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침투
그렇게 드문 이야기도 아니다.
시청자가 아닌, BJ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우리 애들 다 알 거야 너도. 이 바닥에서 하루이틀 있었던 거 아니잖아?"
"사실 철꾸라지 빼면 잘 몰라요."
"……."
크루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
단순한 BJ연합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시청자들은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건데.'
혼자 힘으로 크는 BJ도 물론 있다. 하지만 합방을 거쳐 크는 BJ가 대부분이다.
파프리카TV는 후자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은 전부 크루 소속.
기존BJ들과 지연, 혈연, 학연 등으로 이어진 존재다.
그런 연결 고리가 얽히고 얽혀 카르텔을 형성하게 된다.
"애들이 다 친하거든. 근데 너도 안면은 텄지?"
"예, 뭐. 저번 술자리때."
친분 이상의 관계 말이다.
BJ업계가 해마다 발전하고, 수많은 뉴 페이스가 나오지만, 까고 보면 다 그놈이 그놈이다.
'막말로 합방을 하면 자기 파이 나눠주는 건데 아무나 해주겠냐고.'
다 계산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
내 사람한테만 나눠준다.
좀 대놓고 예를 들면.
「너 아직도 백수냐?」
「요즘 취직도 안되고 죽겠어요.」
「할 거 없으면 BJ라도 하던가ㅋㅋ」
「형이 밀어주면요ㅎ」
「형이 누군데? 형만 믿어ㅋㅋㅋㅋ」
사정을 알고 나면 기가 찰 정도다. 이런 느낌으로 데뷔하는 애들이 엄청 많다.
물론 밀어줘도 못 크는 애들도 있지만, 흙수저와 금수저처럼 기회의 유무는 엄청난 것이다.
"애들 다 착하고, 잘해줄 테지만 너도 적응을 잘해야 돼."
"그래야죠."
"자세한 건 차차 알려줄 테니까 오늘은 이쯤하고."
인방 초기인 지금은 그 결속력이 차후보다는 덜하다.
대부분이 맨땅에서 시작했고, 그런 애들끼리 뭉쳐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을 감안해도 다른 사람이 이끄는 크루.
심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불편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런 가시 방석에 앉아있는 상태다.
"일단 한 잔씩 다 돌려. 야물딱지게 말아서."
"아 제가 좀 말 줄 알죠."
"크으~! 술 아는 놈이 오니까 형은 너무 좋다."
심익태씨.
일전에도 한 번 뵌 분이다. 사정이 있어 한 번 더 뵀고,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일단은.'
그쪽에서도 나쁘게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다.
서은과 사귀게 되었다.
그래? 걔 내 친척 동생이거든.
잘 지내보자는 흐름으로 나와 덥석 수락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세컨드 플랜은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 점을 알고 있기에 좋게 좋게 가려고 술자리에 따라 나온 건데.
"너는 왜 여기 있냐."
"여차저차."
"너 좀 퉁명스럽다?"
"몰라요."
리아가 두 손으로 든 맥주잔을 홀짝이고 있다.
물론 필요한 연기다. 친하다는 것을 티 내면 의심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얘는 이쪽 소속은 아닌 걸로 아는데.'
크루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서은이와 달리 빚의 규모가 적어 방송 수익만으로도 충당이 되기 때문이다.
방송적 시너지를 위해 영입된 걸지도 모른다. 애초에 처음 만난 곳도 철꾸라지의 집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둘이 아는 사이야?"
"예, 저번에 철꾸형이랑 합방 때 만났죠."
"근데 별로 친한 것 같지 않다?"
"하하……."
사실 많이 친한데.
리아도 다 생각이 있을 것이다.
똑똑한 아이이니 걱정은 하지 않는다.
"팬이랑 엄청 잘 노시더라고요."
"근데."
"그냥 그렇다고요~ 오빠는 그런 사람인가 했죠."
"술 챘냐?"
해야 하나?
합방을 할 때마다 일일이 설명을 하게 되고, 설명을 해도 오해가 불거진다는 게 슬플 따름이다.
'사실 오해도 아니긴 하지.'
그래도 내가 속이려고 한 것도 아니고, 너를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을 하면 나도 상처 받지.
알딸딸한지 반쯤 감긴 눈으로 틱틱대는 모습이 유난히 섹시해 보인다.
"원래 둘이 말 안 놓지 않았어요?"
"아 방송때요?"
"네…….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BJ준호라는 사람이다.
철꾸라지의 최측근 중 하나.
당시 방송을 기억하는 듯 말을 걸어온다.
'2차까지 봤나 봐?'
리아네 집에서 이어진 방송 말이다.
당시 화제였으니 봤어도 이상하진 않지만, 반응이 무언가 의도가 있는 듯한 눈치다.
"보셨으면 알겠지만 그렇게 안면몰수로 끝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요?"
"아 뭐 그래서에요~. 개인적으로 사과했죠."
"만나서요?"
"톡으로 했어요 톡으로!"
끈질길 정도로 꼬치꼬치 캐물어온다.
저러는 이유는 하나밖에 유추가 안된다.
'오~ 사심이 있는 것 같은데?'
BJ들간의 연애는 공공연하다. 시청자들도 알 만한 커플이 꽤 있다.
하지만 공개되지 않은 케이스는 그 10배 이상은 된다.
길게 갈 수 있는지. 방송적 이득이 되는지.
이 두 가지를 고려해서 확신이 들고 난 후에야 대중에 공개하기 때문이다.
"제가 연상이고, 오빠로서 위엄이 있는데 말 좀 놓을 수도 있는 거죠."
"오빠요?"
"제가 처음부터 놓은 것도 아니고~. 화낼 부분까진 아닌 것 같은데."
"너는 왜 별것도 아닌 것도 X랄하고 있냐?"
마음 같아서는 정신 좀 차리라고 아가리를 쳐주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이곳은 적진.
괜히 트집 하나 잡히면 그걸 계기로 대차게 까일 수 있다.
보다 못한 심익태씨가 말려준다.
마치 도움을 주는 것 같아 보여도, 그전까지 가만히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역시 방심할 수가 없는 장소다.
까톡! 까톡!
내 한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카톡음 줄기차게 울려오고 있다.
그 발신자는 굳이 확인할 것도 없었다.
"마아아―!!! 카톡 좀 꺼라~! 귀 아프게."
"아, 꺼야죠. 갑자기 엄청 울리네."
"누구한테 왔는데?"
"그냥 친구에요 친구."
얼마 전에 사귄 친구.
지금 이 자리에도 있는 친구.
자세히 보니 리아의 한 손이 테이블 밑에 가있다.
「답장 못하죠?」
「못하겠죠??」
「바보」
「바보」
「바보」
.
.
.
알림음을 바로 꺼둬서 다행이다.
카톡이 엄청난 속도로 쌓이고 있다.
'여자들은 한손으로 어떻게 그리 잘 보내나 몰라.'
컴퓨터는 ㅈ도 모르면서 스마트폰은 완전히 신체의 일부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보지도 않고 잘도 두들긴다.
"뭔데 폰만 보고 있냐?"
"띨빵한 친구가 자꾸 놀아 달라고 해서."
"외로움 타나 보네."
"하도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 한동안 무시 좀 하려고요."
"크흐흐 그런 멍청한 놈 한 명씩 꼭 있지."
놈은 아니고 년이다.
바로 옆에서 또다시 분노의 카톡을 날리고 있지만.
'응 차단.'
술자리에서 카톡을 두들길 수 있을 만큼 깡이 있지는 않다.
그래도 메세지 차단 정도는 원클릭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무언가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누군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다. 딱히 신경 쓸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리아라고 했나?"
"네."
"한 잔 말아봐! 여자가 따라야 분위기가 살지."
"제가 좀 멍청해서 이런 거 잘 못하거든요."
"괜찮아! 괜찮아! 누가 말든 술은 술이지."
"그럼 해볼게요……."
술의 맛도 미각이 건재해야 느껴지는 거지.
혈관에 알코올이 돌기 시작하면, 특히 폭탄주는 별 차이가 없어지긴 하는데.
'그래도 담뱃재는 안 섞네.'
맥주를 일부러 손가락을 묻히며 따르고, 안주가 묻은 소주잔을 퐁당 빠트린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보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간다.
"오빠도 드실 거죠?"
"아니, 난 괜찮아."
"사양 말고 드세요."
"괜찮다니까?"
몰래 침까지 뱉는 거 다 봤다 이년아.
입으로는 먹는 건 괜찮아도, 뱉은 걸 먹는 건 좀 거부감이 있다.
'재밌네.'
텁텁한 자리가 되지 않을지 긴장을 하고 왔는데 다행히 적응이 어렵지 않다.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확실히 편해진다.
그 아는 사람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리가 어떠한 결과를 가지고 올지다.
"너도 알겠지만."
"다 안다는 전제로 말씀하시면 부담스러워요."
"알아따따! BJ라는 게 말이야. 잠깐은 몰라도 멀리 봤을 때 응? 여기 있는 애들 다 2년씩은 해먹을 애들이잖아?"
본론을 꺼내온다.
심익태씨가 겨우 술이나 먹자고 나를 이 자리에 초대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처음에는 가벼운 퀘스트부터 던져준다. 이를테면 어떤 여캠과 합방을 좀 해줘라.
간단한 일인데, 목돈이 벌리니 빠져들게 된다.
"함께 가는 게 중요한 거야. 어? BJ도 결국 연예인 같은 거라 혼자 방송하면 시청자들이 질려 한다니까?"
"그런 면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알고 있네~ 합방으로 환기도 하고, 서로 힘들 때 도와주고! 세상 사는 게 그런 거거든. 자, 받아."
"저 아직 술이 있어서."
"그 뭐 얼마나 된다고 못 마시고 있냐. 원샷 해 그냥!"
이렇듯 자극적인 유흥 문화까지 가미되면 사람 하나 맛 가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술잔처럼 말이다.
'나중에 보자.'
이목이 쏠린 자리에서 안 마시기도 뭣하다.
술잔의 내용물을 꿀꺽꿀꺽 비우자 술이 깬 당사자가 어찌 할 바 모르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크~ 역시 잘 마신단 말이야."
"뭐 이 정도 가지고."
"이런 날에 위스키 하나 까자고. 형 21년산 밑으로는 안 마시는 거 알지?"
21년산이 아니라 21년이라고 이 X발 새끼야!
술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 기본적인 건 배워야지.
'이 못 배워 처먹은 새끼야.'
이런 근본도 없는 새끼들끼리 돈 하나 보고 장사를 하면 어떻게 될까?
그 꼬라지는 굳이 예상할 것도 없다는 소리다.
파프리카TV가 썩어 문드러지게 되는 원인이다.
토이치TV나 유튜브보다 훨씬 선두 주자고, 더 많은 인기BJ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양지에서 배척 받는 이유가 있다.
"일단 일 얘기는 나중에 하고."
"마셔야죠."
"그거지 X발! 이 새끼들 센 척은 존나 하면서 맥주만 마셔. 이런 새끼들 데리고 내가 지금까지 술을 마셨다니까?"
철꾸라지를 포함한 크루원들을 지적하면서 단체로 꼽을 준다.
덕분에 단체 생활에 아주 잘 적응할 수 있을 듯하다.
'X발 새끼야.'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초면도 아니고, 지인도 있고, 애초에 상정을 하고 왔다.
적진에 들어와서 편히 있을 생각을 했을 리가 만무하다.
"근데 형님."
"와?"
"내일 6시에 방송이기도 하고, 멘트 준비를 해야 하긴 할 것 같아요. 대강이더라도."
"새끼 간만에 맞말 하네. 내 말문을 막히게 만들어?"
"헤헤……, 저도 가끔은 좀 합니다 형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지.
크루에 들어왔다는 건 같이 방송을 진행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일 6시.
철꾸라지와 두 번째 합방이 예정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간단한 소개 정도가 끝이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첫 인상의 중요도는 두말해서야 입만 아프다.
커뮤니티와 팬덤의 우려를 나도 인지하고 있고, 어설픈 대처로는 그동안 쌓은 신망만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투한 이유.
방송을 보는 건 결국 시청자이기 때문이다.
쓰레기 같은 BJ를 제거해도, 수요가 있다면 비슷한 BJ가 나온다. 뿌리부터 뽑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터넷 방송을 돈벌이로만 보며 패악질을 일삼는 BJ들이 자리 잡지 못하게 만든다.
그 첫걸음.
"아까 형님의 말씀을 듣고 떠오른 게 있는데요."
"의견 좋지! 마음껏 말해 그냥."
"단순한 합방, 친목질 이런 걸로는 시청자들도 신물이 올라와 있을 테니……."
당연한 쉬운 일일 수는 없다.
크루 내 주도권을 뺏어오는 것은 말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한 가지 생각해둔 바가 있다.
'일단 대가리를 끌어내려야지.'
'철꾸라지의 크루'가 아닌 다른 체계를 편성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