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집, 이라기 보다는 창고.
실제로 지금은 한 음식점의 식자재 보관소로 사용되고 있다.
"제가 여기서 살았었거든요 와……, 그때도 창고 같다고 느끼긴 했는데 진짜 창고가 되어있네."
―4년 전이네
―뉴비특) 어리둥절
―이때 힘들었지ㅋㅋㅋㅋㅋㅋㅋㅋ
―김군 코갤러 시절이네?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보라판 삼대장이라 불리며 어마어마한 수익을 자랑하는 김군이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이렇게 낡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했다.
"월세 10만원 짜리! 여기서 파프리카TV를 시작했는데 여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죠."
KBS 공채 개그맨 출신.
연예인으로서 화려하게 대중 앞에 나섰다.
유명 프로그램에도 출연했고, 자신도 성공의 길을 걸을 것이다.
인생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는 프로그램마다 묻힌다. 출연 제의도 안 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고자 시작한 게 BJ였다.
─이차함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그때 50명만 봐도 많이 보는 거였는데ㅋㅋ
"그때를 기억해주시는 분이 있구나~ 10따리! 100따리 되면 울고! "
모바일 방송도 없던 때고, 카메라 같은 장비도 있을 리가 없으니까 노트븍을 들고 밖에 나가서 방송을 했다.
구구절절한 과거 회상을 늘어놓는다.
"가스랑 전기세 낼 돈이 없어서 신청을 못했거든요."
"헐……,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3개월까지 경고 주다가 4개월차부터는 끊어요. 단전이라는 것을 살면서 처음 겪어봤어요."
―Latte is Horse
―힘들었겠네
―그래도 그때는 사람 같이 생겼었지
―먹고 살 만하니까 김정은이 돼버렸누
그 어렵다는 방송 3사 공채도 합격한 개그맨인데!
신세 한탄을 하면서 개인 방송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특기와 방송 경력을 살릴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쳤을까 모르겠는데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요."
"와……."
"날씨가 습하면 바퀴벌레랑 친구 되고, 컨테이너니까 푹푹 찌고, 겨울에는 추운데 가스도 끊기고!"
리아의 입장에서는 흥미롭다.
그런 삶이 있다는 것도, 대단한 선배BJ인 김군이 그토록 고생을 했다는 사실도.
평소였다면 흘려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눈앞의 증거물이 생생하다.
시청자들이 증언까지 나오자 몰입하게 된다.
"김군 오빠도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구나."
"나 흙수저야. 진짜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어."
―퀘이 저격ㅋㅋㅋㅋㅋ
―그 금수저는 지가 이룬 것도 없으면서 잘난 척하지
―이게 남자다!
―덮견들 덮어보려 하지만 어림도 없죠?
이야기에 말이다.
지금껏 멀게만 느껴졌던 김군이 자신의 시작과 별 다르지 않았음을 깨다는 과정이다.
'잘 돼가네.'
그 스토리텔링.
어제 하루 단톡방에서 어렵게 짜낸 것이다.
내가 주제를 던져줬고, 김군이 그에 맞춰서 준비해왔다.
"솔직히 제가 좀 불편하죠?"
"헤헤……."
"괜찮아요. 신인들은 다 절 어려워하더라고요. 저도 사실 이렇게 별거 없는 놈입니다."
달달함이라고는 1도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어색하기만 했던 선후배 사이에서 벗어나 유대 관계가 형성된다.
'여자와 남자는 시야가 달라.'
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느낀다.
이런 과거사를 알게 됐을 때. 남자가 느끼는 건 십중팔구 '존경'의 감정이다.
여자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지만, 한 가지 반드시 눈여겨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꿈'이다.
─이차함수님, 별풍선 1004개 감사합니다!
우리 김군……, 30살 노총각에 성격도 별로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내가 성격이 그렇게 나쁘진 않아!"
"재밌는 분이시네. 알겠습니다~."
롤판에 DRX라는 팀이 있다.
2020년에 리빌딩 되자마자 엄청난 신규 팬덤을 몰아왔다.
특히 여성 팬덤의 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e스포츠에서 여성 팬덤 유입이 진짜 힘든데.'
감독과 선수들이 하는 이야기가 여성팬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과, 팬들과의 솔직한 소통이 키워드였다.
농담으로 치부할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 야망을 중요시 생각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금수저에게 여자는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
'어른이의 연애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거지.'
물론 있다. 연애는 분명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되니 말이다.
하지만 호감을 목적으로 한다면 진실성 있게 접근해야 함이 옳다.
골빈년들 꼬실 때처럼 해서는 안됐다는 소리다. 리아가 만약 스펙만으로 남자를 봤다면 나와의 관계를 바랄 일도 없었을 테니까.
"미안. 지루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했죠?"
"아뇨, 재밌었어요."
"다리 아플 텐데 쉴 만한 데로 가죠. 시간도 많이 안 남았고."
1시간가량의 짧은 데이트.
무엇을 표현할지는 개인의 자유다.
김군은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보여주는 걸 선택했다.
'어렵게 살았다고 악행에 면죄부가 붙는 건 아니지만.'
썰 자체는 진짜일 것이다. 다수의 증인을 알바로 고용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보라판에서 행한 부정과 병역 기피 등이 합리화되진 않는다.
언젠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잡초.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대의를 위해 지금은 목표를 통일할 때다.
* * *
방송에 있어 어그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어그로만으로 탑급의 BJ가 된 이들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방송의 내용을 평가하는 흥행은 결국 질적인 측면에서 이뤄지게 돼있다.
─오늘 ㄹㅇ 레전드 한 편 찍었네ㄷㄷ
『현재 시청자 순위』
1. 오정환_ ?54, 121명 시청
2. 마포고 매콤주먹_ ?2, 107명 시청
3. LetTheKillingBegin_ ?1, 576명 시청
철크루가 보라판 싹 다 먹음
2, 3위는 듣보 게임 하는 BJ
└ㅊㄲㅇ
└진짜 기대도 안 했는데 흥미진진 하더라
└솔직히 장난 치다 끝날 줄
└김군이 진짜 의외였지ㅋㅋ
반나절 가량이나 이어졌다. 그럼에도 흐름이 끊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5만 명이 넘는 대시청자를 기록한다.
첫 콘텐츠인 '주먹이 운다'.
그다음이었던 '1시간 데이트'.
전부 생각 이상으로 출연진이 잘 해준 덕분이다.
─갠방갤 투표) 퀘이 vs 김군
인기 남캠 퀘이가 멋있었다 ―추천
아니다, 김군의 꼰대짓이 나았다 ― 비추천
└꼰댘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또! 덮견 새끼들 덮으려고
└논점 흐리는 게 덮견들 특기지ㅉㅉ
└응 어차피 주작질 못함
하지만 길었던 승부도 결국 끝이 있다.
어느 쪽이 리아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현재 커뮤니티에서는 그에 대한 글들이 빗발친다.
일반 방송과 달리 너무나도 많은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용두사미의 드라마가 욕을 먹듯, 어설픈 결말은 역효과를 낳을 우려가 크다.
"이제 선택을 해주셔야 되거든요."
"네……."
"참고로 누굴 선택하든 반대쪽 팬들이 묻으려고 들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 이 새끼
―또라인가?
―감히 팩트를 말해??
어설프지 않아도 어차피 사고는 나게 돼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말.
그 쉽지 않은 가능성을 그녀는 말하려고 한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두분 다 제 인생에서 손에 꼽는 데이트 시간을 선물해주신 것 같아요."
"아~ 너무 겉치레잖아. 착한 척 역겨운데."
"왜 그렇게 사람이 삐딱해요?"
그 과정 또한 묘미다.
사회자인 오정환이 자꾸 시비를 걸며 어그로를 분산시킨다.
그러한 속뜻을 눈치챈 사람의 수는 많지 않다.
"우선 퀘이님."
"아 퀘이님 축하드립니다! 김군님 ㅈ돼셨어요!"
"말 좀 들어주시면 안돼요?"
"늬에~ 늬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새끼가 가장 리아 묻으려고 함
―리아를 화나게 만드네……
―존나 밉상이다 ㅉㅉ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데이트였다.
학생 나이인 리아로서는 흔히 하기 힘든 경험이다.
식사도 맛있었고, 에스코트도 좋았고, 대화도 잘 통해서 재밌었다.
“퀘이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김군님은…….”
솔직하게 어려웠다. 김군의 생각은 들어맞았다.
그의 첫 방송 터전이었던 단칸 셋방의 방문은 그 긴장을 크게 완화시켜 줬다.
"그러니까 결론은 얼빠 아니에요."
"아 진짜! 당신도 있었으면 절대 안 뽑았을 거예요."
"당신이라고 부르지 마요. 설레잖아."
"아~~! 짜증나 진짜!!"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 또 지만의 보라 찍으려고ㅋㅋ
―이 케미도 좋아
―그래서 퀘이업?
두 사람의 데이트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말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퀘이의 승리를 예상한다.
방송 시작 전부터 그러했다. 워낙 외모도 받쳐주고, 스펙도 엄청나고, 무엇보다 여자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
김군도 그 점은 마찬가지지만 나이라는 패널티가 있다.
그 점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으리라.
분명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오는 길에 정말 많은 고민을 해봤어요. 저는 여기서 판가름이 났던 것 같아요."
"와꾸."
"제가 뽑게 될 분과 일일 데이트를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같이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을 기준으로 삼았답니다."
"와~ 이젠 그냥 대놓고 쌩까네."
대체 누가 그녀의 선택을 받게 될지.
눈을 감은 채 무릎 꿇고 있는 퀘이와 김군의 뒤에 리아가 선다.
이윽고 결과가 나온다.
동시에 커뮤니티가 폭발한다.
어느 쪽이 뽑혀도 반대쪽 팬덤이 난리가 나겠지만, 보다 큰 의문을 낳는 쪽이었다.
─아니 씹 김군은 좀ㅋㅋㅋㅋㅋㅋㅋ
─퀘이를 두고 김군을??
─결국 돈을 택하네 더러운 김치년 퉤!
.
.
.
나이 차도 많이 나고, 데이트도 달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 정도까지 해야 하냐고 의문 어린 시선이 있었다.
그녀의 최종 선택. 후폭풍이 작지 않았다.
의외로 얼마 지나지 않아 싱겁게 꺼진다.
─정리글) 리아가 김군을 뽑은. EU
퀘이― 잘생겼고, 잘 챙겨주고 알겠음ㅇㅇ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자랑임
이런 애랑 있어봤자 피곤하기만 함
김군― 과거 소개 좀 오글거렸긴 함ㅋㅋㅋ
근데 행동 하나하나에서 배려가 묻어남
옛날 셋방 간 것도 리아가 자기 어려워해서고, 여자들 체력 약한 거 알고 바로 쉬러 가자고 하잖아괜히 짬 먹은 게 아니더라 퀘이는 카메라인 오정환 신경도 안 쓰는데 김군은 오자마자 커피부터 챙겨주고 내가 여자여도 퀘이 같은 애새끼보단 김군 택할 듯 └―쿤―
└삐빅! 곧 덮견들이 덮으려고 할 게시물입니다
└아 그렇네
└어차피 사귈 것도 아닌데 편한 쪽이 낫지 ㄹㅇ
과몰입팬들이 한둘이 아니다.
출연한 BJ들의 속심정이 어땠는지.
여기저기서 뇌피셜이 난무하고, 개중에 많은 공감을 얻은 게시글이 추천글로 올라간다.
"이거 괜찮다. 야 좌표 찍어!"
"찍기도 전에 이미 몰려갔는데요?"
그리고 댓글 알바.
보라판 삼대장인 철꾸라지와 김군의 하수인들이 열일을 하고 있다.
극성 팬덤 둘이 합세하자 커뮤니티의 여론을 장악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즉, 뒷감당의 걱정이 없다.
마지막 마무리가 될 결정타를 박아 넣는다. 리아의 입에서 떨어진 소원이 보라판의 판도를 뒤집어 엎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