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급 떨어지는 아이돌
보라판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심익태는 어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곱씹고 있다.
'확실히 퀘이는 쓸모가 없어.'
보라BJ들이 받는 수많은 별풍선.
그것은 바람잡이들의 노력과 알바생들의 홍보+여론 관리가 더해진 결과물이다.
반대로 그것 없이는 이런 B급 예능이 결실을 이루지 못한다.
세를 바쳐야 한다. 방송적 상부상조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컨트롤 안되는 이단아들이 주제를 모르고 날뛴다.
"너처럼 말이야."
"저요?"
"오빠한테 용돈 받고 싶으면 순종적으로 따라야지."
"네~ 히히."
그때마다 위아래를 알려줘야 한다.
오정환의 제안을 심익태는 대단히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요지는 간단하다.
퀘이는 방송 협력이 안된다.
김군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인재다.
'보라판 시청자의 통일도 가능하고.'
아무리 최근 저조하다 해도 김군은 김군이다. 보라판 삼대장으로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철크루에 들어온다면 몸집은 더더욱 커진다.
"그럼 그 퀘이라는 오빠는 어케 되는데요?"
"뭐긴 뭐야. 내 시선에서 Out이지."
"잔인해라……."
"이 판이 원래 그래. 잘 나가던 놈들도 한순간에 나락이거든."
서은은 이미 한 번 교육을 시켰다. 도도했던 태도를 죽이고, 고분고분한 고양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손때가 덜 탄 나이다. 기를 죽여 놔야 딴 마음을 못 먹는다.
업계 사정을 알려주는 건 그 일환이다.
"BJ 새끼들이 암만 나대봐야 오빠한테 찍히면 끝이야. 알겠어?"
"네~."
"오정환도 퀘이꼴 나기 싫으면 딴 마음 못 먹게 만들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인지시킨다. BJ들이 날고 기어봤자 손바닥 안이다. 오정환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오정환을 꼬시는 대가로 변제해준 건 원금뿐이다. 아직 이자가 남아있고, 서은은 한동안 잡무 일을 하며 갚아나가기로 했다.
'둘이 좀 진지한 것 같던데.'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난 금액은 아니다.
오정환에게 부탁한다면 갚아줄지 모른다.
그럼에도 손을 벌리지 않고 있다.
자신의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거나, 애인의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너 정환이랑 잘 돼가냐?"
"왜요?"
"아니, 진지하냐고."
"참견할 일은 아니신 것 같은데요."
"야 임마. 농담이야 농담~ 나도 정환이랑 잘 지내고 싶지."
새침한 반응에 정욕이 끓어오른다.
실실대던 년이 갑자기 정색을 한다면 대답은 들을 것도 없다.
'이년 봐라?'
둘의 사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끈끈하다.
그렇다면 이는 이용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옥죄는 족쇄로.
서은은 빚이 있다는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환은 서은 때문에라도 일을 고분고분 협력할 것이다. 자신의 친척 동생으로 알고 있으니까.
나중에 사정을 알고 헤어진다 하더라도 전여친이 험한 꼴 당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는 없다.
"너도 이참에 BJ 데뷔해볼래? 오빠가 밀어줄게."
"생각해볼게요."
"어른 말씀하는데 영혼 없이 대답하고……. 알따! 알따!"
서은도 이용 가치가 차고 넘친다.
여캠으로 성공하고도 남는 외모고, 데뷔하면 정환이 적극적으로 밀어줄 것이다.
'그 드라마인지 뭔지 찍으면서.'
그렇게 되면 일거양득.
두고두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지금은 튕기고 있지만 여캠들이 얼마나 버는지 알게 되면 시간 문제다.
'입냄새 나는 아저씨가 말 존나 많네.'
서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여캠들의 속사정이 어떠한지.
정환에게 들은 바가 있고, 족쇄가 채워질 일을 절대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귀담아 듣고 있는 이유. 돈이 아닌 목적을 위해서다. 내부에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 * *
딱히 김군과 밀회를 가진 건 아니다.
심익태와 이야기가 된 상태고, 그가 묵인한다면 리스크는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안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아무리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도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다.
실패할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 의심을 받게 된다.
이 새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냐?
그 경우 세컨드 플랜으로 선회할 생각이었다. 별 건 아니고 조금 더 길게 가는 방식이다. 다행히 이번은 성공했지만 언제든 고려해야 하는 선택지인데.
<오빠를 완전히 믿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저 보고 오빠 감시 잘 하라고……. 새로운 이야기 들으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서은이 자세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채무 관계가 남았다고 하지.'
그걸 빌미로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쪽에서도 돈을 회수해야 하거니와, 시꺼먼 속셈이 있기 때문은 따질 것도 없다.
순진한 여자애들이 어떻게 물장사를 시작할까?
그 첫 단추가 익숙해지는 것이다.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점점 더 늪 같은 세계에 빠져든다.
<오빠 아니었으면 저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
"근데?"
<저 오빠 거예요. 오빠 위해서 열심히 할게요 히히.>
"그래. 열심히 해."
그렇게 되기 직전에 빠져 나왔다. 살짝 제정신은 아니지만 말이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일상을 회복해가고 있다.
<오빠가 준 초커 너무 좋아요.>
"마음에 들어?"
<끈 조이면 오빠가 잡아주는 거 같아서 너무 좋앙♡>
"……."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
안전 장치를 걸어두었다. 하지만 독약에 가까운 처방이고, 남용하면 진짜로 망가질 수 있다.
'좀 심했나?'
아직 길들인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되면 복잡한 마음이 싹틀 수 있다.
너무 몰아세운 게 아닌지 아차 싶던 찰나.
<오빠 저 욕 좀 해주시면 안돼요?>
"실성했니?"
<제발요…….>
"하, ㅈ같이 생긴 년이라 그런지 ㅈ나게 밝히네. 잘 들어 이 ^%@$#%@야."
생각 이상으로 정상인 년은 아니었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노골적인 신음 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힌다.
'갔네, 갔어.'
맛이 간 동태 눈깔처럼 뒤집혀 있을 모습이 그려진다.
욕 듣고 젖는 년은 봤어도, 가는 년은 나도 처음이다.
"욕 듣는 게 그렇게 좋냐?"
<오빠한테만요! 오빠한테 욕 들으면 몸이 뜨거워져요…….>
너무 이른 나이에 알면 안될 자극을 알아버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이 딱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늦고 빠르고의 차이일 수도 있어.'
극한을 맛을 보여주고 딴 생각 못하게 만드는 편이 건전할 수 있다.
적어도 외모는 반반하니 정상적인 사회 생활은 문제 없다.
<오빠 근데……, 저 진짜 ㅈ같이 생겼어요?>
"……."
굳이 성형까지 안 해도 말이다.
견적 이야기를 꺼냈던 걸 은근히 담아두고 있었던 듯 말을 꺼내온다.
'밝히게 생기긴 했잖아.'
여기저기 노력할 곳이 많다.
물론 그것은 이상적인 기준에서고, 지금도 충분히 미형인 건 사실이다.
<저 외모 칭찬은 청순하다는 쪽으로 많이 듣는데.>
"그래서?"
<그냥 그렇다구요~.>
"계속 따먹히고 싶으면 관리나 잘해. 작 성공하면 가끔 써줄 테니까."
<제가 무슨 주문서에요? 히히.>
못생겼다는 말도 못생긴 애들한테나 욕이지.
평생 예쁘다는 말만 듣고 살아온 애한테는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다.
문제는 이런 폭언이 페티쉬가 됐다는 것이다.
"허벅지에 행주라고 쓰고 사진이나 보내봐."
<아 그건 생각도 못 했는데! 잠시만요…….>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한테 욕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지만 그 빈도가 줄었으면 싶다.
'스스로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지.'
대체 욕구의 일환이다.
잠시 후 카톡이 울리며 사진이 전송된다. 심심한 두 글자가 아닌, 창의성이 돋보이는 글귀를 정성 들여 적어두었다.
어떤 변기가 개인용이고, 장비 착용이 금지돼있고, 사이즈가 안 맞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바를 정자는 단독으로 쓰여있어 해석이 안된다.
피부가 붉어지는 경계선을 작품화했다.
「오늘 이러고 다녀야지ㅎㅎ」
“좋냐?”
「개좋아요!」
「지금 밖에 나왔는데 시선 앟ㅎㅎㅎㅎㅎ」
“들키면 뒤진다 니 인생이ㅋ”
「절대 안 들켜요!」
「저 철벽이거등여~」
새로운 취미를 찾은 모양이다.
무척이나 흡족한 듯 이모티콘으로 웃는다.
밝은 모습이 어울리는 나이대고, 재미있는 학창 생활을 보냈으면 좋겠다.
'내 학창 시절에도 저런 년이 한 명 있으면 재밌었을 텐데.'
여하튼 밑그림은 그려 놨다. 김군을 이용해 퀘이를 쳐부순다. 나에게 주어지는 리스크는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물론 아무리 섭외를 잘해도 중요한 건 계획이다. 다짜고짜 싸움을 붙이는 게 먹힐 리가 없다.
아주 간단하고 자연스러운 방법이 있다.
─오피셜) 퀘이가 직접 본 여캠 실물 TOP3
은화 : 캠이랑 똑같음. 얼굴 개작고 비율 연예인급
박이브 : 역시 근본. 진짜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 김현서 : 얼굴도 예쁜데 몸매 라인이 개쩜. 연예인 그 자체 +지금까지는 이 셋이었는데 지금 리아를 넣을지 말지 고민 중이다 ㄷㄷ└오 4대 여신은 이름값 하나 보네 └근데 이 새끼는 연예인 빼면 비유를 못함?
└어휘가 딸리나 보지ㅋㅋㅋㅋㅋ
└그래서 리아 넣냐고 안 넣냐고!
최근 리아한테 방송 어그로가 쏠리고 있다.
홍일점이고, 여캠인 만큼 이상할 것도 없지만 언제나 문제는 '정도'다.
'과열됐지.'
계기는 남자BJ들이 호감을 드러내면서부터다.
팬덤은 해당BJ에게 과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그 파급이 커뮤니티에도 나타난 것이다.
─철빡이로서 철꾸라지 형님 걱정된다……
슬슬 나이도 차고
이미지는 개씹막장이고
그래도 장가는 가야 되는데
이번 기회에 리아랑 어떻게 잘 이어주면 안되겠냐?
└ㅇㅈㅇㅈ
└리아면 형수님 쌉가능이지ㅋㅋ
글쓴이― 철빡이 민심 파악 완료
└철빡이 2년차지만 리아는 너무 예뻐서 아까운데 ㅇㅇ
철꾸라지의 방송국은 물론, 갠방갤 등지에서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이 화제가 조금만 더 커지면 써먹을 수 있다. 방송의 메인 콘텐츠로서 말이다.
공중파와 달리 사건을 가릴 필요가 없다. 이슈가 된다면, 어그로가 끌린다면 무엇이든 사용한다.
'그게 인방이지.'
물론 아직 부족하다. 어중간한 때에 인화를 해봤자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즉, 크게 키우는 작업이 선행된다.
간만에 개인 방송을 진행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