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솔직하게 리아한테 미안해서도 있다.
'본인이 그런 거 싫어한다는데 억지로 시키는 거니까.'
물론 싫어해도 시킬 거다. 단순한 여캠으로 끝날 거면 모를까. 보라판에서, 인방판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무기를 백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힘들어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마음이 아파.
그래서 역겹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써준 것이다.
─치킨마요덮밥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솔직히 준호 귀엽지 않음? 계속 보면 정들던데ㅋㅋ
"아, 씨발."
―씨발ㅋㅋㅋㅋㅋㅋㅋ
―X발도 아니고 씨발ㅋㅋㅋㅋ
―찐텐이네
―준호 얼굴이 그렇게 역겹나요??
같은 남자가 봐도 그건 좀 아니야.
그 면상을 몇 시간씩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솔직히 말씀드리면 준호 얼굴을 개 패듯이 두들겨서 아주 그냥 반죽으로 만든 다음에 다시 뭉쳐서 빚으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그건 너무 솔직한데요
―충격……
―딜미터기 터졌누
―준호 지금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맞이하고 있는데 너무 그러지 마요ㅠㅠ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애청자들이 우쭈쭈 해주니까 진짜로 괜찮은 줄 알잖아.
'너를 보는 사람은 안 괜찮다고.'
벌칙이랍시고 머리 밀고, 간장 마시고, 손으로 음식 퍼먹는 철꾸라지를 보다 보니 미적 감각에 심대한 장애가 생긴 건지는 몰라도 일반인들의 시선에서는 많이 어긋났다.
그런 짐승 비스무리한.
아니, 짐승은 그래도 멋있거나 귀엽기라도 하지.
짐승한테 비유하면, 비유 당한 짐승이 불쌍할 법한 녀석을 리아와 엮어줬다.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그래서 옆방에서 관음하고 있다. 두 사람의 방송과 내 방송은 각각 따로 진행된다.
"저번에 카메라맨 하니까 진짜 억울하더라고요. 나는 뭐 입이 없나? 솔직히 에바였어."
―퀘이 그 혐성 새끼ㅋㅋㅋ
―싫어할 만하네
―ㄹㅇ 김군은 가자마자 커피 챙겨주는데
―지는 뭐 손이 없나
어디까지나 서포트.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을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라는 건 그냥 그럴 듯한 명분에 지나지 않다.
'리아가 그래 달라고 했으니까.'
얼마 전 있었던 리아 쟁탈전.
그 최종 승자인 김군와 일일 데이트를 진행해야 했다. 방송 자체는 성황 리에 끝났지만, 정신적으로 큰 피로를 느꼈다고 한다.
아직은 내가 봐줘야만 할 만하다. 본인이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이는 답답해 할 시청자들을 위함도 있다.
─미니벤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아니, X발 10분째 맛있다만 하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
"일름보님 100개 감사합니다! 정 그러면 님들이 분위기를 띄워주세요. 부담 가지 않는 선에서."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여캠 합방이 어색한 준호는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들어주는 대나무숲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저도 드디어 음식이 나왔네요. 보이시죠?"
―오
―저거 개맛있던데
―준호가 리필해 달라고 함ㅋㅋㅋ
―아 코스 요리점에서 리필이라니 ㅡㅡ
물론 진짜 목적은 밥이다.
준호가 계산한다고 하니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내가 추천해준 한식 코스 요리점으로 人당 5만원 정도 잡는다.
'같잖게 양식 먹는 것보다 한식이 어지간하면 나아.'
듣도 보도 못한 음식 먹으면 분위기가 살 것 같아?
제대로 먹는 법도 모르고, 맛도 잘 몰라서 어리둥절하다.
요리사가 설명하면 잔뜩 기죽어 가지고 맛도 없는데 맛있는 척하고 앉았다.
오~ 오~~~ 오오~~!
무슨 오인용도 아니고 하루종일 오만 하고 나온다고.
어디서 먹어본 듯한 음식이 나오는 한식이 난이도 측면에서 훨씬 안정적이다.
"이게 그냥 두부처럼 보이시잖아요? 근데 진짜 두부에요."
―???
―저걸 왜 5만원씩 주고……
―슈퍼에서 천원이면 한 모 사는데
―수제잖아 미친놈들아ㅋㅋㅋ
직접 만든 손두부에 바지락 냉이 육수를 끼얹어준다.
두부가 워낙 한국인의 식사에 보편적으로 올라오는 식재료다 보니 무시 받는 경향이 있는데.
'갓 만든 건 애피타이저로 전혀 손색이 없어.'
마치 연두부처럼 부드럽다.
보관을 고려하지 않는 수제다 보니 질적인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육수와 함께 마시듯이 먹으면 부드럽게 속을 풀어준다.
"대표적인 봄나물로, 엄마가 찌개에 넣으면 반찬 투정 오지게 해버리는 냉이가 튀김으로 나왔네요."
하지만 씹는 맛이 없다.
입안의 심심함을 달래주는 튀김이 같이 나왔다.
지극히 한국적인 식재료이며 빈속에도 부담이 가지 않는다.
"봄에는 역시 냉이죠. 우리 봄이가 이런 거 존나 안 먹긴 하지만 그래도 봄이 보고 싶다……."
―갑자기?
―봄이 없는 봄이라니
―아……
―봄이 냉이 안 먹는구나ㅋㅋㅋ
떡볶이나 처먹을 줄 알지.
아무튼 전채를 시작으로 코스 요리가 하나씩 나온다.
마찬가지의 메뉴가 한 템포 빠르게 준호와 리아의 방에도 나오고 있다.
* * *
오정환의 오지랖이 방아쇠가 된 데이트.
개인 방송 갤러리에서는 실시간으로 중계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슬슬 치킨 무 국물 마렵죠?
─준피셜) 치킨 무도 우리나라 전통 음식이다
─먹방 그만 찍고 썸을 타라고!
.
.
.
장대한 준비 끝에 일반인 코스프레를 마치고 자신의 꿈을 이룰 신호탄을 발사한다.
비록 서투르지만, 그렇기에 공감이 가는 장면들이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타게 만든다.
─Moo. 황도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아니, X발 새끼가 어제 못 먹은 거 오늘 다 처먹고 앉았네
"맛있는 걸 어떡해요! 100개 감사합니다."
"재밌는 분이시네 헤헤."
―에라이 X발 욕이나 처먹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다 버린 1만 개
―준호가 이 정도면 선방하는 거지 ㄹㅇ
여러 의미로 말이다.
기대했던 진도는 더럽게 못 빼고 있지만 사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진짜 처음에는 기대 하나도 안 했는데ㅋㅋ
그래도 조금은 킹능성이 보이네
만에 하나 사귀면 리아 열혈들 오열하겠지?
└열혈: (후비적)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네
└0.0001%에서 0.1%?
└사귀면 오정환한테 평생 절할 듯ㅋㅋㅋ
어차피 안될 테니까.
미녀와 야수도 유분수지. 외모도 외모거니와 능력 면에서도 역으로 차이가 난다.
방송적 영향력도, 수익도 오히려 리아가 앞선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스펙만으로 결정이 난다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세상이 없다.
─Moo. 황도님, 별풍선 3333개 감사합니다!
( ̄ε ̄@)
"헤헤."
"헉!"
―얼어버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준호가 못하니까
―개부럽다……
―우리 준호 장가 가나요 ㅠㅠ
단순한 데이트가 아닌 방송이다.
그것도 개인 방송.
시청자가 끼어들어 둘 사이를 축복해줄 수 있다.
어떻게 리액션도 못하고 뻣뻣하게 굳은 준호의 큼지막한 볼에 리아의 입술이 닿는다.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옅게 남은 립스틱 자국이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이걸 리아가?
─슈렉 쓰리런ㅋㅋㅋㅋㅋㅋㅋㅋ
─왜 키스했는데 사람이 안됐냐고!
.
.
.
커뮤니티의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다. 설마 하던 상황이 진짜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333개 뽀뽀가 보라판의 전통이고, 3333개면 그 이상도 왕왕 해주지만 둘의 사이는 조금 다르다.
잘생긴 남캠이 아니다.
입을 잘 터는 타입도 아니다.
준호가 먼저 움직일 거라고는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리아 육식녀였냐??
아니 이걸 선뽀뽀를 하네
└진짜 상상도 못 함ㅋㅋ
└설렜잖아
└마음 쪼끔은 있다니까?
└준호가 보다 보면 귀여워ㅋㅋㅋㅋ
리아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낸다.
자신을 싫어하면 어떡할까. 가슴을 조리고 있던 준호도 자신감을 얻게 된다.
대화에 물꼬가 트인다. 미식의 시간은 지나갔다. 답답함에 모니터를 치고 있던 시청자들의 속도 개비스콘을 먹은 듯 쑥 내려간다.
─Moo. 마린님, 별풍선 333개 감사합니다!
이번엔 준호가? ㅋ
"아니, 실례잖아요. 아까는 3333개여서 좀 그런 거였고……."
"괜찮아요 볼에는."
"어, 정말요??"
―아니 X발 삼키겠다
―얼굴 크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X발 5배 차이 나네
―같은 호모 사피엔스 맞냐?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첫 단추가 풀리자 달달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솔직하게 욕심도 있다.
소심한 준호가 이 자리까지 나온 것도 정말 큰 마음먹은 거다.
조금씩이나마 진전이 생긴다.
─진짜 킹능성 있는 거 아니냐고ㅋㅋㅋㅋ
지금 둘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은데
└응 ^꿈^
└리아가 대체 뭘 보고 좋아함?
글쓴이― 그냥 첫눈에 호감 가질 수도 있는 거지 ㅡㅡ└라는 내용의 애니 추천 좀
드라마나 영화는 몰라도, 2D 세카이에서는 드물지도 않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맹목적으로 주인공을 좋아해주는 히로인 말이다.
현실 세계에 그런 여자가 있을지. 그 진위는 둘째 치고 사람들이 원한다. 그런 애니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보라) 리아. 준호 오빠와 일일 데이트♡」
? 본방 : 1681 (PC: 722/ MOBILE: 959)
? 중계방 : 21, 195
? 누적 시청자 수 : 69, 740
서투른 진행, 시청자가 적은 여캠.
그 악조건 속에서도 2만 명이 넘어가는 대흥행을 거둔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다.
─아니 퀘이나 김군은 그렇다 치는데
준호 받아주는 건 와……
진짜 천사라고밖에 말 못하겠다
└비즈니스 느낌이 안 나서 좋음ㅋㅋ
└리아 비위 개쩐다
글쓴이― 미친놈아!
└ㄹㅇ 외모 안 보는 걸 수도 있지
저는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연예인들이 흔히 하는 농담으로, 이상형이 개그맨이라면서 나중에 결혼은 꽃미남 배우랑 하고 있다.
남자들도 바보가 아니고, 그것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가 부디 있길.
안 생긴 남자들은 바라게 된다.
「리아 괜찮은데요?」
「애가 착하네」
「몸매도 착하죠ㅋㅋㅋ」
「함 열혈부터 달아볼까」
「형도?」
「저가 해보려고 말 꺼낸 건데;;」
큰손 단톡방.
파프리카TV의 열혈 중에는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가진 이들이 있다.
목적은 여러가지 있지만, 자신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는 대부분 신인 여캠에 대해서다.
닳고 닳은 애들은 돈만 밝힌다는 걸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위아래라는 게 있지 이눔아」
「아니, 제가 먼저 말 꺼냈는데 새치기는 아니죠 ㅡㅡ」
「이 자식이 감히 형님한테 찍찍을 해?」
「진정들 하세요」
「그냥 자본순으로 가죠ㅋ」
여캠의 뒤에 있는 업체의 존재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렇고 그런 세계라는 걸 알고서 즐기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돈과 지위를 이용하여.
「한 한 달만 공들이면 홈런 칠 수 있겠지?」
「에이, 하꼬도 아니고 한 달은 힘들죠」
「알아보니까 스펙도 괜찮고 근본 없는 애도 아니던데 반년 진지하게 공들일 생각도 있습니다 전ㅋㅋ」
「반년?」
「햄이랑 함 맞다이 뜨까?」
「그냥 먹버 하려는 거면 양보 좀 해주십쇼 형님……」
「한 입 주면ㅋ」
「하 진짜 형님으로 안 모셔야 되나;; 공사 치는 거 도와주시면 생각해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만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