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18화 (118/846)

118화

여성의 매력은, 특히 여캠의 매력은 외모가 전부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예쁜 애들이 나타나서 다 씹어 먹었겠지.'

기나긴 파프리카TV의 역사 속에서 그런 예가 없었을 리가 없다.

여캠이 돈이 많이 벌린다고?

혹해서, 혹은 제안을 받고 데뷔하게 된다.

개중에는 정말 예쁜 케이스. 입소문을 타며 초기 흥행을 거둔 여캠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롱런하지 못하거나, 애매한 BJ들로 남게 된다.

─The큰손님, 별풍선 1009개 감사합니다!

오늘 방송 보길 잘했네…… 옛다

"끼요오오옷!!"

―그만 좀 부숴!

―다 때려 부숴도 이득이지 ㄹㅇ

―저분 유명한 큰손인데

―리아 노릴 듯ㅋㅋㅋ

여캠의 매력이 무엇인지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벽 위의 꽃도, 친근한 동네 누나와도 다르다.

"철꾸 오빠."

"어, 어…… 왜 리아야."

"나 있는데."

"별풍선이 하도 터져서~! 무서웠지? 하지 말까?"

"우웅~ 우리 같이 해요!"

닿을 듯 말 듯한 거리감.

친근하되, 싸 보이면 끝장이다.

파프리카TV의 일류 여캠은 그러한 특징을 지녔다.

'한 마디로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악녀지.'

철꾸라지와 합심해 집안 살림을 아작 낸다.

하지만 파괴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릴 적 소꿉장난이 버라이어티해졌다는 느낌이다.

―아령을 두 손으로ㅋㅋㅋ

―잘 부수는데?

―임자 만났누

―철꾸라지 여캠 상대로 찐텐인 거 첨 봄!

마치 길들이기라도 한 모습.

이전에 합방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기대 이상으로 잘 소화하고 있다.

'이런 거 말이야.'

BJ는 기본적으로 시청자랑 놀아주는 게 직업이다.

여캠 또한 큰 틀에서 다르지 않지만,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난이도가 요구된다.

"리아 방송 잘하네? 근데 왜 저번에 합방 했을 때는……."

"그때는 처음이라."

"오빠가 처음이라고오?!"

"네 오빠가 처음이었어요 헤헤."

무슨 공중파나 케이블도 아니고.

파프리카TV에서 이를 행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면상 망가진 보라BJ의 섹드립까지 받아줘야 하는 극한 직업이다.

'그래서 열혈들이 끌리는 거야.'

저런 병신 같은 인간도 잘 받아주네.

나도 친분을 쌓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껄떡거리는 물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될 것 같다는 환상을 자극하는 것이 여캠의 매력이며 노하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어제 하루종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교육시킨 보람이 있어 다행이다.

─철빡이69호님, 별풍선 1009개 감사합니다!

율밍 열혈 빡쳐서 나감ㅋㅋㅋㅋㅋㅋㅋㅋ

"어, 진짜요? 아니, 형님 제가 편파를 하겠다는 게 아니고;;"

물론 지금 이 자리는 합방이 아니다.

정정하고 당당해야 할 BJ 오디션이다. 한쪽 BJ를 너무 과하게 언급하면 형평성에서 문제가 생긴다.

'근데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아.'

다소의 유도리도 없이 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심사위원으로서 편파는 불가능해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Sangmin6974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방송감은 확실히 율밍 승리 아님?

"율밍님 방송짬은 인정하는 부분이구연~ 심지어 파프리카 4대 여신이시잖아요~!"

"근데 여자는 아무래도 어린 년이 찰지긴 하죠?"

"마아아아―!! 누가 맞말 하랬는데?!"

―오정환 이 새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근히 할 말 다 하네

―열혈 다시 나감

―오늘 방송 ㄹㅈㄷㅋㅋㅋㅋㅋㅋ

분명한 약점이 있다.

방송 경력이 얕다는 점.

방금 전 활약으로 다소 메꾸기는 했으나 애초부터 차이가 역력했다.

"저희가 여섯 분의 여캠분들을 쭉 봤잖아요."

"어."

"누가 뽑힐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여캠의 역할은 일반인 포지션이에요."

"일반인?"

남자들은 십중팔구 다 또라이가 뽑힌다.

보라BJ 자체가 기본적으로 정상인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자라도 정상인이 들여놔야지.'

구태여 방송감이 뛰어날 필요는 없다. 그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인지시킨다. 논점을 흐리는 말장난이다.

「투표 발표」 ― C조

1. 율밍 (7412표) 35.4%

4. 리아 (6582표) 31.7%

2. 다미쨩 (2680표) 12.8%

3. 토강 (2105표) 10.0%

5. 최원 (1673표) 8.0%

6. 루미 (459표) 2.2%

총 참여자 ― 20.911명

이만한 안전 장치면 충분하다.

투표 결과가 나온다. 아쉽긴 하지만 2위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앞서 A, B조와 마찬가지로 1, 2위는 상위 심사로 올라가게 되지만 여캠은 한 명만 뽑기 때문에."

"바로 최종 심사 올라가지?"

"와, 대가리에 뇌세포가 있으셨네요. 기억 못 하는 줄 알았는데."

"므아아아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레카 ㄷㄷ

―MC가 왜 모르나 했네

―ㄹㅇ 개멍청 띨빵한 바보인 줄 알았자너~

그렇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최후의 승자다.

그 가능성을 4만 5천 명이 넘어간 시청자 앞에서 보인 것이다.

'팬덤과 인지도가 확실한 4대 여캠이랑 반반 비볐으면 승산은 충분해.'

최종 심사까지는 시간이 있다.

다소의 밑작업을 거친다면 필승을 따놓은 당상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아직 오디션이 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추천과 즐겨찾기 부탁드리면서 바로 D조 첫 번째 참가자분 모시겠습니다!"

* * *

니가 하는 그 방송.

그 방송이 내 방송이었어야 해 .

니가 받는 그 별풍.

그 별풍이 내 별풍이었어야 해 .

니가 뱉는 멘트.

니가 얻는 그 인기까지도 모두 다 내 것이었어야 해.

'하아……, 존나 터지네.'

한글로 쓰면 없어 보이고, 영어로 쓰면 월클 같다는 JYP의 노래 가사가 준호의 머릿속에서 개사된다.

철꾸라지 크루의 2인자를 노리던 그는 최근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한 남자의 등장 이후로 말이다.

오정환이 철꾸라지와 방송을 하고 있다.

자신이 센 것만 벌써 4만 개가 넘는 별풍선을 받았다.

'4 대 6으로 떼기로 했으니 못해도 200은 가져가겠네 배 아파라.'

그보다 더 속이 쓰린 건 바로 인기다. 데뷔한 지 이제 겨우 반년을 채웠음에도 불구 삼대장에 준한다는 평가를 받는 대기업BJ로 성장했다.

그 자체는 그럴 수 있다.

본인이 방송감도 있고 잘하는데 뭐?

문제는 철크루의 일원으로 잘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합격 축하드려요. 와~ 율밍님이랑 박빙으로 겨루시네."

"운이 좋았죠 헤헤."

"다 실력이에요 실력!"

"저도 좀 껴도 될까요? 너무 이쁘셔서 말도 못 걸고 있었는데."

대기실 옆자리.

오디션이 끝난 C조의 참가자들이 돌아왔다.

울상으로 떠나는 이들과, 환하게 웃는 모임으로 갈린다.

승자와 패자다. 자신이 신경 쓰는 그녀는 승자조에 있다.

준호는 리아에 대해 이전부터 줄곧 마음에 담아두었다.

'나보다 잘 돼가네 이제.'

남자라면 다 꿈이 있다. BJ로서 성장해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그 일념으로 철크루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일전에 철꾸라지와의 합방까지 주선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거기서도 오정환과 엮이더니 어느새 인기 여캠이 돼버렸다.

오늘 이후로 더더욱 그리될 것이다.

오디션에 최종 합격한다면 말도 걸기 힘들어진다.

리아의 마음과 상관없이 준호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다.

"D조 3번 참가자분 지금 오셔야 돼요."

"네, 네 갑니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금일 오디션에 합격한다.

주목을 받고, 방송을 성장시키고, 철꾸라지의 오른팔이 된다면 충분히 말이다.

"준호 오빠 차례에요?"

"응……."

"오빠도 화이팅!"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주먹을 꼬옥 쥐며 응원을 해주는 리아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입가의 근육이 풀린다.

'그래, X발 인생 뭐 별 거 있나!'

용기를 내어 입장한다.

무슨 짓이라도 해버릴 각오를 다진다.

자신의 합격을 축하해줄 그녀의 환한 미소를 기대하는 준호의 생각과는 별개로.

'합격하면 뜨거운 거 해달라고 해야지 헤헤.'

리아는 방금 전 오디션을 회상한다.

자신도 그렇게 잘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말로 듣고, 배운 것과, 실제 실천하는 것은 아무래도 천지 차이다.

하지만 그가 보고 있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마음이 안정되는 낯익은 목소리가 자신의 몸을 움직이게 해줬다.

'아……, 미쳤나 봐 왜 젖는 건데. 빨리 집에 가서 오빠 생각하면서 식혀야겠다.'

다소의 부작용은 있었으나, 남자와 달리 티가 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애교로 승화시켜 남심을 사로잡는데 훌륭하게 성공했다.

오디션은 1차와 2차, 그리고 최종 심사로 나뉜다.

2차는 당일에 끝나고, 최종 심사 날짜는 차후 통보된다.

2차가 스킵되는 여캠은 기다릴 이유가 없기에 리아는 서둘러 귀가한다.

"철꾸라지의 애제자라 불리는 BJ준호님 맞으시죠?"

"예, 맞습니다!"

"참고로 스승은 간장을 잘 마십니다. 준호씨는 어떤 걸 할 수 있죠?"

"저는 치킨 무 국물 원샷 가능합니다!"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준호는 최선을 다한다.

소품을 준비해온 치킨 무를 꺼내 비닐 껍질을 벗기고 단숨에 원샷 한다.

─치킨무매니아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저걸 쳐먹는 놈도 있네;;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요!"

"스승도 제자도 정말 대단합니다. 대단한 또라이 새끼들이에요."

"마아아아―!!"

―무 국물은 졸맛 아님?

―차라리 민트 초코를 퍼 먹어랔ㅋㅋㅋㅋㅋㅋ

―빙초산 탄 물을;;

―그저 ^무^

무슨 막걸리라도 마시듯 머리에 탈탈 털어 원샷을 인증한다.

무준호라는 별명을 즉석으로 만들어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했다.

「투표 발표」 ― D조

1. 은우 (7412표) 40.2%

2. 준호 (6582표) 35.7%

3. 김사부 (2280표) 12.3%

4. LetTheKillingBegin (1673표) 9.0%

5. 꿀템은뒤졌다 (892표) 5.0%

6. 짬짜맨 (459표) 2.4%

총 참여자 ― 18406명

그렇게 투표에서 2위라는 성적을 기록한다.

1차 심사를 보란 듯이 합격한 것이다. 그 의미는 분명히 적지 않다.

"아 떨어졌네 낄낄."

"그래도 홍보는 됐겠지?"

"리얼 오늘 집 가서 바로 방송 키고 어그로 끌 거임."

떨어지고도 만족하는 무리가 있을 정도다.

수만 명의 시청자 앞에서 노출이 됐고, 개중에 1/100만 찾아와도 개꿀띠!

하꼬의 입장에서는 분명 그렇지만.

'아니,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돼?'

아무리 가지각색의 BJ팬덤들이 응원하러 왔어도 이곳은 철꾸라지의 본진이다.

애제자라는 버프를 둘렀고, 리액션으로 선전까지 했음에도 2위에 그쳤다. 그것도 1차 심사에서 말이다.

생각 이상의 용담호혈이었다는 사실에 식은땀이 흐른다.

어중간한 홍보가 아닌, 확실한 성공을 생각하고 있던 준호는 초조함에 목이 바싹 마른다.

'어떡하지? 이러다 2차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녀와 자신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저 오정환이라는 망나니가 철크루에서 득세하는 걸 눈 뻔히 뜨고 구경하는 수밖에 없다.

"A조부터 D조까지 전부 투표가 치러졌죠?"

"피곤하다. 말 시키지 마라."

"아오~ 살림을 죄다 때려 부쉈으니 피곤하지!"

대기실 옆방, 방송이 진행되는 스튜디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1차 통과자 여섯 중 상위 두 명을 2차에서 다시 추린다.

그리고 특별 게스트와 최종 심사에서 겨룬다.

―대박 사건ㄷㄷ

―대기업BJ들은 하이패스 달아준 거?

―방송 잘하누

―하꼬 새끼들만 몰려온 이유가 있었네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하지만 준호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1차에서도 2위였는데 최종 심사까지 어떻게 합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야.'

같은 크루를 밀어줄 거라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오정환은 물론 철꾸라지도 믿고 있을 때가 아니다.

준호는 비밀 연락망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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