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처절한 맞짱
중간고사가 끝났다.
시청자와의 약속도 있다.
방송을 진행하지 않으면 섭할 것이다.
'뭐, 사실 시험을 썩 잘 본 것 같진 않은데.'
우리 봄이의 머리가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대도 없었다.
착하게만 자라다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도 있는 만큼 괜찮지만.
─메이플현질맨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어떻게 여자 머리를 깨물어요ㄷㄷ
"100개 감사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되는 게 봄이 대가리는 단단합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부라더 다메요!
―닝겐노 대가리와 튼튼데스넼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여캠인데……
―오자마자 먹히고 있누
주말이다.
시험까지 끝나자 아주 살 판이 났다.
어지간한 일이라면 귀엽게 봐줬을 것이다.
'그래도 닭다리 두 개는 안 봐주지.'
점심 겸해서 치킨 한 마리 시켜서 방송을 하고 있다.
내가 별 말 안 하자 눈치를 보며 두 번째 닭다리를 집었다.
괘씸하다기보다는 귀여워서 머리를 잘근 씹어주었다.
"굽네치킨 시키면 계란 하나 주거든? 그래서 시킨 건 아닌데 아무튼."
"꾸웩!"
"봄이 머리로 깨면 진짜 잘 깨져. 삶은 계란 머리로 깨는 거 한참 유행일 때 봄이 머리로 한 수백 개 깼지."
"저, 저는 오빠가 맛있는 거 줘서 좋아했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봄이 학대야!
―오정환 이 새끼 은근히 또라이임
―그래서 애가……
그 정도 충격으로 머리가 나빠지진 않는다.
봄이 대가리는 두개골이라는 딱딱한 뼈가 지켜주고 있고, 또다시 그 안에 3개의 막과 뇌척수액으로 보호된다.
'그냥 선천적으로 썩 뛰어나지 않은 거야.'
애가 하도 귀엽게 태어나서 고생 하나 모르고 자라 머릿속이 꽃밭이라 그렇다.
나처럼 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보호자가 따끔한 충고도 해줘야 바르게 자라날 수 있다.
─봄이수호대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입이 조그매서 조금씩 먹긴 하는데 겁나 부지런히 먹어서 걱정해줄 필요 없습니다."
봄이를 보면 다람쥐가 어떻게 겨울나기를 준비하는지 절로 깨닫게 된다.
볼따구가 미어터져라 꾸역꾸역 꾸역꾸역 꾸역꾸역 꾸역꾸역 잘도 처먹는다.
"한참 클 때예요. 성장기라서 많이 먹어야 되는 거예요."
"대체 어디가 크는데?"
"저 필사적으로 자라고 있어요!"'
"나무늘보도 자신의 인생이 치열하다고 생각하겠지."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봄이야……
―가성비가 창렬이형도 울고 가겠누
―커여우면 됐지 ㅠㅠ
무럭무럭 커야 먹이는 보람이 있지.
겨울 방학 동안 정말 애지중지 신경 썼는데.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만큼 헛수고가 됐잖아!'
물론 착하게만 자라도 충분하지만, 성장까지 착하면 얼마나 좋아.
굳이 따지면 나는 성숙한 게 취향이다.
성숙한 봄이라니 엄청난 미스 매칭이긴 해도 나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단 하나의 미래를 이루고 싶었다.
"저 성장기에요. 때리면 안 돼요."
"아니야 너 이제 더 안 커. 평생 그 키야."
"아니에요오―!! 우리 엄마가 저 무럭무럭 자랄 거라고 했어요."
"야 우리 엄마도 그랬어."
슬슬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긴 하다.
보통 2차 성징이 끝나는 만 17세 이전이 마지노선이다.
본인의 완강한 주장처럼 약간은 더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고.
'여하튼.'
방송의 시작이다.
배부르게 먹여서 때깔도 고와졌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속담을 상기한다.
"봄이야."
"봄이에요."
"우리 맞짱 깔까?"
"맞짱!!"
"그래."
"???"
메인 콘텐츠로 넘어간다.
* * *
BJ하와와의 복귀.
탄탄한 스토리와 팬덤을 보유한 그녀이기에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지구최강」
47분 전。
#오정환#하와와#떡볶이녀
하와와 복귀했네ㅋㅋㅋㅋㅋ
「치킨과맥콜」
47분 전。
#떡볶이녀#하와와#이름이봄이
봄이의 계절인데 당연히 봄이가 와줘야지!
「KasiaKing」
47분 전。
#하와와#급식충#불땅
중간고사라 방송 못했다네
어떻게 이유도 커엽냐
.
.
.
특히 SNS를 중심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유의 귀여운 외모와 한 편의 드라마 때문이다.
간만의 등장도 그녀에 대한 화제를 촉발시키기 충분했다.
─오정환 이 새끼 소아성애자 아닐까?
고자 의혹 벗어난 건 인정하는데
다른 여캠이랑 할 때는 봄이랑 할 때만큼 찐텐이 아님 킹리적 갓심 씹가능이지 └뭘 함?
└ㅓㅜㅑ
└그걸 이제 알았음? 째트킥!
└일단 이상성욕자인 건 확실함 ㅇㅇ
하지만 개인 방송 갤러리.
벌써 두 달이나 모습을 안 보인 여캠 한 명 보다는 오정환의 행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도 그럴게 최근 보라판 대세다.
게임BJ가 아닌 보라BJ로 성향이 옮겨갔기도 하다.
이번 하와와의 복귀도 새로운 콘텐츠의 시발점으로 해석한다.
─오정환 아린이랑 합방할 땐 쿨내 오지게 풍기더니
봄이랑 하니까 바로 텐션 살아나네
이 새끼는 봄이랑 다른 여캠 취급이 너무 다름
└당연하지 봄버진데
└아니 진짜 키잡 중이라니까?
└누가 신고 좀
└간만에 근본 합방인데 분명 뭔가 할 듯ㅋㅋㅋㅋㅋ
커뮤니티의 반응은 매우 좋다. 둘 사이의 케미는 익히 증명됐다.
뭘 해도 재밌는데, 준비성까지 항상 철저했다 보니 기대를 모은다.
─여캠들 쥬아 따라서 업밍아웃 하는 거 실화냐?
아니 씹
한 명이 성공하니까 줄줄이 X랄이네
쥬아처럼 쥬지 터지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ㄹㅇ
└쥬지 터지게 만들면 ㅇㅈ이지
└쩜오 문턱도 못 두들기는 년들이 업소녀인 게 자랑인 줄 앎└그만큼 창녀가 많았던 건가?
더욱이 최근 여캠계는 혼란스럽다.
쥬아의 컨셉(?)이 먹히게 되자 너도 나도 과거사를 고백하며 동정심 유도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제가 그때…… 한순간의 치기로 돈이 너무 필요해서 어쩌고저쩌고…….>
―어이구 그랬군요
―울지 마요 ㅠㅠ
―몸 팔아 놓고 치기 ㅇㅈㄹ하네
―북치기 박치기!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업체 측에서는 효율이 좋다. 라면 한 사바리 하고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는 느낌이다.
본래는 콜팝TV나 윙크TV 같은 성인 방송 플랫폼에서 싼마이하게 굴리려던 애들을 한 번 더 써먹는다.
시청자 측에서는 당연히 싫다.
쥬아가 먹힌 것은 특이 케이스다.
업소녀에 대한 편견 이전에 존중받을 직업이 아니라는 건 두말할 여지가 없다.
─[개추요청] 갠방갤 일동은 선언합니다
근본도 없는 업소녀 창녀들이 아닌
텐프로 출신 쥬아만을 인정하겠습니다
그 외 텐프로와 텐카페 출신도 용인합니다
―2012/4/29 개인 방송 갤러리 일동―
└쩜오까진 봐주면 안됨?
└ㄹㅇ 업소녀도 급이 있다. 그리고 유흥 10년 차로서 답답한 게 그때 텐프로랑 지금 텐프로도 격이 다름. 개나 소나 텐프로로 개업하니까 당시 텐프로들은 일프로로 이름 바꿨지 └아재요……
└솔직히 쥬아도 오정환빨이지ㅋㅋㅋㅋㅋㅋ
지난 합방의 후폭풍은 여전히 보라판을 강타하고 있다. 안 그래도 깨끗하다고 볼 수 없는 강물에 폐기물이 유출됐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더 원하게 된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
하와와의 복귀가 주목 받고 있는 이유다.
오정환과 합방을 한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기대는 더욱 고조되고 있었는데.
─오정환&하와와 방송 일정 떴다!
둘이 맞짱 깐대
└갑자기?
└왜? 어쩌다 둘이 손절이라도 함?
글쓴이― 아니 그냥 맞다이 깐다고
└??????
언제나처럼 진행된다.
* * *
해맑은 봄이의 고민.
바로 해결을 해주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특히 방송 일은 말이야.'
콘텐츠화 시키기 위해서는 빌드업이 필요하다.
일련의 화제를 이슈로 만드는 과정 말이다.
봄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 내렸다.
"봄이 손!"
"힝……."
"이쪽 손!"
"힝……."
봄이의 작은 앞발을 어루만져 준다.
얼마나 고생을 안 했는지 뽀송뽀송하지만 학생답게 볼록한 연필 굳은살은 배겨있다.
─보라고인물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드디어 돌아버린 것인가?
"예쁜 장갑을 선물해줬을 뿐이에요."
"그런 걸까요?"
―의심의 눈초리
―봄이야 도망쳐!
―진짜 장난감 같넼ㅋㅋㅋㅋㅋㅋ
―권투 글러브를 왜 주냐고……
복싱 체육관에 찾아왔다.
일전에 콘텐츠를 진행했던 바로 그곳이다
'큰 마음먹고 대관했지.'
1시간에 4만원가량.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트레이너도 대기시켰다.
적지 않은 지출이지만 우리 봄이를 위해서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선생님."
"예."
"혹시 경력이 있으세요? 복싱."
"전 없습니다."
"아~ 그러면 제가 미트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법만 알려드릴게요!"
트레이너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미트는 손에 끼는 글러브 모양의 샌드백으로, 훈련 대상이 실전과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움직이며 맞아준다.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우리 봄이를 복싱 유망주라고 착각했나 보다.
이곳에 온 목적은 훈련이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실전이다.
"훈련이 아니라 스파링할 겁니다."
"아~ 복싱 경험 한 번 해보시게요?"
"아니요. 남자 대 남자로서 주먹다짐을 나눌 생각입니다."
"저는 남자가 아니에요……."
―트레이너 어리둥절
―봄이 울겄다
―에이, 쇼겠지
―오정환 이 새끼는 진짜로 몰라……
글자 그대로 맞짱.
시원하게 한 번 싸우기로 했다.
일전에 했던 주먹이 운다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다.
─오정환고자님, 별풍선 50개 감사합니다!
왜 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봄이 다치면 감당 가능?
"제가 다칠 수도 있는 건데 왜 제 걱정은 안 해주죠?"
이러니까 남자 대 남자로 싸우자는 거지.
남자 대 여자로 싸우면 물소 새끼들이 무조건 여자편 들어주잖아.
'그리고 진짜로 내가 질 수도 있어.'
복싱은 체급도 중요하지만 기술의 중요성도 못지 않다.
작은 몸집으로 날렵하게 내 모든 주먹을 피하며 유효타를 박아 넣는 모습이 상상이 간다.
"만화나 웹툰 같은 거 보면 봄이처럼 생긴 애들이 겁나 세요. 세계관 2인자로 등장한다고."
"헐~."
―세계관 2인자(754세)
―만잘알 ㅇㅈ
―실제 나이 천살 X발ㅋㅋㅋㅋㅋ
―근육마초: 이럴 수가!! 힘으로…… 내가 지다니……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뚜껑을 열 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승부의 세계는 항상 흥미진진한 것이다.
글러브를 조이며 보호구를 착용시킨다. 헤드기어를 씌우고, 마우스피스를 꽉 물게 한다.
세계관 2인자다운 포스가 슬슬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저한테 승산이 정말 있는 걸까요?"
"믿어."
"하느님을 믿으면 되는 걸까요……."
"너를 믿는 나를 믿어!"
도망갈 곳이 없는 사각링 위에 올라선다. 작은 초식 동물처럼 떨고 있는 봄이와 마주 선다.
지금은 자신의 흉포함을 숨기고 있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소름이 끼친다.
꿀꺽!
나도 실전 경험이 많지는 않다.
복싱은 대충 자세 잡는 법만 알고 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상기하며 침을 삼킨다.
"에……, 그럼 공소리 울리면 스파링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과격하게 하지 마시고 특히 선생님 크킄 커험! 주의 부탁드리겠습니다."
―웃참 실패
―생긴 건 무슨 고릴라처럼 생겨 가지고
―끝나고 팬가입 하겠네
―ㄹㅇ 이게 보라지
링 밖은 조금 어수선한 모양이다.
하지만 안에서는 살기가 피부를 찌른다.
이윽고 땡―! 공소리가 울리며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상대는 빨랐다. 바로 주먹을 내뻗으며 치명상을 노려온다. 긴장하고 있었기에 간발의 차이로 피해낼 수 있었다.
끼익―!
그리고 반격의 서막을 알린다.
복싱화 특유의 접지력이 아찔한 마찰음을 만들며 허리의 회전력을 극대화시킨다.
"꾸웨엑―!"
묵직한 바디 블로우가 먹혀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