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데이트대전
오정환이 던져온 제안.
퀘이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싸움을 할 때, 아픈 것은 당연히 맞는 쪽이지만 때리는 쪽도 사실 만만찮게 힘들다.
더욱이 준호의 맷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110kg에 달하는 거구.
어지간한 샌드백 하나 크기를 미친 듯이 타격했다.
그 피로감에 아직도 팔이 덜덜 떨릴 지경이다.
"안 힘들어요?"
"헬스 한 타임 뛴 정도? 이 정도 가지고는 우습지."
"와~ 평소에 운동 하시나 봐요."
"만져볼래?"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
―은근히 근육 있네
―그냥 톡ㅋㅋㅋㅋ
―분위기 너무 달달하다ㅎㅎ
하지만 여자 앞이다.
그리고 승부를 하고 있다.
퀘이는 김군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미친놈이 맨날 껄떡댄다며?'
30줄 처먹은 놈이 여캠 끼고 노는 것부터가 꼴불견이다.
그런데 그 여캠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개판이다. 자꾸 터치 욕심을 낸다.
그게 다 방송적인 거라고 웃어 넘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밥맛이고, ㅈ같기 그지없다. 주제에 맞게 닳고 닳은 애들한테나 꼬리 치면 몰라.
리아는 다르다.
퀘이는 이미 그녀에게 푹 빠져버린 상태다.
"조금 이르긴 한데 밥부터 먹을까?"
"밥이요?"
"아까 보니까 팝콘 주워 먹고 있더라고~."
"헤헤 배고파서."
혀를 빼꼼 내밀며 수줍어하는 모습이 이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츄리닝 차림임에도 매력이 전혀 바래지 않는다.
'아 진짜 내가 지금까지 사귄 애들은 뭐냐.'
오정환이 장황하게 설명하던 연예인급.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는 걸 곱씹게 된다. 가까이서 의식하자 모르기도 힘들 정도다.
일단 라인이 이상적이다. S라인, V라인 이전에 골격부터가 섹시하다. 무엇보다 헐렁한 츄리닝으로도 감출 수 없는 살덩이.
"우리 가까운데 가요."
"왜? 아는 집 있어?"
"아니, 저…… 츄리닝 차림이라."
"오빠 차 있다. 키 보이지?"
―오 벤츠!
―심지어 e클임ㄷㄷ
―금수저는 다르지
―퀘이 준비성 보솤ㅋㅋㅋㅋㅋㅋㅋ
저게 다 자연산이라 생각하면 우리 몸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머니께서 어째서 유기농 식품을 따졌는지 마음속 깊이 이해가 간다.
"카메라맨도 태워주나요?"
"차 안 갖고 왔어요?"
"찍어야 되기도 하고 저 뚜벅이라."
"아~."
"그래도 운전은 해드릴게요."
저렇게 빈티 나는 남자는 낙점이다.
데이트 흐름을 끊기까지 하며 섬세함까지 부족하다.
'현실 연애는 드라마가 아니야.'
독특한 보라를 추구한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현실 연애는 평소에 잘해야 한다. 카메라에 비치는 찰나의 세상과는 다르다.
내 안에 너 있다.
그런 닭살 돋는 멘트가 만에 하나 통해도, 마음이 흔들리는 건 잠깐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남자는 외모, 재력, 성격 이 세 개를 챙겨야지.'
20대에 벤츠 e클 타는 남자.
외모는 남캠을 하고 있는 BJ다.
성격 또한 충분히 어필이 됐을 것이다.
약간의 단서로 허기짐을 유추한다. 여자는 이런 사소한 거 하나에 감동 받는 동물이다.
끼익!
목적지에 도착한다.
자주 가는 레스토랑이 있는 장소다.
이러한 준비성도 반드시 요구되는 철학이다.
"와…… 비싸 보이는데."
"리아랑 오는 건데 이 정도는 와야지."
"이런 곳은 차려입고 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나 여기 단골이야."
고기를 메인으로 하는 코스 요리 전문점이다. 人당 20만원은 기본으로 깨지지만, 그만큼 효과가 탁월하다.
여자를 꼬실 때 말이다.
이렇듯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이 직빵이다.
그리고 살짝 아는 척을 얹어준다.
"디너 시그니처 코스 있잖아요. 거기에 추가를 좀 하고 싶은데."
"예, 사이드도 있고 원하시는 특수 부위로 교체도 가능합니다."
"아 저번에 특수 부위 맛있더라고요!"
"드시면서 추가도 가능하니까 우선 부위 업그레이드만 진행할까요?"
"예,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어두운 방.
고급스러운 조명.
만지면 큰일 날 것 같은 술병들과 조각들.
룸에 들어가면 얼어버린다. 퀘이도 처음에는 떨떠름하게 먹고만 갔다. 같이 왔던 형님이 얼마나 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남자는 경험이지.'
비싼 레스토랑에 왔다고 한들.
얼타고만 있으면 여자 입장에서 깬다.
수월하게 메뉴를 주문하는 것만으로도 데이트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어, 퀘이 왔어?"
"네, 형님! 또 왔습니다."
"오~ 엄청 이쁜 분이랑 오셨네. 잘해드려야겠다."
그리고 인맥.
워낙 단골인 탓에 매니저와도 안면을 텄다.
올 때마다 여자랑 왔다 보니 그 점을 잘 신경 써준다.
"헤헤 안녕하세요."
"같이 헬스하고 와서 차림이 이런데 괜찮죠?"
"괜찮습니다! 저희가 룸을 잡아드리다 보니 드레스 코드를 그렇게 따지진 않아요. 근데 옷걸이가 워낙 좋으셔서 츄리닝이 드레스 같으신데요?"
"아~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친한가 보네
―드레스 코드가 뭥미
―퀘이는 진짜 사는 세계가 다르다 ㄷㄷ
자리를 세팅해주며 청산유수로 분위기를 띄워준다.
하고 많은 레스토랑들 중에서 굳이 이 집을 단골로 삼은 이유다.
'이미 넘어왔어.'
사실 퀘이에게 있어 연애란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놀이에 불과하다.
자신의 스펙을 이용해 꼬시면 십중팔구 넘어오게 돼있다.
하지만 쉽게 꼬신 만큼 쉽게 질린다. 보다 가치가 있는 사람과 특별한 연애를 해보고 싶다.
준호의 필사적인 투혼은 퀘이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제가 잘라드릴게요."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스테이크가 좀 커서."
그렇게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 자신이 채간다면 분명 재미있을 것이다. 질투는 물론 시청자들의 관심까지 독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솔직히 너한테는 버거워.'
만에 하나 사귀었다고 치자.
정말 하늘이 도와서 사귀게 됐다.
데이트도 하고, 기념일도 챙겨주고, 가족들한테 소개도 해줘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미스 매치다.
그에 반해 자신과 리아는 완벽하게 어울리는 한 쌍이다.
─바다의왕자님, 별풍선 3333개 감사합니다!
선남선녀네 커플ㄷㄷ
"아!"
"리액션인데 기분 나쁘셨어요?"
"괜찮아요. 뭐 볼이니까……."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
―기습 뽀뽀
―타이밍 보소
―역시 퀘이야. 반응할 틈을 안 주네!
입술의 모양의 숫자 3.
333개와 3333개는 뽀뽀 리액션을 하는 게 보라판의 전통이다.
상황도 어색하지 않고, 분위기도 충분히 달아올랐다.
'지출이 조금 뼈아프긴 한데…… 수수료 정도는 감수할 만하지.'
이렇게 적절한 때, 적절한 숫자가 뜨고, 이를 반응하는 것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은 힘들다.
직원인 명수한테 지시를 했던 사항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흘러간다. 이 같은 방식으로 못 꼬신 여자는 없었다.
퀘이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도 않았다.
* * *
개인 방송 갤러리.
리아를 두고 일어난 네 BJ들의 사랑 쟁탈전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걸 진짜 싸운다고?????
─오정환 설계력 ㅁㅊㄷ ㅁㅊㅇ
─환피셜) 내 일 아니라서 ㅈ대로 정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안 그래도 기대를 모았던 이슈다.
오정환의 콘텐츠 진행 능력이 얹어지며 갠방갤은 철크루 중계 갤러리로 변모한다.
처음에는 장난스러웠다. 정말로 사랑하면 방송으로 싸우지 않겠지.
그 뻔한 예상은 1라운드의 격돌과 함께 산산히 부서졌다.
─사랑을 위해 싸운 한 남자의 처절한 혈투……
비록 싸움에서는 패배했지만
당신의 진심은 모두가 기억할 것입니다
―1990.05.07 ~ 2012.3.29 ―
RIP 와꾸대장준호
└왜 죽이누
└안 죽었어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ㅋ
└그립습니다……
└그저 ^무^
너무 치열했기 때문이다.
모바일 방송 특성상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세라는 게 있다.
BJ들은 당연히 배우가 아니다. 헛짓거리를 하면 티가 안 나기도 힘들다.
들어가는 펀치의 속도, 타격음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진실을 가리켰다.
─준호는 진짜 불쌍하긴 한데
만에 하나 리아랑 사귀게 되었으면
둘이 뽀뽀도 하고 그럴 텐데
치킨무 국물 먹던 입으로
아……
└우엑
└선 넘네
└입에서 쉰내 날 듯
└응원은 하는데 현실성은 ^무^지
가해자이자 승자인 퀘이의 생생한 경험담까지 더해지며, 갠방갤 민심은 준호를 애틋하게 응원했다.
하지만 패한 건 패한 거고 승자간의 최종 결정전이 진행된다.
퀘이와 김군.
양쪽 다 여자에 관해서라면 둘째 가라면 서럽다.
1시간가량의 짧은 데이트는 너무 차고 넘쳤던 것이다.
─쿤견 오열) 이미 퀘이가 이김ㅋㅋㅋㅋㅋㅋㅋㅋ
외모
퀘이 > 김군
재력
퀘이 = 김군
성격
퀘이 > 김군
30살 틀딱이 비빌 구석이 돈밖에 없눜ㅋㅋㅋㅋㅋ
└심지어 돈도 퀘이가 압살ㅋ
└퀘이 금수저잖아……
└응 아니야 응 아니야 응 아니야 응 아니야 응 아니야 응 아니야 └ㅊㄲㅇ
반응은 폭발적이다.
일단 외모부터가 선남선녀. 가만히 돌아다니기만 해도 어울리는데 여자를 다루는 능력까지 뛰어나다.
자신이 어째서 남캠인지.
그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배려도, 준비도, 데이트 코스도 완벽에 가까웠다.
─기습 키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보) 리아 열혈 한강각
─아 필살기를 벌써 박누
─볼 뽀뽀니까 봐준다 퀘이야
.
.
.
심지어 필살기까지 작렬한다.
식사 후 남은 10분 동안 달달한 데이트를 진행하며 갠방갤의 여론을 확실하게 사로 잡았다.
─분석글) 퀘이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보는. EU
덮견, 쿤견 편 가르는 글이 아닌 건설적인 분석글임
1. 식사라는 카드를 써먹음
상식적으로 보고 대처할 수 있는 후공이 좋을 것 같은데 퀘이는 굳이 선공을 택함그 이유가 이거였던 거지 밥은 한 끼밖에 못 먹고, 김군은 말문 트기 가장 좋은 식사 카드를 쓸 수 없음
2. 나이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음
선배이자 어른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김군보다 또래인 퀘이에게 끌리게 돼있음이외 여러가지 많지만 추천글에 많이 올라왔으니 굳이 쓰지 않음└네 다음 덮견└또 여론 덮으려고?
└쿤견들 최후의 발악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옳은 소리 특) 이 악물고 반박함
방송은 계속 진행되는 중이다.
오정환이 스마트폰과 연동된 카메라를 들고 김군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민심이 기울었다. 쉽게 반전될 것 같지 않다.
분명 확고하게 굳었다고 생각된 여론이었다.
"아……, 진짜 어디까지 부르는 거예요. 가는 시간이 더 들겠네."
"미안하다. 일단 내가 아이스 커피 주문해 놨거든? 한 잔 빨면서 가자."
"그것보다 택시비나 주세요."
"이 크루는 경비 같은 것도 없어?!"
"있겠어요? 크루장이 철꾸라지인데."
―아ㅋㅋ
―간장만 처마실 줄 알지……
―준호처럼 패기 있게 싸우지도 못하고 ㅉㅉ
―그래서 뭐 하는데?
택시를 타고 한참을 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
대체 무엇을 준비했길래 사람을 먼 곳까지 부르나. 유명한 유원지나 리조트 같은 곳일 거라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삭막하다. 즐거워 보이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커피를 빨며 한참을 걸어 도착한 장소는 컨테이너로 된 허름한 창고였다.
"여기가 제가 처음으로 방송을 시작했던 곳이거든요."
김군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자신의 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