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친구들끼리 싸우면 죽빵을 때리거나 손절을 친다.
하지만 각자의 팬덤이 있는 BJ들은 그런 저급한 방법을 쓰기 힘들다.
"그래서 뒷감당 하면서 싸울 수 있도록 복싱 체육관을 대여했습니다."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ㅋ
―스케일 뭔데?
―갓정환ㄷㄷ
―중계를 하랬더니 주먹이 운다를 찍고 있네
그렇다.
싸움임과 동시에 콘텐츠다.
BJ들간의 분쟁은 방송적으로 해결해 나감이 옳다.
'그래야 뒤끝이 깨끗해.'
과몰입 팬들이 많다는 것.
BJ들이 대화로 해결했다고 해도 온갖 추측이 난무할 수 있다는 소리다.
설사 유야무야 넘어가도, 나중에 가서 또 말이 나온다.
"와~ 지 일 아니라고 ㅈ대로 정하네."
"저는 구경만 할 거니까요."
"마아아아아―!!"
방식은 간단하다.
XTM의 인기 예능 '주먹의 운다' 시스템을 그대로 벤치마킹 해왔다.
'그냥 맞짱 까라고.'
언제까지 말로만 징징댈 건데?
애새끼들 싸움 마냥 중재하고 싶지 않다. 나는 유치원 원장도, 초등학교 교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키우는 애는 봄이 하나로 족하다.
어른이들은 어른이들답게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맞짱이 말싸움보다 100배는 재밌다.
"이게 반대로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서로 얼굴 한 번씩 봐보세요."
"어, 왜?"
"존나 못생겼네."
"솔직히 다 ㅈ밥이잖아요."
""…….""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지 ㄹㅇ
―저 지방 덩어리 샌드백
―서로가 서로에게 ㅈ밥이눜ㅋㅋㅋㅋ
전문적으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못 싸운다.
스파링 장비도 갖추고 임할 것이기에 안전상으로도 문제가 없다.
"그리고 멋있는 모습 보여줄 수 있잖아요. 저기요."
"……."
"저기요?"
"저 불렀어요? 급이 떨어져서 잘 안 들렸나 봐요~."
여전히 삐진 듯한 컨셉을 유지하고 있다.
츄리닝 차림의 리아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
'여자 츄리닝은 검은 아디다스가 진리인데.'
자기 마음대로 회색을 입고 왔다.
다음에 반드시 주의를 줘야 할 듯싶다.
"강한 남자 좋아하죠."
"약한 것보단 낫겠죠."
"아 그런 애매한 대답을 하면 분위기가 안 살잖아!'
"어쩌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네도 싸우네
―'급 떨어지는 아이돌'
―그냥 데스 매치 하면 안됨?
내 개인 재량으로 포상을 정했다.
형식적인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물어본 거다.
"우승자는 일일 데이트. 물론 방송 키고."
"오~~!"
"제 의사는요?"
"의사는 병원 가서 찾으시구연."
자꾸 방해하려 하면 나중에 혼내준다.
째려보자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이게 다 방송적으로도 연결이 되는 거야.'
'주먹이 운다' 어그로에 이끌려온 수만 명의 시청자. 이들이 그대로 데이트 방송에 유입되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걸린 무게는 가볍지 않다. 개인 방송의 흥행만 놓고 봐도 말이다.
하지만 진짜는 역시 사심이다. 우승할 작정으로 이 자리에 서있는 BJ도 분명 있다.
"1라운드 진행하겠습니다. 와꾸대장준호 vs 퀘이!"
"나부터야?"
"아 X발 긴장되는데……."
장비 착용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준호가 110kg이 넘어가는 육중한 몸으로 링 위에 오른다.
'미안하게 됐지만.'
각본은 이미 쓰여있다. 배우는 연기를 해야 한다.
철크루의 원년 멤버이며, 심익태의 입김도 닿아있는 그는 거부할 입장이 아니다.
속내를 알고 있기에 측은한 감정이 든다. 안타깝게도 보라판은 원래 피도 눈물도 없다.
글러브를 툭툭 두들기며 폼을 잡아봤자 3분 후면 바닥에 누워있을 것이다.
"야 라운드 걸!"
"나?
"나는 반말이고."
"급 떨어지게 말하고 싶었어요."
―라운드 걸ㅋㅋㅋㅋㅋㅋ
―얘네 둘이 제일 시급한데
―맞짱 함 까나요?
―ㅊㄲㅇ
그럼에도 형식은 중요하다.
이래 봬도 방송은 디테일하게 짜는 편이다.
츄리닝의 상의 지퍼를 쓱 내리자 볼 만한 자태가 드러난다.
─[Q]퀘이회장님, 별풍선 1009개 감사합니다!
라운드 걸은 킹정이짘ㅋㅋㅋㅋㅋ
그래야 그 안에 굵직한 계획을 숨기기 좋으니까.
설사 연기가 조금 서툴러도 시청자들의 화제는 이미 안드로메다에 가있는데.
"오~ 가드 단단한 거 봐."
"옆구리……, 저건 좀 아프겠다."
관전을 하는 철꾸라지와 김군이 혀를 내두른다.
생각 이상으로 격하게 치고 박고 있다.
준호가 거의 일방적으로 맞긴 하지만.
'그래도 체급 차이라는 게 있어서.'
키는 퀘이가 조금 더 크긴 해도, 몸무게는 준호가 압도하는 수준이다. 일반인 싸움에서는 체급 차이가 깡패다.
하지만 그것도 싸움을 할 줄 알 때의 이야기지. 잔뜩 쫄아 있으니 샌드백 신세나 다름없다.
괜히 버티지 말고 적당히 쓰러지면 된다.
―아니 미쳤네
―와ㄷㄷ
―저러다 실려가는 거 아님?
―그냥 ㅈㅈ쳐!
혹은 패배를 선언하거나.
설사 연기라고 쳐도 과하다.
너무 심하게 맞아서 때리는 쪽이 미안할 정도다.
"그만 버텨. X발! 내가 너 때리고 싶겠냐?"
"하아……, 하아……, 하아……."
들리지도 않는 듯 숨을 몰아쉬고 다시 자세를 잡는다.
이러다간 진짜 기절할 때까지 하겠다.
채팅창의 민심을 확인한 철꾸라지와 김군이 링 위로 올라가 뜯어 말린다.
─Moo. 별의그대님, 별풍선 1009개 감사합니다!
졌잘싸……
―죽다 살았네
―철꾸라지가 리액션을 안 하다니
―X발 ㅁㅊ;;
―준호는 ㄹㅇ 진심이라니까?
남자의 싸움.
다소 우습게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리스펙트 하는 채팅들과 함께 수많은 별풍선이 우르르 떠오른다.
'야…….'
입을 다물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조금 얕봤던 걸지도 모른다. 리아에 대한 사심이 생각 이상으로 진중했던 모양이다.
나는 기획을 한 거지 명령 권한은 없다. 다른 콘텐츠였어도 그는 패배의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하지만 싸움 쪽으로 가닥을 잡은 데는 책임감을 느낀다.
가드를 올린 팔은 물론이고, 타격이 누적된 얼굴도 부어올랐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원래 부어오른 얼굴이라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니가 가서 물 좀 줘라."
"내가?"
"팅길 시간 없으니까 빨리."
"네~"
리아가 스포츠 물통을 들고 링 위로 올라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1라운드가 끝이 난다.
"와 이겨 놓고 찜찜하네."
"두 분 다 진심이 느껴지는 좋은 싸움이었어요."
"아니, 근데 진짜 눈빛이……. 눈빛이 미쳤다니까? 시청자 형님들이 그걸 봤어야 했는데."
남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세 번째.
싸움 이야기로 잔뜩 가오를 잡는다.
승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게 아무리 주작이라도.'
지금은 잔뜩 기분 좋아도 된다.
이윽고 라운드 걸이 다시 링 위로 올라간다.
철꾸라지 vs 김군의 2라운드가 막을 오른다.
"1라운드가 너무 격했어서 이번에는 룰을 정하고 하죠."
"어, 어떻게?"
"남자답게 클린 히트 한 방! 어때요?"
연기를 해야 하는 철꾸라지가 잔뜩 긴장해 물어온다.
앞선 싸움이 워낙 격렬했던 탓에 어설프게 하면 주작이라는 사실을 들키기 때문이다.
'주작이 주특기니 알아서 잘하겠지.'
적어도 이 둘은 피 튀기게 싸울 일이 없다.
슈퍼에서 사온 콘소메 팝콘을 뜯는다.
"내가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저도 줘요!"
"공손하게 말하세요."
"정환 오빠 저도 팝콘을 먹고 싶사옵니다~."
"솔직히 철꾸형은 리아한테 사심 없어 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시트콤도 재밌네
―철꾸는 그냥 웃기려고 나온 거지~
―ㄹㅇ 팝콘각
실제로 경기는 딱히 박터지지 않는다.
웃기려는 철꾸라지와 빨리 끝내려는 김군.
사각의 링 위를 원숭이처럼 도망 다니며 약만 올린다.
'저럴 줄 알았어.'
그렇다고 일부러 맞아주는 기색은 없지만 시청자들의 눈에 난잡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미리 떡밥을 던져둔 것이다.
"마아아아아―!!"
"아 진짜 한 대만 더 때리면 안되냐?"
"싸움 끝났고요. 승자는 김군!"
주먹이 운다.
방송 어그로를 극대화하고, 퀘이와 김군의 1 대 1 매치를 성사시키기 위해 기획한 콘텐츠다.
두 개의 목적을 훌륭하게 성공시켰다.
「보라) 오정환. 철크루 사심충 정리빵 '주먹이 운다' 찍습니다」
? 본방 : 2109 (PC: 1002/ MOBILE: 1107)
? 중계방 : 38, 575
? 누적 시청자 수 : 163, 892
오늘 방송은 내 방송에서 진행된다.
그에 따라 분배되는 파이의 양도 커진다.
방송이 흥행하면 흥행할수록 내 지갑이 두둑해진다는 소리다.
'그런 부차적인 수익은 둘째 치고.'
이런 류의 퀘스트 방송은 쩐주에게 돈을 받는다.
착수금만 해도 별풍 수익을 웃돌며, 성공 보수는 무조건 그 이상이다.
보라판은 거품이 껴있다.
오고 가는 액수의 단위가 다르다.
후하게 보상해야 BJ도 할 맛이 나고, 쩐주도 더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결승까지 맞짱 깔 건 아니지?"
"그게 간단하긴 한데."
"와~ 이 새끼 지 일 아니라고 진짜!"
"제 일 아니긴 한데 그래도 취지는 살려야 하니까."
싸움으로만 끝내면 재미는 있겠지만, 나중에 딴 소리가 안 나오리란 보장이 없다.
사랑 싸움을 너무 재미로만 푸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무엇보다 결승전은 주작이 불가능하잖아.'
저 김정은 닮은 새끼가 진짜로 처맞고 쓰러지면 어떡해.
지고서 핵버튼이라도 누르면 어떡하냐고.
가만히 있어도 뒷목 잡고 쓰러질 거 같은 초고도 비만이다.
그렇기에 준비했다.
결승전 콘텐츠는 진심으로 간다.
각자의 방송에서 1시간가량 짧은 데이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왜 자꾸 제 의사는 안 물어봐요!"
"의사는 병원 가서 찾으라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병원에 보내버릴 눈빛인데
―리아 빡쳤누
―근데 이건 좀 선 넘었어 ㅡㅡ
급 떨어지는 아이돌이 땡깡을 부려온다.
마음 같아서는 무시하고 싶지만, 시청자들의 민심은 너무 거스를 수는 없다.
'단순히 시청자만 보는 게 아니라.'
리아방의 열혈들. 그리고 열혈이 되고 싶은 이들.
큰손들의 입김은 BJ 입장에서도 좌시하기 힘들다.
평소면 모를까. 이렇듯 퀘스트를 수행할 때는 특히 말이다. 너무 순순히 수긍하는 것도 맛이 안 나던 참이다.
─큰손두둥등장님, 별풍선 300개 감사합니다!
진 쪽이 리아 소원 들어주기 어떰? ㅋㅋ
"진 쪽이?!"
"와 이건 진짜 굴욕적인데."
"음~ 제 생각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끼요오오옷―!!"
―씹굴욕이짘ㅋㅋㅋㅋㅋㅋㅋㅋ
―NTR ㅗㅜㅑ
―이걸 시청자가 살리네
―집도 사줌?
물론 현실성이 있는 선에서 말이다.
한 시청자의 적절한 참여가 방송의 묘미를 살린다.
'인방은 시참까지 포함해서 진행하는 거니까.'
별풍선을 펑펑 쏴주는 큰손도 중요하지만, 방송 참여에 욕심을 내는 중손도 못지 않게 필요하다.
건수를 하나 짜내어야 했는데 마침 잘되었다.
이번 방송의 목적. 퀘이를 인방판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손에 넣었다.
"그럼 먼저 퀘이 님부터 갈까요?"
"나부터?"
"아 물론 불편하면 동전 던지기 해도 돼요."
"괜찮아, 괜찮아! 김군 님은요?"
"그렇게 하지. 나도……, 준비할 게 좀 있고."
빌드업만 잘 짠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쩐주들도 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으니 뒷감당도 걱정 안 해도 된다.
'아파 이 년아!'
자꾸 허벅지를 꼬집어오는 리아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