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화제는 단숨에 부상한다.
몇몇 과몰입 시청자들이 떠드는 수준을 넘어,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알게 되는 공통의 주제로 말이다.
"뭐어?! 급 떨어지는 아이돌? 어떤 미친 새끼가 그런 개소리를……. 아, 정환이가."
―분노 조절 바로 되누
―이걸 참아버리네ㅋㅋㅋㅋ
―리아에 대한 사랑은 거짓말이었나요??
―그저 ^무^
방송 주제에 어긋나는 채팅을 '어그로'라 부른다.
아무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내용이라도, BJ가 받아주지 않으면 그런 취급이다.
하지만 이제는 반전되었다.
오정환이 그 서두를 제대로 열어재꼈다.
오히려 떠들지 않는 쪽이 '어그로'가 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Q]퀘이충신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과장이라는 어그로들 뭐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렇게 말했는데
"어……, 와……, 모르겠다. 일단 치킨무 국물로 속부터 식힐게요."
특히 철크루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성화다.
이미 떡밥이 뿌려지기도 했거니와, 발언의 중심이 리아를 향해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오정환.
둘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심상치 않다.
한 번은 터졌어야 할 도화선이 드디어라고 보는 게 옳다.
─[Q]퀘장군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이 멀리해…… 방송적으로 이용만 하는 놈임
"저, 정말 그렇게 얘기했어요?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것 같은데……."
―너무 착해서 이걸 오해로 받아들이네
―오정환은 ㄹㅇ 비즈니스임
―그냥 처음부터 싹이 노랬어
―손절해!
머지않아 그 소식은 본인에게도 전달된다.
아는 사람이 수만 명이고, 떠드는 이가 수천 명인데 귀에 들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급 떨어지는 아이돌이라 그랬다구요? 급 떨어지는……, 급 떨어지는……."
모든 BJ들이 커뮤니티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게 아니다.
개중에는 아예 존재조차 모르는 이도 있고, 별 생각 없이 방송만 하는 리아도 그러하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그 생생한 표정과 반응이 전해진다. avi의 영상 파일로 짤막하게 편집되어 말이다.
└와
└넋 나갔네. 넋 나갔어
└리아 마음 고생시키지 마라……
└배신감에 치를 떨겠다ㅉㅉ
└오정환이 개씹새끼네
└지금 욕하는 분들 PDF로 캡쳐했습니다 ^오^
└오정환 알바 품? ㅋㅋㅋㅋㅋ
.
.
.
개인 방송 갤러리 최대 이슈로 떠오른다.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철크루의 BJ들도 사건에 대해 알 만큼 알게 되었다.
공지― 『긴급 공지) 철크루 내분……, 해명하겠습니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공지가 올라온다.
최근 개인 방송만 진행하고 있었던 만큼 순식간에 엄청난 반응이 쏟아진다.
[Best Comment]― 오정환 민심 떡락 가즈아~~!! 乃431
[Best Comment]― 진짜 진심으로 사죄해라…… 乃17
[Best Comment]― 제일 사고 안 칠 것 같던 놈이 사고 치네ㅋㅋ 乃173
한동안 심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지하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태가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 * *
합동 방송.
시청자 시선에서는 그냥 짜잔― 모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생각 이상으로.
'그냥 귀찮아.'
기본적으로 철꾸라지의 스튜디오인 자칭 철와대에서 이루어진다. 택시를 타면 1시간, 버스 타면 2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겪는 문제다.
사실 스케줄은 2차적인 문제로 물리적인 거리가 가장 난적이다.
그간 방송의 피로도 있어 모이지 않았는데 간만에 재미있는 화제가 생겼다.
─[Q]퀘이열혈님, 별풍선 109개 감사합니다!
대역죄인 등장했네
"예, 반갑습니다. 오랜만이네요."
"멍멍! 멍멍!"
―대역죄인ㅋㅋㅋㅋㅋㅋ
―해명해!
―그리웠다 리액션
―ㅊㄲㅇ
커뮤니티가 매우 불타고 있다. BJ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방송의 콘텐츠로 이어지게 되었다.
'뭐, 판을 깐 건 나지만.'
그럴듯한 화젯거리였다.
약간의 가공만으로 훌륭하게 완성되었다.
그것도 가장 원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아니 즈즈즈즈기요? 오정환씨?"
"예."
"지금 시청자들이 난리가~ 난 이유가 뭔지 모르세연? 대가리에 든 게 없으세연?!"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보라판에 발 담근지 10년차가 되지만, 여론이라는 건 불길과도 같아 어떻게 퍼질지 예측할 수 없다.
'맞불을 놓을 때도 조금만 잘못 계산하면 옆산에 번져버리잖아.'
화제가 겉잡을 수 없어질 가능성도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 줄타기와 같은 여론전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사고를 친다 고로 존재한다'.
나로 인해 주위가 변한다는 건 내가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명이다.
"저도 궁금한 게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
"뭐가요?"
"급 떨어진다고."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급 떨어지는 아이돌 느낌이라고 했지."
―그거나 그거나
―씹ㅋㅋㅋㅋㅋㅋㅋ
―진짜였네
―ㄹㅇ이라니까? 저 새끼 또라이임
그렇게 많이 사고를 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긴다.
시청자들의 뇌리에 잊을 수 없는 단어 선택을 하는 것이다.
여론은 사건의 본질을 보지 않는다.
시사·경제에서도 그럴지언대, 일개 가십거리에 진지를 먹을 리가 없다.
자극적인 쟁점에 시선이 팔리게 돼있다.
'물론 리아한테는 미안하지.'
딱히 연락을 하고 저지른 건 아니다.
말을 해버리면 리얼리티도 안 살고, 저지르는 맛도 떨어진다.
하지만 유대 관계가 돈독한 리아라면 이해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황송하네요."
"봐봐. 아무리 급이 떨어져도 아이돌인데."
"급 떨어지는 저와 말을 섞어주셔서."
"……."
단단히 삐진 듯 고개를 휙 돌리며 눈까지 피한다.
이런 귀여운 반응이 리아의 재미있는 점이다.
그 잼점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팔린다.
─리아♡악어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손절 하면 바로 열혈 담ㄹㅇ
"해야죠! 바~로 손절 때려야죠! 저런 쓰레기 새끼 데리고 있어봤자 뭐하겠습니까~ 아 근데 팬닉이 리아방이네……."
"피도 눈물도 없어요? 뭐 이런 별것도 아닌 일로."
"마아아아―!! 니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응 민심 ㅈ망
―철꾸라지한테 쓰레기 소리를 듣네ㅋㅋㅋㅋㅋ
―진짜 선 넘긴 했어
―사과를 하라고 ㅅㅂㅅㄲ
뭔 사과를 해.
나는 진실밖에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거짓 선동을 해온 무리가 심판을 받을 때다.
그렇다.
이참에 속 시원히 밝혀보자는 것이다.
해명 방송은 간판이고, 콘텐츠를 이어나갈 실상은 디테일이다.
"연예인급이라는 게 난 진짜 이해가 안 돼."
"난 너가 이해가 안 돼."
"여캠들 이쁜 거 맞아요 맞는데. 김태희, 송혜교, 전지현 같은 근본 라인이나, 수지, 아이린, 나연 같은 신흥 라인 연예인들과 비교를 해보라고요."
여전히 눈을 안 마주치시는 리아사마도 예쁘긴 예쁘다. 걸그룹 멤버 중 이름 잘 기억 안 나는 애급은 된다.
'이게 험담이 아니라니까?'
다른 여캠들은 이마저도 안된다.
그만큼 연예인과 일반인 사이에 세워진 벽은 높다.
현 시점에서는 정말 연예인급이라 할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누군데? 니 눈깔로는 누가 여캠 원탑인데."
"우리 봄이요."
"마아아아―!!!"
―봄버지 입갤ㅋㅋㅋ
―아 봄이는 킹정이지
―그 떡볶이녀?
―그저 ^급^
우리 봄이는 킹능성 넘쳐.
성장 과정을 조금만 케어하면 진짜 연예인 중에서도 탑급이 될 수 있다.
'능지가 좀 딸려서 그렇지.'
봄이에요 봄이! 봄이가 왔다구요!
이게 컨셉이 아니라니까?
평소에도 이러고 다녀.
솔직히 봄이가 조금만 못생겼어도 오쪼라고요~ 하면서 정색하고 딱밤을 때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기본적으로 귀여운 여자한테 한없이 약하다.
"그러니까 니 말을 정리해보자. 너는 로리콘이고."
"아니, 저는 시청자들이 하도 궁금해하니까 엄근진하고 객관적이게 말한 거지 사심은 하나도 섞여있지 않아요."
"그럼 남자BJ들이 봄이 꼬셔도 상관없겠네?"
"그럼 제가 죽여버리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리콘은 선 넘는데
―고등학생이면 다 크긴 했지ㅎㅎ
―아 봄이 그립다……
나도 그리워.
새로 맞춘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아장아장 뛰어다니는데 볼살을 꼬집어주고 싶단 말이야.
'머리도 깨물어주고 싶고.'
그렇게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게 흔한 외모가 아니다.
리아도 물론 반반하지만 봄이에 비하면 손색이 많이 있다.
"근데 그건 결국 너의 취향과 편견이잖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다섯 명이 진행하다 보니 예능처럼 분량 챙기는 것도 경쟁이다.
외모의 차등을 구분도 못하는 동태 눈깔.
퀘이가 자신의 차례라는 듯 입을 연다.
'뭘 알겠어.'
그냥 쭉빵하고, 라인 좋고, 얼굴 이쁘면 연예인급인 줄 아는데.
일반인 중에도 찾아보면 그런 애들 널려있다. 어딘가 한없이 부족해 보여서 그렇지.
부품이 좋다고, 완제품까지 우수한 건 아니다. 외모의 진정한 평가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부품을 보고 판단하는 게 바로 취향이라는 거다.
"솔직히도 아니고 리아님은 그냥 이쁘죠. 여캠 중에서 진짜 탑급 중의 탑이야."
"완전 동의."
"마! 개때끼야! 너 빼고 다 이쁘다는데~."
설명하기 참 난해한 부분이다.
비교군을 한 장소에서, 캠이 아닌 육안으로 확인시키는 게 아닌 이상 말이다.
'턱도 없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애초에 내 목적과도 거리가 멀다.
이미 이루었고, 시기만 잘 살피면 된다.
"그리고 개때끼야! 니 주제를 아세연!"
"당연히 알죠. 전 어디까지나 평가를 한 거니까."
"눈 드~~~럽게 높아서 이상형은 뭐 김태희가? 김태희 아니면 눈에 들어삐지도 않나?"
어디까지나 개개인에 대한 평가일 뿐이다.
나도 취향이 있고, 이상형이라는 존재는 따로 있다.
"저는 가슴은 D컵 이상, 목은 하얗고 가느다랗게 길며, 그만큼 허리가 얇고, 팔뚝과 어깨가 아담해 품에 쏙 안기면서도, 멀리서 봤을 때 호리호리해서 반할 것 같이 멋있는데, 혀를 삐죽 내미는 장난끼가 실소와 친숙함을 유도하지만, 미소를 지으면 한없이 고고해서 닿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여성이면 돼요."
"와~~ 상상 이상의 개또라이 시끼였네."
"이건 좀;;"
"작정하고 랩 준비해왔는데?"
―X발 외우기도 힘들겠다
―삐슝빠슝! 철꾸라지보다 또라이인 BJ가 있다?
―그냥 게이라니까
―예전에 말한 거에서 추가까지 됐네ㅋ
이상형은 어디까지나 이상형이다.
취향이 많든 적든은 개인이 알아서 할 영역이다.
'여하튼.'
노이즈 마케팅은 제대로 됐다.
시청자가 4만 명이 넘게 몰렸다. BJ오디션 이후 두 번째로 높은 흥행 기록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대로는 결론이 나지 않아. 시청자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다구리를 당하는 나도 아프다.
"저희끼리는 대화가 자꾸 평행선을 그려요."
"너만."
"그건 니 생각이구연!"
"그러니까 저희도, 시청자들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사람한테 판단을 맡겨봅시다."
별거 아닌 기획이다.
몰래 온 손님.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시작된 연출 방식으로, 이제는 하나의 대명사로서 널리 사용된다.
그런 만큼 진부하다.
인방에서 하는 시도라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다.
하지만 등이 가려울 때, 긁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 평소 출연에 이목이 모아진 사람이 등장한다면.
"여캠 전문가 김군님을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