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49화 (149/846)

149화

사실 방송이라는 건 시청자들한테만 픽션이 아니다.

카메라 앞.

방송을 한다는 감각이 평소에는 안 나오는 하이텐션을 가능케 만든다.

반복할수록 방송인으로서 성장한다. 마치 도란이 경험치통을 채우듯이 말이다.

베테랑이 된 지금도 느끼고 있지만, 이 하나만큼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딸칵!

캠을 끈다.

시청자들의 눈이 가려진다.

8평 남짓한 작은 방안에 둘만 오도카니 남았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TV 촬영이라면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무리 인사를 주고 받겠지만.'

스태프가 없는 개인 방송은 정말 고요하다. 여캠을 굳이 바래다주는 이유도 사실 그래서다.

혹시 모를 스캔들을 의식한 방송 매너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건 둘만 남았을 때의 어색함이다.

"크아~!"

"맛있어요?"

"요즘 맥주 뺏겨서 못 마심."

"많이 드세요."

하이텐션으로 달아오른 반작용 탓이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내 방송의 특성상 현실로 돌아오면 엄청나게 부끄러워진다.

'특히 여캠쪽에서 안절부절못하는데.'

쥬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반주를 이어나간다.

정말 식사를 하는 것처럼 두부김치와 녹두전과 딸려온 반찬까지 맛있게 먹는다.

"배고프면 뭐 하나 더 시킬까요?"

"콜!"

"술도 하나 따드릴게요."

어이가 없지만 뭐 어때. 방송도 잘했고, 다른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숙제 대금을 꽤 짭짤하게 당길 수 있겠지.'

심익현의 아가리를 닥치게 만드는 건 덤이다.

술장에서 잡히는 술 하나를 적당히 꺼낸다. 블루 라벨 정도면 실망은 안 할 테다.

"좋은 거 마시네?"

"놀랄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근데 나 양주는 좀……."

보기도 싫다는 듯 위스키병에서 눈길을 치운다. 이미 반쯤 미지근해진 소주를 한 병 더 깐다.

의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자들이 위스키를 보통 안 좋아하긴 하는데.'

상위 주점에서 일했을 정도면 싫어도 마시게 돼있다.

적어도 있는데 안 마실 이유는 없다.

막말로 귀한 술이다.

"야."

"네?"

"너 진짜 안 섰냐?"

"아니……."

음담패설을 내뱉으며 알코올을 들이킨다.

그것이 무언가를 잊기 위한 발버둥처럼 보인다면 착각일까.

"내가 더럽냐?"

갑자기 상의를 훌렁 벗는다.

술이 너무 취해서 맛이 갔나?

말리려던 나의 눈을 한 점 어긋남 없이 똑바로 쳐다봐온다.

"안 취했죠?

"엉."

"싫지 않으면 할래요?"

“떠 X발!”

침대에 자신의 몸을 던지듯이 눕는다. 정신은 있어 보이지만 몸을 가누는 건 힘들어 보인다.

안 그래도 상스럽게 벌린 다리가 더욱 맥아리 없이 풀려있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남자와 해댔을지. 딱히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하지만 그녀와 이야기하며 본심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 * *

업소녀는 선입견을 가질 만한 직업이다.

일부를 보고 전체를 매도 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직업병의 특성이 워낙 크다.

업소에서 일하다 보면 마음이 썩는다.

자신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변한다.

그런 미친 세계에서 제정신인 이들을 보면 측은한 감정이 든다.

"누나 이제 제 거예요. 알았어요?"

"나쁜놈……."

"나쁜놈은 싫어요?"

"모르겠어. 근데 나 나쁜 남자한테 끌리나 봐."

연장자.

어제까지만 해도 기세가 등등했다.

바뀌어버린 상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보통 업소녀들이 재미가 없어서 일반인과 못 사귀는데.'

조금 재미있게 해주었다. 역치가 높아진 몸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마음도 어떻게 문드러졌을지 잘 아는 입장이다.

업소녀들이 기둥 서방에게 매달려 사는 이유가 있다.

외로워서, 의지할 상대가 필요해서.

그것도 맞지만 가장 큰 건 자신의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서다.

"기둥서방 만드는 애들 이해 못 했는데 이런 기분이었구나."

"그래요?"

"행복이란 거 잊고 살았는데 이 나쁜놈."

너 때문에 이 일 한다. 리아에게 걱정스러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미 싹 터버렸다면 컨트롤 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현관문 앞에서 격한 키스를 나눈다.

여린 표정이 된 그녀의 입술은 다른 맛이 난다.

단순히 능숙한 것을 넘어 착 달라 붙어오는 무언가.

"이렇게 여자 가지고 노는 거지?"

"이제 알았어요?"

"나쁜놈. 너처럼 큰 놈도, 잘하는 놈도, 쓰레기 같은 놈도 처음 만나봐."

"……."

은유적인 표현의 칭찬이다.

그렇기에 연인처럼 안겨오는 것일 테다.

매섭게 느껴지던 눈매도 자세히 보니 은근히 곡선이 있다.

"저랑 사귀고 싶어요?"

"걱정 마. 한참 어린 애 인생 목줄 잡을 생각 없으니까. 그래도……."

"네?"

"가끔 만나줘. 별별 짓 다 하고 모른 척하면 진짜 죽는다."

"……."

텐프로에 출근했을 정도로 한때는 예쁘게 피었다.

빛이 바래긴 했어도, 과거의 영광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늦긴 했지만.'

20대 후반의 나이.

고된 일과로 세월까지 스며들었다.

그래도 나라면 두 번째 봉오리를 피워낼 자신이 있다.

"말했죠? 누나 이제 제 거라고."

"으……."

"다음에 올 때는 예쁘게 관리해서 와요. 그러면 또 안아줄 테니까."

"나쁜놈. 진짜 나쁜놈."

"저 영역 표시는 확실하게 하거든요."

"마음대로 해…… 줘."

연상이 한 명 추가되었다.

* * *

이례적인 사건.

오정환의 합방 후폭풍은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눈나 내 쥬지 왜 이래?

─쥬지가 이상해 쥬지가!

─쥬지를 아프게 해서 쥬아였누ㄷㄷ

.

.

.

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고된 흥행 가도를 달리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업소 출신이 의심되는 여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밝힌 데다 텐프로 출신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분홍상어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눈나 나 쥬지가 이상해!

"깔깔! 딱 대~ 누나가 댄스로 시원하게 해줄 테니까."

―이걸 받아주네

―와 골반

―아니 색기 미쳤냐곸ㅋㅋㅋㅋ

―떡춤이야? 아니면 진짜 절구질을 하려는 거야??

그리고 밈.

인터넷 방송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특출나게 재미있지 않아도 잉~~ 기모링 같은 유행어가 한 번 대박 나면 대기업이 되는 세계다.

적절한 밈과 이를 살려내는 역량.

경험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보는 이들을 전율시킨다.

차별을 거부하는 컨셉에 힘입어 쥬아의 방송은 상위권 여캠으로 정착하게 된다.

─쥬아는 진짜 클라스가 다르긴 하다

아니 씹 허리놀림잌ㅋㅋㅋㅋㅋㅋ

텐프로 출신이라 그런지 쥬지 살살 녹이네

└쥬살녹ㅋㅋㅋㅋㅋㅋ

└ㄹㅇ 한 발 뽑은 새끼 많을 듯

└너무 삭아서 별로 아님?

글쓴이― ㄴㄴ 갈수록 예뻐짐

하지만 문제점도 있다. 나이가 상당히 들었고, 여성으로서 매력이 떨어지는 30대를 눈앞에 뒀다.

안 그래도 짧은 여캠의 수명이 더욱 단명할 수 있는 것이다.

우려는 불과 2주일이 지나지 않아 불식된다.

나이를 거꾸로 먹기라도 하듯 점점 예뻐진다.

본래의 외모를 되찾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쥬아 눈나 요즘 미모 미쵸!!

안 취했을 때는 말투도 은근히 지적이라 설렌당

문신만 아니었어도 내 신부 시켜주는데 ㄲㅂ

└ㅄㅋㅋㅋㅋㅋㅋㅋ

└응 그래봤자 챙녀

글쓴이― PDF땄습니다. IQ 추적 중~

└문신이 진짜 아쉽긴 하더라

물론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아니, 없을 수가 없다.

오정환과의 합방을 통해 고정 팬덤을 만들고, 민심을 어느 정도 잡기는 했어도 일부 뿐이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질색한다.

업소녀에 대한 인식이 좋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개인 방송 갤러리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는 비판적인 의견이 주를 이룬다.

─오정환 문신녀랑 합방하네ㄷㄷ

근데 들어보니 문신녀 사정이 딱하긴 하다

└뭐라는데?

글쓴이― 고딩때 조폭 나와바리에서 까불다 끌려갔대

└헐…… 불땅

└그걸 믿었음? 째트킥!

최근 보라 방송으로 전향하며 개인 활동은 뜸해진 오정환이지만, 한때는 인터넷 드라마라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여전히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화제성.

업소녀가 파프리카TV에서 방송을 한다니?

어그로가 끌릴 수밖에 없고, 논란 또한 생길 수밖에 없다.

[Best Comment]― 업소 한번도 안 가본 사람만 돌 던져라. 난 돌 좀 던질게~~

[Best Comment]―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합법과 불법은 있습니다.

[Best Comment]― 오정환은 창녀랑도 드라마 찍음? ㅋㅋ

사람에 따라서는 실망하기도 한다.

본인이 저지른 건 아니어도, 그런 사람과 얽혔다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역치가 낮은 사람도 세상에는 있다.

이미지에 다소의 손상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자극적인 이슈에 이끌린 새로운 팬들도 생기게 된다.

그것이 손해일지, 이득일지는 불분명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쓸어담네. 쓸어담아~."

"저년 방송 보면 저도 쥬지가 근질근질해진다니까요?"

오정환의 입김이 세진다.

업체들은 이번 사태를 면밀히 지켜봤고, 그만큼 그의 활약상을 자세하게 알고 있다.

'쥬아 그년이 이번 주 매상 1위 찍겠지? 미쳤네 진짜.'

그로 인한 금전적인 이득도 말이다.

대기업BJ들이 잘 번다, 별풍이 몇 개 터졌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도 결국 돈을 쓸어담는 것은 여캠이다.

이를 키워내는 능력을 지녔다.

글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안 그래도 치열하게 벌어지던 오정환 영입 신경전은 더욱 불똥이 튀긴다.

"서은아."

"왜요 아조씨."

"아니, 아저씨가 아니라니까……. 아무튼 크흠! 그 정환이랑은 잘 지내고 있지?"

승자를 자처해야 할 심익태.

쥬아와 맺은 계약으로 인해 변제금을 포함해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유는 커녕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초조하다.

'불편해서 살겠나…….'

좌불안석이기 때문이다.

업소에 반품할 것을 전제로 생활비까지 줄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박이 나고 말았다.

사와서 일을 시키는 여캠들은 심익태가 제공한 공간에서 생활한다.

4평 남짓한 방에 세팅된 컴퓨터와 침대를 넣어주고, 그곳에서 방송까지 시킨다.

때문에 말을 안 들으면 군대처럼 통제할 수 있다.

기호품을 뺏거나 외출을 제한시키는 등.

수익이 안 나는 쥬아에게도 그런 조치를 취했었다.

"저야 잘 지내고 있죠."

"그래, 계속 잘 지내고…… 새로 들어온 그 무서운 언니 있잖아."

"네."

"원하는 거 있으면 째깍째깍 최우선으로 신경 써주고, 니가 같은 여자로서 친하게 잘 지내. 알았어?"

"싫은데요."

"……뭐?"

굉장히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아예 생판 모르면 모를까.

한 번 멀어진 사이를 다시 되돌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이 년이?'

그래서 서은에게 부탁을 했다.

같은 여자로서 통하는 게 있지 않겠냐?

서언을 통해 신경 써주면 자신과도 가까워지리라는 심산이었는데.

"제 일이 아니잖아요 그건."

"아니……, 니가 여기서 일하는데 당연히 사장인 내 말을 들어야지!"

"계약된 업무 내용에 그런 거 없었잖아요."

"사장이 하라면 하는 거지! 나 때는……."

"아 몰라요~ 저도 그 언니 무섭단 말이에요."

"보, 보너스 줄 테니까 좀…… 해줘."

심지어 큰 소리를 친 대상은 쥬아만이 아니다. 오정환에게도 그랬던 만큼 여러모로 꼬이고 꼬였다.

서은에게 부탁하는 것이 최선이다. 퉁명스럽게 대꾸해도 찍소리도 못한다.

평소였다면 적당히 튕기고 용돈을 챙겼을 그녀지만.

'진짜 싫은데.'

비즈니스라는 걸 알고 있다.

자세한 속사정까지 꿰고 있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방송을 본 후유증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숨을 못 쉴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 여자와 가까이 지내면 안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귀찮은 여자로 생각되고 싶지 않았기에 가까스로 참아냈다.

"100만원. 그 이하는 다른 사람 알아봐요."

"5, 50만원 어때?"

"저 일이 바빠서 나중에 찾아주세요."

"아, 알았어! 달라는 데로 줄 테니까 잘 좀 챙겨줘야 된다. 어?"

"하아……."

탐탁지 않은 추가 근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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