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22화 (122/846)

122화

이이제이

동조 심리라는 게 있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무심코 따라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식당에 갈 때.

북적이는 집에 굳이 줄을 서게 된다. 맛집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많으니까~.

우리 사회 전반에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자운 의과대학의 Dr. 문도 교수는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 흥미로운 현상이 파프리카TV에도 보인다고 밝혔다.

─철크루가 시청자 완전히 독식했네 ㄷㄷ

『현재 시청자 순위』

1. 철꾸라지_ ?25, 373명 시청

2. 윾신_ ?4, 343명 시청

3. 예능인[김군]_ ?3, 345명 시청

평일 방송이 무슨 2만 명대가 나와

└다섯 명이 하잖아

글쓴이― 감안해도 미쳤지

└그래서 이제 동시간대 못 킴ㅋㅋㅋㅋㅋ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BJ들이 있다.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갈기고, 궁둥이 팡팡 해서 내쫓아도 모자랄 놈들이 방송을 한다.

심지어 인기도 많다!

IQ 모자란 시청자가 그렇게 많은가?

그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기도 하다.

《I'm sorry. I'm just trying to show you this.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비판 의식을 빼앗는다.)》

남들이 보는데.

이렇게 많이 보는데.

문제가 없으니까 잘되는 거겠지~

이 광신 효과는 시청자가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더해진다.

평소 꺼림칙해 하던 사람도, 그냥 뭘 볼지 모르겠는 사람도 일단 클릭한다.

"끼요오오옷!!"

"아 진짜! 작작 좀 부수라고요!“

└ㅁㅊ 의자도?

└리액션 씹혜자ㅋㅋㅋㅋㅋㅋ

└이래서 철꾸라지 철꾸라지 하는구나……

└ㅊㄲㅇ

동조 심리에 의해 비판 의식이 옅어져 간다.

철꾸라지 특유의 자극성으로 인한 '재미'만이 남는다.

웃음이란 전파되는 특성이 있다.

시청자가 많자 그 효과는 곱절이다.

철꾸라지가 파프리카TV의 인기BJ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요즘 철크루가 보라 대세인가?

방송만 키면 기본 2만에

기존 BJ들 순식간에 하꼬 만들어버리네 ㄷㄷ

└이제 암?

└워낙 개쩌는 애들끼리 뭉쳤으니까……

└솔직히 별 건 없는데 보게 됨ㅋ

└ㅊㄲㅇ

최근 오정환과의 합방을 통해 그 기세가 더 높아져 간다. 대세 반열에 오르면 흐름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같은 목적을 가진 김군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이 새끼들이…….'

대국민 BJ오디션.

그 출연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당시만 해도 의도가 순수하게 보이기 힘들었다.

철꾸라지와 오정환의 수작이다!

자신의 눈에 흙에 들어가도 싫다.

최근에는 씻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떠오른다.

"형님 한동안 휴방 하는 건 어떠십니까?"

"솔직히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고,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한동안 쉬시는 게……."

김군과 아이들.

크루 내에서도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삼대장급 보라BJ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니들이 생각하는 걸 내가 모르겠냐고.'

그렇다고 도망을 택한다?

이를 좌시해줄 놈들이 아니다. 퇴물 프레임을 씌우며 이미지를 한없이 깎아내릴 것이다.

보라판이 가진 특수성.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만큼 걸린 것의 무게도 무겁다.

김군은 그 점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메뚜기도 한철인데 얼마나 가겠어? 니들이 좋은 콘텐츠를 짜봐. 금방 거품 꺼지지."

"그래도 그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보니."

"……."

이만한 과열 현상이 한없이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인방과 보라를 하루이틀 해온 게 아닌 김군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봤다.

'하, 씨발.'

이성적으로는 분명 그러하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일이 되면 냉정해지기 힘들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이 줄줄 샌다고 보는 것이 옳다.

방송 수익이 이전의 반이 안된다. 합방 제의도 건수가 심각히 줄었다.

이렇다 할 돌파구 없이 발을 동동 굴리던 차.

"형님, 전화 왔습니다."

"내 앞으로? 누군데?"

"오정환입니다."

"뭐?"

안부 인사가 걸려온다.

* * *

오디션 이후.

다섯 명의 철크루 멤버들과 합동 방송을 하고 있다.

'딱히 별 건 없지만.'

노하우를 살려 철저한 콘텐츠를 기획한다.

그런 철두철미는 엿 바꿔 먹은 지 오래다.

"시키면 먹는다! 시청자 행님들이 아무거나 1인분 보내주시면~ 다 먹어 치우는 콘텐츠거든요? 일단 제가 첫 빠따로 푸파 본좌의 위엄 보여드리겠습니다!!"

철꾸라지가 뭐라 뭐라 시끄럽게 떠든다.

평소 하던 푸드 파이트의 연장선격인 콘텐츠다.

1. 시청자가 음식을 배달로 시켜준다.

2. 시간 안에 먹어 치우면 Clear, 못 먹어 치우면 벌칙!

간단한 규칙이다. 그러면서도 재미 요소가 있다.

훌륭한 콘텐츠의 두 전제지만 사실 쉽게 할 수 있는 방송이 아니다.

─철빡이74호님, 별풍선 109개 감사합니다!

절대 못 먹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아아아아아―!!! 철빡이 니가 보낸나??? 이걸 사람 무라고 보낸나??"

―디진다 돈까슼ㅋㅋㅋㅋㅋㅋㅋㅋ

―캡사이신은 선 넘었지

―무 봤나? 디진다 아이가!

―그저 ^무^

일단 보내줄 시청자가 있어야 한다.

바람잡이를 쓴다고 해도 한두 번이지.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진행이 불가능한 콘텐츠다.

'그런데 시청자가 졸라게 많으면 돼.'

무려 2만 6천 명이 시청 중이다.

개중에는 큰손도 있고, 장난끼 많은 중손들도 숱하게 존재한다.

이렇듯 건수를 던져준다?

방송 참여에 욕심이 안 날 수가 없다.

소위 말하는 리액션 가성비가 끝내주기 때문이다.

"물! 물! 물!"

"여기 사이다인데 드실래요?"

"빠, 빠, 빠, 빨리!"

엄청 매운 음식을 BJ가 먹게 만든다. 그 총족감은 안 느껴본 사람은 이해 못 한다. 인터넷 방송이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재미다.

"끄아아악! 끄아아아악―!!"

"매운 거 먹은 사람한테 탄산을 주면 어떡해 병신아!"

"그래서 드실래요, 라고 물어봤잖아요."

―악마 새끼

―개씹악질ㅋㅋㅋㅋㅋ

―아니, 천연 사이다는 선 넘었지!

―사탄) 아, 이건 좀ㅎㅎ

물론 방송을 진행하는 건 결국 BJ다.

아무리 시청자들이 판을 깔아줘도, 살리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하지만 난이도는 확실히 줄어들지.'

시청자가 하라는 것만 해도 평타는 친다.

딱 평타로 끝내는 게 그럭저럭 일류BJ라면, 그걸 기반으로 터트리는 게 탑급BJ의 역량이다.

"마아아아아―!!"

"요즘 마라탕이 유행인데 마한 맛이 느껴졌다고 하네요."

"다음 니 차례인 거 알지? 함 보자."

딱히 악감정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방송 재미를 위함이다.

철꾸라지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두 번째로 도착한 음식이 이거지? 묵직~하네! 넌 이제 뒤졌다."

시청자들이 배달시킨 음식.

도착한 순서대로 까기로 했다.

2번인 내가 먹게 될 음식의 정체는.

─리아견775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내가 시킨 거네ㅋ 그 집 졸맛임!

"쪽갈비네. 나 쪽갈비 좋아하는데. 잘 먹을게요."

"마! 마! 마마마마마!!"

―열받아 뒤질라카넼ㅋㅋㅋㅋㅋㅋㅋ

―3분컷 씹가능이지

―철꾸라지 오열!

―정환이 뽑기운 보소

장난 치려고 보내는 음식이 있다면, 너무 맛있어서 같이 먹고 싶은 음식도 있다.

평소에 착하게 살아온 덕을 톡톡히 본다.

'괜찮네.'

짜악~ 하고 찰기 있게 떨어지는 살점이 쫀득하다.

시간 제한이 있어 음미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빠르게 먹어 치우고 손가락을 쪽쪽 빨며 여운에 잠기던 찰나.

띵동~♪ 띵동띵동띵동~♪

현관문이 시끄럽게 울린다.

무작위 배달이 오고 있기 때문에 그럴 만하지만, 누르고 있는 사람이 짜증이 엿보이는 박자다.

"아니, 저기요."

"결제된 거죠? 여기 놓고 가시면 되거든요."

"놓고 갈 건데, 다음부터 이런 거 시키면 블랙리스트에 올릴 겁니다!"

음식점 사장님이 직접 배달하러 온 모양이다.

한가한 시간대면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정이 좀 있어 보인다.

"치킨 무만 20개를 시키면 어떡해요? 치킨집이 치킨 무 파는 집인 줄 아세요?"

"죄송합니다 정말……."

"처음이니까 봐드리는 거지 조심 좀 하십쇼!"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킨 ^무^

―이건 빼박 준호 거네

―시청자 착한 것 봐~

여러가지 장난이 가능하다.

시청자가 방송에 참여한다는 것.

상상 그대로, 혹은 그 이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소리다.

'그래서 시청자 수는 중요해.'

고를 수 있는 콘텐츠의 폭이 달라진다.

시청자 참여를 전제로 짤 수 있으면, 정말 별거 안 해도 재미있는 방송이 가능하다.

─큰손와따마님, 별풍선 1009개 감사합니다!

캬~ ㅇㅈㅇㅈ

"큰손님 철구개 넘모넘모 감사합니다 앙 기모띠! 기모띠!"

"꺼어어어억!"

―치킨 무를 혼자 5개를 처먹네ㄷㄷ

―국물까지ㅋㅋㅋㅋㅋㅋㅋ

―역시 ^무^

―식초 냄새 ㅅㅂ

시청자의 센스.

BJ의 적절한 호응.

여기에 각자의 스토리와 엮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전부 네임드급BJ다 보니 호응이 어렵지 않다.

걱정이 된다면 단 하나.

아직 방송에 익숙하다고 할 수 없는 리아다.

─흠냐냐냐냥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헐 와사비 많이 넣어 달라고 했는데;;

"초밥 좋아하긴 하는데요……."

러시안 룰렛은 리아도 피해가지 않는다.

와사비가 이빠이 든 초밥이라는 걸 양심 있는 시청자가 이실직고 해온다.

'근데 어쩌라고.'

여긴 개인 방송이 아니다.

시청자들이 우쭈쭈 해주는 걸 바라면 안된다.

오디션에 합격한 게 끝이 아니라, 이 보라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 그럼 제가 먼저 먹을까요?"

"어, 그래도 돼요?"

"안돼요. 흑기사 그딴 거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악마

―오정환 일코 오졌었네

―지 까였다고 리아 조지는 거지ㅉㅉ

내가 어제 리아를 조지긴 했다.

오지 말라는데 와 가지고 귀찮게 하길래 본때를 보여줬지.

'근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얼굴 좀 반반하다고 봐줄 만큼 보라판이 만만하지 않다.

괜히 실드 쳐주고 그러면 시청자들한테 미운 털만 박힌다.

흑기사를 자처하는 준호를 제지하고, 초밥 한 판을 고스란히 먹인다.

"우웅!"

"입에 넣은 거 인정됩니까?"

"정식 푸파가 아니기 때문에 통과한 걸로 치죠."

와사비의 알싸한 매운맛에 눈물까지 흘리지만 훌륭히 완식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3만에 가까운 시청자들이 모두 보았다.

─흠냐냐냐냥님 별풍선 2000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ㅠㅠ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흠냐냥님!"

―우리가 감사하지

―슴골 ㅗㅜㅑ

―한 번만 더 숙여줘!

―크~ 사리기만 하는 여캠들이랑 완전 다르누

고생을 함께 하면 유대 관계라는 게 생긴다.

남자들은 군대 훈련소만 가봐도 깨닫는 감정이다.

'시청자가 많은 방송은 민심 관리를 잘해야 돼.'

개인 방송처럼 팬들에게 실드 받고, 강퇴하고 그런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할 때는 확실히 해야 되는데 어제 매운맛을 보여줬다 보니 매운맛을 잘 참아낸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보라 자체가 기본적으로 아무 말 대잔치다. 느낌 가는 대로 적당히 지껄이면 방송이 되지만.

"이제 제 차롄가요? 뭐가 나올지 두근두근하네."

그것이 방심해도 된다의 동의어는 아니다

같은 집단에서 서열이 매겨지듯, 같은 크루 내에서도 그런 게 있다.

퀘이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빼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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