㅋㅋㅋㅋㅋㅋㅋ

―꽃샘 추위 모름?

―ㄹㅇ 한겨울임

―올해 겨울이 유난히 춥다던데

올해 겨울이 가장 춥다! 그 매년 듣는 이야기의 출처가 궁금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내가 매우 춥다는 사실이다.

'어찌 된 게 1주일 전보다 더 추워졌어.'

약속 장소에서 시청자를 기다리고 있다. 칼날 같은 바람이 옷 사이사이를 찌른다. 조금 더 껴입고 와야 했나 후회가 일던 차에.

"오빠!"

"왔구나. 드디어 왔구나."

"저 핫팩 있는데 쓰실래요? 히히."

"그럼 고맙지 커험!"

짜증내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러면 내가 뭐가 돼.

뜨거워질 정도로 데워진 핫팩을 받아든다.

양 뺨에 한 번씩 꾹 누르자 살 것 같다.

'괜찮네.'

동시에 아이 스캔도 잊지 않는다.

정신 없는 척하며 아래부터 위까지 훑어본 결과.

귀여운 느낌의 여친룩이 제법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뭐 타고 왔어?"

"지하철 타고요. 저쪽 3번 출구에서."

"미안해. 오빠가 마중을 가고는 싶었는데 차 없는 뚜벅이야."

―능력 없누

―여자 1호는 기분이 다운됐다

―ㄹㅇ 요즘 차는 기본이지

―와……, 이쁘다

엄청 이쁘고, 잘 입고, 패셔니스타고 그런 것까지는 아니다.

대학로 가면 시선에 한두 명은 걸릴 법한 느낌.

'그런 게 그리운 거야.'

나이 먹고 보면 많은 거 안 바란다.

풋풋한 대학교 신입생들이 제일 귀여워.

마침 나이대도 딱 그쯤이라는 걸 확인했다.

"엊그제 말도 했고, 공지도 썼지만 혹시라도 모르시는 시청자분들을 위해서, 여기 카메라 부분 보고 소개 좀 해줄래?"

"안녕하세요! 히히. 저는 코코망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정환 오빠 팬카페 회장이고 11학번이에요."

"아 나는 08인데. 이제 가면 복학생 소리 들어야 하는데."

―복학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학번 차이면 까마득하지

―말도 못 걸음

―거의 그냥 아저씨 아님?

아저씨는 너무 나갔지. 그래봤자 겨우 3살 차이다.

군대에서 2년 썩고 오는 남자들 피눈물 나오는 소리 하면 안 된다.

'근데 진짜 아저씨긴 해.'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면 그렇긴 하다.

신체 연령이 아닌 정신 연령.

구태여 양심 고백을 할 필요는 없으니 08학번으로 하겠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네."

"내가 원래 다른 BJ나 게스트한테는 존대말을 무조건 해. 코망이는 많이 본 시청자라서……, 알지?"

"괜찮아요ㅎㅎ"

선배나 연장자로서가 아닌, 한 명의 시청자로 보기 때문이다.

수컷이나 암컷이나 차등을 두지 않는다고.

'시청자들은 친근하게 대해주는 걸 좋아해.'

열혈들도 어리다 싶은 애들한테는 말 까잖아.

다행히 그런 점은 신경 쓰지 않는 듯싶다.

"밥 먹었어?"

"아침만 조금?"

"그럼 일단 가볍게 점심부터 먹자."

"네 히히."

―어색하누ㅋㅋㅋㅋㅋ

―소개팅 느낌인데?

―신입생에게 껄떡이는 복학생. avi

―3학번 차가 사귀면 진짴ㅋㅋㅋㅋㅋ

붙임성이 있는 타입이다.

방송 진행이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적당한 느낌.'

오늘의 방송은 딱 그만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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