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21화 (121/846)

121화

대국민 BJ오디션.

그 이름에 걸맞는 스케일로 진행되었다.

한동안 파프리카TV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율밍은 왜 빤스런 한 거임?

파릇파릇한 리아 상대로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나? ㅋㅋ└4대 여캠이 ㅈ으로 보임?

└득보다 실이 크다고 봤나 보지

└철꾸라지랑 방송 하면 사고 무조건 남ㅋㅋㅋㅋㅋ

└그냥 홍보만 노리고 나온 듯?

여러가지 이슈가 쏟아진다.

4대 여캠 중 유일하게 참가했던 율밍.

개인적인 사정으로 기권을 표하며 아쉬움을 주었다.

소수의 고정 시청자들과 방송을 진행하는 여캠의 특성상 이후의 행보가 크게 이슈가 되진 않는다.

방송 스타일을 크게 바꿔 여러 콘텐츠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만 간간히 들려온다.

─정보글) 철&환 오디션 최종 심사 결과. txt

펌프리카― 마지막까지 보라에 적응 못하며 먹방 고인물의 한계를 드러냄파케르― 특별 게스트치곤 위상이 부족했고 역시 예상대로 퀘이― 인싸 남캠답게 보라 감도 ㅅㅌㅊ

킹박이― 킹능성도 보여주고 잘했는데 아깝게 짐

와꾸대장준호― 하는 건 ^무^인데 철빡이들이 강제로 캐리시킴└그저 ^무^

└네 다음 정보인 척하는 1557견

└즙견들 쳐발렸다고 뿔난 거 봐 깔깔!

└철빡이들 빗자루로 쓸어서 동네 뒷산에 갖다 버리고 싶다

개인 방송 갤러리.

현재 주된 화제는 BJ오디션의 결과다. 다섯 대기업의 치열한 혈전 끝에 상위 두 명만이 살아남았다.

남캠계의 거성이라 불리는 퀘이.

철빡이의 제자를 자처하는 준호.

큰 틀에서 봤을 때 예상에서 벗어난 결과는 아니지만.

─준호 이 새끼는 대체 어떻게 2위된 거임?

진짜 진지하게

철꾸라지 똥받이

할 줄 아는 건 무 국물 원샷 하는 거 밖에 없는 새끼가 어떻게?

└3곽이나 마셨잖아ㅋㅋㅋ

└미스테리지

└솔직히 주작 의심해봐야 함

└철빡이 새끼들 화력빨 거품이야 ㄹㅇㅋㅋㅋㅋ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출연한 BJ들이 워낙 쟁쟁했을 뿐더러, 밀어준 것도 그 본인의 팬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론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한철 메뚜기떼 같은 놈들입니다.>

"그, 그래야지."

실상은 그보다 더하다.

득표수를 늘리기 위해 여론을 움직이고, 업체를 통해 순위까지 조작시켰다.

아무리 물불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도 지나쳤다.

'하……, 설마 들키는 거 아니겠지?'

평소 새가슴인 준호는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방송 중에는 가까스로 억눌렀지만, 혹시 티가 난 게 아닌지 불안해서 커뮤니티를 헤집듯 찾아보고 있다.

<다 입 무거운 분들이고 절대 안 들킵니다.>

"어, 어……."

<형님 좀 소심한 거 아니까 하는 말인데 다른 BJ들도 다~ 해요. 그것까지 감안해서 싸우는 겁니다. 최종적으로 형님이 이긴 거예요!>

철꾸라지의 알바들.

그렇게 딱 잘라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여론 조작 알바들 사이에도 급이 나뉜다.

'형님 덕에 오늘 소고기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네효 크크!'

유진성은 중개 장사를 하고 있다.

모름지기 장사는 신용.

철꾸라지 크루 내에서 다진 입지가 이를 가능케 만든다.

BJ와 업체 사이에 다리를 놔준다.

그 대가로 거래 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먹는다.

준호가 투표에서 승리하기 위해 선입금한 2천 만원 중 15%는 자신의 몫이다.

<아무튼 오디션도 이기셨고, 철빡이들도 공식적으로 형을 지지하고 있으니 이제 잘나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열심히 해야지……. 돈이 아까워서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세요! 대기업 되면 금방 회수할 텐데~.>

딱히 드문 개념도 아니다. 경제계는 오히려 스탠다드하다. BJ업계는 거품이 엄청나게 껴있다.

경쟁자를 꺾기 위해 거리낌 없이 거금을 뿌린다. 그 시체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굴러가는 화폐의 기본 단위가 다른 것이다.

"아 진짜 그 아저씨 표정을 현장에서 봤어야 했는데!"

"캠 너머로도 잘~ 느껴졌습니다."

"보라를 뭘 알겠어요. 먹방 쩝쩝충 아재가."

그런 세계에 익숙하다. 한 클럽의 룸에서 왁자지껄한 담소가 달아오른다.

퀘이는 자신의 지인들과 함께 BJ오디션의 통과를 자축하고 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 보라인데 어딜 감히 함부로 기어들어 와.'

그는 학생 시절을 탱자탱자 놀고, 공부를 한다는 그럴 듯한 변명으로 4년제 지잡대에 들어가 또다시 인생을 허비했다.

그렇게 눈을 뜨니 20대 중반의 백수.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자신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까!

그리고 약간 손색은 있어도 얼굴이 나름 반반하다.

《여기 골 빈 년들 존나 많아! 친한 척해주면서 환상 좀 심어주면 알아서 갖다 바친다니까?》

에이, 그런 애들이 있겠어?

막상 해보니 정말로 있었던 것이다.

당시 BJ를 하던 친한 형에게 권유를 받아 퀘이는 남캠을 시작했다.

일이 잘 풀리자 성형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소개해준 형보다 잘 나가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보였기 때문이다.

"펌프리카 그 아저씨는 자기 방송에 투자를 안 해."

"먹방충이잖아요~."

"보라판은 돈 놓고 돈 먹기인데 배달 음식이나 추잡하게 먹고 있으니 통할 리가 없지."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그 답을 시청자는 절대 알 수 없다.

잘나가는 척을 하면 그만큼 더 큰손이 꼬이고,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옷 하나 살 때도 손 벌벌 떨면서 가성비 생각하는 애들이 뭘 알겠냐고.'

물론 초기 자금이 중요하다.

거금을 화끈하게 쓸 수 있는 배포 또한.

금수저로 태어난 퀘이에게는 게임에 현질을 하는 감각에 불과했다.

대국민 BJ오디션.

특별 게스트로 참가하여 똑같은 방법을 썼다.

펌프리카라는 위협적인 경쟁자를 돈의 힘으로 밀어낸 것이다.

"형님 한 잔 받으시죠."

"뭔데 이거?"

"당연히 골든 블루 빠따죠~"

"아 갓든 블루는 인정이지 하하하!"

온더락의 글라스에 황금색 위스키가 채워진다.

성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를 꿀꺽 삼킨다.

'크~ 독한 거봐. 36.5도라 망정이지.'

본래 스카치 위스키의 표준인 40도였다면 식도가 불탈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퀘이는 실론티를 하나 딴다.

위스키를 쉽게 마시기 위한 음용법이다.

반 정도만 섞어도 도수가 소주에 근접한다.

실제로는 얼음이 녹아 그 이하의 과실주에 가깝다.

* * *

넓게는 경제계와 정치계, 종교계.

좁게는 연예계와 의료업계, 게임업계.

각 분야는 자신들의 이권과 차별성을 위해 뭉쳐있으며 그 실상은 외부의 시선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

"첫 방송부터 이렇게 대박을 만들다니 확실히 능력이 있어."

"저는 그냥 진행만 했죠."

"그 진행이 얼마나 어려운 건데~"

BJ업계에도 그러한 현상이 있다.

그들만의 감성, 그들만의 이해, 그들만의 가치를 지닌 BJ들의 사회가 말이다.

'딱히 복잡한 자격이나, 고차원적인 유대가 필요한 건 아닌데.'

오히려 간단하고 단순하다.

역사도 얕고, 학업이나 경력과도 무관한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물이다.

"오빠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어렵게 해요?"

"우리도 끼워줘용~."

"이년들아 크캬캬! 이 오빠가 오늘 얼마 벌었는지 알면 그냥 까무러칠걸?"

그렇다면 해당 사회에서 상급자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머리 아픈 고민을 할 것도 없이 돈이다.

'돈이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BJ의 조상이란 것들이 철꾸라지, 김군, 윾신 이런 애들인데 건전한 사회가 구축될 리 없다.

"와 개쩐다!"

"그럼 매상 좀 올려주면 안돼요?"

막 이래~."

"크흐흐흐. 니들이 잘해야 시켜주는 거지. 일단 발렌타인 21년 하나 따와 봐라."

"크~ 형님 클라스 오지고 지리고 레릿고~! 바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좀 더 엄밀히 따지면 쓰는 것이다.

돈을 물 쓰듯이 펑펑 뿌린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신인BJ들 입장에서는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딱히 이상할 것도 없어.'

롤판에서 보면 압도라는 대리충이 있다. 철꾸라지가 간장을 마시듯, 그는 대리로 물의를 일으켰다.

롤판이 성장하자, 악명도 가치가 생겼고, 중국에서 큰 돈을 벌어들인다.

그 빨대짓이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의 시선에는 성공으로 보인다.

그래서 철꾸라지, 압도보다 돈 많이 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실드를 치고 다니는 팬들이 생기게 된다.

"저기 대단한 오빠."

"응?"

"왜 말이 없어요~ 우리 같이 놀아요~."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해서."

"오빠 게이에요?"

"……."

룸에서 여자 끼고 양주 마시면서 놀기.

급·학식때나 로망으로 생각할 유흥을 즐기는 것이 BJ사회의 실상이라 할 수 있다.

'진짜 하나도 재미없어.'

술은 그냥 바 가서 마시는 게 제일 맛있다.

여자는 옆에 있어봤자 귀찮기만 한 존재다.

이런 자리를 재밌다고 여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허영심.

누군가 자신을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준다. 근본도 없고, 추잡하게 돈을 버는 이들이, 자존감을 채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좋든, 싫든 취향을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

집에서 콜렉션을 한 병 가지고 온 이유다.

"익태 형님."

"어, 왜 우리 에이스!"

"발렌타인도 좋지만 제가 괜찮은 거 한 병 가져왔거든요?"

"오~ 좋지. 근데 여기서 마시게?"

"콜키지 하면 되죠."

코르크 차지(Cork Charge)의 준말이다.

고객이 술을 직접 가져왔을 경우, 업장에서 디켄팅 등 서비스를 해주는 대신 돈을 받는다.

'일단 그러한 문화지만 한국에서는 그냥 세팅비+자릿값 받는 거지.'

보편적이지 않다 보니 안 해주는 곳도 많다.

2012년인 지금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 있다.

VIP 고객이고, 이미 매상도 올려줬다 보니 흔쾌히 진행된다.

"맥캘란 18년인데."

"뭐? 겨우 18년산?'

"형님도 아시겠지만 싱글 몰트라서 블렌디드 30년이랑 거의 동급이죠."

"아, 알지! 알지! 싱글 몰트는 어? 더 비싸잖아."

딱히 술알못을 속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케바케가 있지만 보통 한 단계 내지 두 단계 윗급이라고 본다.

'가격도 비슷하고.'

술의 맛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지적 허영심과 사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면 맥캘란 18년이 적절하다.

"오~~~ 향이 엄청 진한데? 입안에서 폭발하는 수준으로."

"역시 안목이 있으시네요. 싱글 몰트계의 발렌타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술이거든요."

"어쩐지 들어본 것 같기도 해! 이거 괜찮다."

실제로 굉장히 유명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맛도 호불호가 잘 안 갈려 입맛에 안 맞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해.'

위스키 시킨답시고 골든 블루 까는 순간 그 새끼 면상도 같이 까고 싶은 게 내 심정이었다.

발렌타인도 나쁘진 않지만 각 잡고 마실 거면 싱몰이다.

"정환이가 크루에 들어와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술 마실 때도 이렇게 재밌고."

"하하……,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서은이도 정환이 보고 싶다고 그랬거든."

"아 그래요?"

BJ업계에 적응하는 것은 어려울 것도 없다.

오히려 본진이 이곳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다.

'까먹고 있었네.'

하지만 당초 오게 된 데는 사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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