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BJ들간의 합방.
당사자들간에 이야기가 성사돼도 쉽사리 진행되지 않는다.
'팬들의 의견도 무시할 수가 없거든.'
일반BJ면 모를까.
철크루에 소속될 정도면 규모가 작지 않다.
하물며 여캠은 그 특성상 팬들의 입김에 매우 세다.
―안녕하세요~ 준호와의 합방 건에 대해 열혈분들의 허락을 받고자 왔습니다 ―꺼져
―꺼지랰ㅋㅋㅋㅋㅋㅋㅋ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오고 있지?
성대하게 맞아준다.
세상에 몹시 불만이 많은 듯한 시청자들이 보인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 시청자들의 아이디가 빨간색이라는 점이다.
'열혈 말이야.'
빨간색은 열혈팬.
파란색은 매니저.
초록색은 팬클럽.
흰색은 소위 건빵이라고 불리는 일반 시청자다.
일반적으로는 아래부터 위까지 피라미드 구조다.
별풍선을 쏴주는 큰손이 아무리 중요해도, 수천에서 수만에 달하는 민심을 거스르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캠은 시청자 수가 적다.
수익의 절대적인 비중을 열혈에게 의지한다.
그만큼 열혈들의 발언권이 강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니저』
metal746― 큰손두둥등장
dksehd― 리아뿐인별밤
sjc0723― 리아만의회장
『열혈팬』
cxcsd25― 리아♡악어
tprtmaos― 리아♡사케
.
.
.
리아와 처음 만났을 당시.
합방 권유를 위해 온 적이 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열혈리스트가 많이 바뀌었다.
'그도 그럴 테지.'
최근 최고의 대세 여캠으로 떠올랐다.
이전부터 왕왕 입소문을 탔고, 철크루 내에서 입지를 다져 이제는 파프리카TV 4대 여캠 소리까지 듣고 있다고 한다.
―열혈분들이 걱정하시는 마음은 알지만 우려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이해를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닥쳐 ―준호는 걱정 안 하지;
―니가 문제라고
남자BJ에게 리아를 소개시켜준다니?
설득하는 것이 이전보다 더욱 어렵다.
상정을 하고 왔던 부분이고, 이런 밀당에는 자신이 있다.
'한두 번 해봤겠냐고.'
구슬리는 노하우가 존재한다.
퀘이나 김군처럼 뒷소문이 꾸리꾸리하지도 않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성사시킨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리아만의회장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저 급 떨어지는 새끼 꼴도 보기 싫네
<와 회장 오빠 천 개 고마워요! 지금 바로 강퇴할까요?>
―아니 잠깐만요;;
―ㅋㅋㅋㅋㅋㅋ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양심이 없음?
그들이 화를 내는 이유.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평생을 진실되게 살아온 것밖에 없다.'
나의 후광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급 떨어지는 아이돌께서도 무언가 앙금이 남았는지 열혈들과 죽이 잘 맞는다.
<여기 자~꾸 있으시면 저도 강퇴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요.>
그 이유.
짐작 가는 바가 없다고 하면 나의 진실된 삶에 오점이 생긴다.
얼마 전 내쫓듯이 쫓아낸 적이 있다.
─리아♡사케님, 별풍선 486개 감사합니다!
빨리 사과해요;;
<대가리 박아요.>
―대사가 바뀐 거 같은데?
―사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가리 박으래
―이래서 입조심하고 살아야 됨ㅉㅉ
리아의 말실수로 인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사과는 해야지.'
리아의 입장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쫓겨났다.
시청자와 열혈도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긴 해도, 그들의 시선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일전의 실언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다음에 만나면 개인적으로도 다시 사과의 뜻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꺼져
―공공의 적이네ㅋㅋㅋㅋㅋㅋ
―안 처맞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일단 일을 진행시켜야 한다.
리아 방송에 찾아온 목적, 수명을 늘리기 위함은 절대 아니다.
열혈들의 비위를 거슬려서는 안 된다. 한두 명만 죽자고 반대해도 합방 성사가 매우 힘들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소문이 퍼진다
큰손들은 여러 여캠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여캠들 방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흔히 파프리카TV 열혈이 별풍 호구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도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돈 많은 큰손들이 호락호락한 사람만 있지 않다.
이쪽 세계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적을 만들어서 좋을 것은 없다.
<그래서 왜요? 왜 온 거예요?>
그런 속사정을 알 리가 없다.
리아가 히죽히죽 웃으며 승자의 얼굴로 매를 벌고 있다.
어차피 니 의사는 상관없고, 열혈들의 허락을 받기 위해 온 것이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처음부터 설명을 드리자면……
여캠 열혈들도 꽉 막힌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을 대하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방송 콘텐츠랍시고 자신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진행하면 삐진다.
한 번 삐져 버리면 달랠 수가 없다.
그전에 먼저 가서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그들도 당연히 재밌는 걸 좋아하고, 위협만 되지 않으면 허락한다.
―아 준호가
―나도 그때 울 뻔함……
―딱하긴 하더라고
―크흠! 퀘이 같은 놈은 안되지만 준호는 그래도 인성이 됐으니까
인성은 됐고, 얼굴은 안됐다. 남자로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여캠 열혈을 기본적으로 120%가 사심충이다.
'상상 연애를 하든, 뒷구멍 연애를 하든.'
어느 쪽이든 좋아한다. 좋아하는 여자가 딴 남자랑 논다고?
여친의 남사친이 걱정되듯 반대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준호는 얼굴이 개빻았다!
둘 사이가 어떻게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열혈들도 리아한테 속 좁아 보이고 싶지 않아 한다.
―역시 철크루의 홍일점이자 파프리카TV의 새로운 4대 여신이라 불리시는 리아좌의 열혈들답게 마음씨가 태평양 같으십니다. 우리 찐따 준호의 한풀이 도와주셔서 감사 말씀드립니다 ―ㅇㅇ
―똥꼬 헐겄다
―똥꼬충 아니랄까 봐ㅋ
마아아아아―!!
상남자 중의 상남자인 나 오정환이 별별 소리를 다 듣는다.
그렇게 헌신적인 희생으로 준호의 합방을 허락 받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가 문제지만.'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안 좋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아니, 흑역사가 제조된다.
떠밀리듯이 만나서 정말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것이다.
다시는 용기조차 내기 힘들어진다.
그런 배드 엔딩을 피하기 위해서는 잘해야 한다.
잘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감을 가지는 게 먼저다.
난생 처음 남자를 에스코트하게 생겼다.
* * *
철크루의 보라판 정복으로 태평성대를 맞이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보라판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지는 법.
모든 화제가 철크루 중심으로 돌아가니, 철크루가 영업을 안 하면 보라판도 멈춰버린다.
─오정환 이 새끼 은근히 의리 쩌네
리아방 가서
열혈들한테 대가리 박고 허락 받아옴ㅋㅋㅋㅋㅋ
└ㄹㅇ?
└나도 봄ㅋㅋㅋㅋ
└욕 존나 먹더라
└솔직히 지 일도 아닌데 이건 ㅇㅈ이지
그렇게 무료하던 차.
안 그래도 신경 쓰이던 화제가 촉발된다.
얼마 전, 리아를 두고 일어난 네 남자의 혈투는 한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준호가 너무 불쌍해!
그를 구원해주기 위해 수많은 시청자가 뭉쳤다.
그 선두에서 오정환이 열과 성을 다해 판을 깔아주고 있다.
─근데 준호&리아 가능성이 있긴 있음?
준호 갠방도 느낌 존나 없는데
둘이 만나면 안녕하세요 하고 오디오 쭉 비는 거 아님?
└아ㅋㅋ
└상상해버렸자너~
└찐특) 둘만 있으면 말 못함
└안 그래도 철크루 내에서 제일 하꼬라……
막상 판이 깔려도 문제다.
괜히 정신적 외상만 입고 오정환처럼 게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우스갯소리가 올라온다.
"아니, 나 진짜…… 뭐 해야 되지?"
―일단 좀 씻어
―뚱특) 냄새나게 생김
―정신 못 차리네ㅋㅋ
―도와줘 정환에몽!
장본인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 방금 데이트하는 상상함ㅋㅋ
그 상상이 갑작스레 이루어졌다.
적어도 준호 입장에서는 그러하다. 열혈이 오정환에게 부탁한 것도, 오정환의 행동력이 엄청났던 것도 본인 의사는 아니다.
─Moo. 너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제발 호프집만 안 갔으면 좋겠다……
"호프집? 아무리 그래도 호프집은 안 가지! 치킨무 국물이 살짝 땡기긴 하는데."
―미친놈아!
―그것만은 안된다
―???: 치킨무 국물 드실래요?
―아 그저 ^무^
뇌정지가 와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이대로라면 십중팔구 사고를 칠 것이다.
그건 그거대로 재미가 있겠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으라고 생각하는 쪽이 많다.
극성팬 중에서는 기왕이면 정말 잘되라는 쪽도 있다.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오정환의 방송에 열혈들이 몰려간다.
─국산대장준호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복채입니다. 우리 준호 좀 어떻게 해주십쇼……
"천 개 감사합니다! 준호님팬들인데 별풍선은 내가 받고 있네."
그가 능력이 있다.
그것도 있지만 진정성 있게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일도 아닌데 나서주는 사람이 결코 흔하지 않다.
준호의 팬과 관심을 가진 시청자들. 별풍선을 아끼지 않으며 도움을 구한다. 그만큼 준호의 연애에 대해 진심 어린 걱정을 하고 있다.
"저도 말씀들을 다 들어봤는데……. 저 개인으로서는 솔직히 한계가 있거든요?"
하지만 오지랖이다.
별풍선을 쏜다고 없는 방법이 생겨나는 게 아니다.
한 명의 BJ가 각 잡고 도와줘도 결국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
오정환이 말하려던 바는 명료했다.
* * *
딱히 드문 일도 아니다.
시청자들이 BJ의 연애에 관심을 가지는 건 말이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먹방 같은 거야.'
바쁜 현대인들은 허기에 시달린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 시간도, 같이 먹으러 갈 사람도, 혹은 다이어트나 지갑 사정 등도 존재한다.
때문에 먹는 행위를 보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정서적 허기를 채우는 것이다.
BJ의 연애를 응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먹방은 먹방인데 여자 먹……, 이라고 할 수는 없나 아무튼.'
이미 목줄이 묶여있거나,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인해 연애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거지, 관심이 없다는 건 결코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BJ의 연애.
이를 응원하는 것은 자신의 연애 세포에 물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차후에는 그걸 이용해 돈을 버는 악랄한 BJ들도 생기지만 그 시작은 분명 순수한 호의였다.
"약속 시간까지 하루 남았는데 이 안에 준호를 변신시킬 생각입니다."
―변신?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누
―본판이 좀ㅋㅋㅋㅋㅋㅋ
―변신은 모르겠고 일단 병신은 맞는 것 같은데……
110kg의 거구의 소유자와 함께 있다.
안타깝게도 근육은 커녕 물렁물렁한 살덩이다.
'썰으면 김정은만큼 많이 나오겠어.'
아무리 내가 메이크업 쪽으로 일가견이 있다고 한들 내가 손을 대는 건 사람이지, 돼지가 아니다. 혼자 힘으로 한계가 있다.
"시청자분들 중에 능력자분들을 섭외해서 도움을 구해보려고 하거든요?"
"도와준다는 분들이 진짜 있어?"
"없으면 뭐 그대로 가야죠."
"……."
즉, 혼자가 아니면 된다.
내 방송에 찾아온 시청자들과 머리를 맞댔다.
파프리카TV의 시청자층은 폭이 넓고,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어그로 끄는 시청자도 있지만, 진짜인 시청자도 분명 있거든.'
그런 혼모노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이른바 준호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가 막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