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BJ오디션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인내심을 가지고 판별할 수는 없다.
총 4조로 나뉘어 간략한 1차 오디션이 진행된다.
"A조! A조의 대가리를 뽑는!"
"뭔 대가리를 뽑아요."
"6명 중에서 가장 많은 득표수를 차지한 1, 2위만이 살아남거든요? 시청자 투표~~~ 시작해주세연!"
파프리카TV와 직접 연동되어 간단한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BJ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는 속임수의 우려도 없고, 재미까지 있는 투표 방식이지만.
"와……."
"어떻게 남삐끼가 떨어지냐."
"내가 붙을 수 있을까? 도저히 자신이 없는데."
참가자인 BJ들에게는 칼날만 없는 단두대다. 글자 그대로 단두대 매치다. 대기실에서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는 BJ들이 죽는 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어떡해…….'
오정환의 권유로 참가하게 된 리아도 마찬가지다.
다른 BJ들과 달리 아는 사람도 거의 없으며, 이런 난장판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말도 못 붙이고 있다. 초조하게 시간만 죽이고 있다.
주위에서 죽는 소리만 내뱉으니 긴장감과 불안감은 갈수록 커진다.
* * *
최대한 빠르게 진행시킨다.
말이 스물 몇 명이지.
한 명, 한 명의 지원 동기와 스토리텔링을 엮다 보면 하루를 꼴딱 새도 부족할 지경이다.
'길게 못 갈 사람은 바로 바로 잘라야 돼.'
그러지 못하면 여러가지 사고가 야기된다.
BJ마다 팬덤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야기가 나온다.
BJ들도 방송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면 탈주자가 생긴다.
다 경험을 해본 것들이다.
언제?
미래에.
그런 시행착오를 구태여 반복할 필요는 없다.
"진행 굉장히 깔끔한데? 벌써 두 조 끝났거든?"
"아직 두 조가 남았고, 2차와 최종 심사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갈 길이 멀어요."
남이 고생하는 건 상관없지만, 내가 고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참가자 입장에서는 원망스러울 수 있어도, 사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건 면접관이다.
'그나마 시청자들에게 처형 권한을 떠넘겼으니 망정이지.'
시청자 투표를 시킨 건 공정함을 기함과 동시에 원망의 화살을 피하기 위함이다.
내가 자른 거 아니다?
이 또한 시행착오 끝에 정립한 오디션의 진행 방식이다.
지금까지 BJ들이 괜히 안 뭉친 게 아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고, 팬덤이 갈리는 BJ들끼리 뭉치면 반드시 사고가 일어난다.
이를 최대한 억제시키는 역사가 만들어낸 지혜다.
"채팅창에도 간간히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지만 의아하신 시청자분들도 있을 수가 있어요."
"뭐가?"
"왜 여자가 없냐?!"
―코건 ㅇㅈ이지
―여캠 왜 안 뽑냐고 125만 번째 물었다……
―ㄹㅇ 젖은 필수다
―ㅊㄲㅇ
이런 꼬추 파티와도 같은 방송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특히 파프리카TV의 인지도 절반은 여캠이 쌓아 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제외를 하겠냐고.'
실제로 많은 여캠들이 참가 의사를 던져왔다.
그중 현장에 온 이들은 소수. 그도 그럴 게 카메라와 실물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여캠들과 달리 남자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카메라에 장난질을 치지 않는다. 치나 안 치나 어차피 뭉개져 있기 때문이다.
여캠들은 합방을 할 때도 카메라 설정을 엄청 신경 쓴다. 그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오디션은 공개 처형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아보니 한 줌은 되더라.
"C조는 제 독단과 편견으로 여성BJ만 넣었습니다."
"마아아아! 니가 왕이가?
"그게 아니라 애초부터 한 명은 무조건 여자로 뽑으려고 했거든요."
사전에 토의를 거쳤다.
대가리가 빡대가리라서, 혹은 뇌세포가 부족해서, 아니면 방송 진행을 위해서 모른 척하는 거겠지.
'어떻게 여자 없이 보라를 진행해.'
꼬추 파티도 유분수지.
다섯 명이 모여서 벅벅 긁으면서 상상만 해도 토 나온다.
그런 꼬라지를 보느니, 처음부터 여자를 한 명 껴놓는 편이 낫다.
"지금 성별 쿼터제 하는 거에연? 페미스트세연?
"아니, 우리가 방송을 하는데 꼬추만 다섯 시간 모여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가리 셧더퍽! 그건 말이 안되고~."
"안되면 아가리 닥치고 있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착한 여성 할당제 ㅇㅈ
―여캠 누구 나옴?
―아씹ㅋㅋㅋㅋㅋ 투표 좀 하자고~!~
시청자가 벌써 2만 5천 명이 넘어섰다.
이만한 자리에서 자신의 방송을 홍보할 기회?
콧대 높은 여캠들이라 할지라도 탐이 날 수밖에 없다.
"추천과 즐겨찾기 한 번씩 부탁드리면서 C조 첫 번째 참가자분 나와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물론 꺼림칙하다.
실물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여캠 입장에서는 방송에 치명타가 돼도 이상하지 않다.
이를 감수하고 올 만한 사람. 당연하게도 어중이떠중이일 수가 없다.
첫 번째 참가자부터 보통 여캠은 아니었다.
"BJ율밍님 와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고우시네요. 정말 고우시네요."
"띄바 마! 그러니까 파프리카TV 4대 여신이지."
"빅도서관님이 이분 좋아한다고 들었거든요."
"네?"
"아니에요 그냥."
파프리카TV 4대 여캠이라는 게 있다.
예로부터 내려져 온 이 정도면 킹정이지ㅋㅋ
시청자들이, 네티즌들이 선출한 수준급의 여캠들이다.
'할 말은 많긴 한데.'
여하튼 나쁘지 않다.
시청자들의 호응이 이를 증명한다.
―와아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여캠이지!
―ㅈㄴ 예쁘다
―눈나 나 쥬지가 이상해……
여캠 중에 실물이 안 예쁜 사람만 있을 리 있을까?
여캠들 사이에서도 당연히 클라스가 나뉜다.
율밍은 그중에서도 손에 꼽힌다.
''나쁘지 않지.'
오디션에 온 다른 여캠들도 썩 훌륭하다.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으니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괜히 나왔다가 망신을 당하면 본전도 못 찾는 꼴이니까.
푹 파인 야한 드레스.
꼬추 시청자들이 난리가 날 만도 하다.
이후 두 명의 여캠이 더 나오지만 존재감에서 상대가 안된다.
"확실히 율밍님이 파프리카TV 4대 여신, 4대 여신 아니겠습니까?"
"또 누구 누구 있죠?"
"아니, 즈즈즈즈기요? 보라BJ라는 양반이 대가리에 든 게 없으세연??"
"아 저 게임BJ라."
―또! 또!
―박이브, 율밍, 김현서, 앳지를 모른다고?
―김가린은 왜 뺌??
―ㅋㅋㅋㅋㅋㅋ쌈판 났네
우리나라 사람들은 랭킹 매기기 좋아한다.
파프리카TV 삼대장, 칠무해, 초신성, 그리고 사황격인 4대 여신.
'당연히 알고는 있지.'
근데 내가 별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예쁜 건 맞지만, 구관이 명관이다 들을 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여캠이지. 연예인에 비하면 여러모로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오오오오~!!"
분명 그래야만 한다.
어디선가 소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3만 명이 넘어간 시청자들도 다 함께 떼창을 짖는다.
"그냥 리아잖아요."
"아가리 여무세요 개이새끼야. 와꾸가 완전히 달라졌다 안카나?"
"풀메한 거잖아요. 풀메."
"와~~~ 디지삐따. 마 또 여자 귀찮다고 하지?"
―오오오
―역시 리아좌……
―게이쉨ㅋㅋㅋㅋㅋㅋ
―ㅈ정환 특) 귀찮다고 하면서 맨날 꼬리 침
이미 쳐서 괜찮다.
어제 하루 마사지와 함께 자세 교정에 공을 들였다.
'진짜 마사지.'
피부는 돈과 시간을 들인 만큼 좋아진다. 오디션 전에 마사지샵에 들리게 했다.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육안에도 느껴진다.
철꾸라지가 한 마리의 짐승이될 만도 하다. 하지만 시청자의 시선에는 큰 차이가 없다. 율밍도 결코 꿀리는 급의 여캠이 아니다.
─리아Forever님, 별풍선 1009개 감사합니다!
우리 리아 잘 부탁드립니다^^ 풀메 완전 ―_―)乃
"끄아아아악!! 포레버 형님 포레버 형님 철구개! 끄아아악! 빠샤아아앗!"
―이게 철꾸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의자 부숴버리네
―컬쳐 쇼크……
―철꾸야 저분 리아방 부회장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텐션이 그 이상이다.
평소 그녀의 방송을 보던 이들까지 헤까닥 폭주 상태다.
'당연하지. 누가 화장을 했는데.'
자화자찬은 아니지만 웬만한 프로페셔널에 준한다.
거의 독학이긴 해도 실제 업계인들에게 인정을 받았을 정도다.
특히 여캠쪽.
방송용 캠에 나오는 모습은 권위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아니, 2012년인 현재 시점으로 따진다면.
─리아만의회장님, 별풍선 2828개 감사합니다!
우리 리아가 이쁘긴 하지^^
"끼요오오오옷!!"
―와 여캠방 큰손 클라스……
―회장님까지?
―이뻐이뻐개 대박이다
―둘이 쌈 붙었넼ㅋㅋㅋㅋㅋㅋㅋㅋ
손발이 닿는 모든 것을 부수고 난리가 났다.
철꾸라지식 리액션이 그 흥분감을 더욱 도취시킨다.
'특이할 것도 없는 반응이지.'
남자들이 소유욕이라는 게 심하다.
자기만 아껴주던 여캠이 이렇게 수많은 시청자 앞에서 주목을 받으면 가만히 안 있는다.
별풍을 유도하는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목표와 겹치다 보니 우연찮게 이루어졌다.
그 자체는 지장이 가지 않지만.
─율밍의남자님, 별풍선 2975개 감사합니다!
여캠 원탑은 당연히 율밍인데요??
일대 파란은 불가피하다.
* * *
개인 방송.
특히 보라에 해프닝이 빠져서야 섭하다.
"아니, 와아…… 몇개가 터진 거야 지금?!"
"다 바람잡이겠죠~."
"바람잡이를 회장·부회장격을 쓰냐 이 팔푼이 새끼야!"
싸움이 붙었다.
채팅으로 싸운다면 곤란한 일이지만, 별풍으로 싸운다면 빨리 끝나는 게 오히려 곤란하다.
─리아만의회장님, 별풍선 4424개 감사합니다!
율밍 회장님도 쏴라있네요^^
─율밍의남자님, 별풍선 5290개 감사합니다!
리아 회장님도 클라스 오지시구요ㅎㅎ
여캠 열혈이 어째서 어마무시한지.
증명이라도 하듯 불붙어서 서로 쏴재낀다.
그 자체만으로도 오늘 수익은 원없이 뽕을 뽑은 셈이지만.
"율밍은 그렇다 쳐도 리아 쟤는……."
"회장님이 외제차 좀 굴리시나 봅니다~."
"이 빠가사리 새끼야!"
요점을 못 잡는 부하 직원의 대갈통을 팔꿈치로 내려친다.
심익태는 현재 사태의 의아함을 즉각 눈치챘다.
'급이 다르잖아.'
아무리 최근 떴다고 해도 4대 여신과 비빌 급은 아니다.
맞상대가 된다는 건 회장의 지갑 사정도 있지만, 가장 큰 건 격이 맞아버렸기 때문이다.
몰라보게 이뻐졌다.
아니, 포텐셜을 몰라봤던 것이다. 작정하고 풀 메이크업을 하자 모델이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오~ 쟤 쩌는데? 어느 업체길래 저런 애를 물색해왔냐? 빼박 연습생 출신이겠는데."
"우리 앤데요?"
"……뭐?
난리가 난 건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다. 자리 잡은 여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특히 큰손들의 주목을 받았다면 기대 수익은 천문학적이다.
년이 아니라 달에 억 단위로 쏟아진다. 이미지 소비가 안 된 초기에는 더욱 짭짤하다.
돈 냄새 하나로 살아가는 업체들이 그 냄새를 못 맡을 리가 없다.
"우리가 저런 애를 데리고 있었다고? 약점은 잡아 놨겠지?"
"학생인데 별로 빌리지도 않아서 잠깐만 일하고 보내주기로……."
소속이 불분명하다면 더더욱.
리아가 소속된 업체의 사장 유광석은 그 거위가 우리집 거위었다는 사실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목줄을 당연히 채워뒀어야지!'
소속이 없다면, 먼저 좋은 조건의 제안을 하는 쪽과 함께 하게 된다.
BJ오디션이 성황리에 진행됨과 동시에 물밑에서는 치열한 쟁탈전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