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20화 (120/846)

120화

이틀 후.

철꾸라지의 방송 스튜디오이자 작업 공간을 겸하는 철와대는 다시 북적이기 시작한다.

지난 1,2차 심사 때보다 수는 적지만, 보다 엄선되어있다.

풍기는 포스부터 범상찮은 이들이 속속들이 도착한다.

BJ오디션 최종 심사에 참가하기 위함이다.

"어, 어 나야! 준비는?"

<당연히 하고 있죠.>

"잘 좀 해줘 제발."

<못 믿어주시면 섭하죠~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있습니다.>

와꾸대장준호.

철꾸라지의 제자를 자처하는 그는 가장 빨리 철와대에 왔다.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혹시 모를 변수를 사전에 알아채기 위함이다.

'준비는 완벽해. 이상한 일만 안 생겼으면 좋겠는데.'

철꾸라지의 팬덤은 엄청난 성세를 자랑한다.

그보다 무서운 건 팬덤이 워낙 극성이라는 점이다.

그들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남 부럽지 않은 무기가 된다.

─철빡이 새끼들이 별 볼 일 없는 이유. Fact

말로만 악성이다 하지

단합력 ㅈ호구라 대형 이벤트마다 타팬덤한테 절대 못 이김ㅋㅋㅋ└응 아니야

└네 다음 쿤견

└준호 뽑히면 대가리 박을?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그 작업은 이미 착착 이루어지고 있다.

철빡이의 단톡방은 물론, 갠방갤에서도 팬덤을 하나로 결속시킨다.

'여기에 그 노하우까지 더해진다면……!!'

수천, 수만 개의 계정으로 대리 투표를 행한다. 정말로 그것이 가능한지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절친한 동생이 보증하고 있으며 자신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무려 2천 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선입금했다.

철빡이들의 X랄 작전까지 더해지면 들통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승리한 개선 장군처럼 당당하게 들어가는 준호와 달리.

"뭐야, 이게. 내가 무조건 뽑히는 거 아니었어?"

율밍은 상당히 저기압으로 입장하고 있다.

1차 심사를 1위라는 성적으로 통과했지만 도저히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프리카TV 4대 여캠.

본래라면 이런 자리에 나올 자신이 아니다.

참가를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만 해도 황송해 마지 않으며 대접했다.

"가면 무조건 통과라며? 내가 왜 이런 귀찮은 쇼를 해야 되는데?"

<누님 말씀이 맞죠. 맞는데 아무래도 형식적인 과정이 필요하니까…….>

"하, 말은 잘해."

그런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계집이 나오더니 자신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최후에 이기는 건 자신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기분이 다운된다.

'어이가 없어서 진짜.'

겉으로는 쓴소리를 내뱉는 율밍도 사실을 안다.

이 오디션에 출연한 이유부터가 최근 수금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수금.

별풍선을 받는 행위.

일반BJ 이상으로 여캠에게는 굉장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여캠의 수명은 길어야 1~2년이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굳이 한 줄로 요약하면 질려서다. 아무리 예쁜 여자도 유통기한이 있다.

마음 대 마음으로 사귀는 연인 관계면 모를까?

환상이 매개가 되는 여캠과 열혈은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여캠들은 이를 기준으로 은퇴하거나, 업소에 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그런 년들이랑 같은 줄 알아?'

죽어도 싫다.

자신은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 독한 마음이 율밍을 파프리카TV 4대 여신으로 만들었다.

BJ오디션을 발판 삼아 다시 한 번 재도약할 것이다.

벌써 6년차 방송에 접어드는 그녀는 마음속 야망을 아직 가라앉히지 못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누구……, 아~ 오정환님!"

심기가 굉장히 불편한 상태다. 하지만 때와 자리, 그리고 상대를 가려야 한다. 특히 BJ들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철꾸라지랑 같이 MC 본 사람 맞지?'

여캠의 특수성 때문에 다른 BJ들과 교류가 적다.

요즘 누가 대세고, 잘 나가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율밍은 짬이 있다. 그리고 눈치가 있다. 무시해서는 안 될 상대라는 걸 직감으로 알아챘다.

"주시면 감사히 마시죠~."

"생색내는 건 아니고 비품으로 사온 거니까 편하게 드세요."

"네……."

별거 아닌 캔커피.

참가자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준비한 것일 테다.

'갑자기?'

하지만 타이밍이 묘하다. 통화를 위해 사람 적은 바깥에 나와있다. 구태여 이 타이밍을 노렸다는 건 의도가 있다고 봄직이 옳다.

"불편하신 점 있으세요?"

"딱히?"

"보라BJ들이 워낙 야단스럽게 진행하다 보니 익숙하지 않으실까 봐."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모르긴 몰라도 데뷔한지 1년도 안 되었을 애송이.

율밍의 입장에서는 정말 가소롭다.

'누가 누굴 걱정해.'

그냥 귀엽다. 경력도,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자신을 걱정한다.

하지만 율밍도 귀가 있고, 어디선가 들어본 소문이 있다.

까였다고 한다.

자신의 상대인 여캠에게 말이다.

한창 껄떡대고 싶은 나이라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온다.

"익숙하지 않으면 도와주시게요?"

"제가 중립적인 포지션이라."

"에이~ 오디션 합격하면 함께 하게 되잖아요."

남자라는 동물은 단순하다.

손이 스친 정도로도 제 알아서 착각한다.

조금 가지고 놀아줄 생각을 가지고 있던 율밍에게.

"잘되셔야죠."

"그렇죠.

"아이 뒷바라지도 힘드실 텐데."

"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큼지막하게 떠진 눈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해준다.

"도, 동생 같은 거 없는데요."

"동생 말고요. 아드님요."

"……."

한동안 잊고 살았지만 율밍에게는 남들에게 말 못 할 비밀이 하나 있다.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고막을 미친 듯이 때린다.

* * *

선과 악이라는 구분은 참으로 애매하다.

관점에 따라,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있지.'

빼도 박도 못하는 잘못. 상대의 변명을 일축할 수 있는 논리. 그 판단을 정확하게 내릴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무, 무, 무슨 소리 하는지 저, 전혀 모르겠거든요?"

누가 봐도 당황했다는 게 느껴질 만큼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마음속 깊이 찔리는 부분이 있다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다.

'찔리는 짓 안 한 여캠이 어딨겠냐만은.'

여캠 자체가 그리 떳떳한 구조로 굴러가는 직업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일에도 선이 있고,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게 있다.

율밍은 그 선을 넘었다.

그것도 아득히 한참.

사실은 결혼을 했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다.

"아드님이 이제 3살 되시죠?"

"이, 이상한 섹드립 같은 거면 고소할 거예요!"

"처갓집에 맡기셨다고 들었는데."

"……."

여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의아할 수도 있다.

아니, 연예인들도 연애하는 시대에 BJ가 남자 좀 사귄 게 대수냐?

'결론부터 말하면 대수라는 거지.'

보통 BJ나 연예인들은 다수의 팬들에게서 수익이 생긴다.

그에 반해 여캠은 극소수의 팬들이 수익의 9할을 충당한다.

만약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 정도의 스캔들도 열혈들이 별풍선을 잠근다. 근데 결혼에 아이면 아예 사이즈도 안 나오는 대형 사고다.

"아 죄송해요. 제가 착각했나 보네."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사람을 대체 어떻게 보고."

"처갓집에서 들은 정보인데 한 번 전화를 해봐야겠다."

"……."

진상은 8년 후에 밝혀진다. 충격적인 사건이다 보니 기억한다.

하지만 시간이 워낙 흘렀고, 본인도 여캠을 그만둬서 흐지부지 넘어간다.

'그래도 죄는 죄야.'

까놓고 말해서 호구들 별풍선 뜯은 거다.

어떤 식으로 포장을 하고, 창의적인 변명을 해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실은 언제나 가혹하다. 알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을 만큼.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

"여보세요? 거기 처갓집이죠?"

"자, 자, 자, 잠깐만요! 대, 대체 원하는 게 뭐……."

"양념 통닭 한 마리 주세요. 아, 요즘 슈프림이 잘 나간다고요?"

"……."

처갓집 양념 통닭.

양념 소스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브랜드로 양도 많고 혜자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성급하게 저지를 필요는 없잖아.'

율밍은 차후 이렇게 변명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 천만보 양보해서 그 말이 맞았다고 쳐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묻고 있는 거다.

당신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진실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스스로의 떳떳함을 증명해보라고.

"저한테 뭘 시키고 싶은 거예요……."

170초반의 키에 40대 후반의 몸무게.

그 경이적인 체형을 감안하면 유부녀에 아이까지 딸렸다는 것을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 만도 하다.

'본인한테도 나쁜 이야기가 아니라고 봐.'

열혈한테 챙긴 돈이 한두 푼이면 모를까.

얼마나 말도 안되는 변명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헛된 결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율밍 님이 크루에 안 들어오시면 좋겠어요."

"그, 그럼. 아, 안 들어오기만 하면 비밀로 해주실 수…… 있어요?"

"어려울 것도 없죠."

"약속할게요! 그, 그러니까 제발 어디 가서 말……."

"그리고 여캠 생활을 더 이어가는 게 맞는지. 스스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다.

BJ는 돈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원만하게 수긍을 해준다면 나로서도 뒤끝이 편하다.

* * *

대국민 BJ오디션.

그 최종 심사가 시작된다.

―ㅊㄲㅇ

―본방 사수

―오 씹ㅋㅋㅋㅋㅋㅋ

―중계방 놈들 부럽냐?

방송이 켜지자마자 수천 명이 몰려온다.

채 5분이 되지 않아 누적 1만 명을 돌파한다.

파프리카TV 각지에 흩어진 팬덤들이 규합된 결과다.

"금일 최종 심사에 앞서 조금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성대한 시작에 찬물이 끼얹어진다.

C조 여캠 통과자 두 명 중 한 명이 불참했다. 율밍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기권을 선언한 것이다.

─The큰손님, 별풍선 109개 감사합니다!

특별 게스트는?

"109개 정말 감사드립니다."

"멍! 멍!"

"특별 게스트는 펌프…… 아니 여캠 분은 안 계셔서 나머지 후보가 자동 승격을 하게 될 것 같네요."

―펌프리카?

―바로 스포해버리누ㅋㅋㅋㅋㅋ

―이 와중에 리액션 챙기는 그는 도덕책

―역시 ㅊㄲㅇ

안타깝다.

하지만 참가자 중 절반만 왔던 것도 그렇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태다.

애시당초 시청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기도 하다.

─스포)) 특별 게스트 펌프리카, 파케르, 퀘이임

본인들이 방송에서 직접 밝힘

└멤버 화려하네

└이 정도면 ㅆㅅㅌㅊ인데?

└여캠은? 여캠은 없나?

└여캠은 시청자가 적어서

율밍은 물론, 급부상하는 신인 리아도 결코 만만한 BJ는 아니다.

한쪽의 일방적인 부전승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평소였다면 그랬을지 모른다.

금일 방송은 스케일이 다르다.

대기업BJ들간의 충돌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팬덤이 적은 여캠은 이미 뒷방 포지션이다.

"부전승이 되었지만 그래도 뽑히게 돼서 영광이고……."

"왜 나를 쳐다 봐."

"응원 열심히 할게요. 오빠들 화이팅!"

―크~ 귀엽누

―이게 여캠이지

―병풍만 해도 밥값함ㅋㅋㅋㅋㅋㅋㅋ

―여자는 어린 년이 제맛 ㄹㅇ

깜찍한 마스코트로 있는 편이 피를 안 볼 수 있다.

대기업 팬덤간의 싸움은 피로 피를 씻는 치열한 항쟁이다.

당사자들의 스포 이후.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대리 전쟁이 빗발쳤다.

그리고 오늘 본 전쟁의 서막이 수만 시청자 앞에 공개된다.

"누가 합격해도 이상하지 않은 쟁쟁한 거물BJ들만 오셨는데 일단 한 분씩 지원서를 받아보겠습니다."

오정환의 담담한 진행과 함께 막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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