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55화 (155/846)

155화

봄이와의 처절한 맞짱!

안타깝게도 그런 혈투는 용인되지 않는다.

만약 가능했다면 죽기 살기로 쌈박질 하려는 원수들이 체육관을 대관하려 할 것이다.

지들만 다치면 모른다. 시설물 관리자가 책임을 진다.

트레이너 입장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지만.

"꾸웨엑……."

그럴 걱정이 전혀 없어 보인다.

벌써 체력이 한계에 부딪혔는지 지친 알파카처럼 침을 질질 흘린다.

흐느적거리는 봄이의 라이트를 피하며.

끼익―!

약간 재미 들린 마찰음이 울린다. 더 파이팅의 일보가 했었을 법한 펀치가 봄이의 배에 작렬한다.

"봄이야."

"어헝. 너무 아파요……."

"하나도 안 세게 때렸어! 얘 아픈 척 거품 무는 거 봐."

겉보기에만 휘황찬란하다.

당연히 힘을 빼고 쳤고, 속도도 두 배 이상 느리다.

'그래도 우리 봄이한테는 박진감 넘치겠지.'

스트레스를 푸는 데 스릴 넘치는 스포츠만한 게 없다.

야생의 감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싶다.

끼익―!

파블로프의 개처럼 학습한다.

이 소리가 나면 공격이 오겠구나!

잔뜩 긴장을 삼킨 봄이가 가드를 올린다.

톡, 톡!

공격을 막자 한시름 놓는다.

그것도 잠시.

콧구멍이 벌렁거릴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쉬며 오른팔을 뒤로 젖힌다.

스트레이트를 뻗기 전의 준비 동작이다. 홍진호를 방불케 하는 폭풍 러쉬가 밀려온다.

봄이의 날렵한 주먹이 엄청난 기세로 푹푹 꽂힌다.

퍽! 퍽퍽!

나와 달리 진심이다.

전혀 아프진 않지만 나름대로 그림은 그려진다.

세계관 2인자 다운 엄청난 포스로 뎀프시롤 비슷한 것을 퍼붓는다.

끼익―!

하지만 약점이 있다. 뎀프시롤은 좌후의 회전이 규칙적이고, 그 템포를 읽기만 한다면 카운터 타이밍이 잡힌다.

더 파이팅에서 봤던 '뎀프시롤 부수기'를 재현한다.

"꾸웨엑―!"

그렇다고 진짜 때릴 수는 없으니 살짝 미는 느낌으로 체중을 싣는다.

뺨따구를 얻어맞은 봄이가 휘청거리며 나가 떨어진다.

레고를 밟은 알파카처럼 엎어지고 만다.

"승자는 어……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됐어요?"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죠."

링 안으로 들어온 트레이너가 카운트를 센다.

원, 투, 쓰리…… 10초가 지나며 나의 승리가 확정지어진다.

가녀린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거칠게 숨을 쉬던 봄이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졌어요."

"그래."

"패배하고 말았어요……."

결국 하늘 같은 오빠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것이 바로 너와 나의 눈높이다.

카디스 에트라마 디 라이제르의 명언이 떠오른다.

'여하튼.'

정복감을 맛보기 위해 벌인 짓이 아니다.

Easy 난이도의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느낌이다.

평소에 경험할 수 없는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을 것이다.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도파민이 엄청나게 분비된다.

인간이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부여하는 신경 전달 물질로, 삶의 무력감에 빠졌을 때 이만한 특효약이 없다.

─보라큰손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보라 3년차인데 보라판에서 이 새끼가 제일 또라이임

"……."

―철꾸라지도 한 수 접짘ㅋㅋㅋㅋㅋㅋ

―와 봄이를 패네

―사탄 : 아 이건 좀;;

―이겨서 좋냐?

다소의 오해를 받더라도 말이다.

채팅창은 뭐라뭐라 시끄럽긴 하지만 원래 참새는 봉황의 큰 뜻을 알 수 없는 법이다.

* * *

인방판에서 두 달이면 엄청난 시간이다.

하와와는 데뷔 직후부터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어지간한 대기업의 뺨을 때리는 BJ가 되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다.

공백의 영향은 불가피하다.

이전 같은 기세를 이어가긴 힘들다.

분명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먹이 운다 시즌2씹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펀치』

─봄프시롤 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맞짱을 왜 뜨냐곸ㅋㅋㅋ

.

.

.

단순한 복귀로 끝났다면 말이다.

오정환과의 합방, 그리고 독특한 콘텐츠가 그녀를 다시 화제의 중심에 올려두었다.

그 효과는 실검 1위와 맞먹는다.

업체들이 거액을 선뜻 내미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결코 인기가 많다고, 소재가 좋다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정환이 ㄹㅇ 대단하긴 하네

이 새끼 합방해서 실패한 적이 있나?

뭐 콘텐츠 할 때마다 계속 대박이 남 ㄷㄷ

└응 봄이빨

└봄이의 계절이라구~

└봄이를 갈구는 것도 아니고 때렸는데 그 정도는 나와야지 └철구라지는 겨우 간장이나 퍼마시는뎈ㅋㅋㅋㅋㅋㅋㅋ

보라판 시청자는 까다롭다.

그냥 유명하다고 봐줄 만큼 막입이 아니다.

대기업이라면 수천 명 정도의 고정 팬덤은 거느리고 있지만, 만 단위의 콘텐츠 성공을 거두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하물며 이슈화.

재미와 흥미라는 공통 인식이 싹 트는 건 쉽지 않다.

아무리 어그로를 끌어도, 느그 팬덤끼리 처놀라는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급식 데리고 할 콘텐츠가 진짜 없을 텐데

아니, 진짜로

막말로 술을 마시겠어 썸을 타겠어

오정환 이 새끼는 썸도 타고 맞짱도 까고 별 걸 다 하넼ㅋㅋㅋㅋ└심지어 결혼도 함

└선 분명히 넘는데 뭔가 이상함ㅋㅋㅋㅋㅋㅋ

└신박한 또라이 새끼

└불편한 것도 없고 그냥 재밌음ㅋㅋㅋ

그런 불만이 쏙 들어가는 콘텐츠를 매번 재현해낸다.

개인 방송 갤러리에서 팬덤을 가리지 않는 공통 화제가 된 건 물론이고.

'아니, 인방이 이런 것도 있었어?!'

시간 죽이기였다.

박진성은 여캠 뿐만 아니라 다른 방송도 얼핏 본 적이 있다.

하나 같이 저질스러웠고, 특히 간장을 마시는 놈과 '짬뽕국물 짜장면발'하는 놈은 역겨움을 참기 힘들 지경이었다.

문제는 그런 놈들이 탑티어다.

시청자가 많은 BJ들조차 그 모양 그 꼴이다.

그나마 기대했던 김군의 방송도 수준이 처참하기 짝이 없다.

'안 팔리긴 해도 KBS 공채 출신이라 기대 좀 해줬더니……. 역시 그 새끼는 군대나 가야 돼.'

나름 노력을 했다는 것 정도는 보인다.

다른 개인 방송과의 차별화를 시키고 싶다. 하지만 싼 티는 지울 수 없었고, 그 본인도 방송 진행 능력이 하급이다. 인터넷 방송 자체가 가진 한계점이리라.

양지에 사는 진성이 얕보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정환의 방송을 보며 그 편견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봄이사냥개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이건 철빡이도 흠좀무 할 듯 ㄷㄷ

<우리 봄이 스트레스 풀어주려고 놀아준 거지 오바하지 마요.>

<봄이사냥개!>

―님이 푼 거 아님?

―완전 샌드백이던데

―봄이사냥개도 정색하게 만드는 그는 도덕책……

―봄이 화들짝 놀란 거봐ㅋㅋㅋㅋ

도 넘은 인터넷 방송.

신중히 접근해야 할 영역이긴 하다.

하지만 소화할 수만 있다면 최강의 무기인 것도 사실이다.

실제 공중파 방송도 추세가 변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자극적인 행태도 서슴지 않는다.

우려 섞인 시선이 있기는 해도.

'뭐, 어떡해. 그게 시대 흐름인데.'

진성은 중견 기획사의 사장이다. 최근 방송의 흐름을 모를 리가 없다. 방송사가 원하는 인재상에도 영향을 미치니 당연하다.

여성쪽은 순수한 이미지.

남성쪽은 까불까불한 녀석들이 잘 나간다.

그런 연예인을 만들어 파는 것이 기획사가 하는 일이다.

이미 완성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정환이라는 녀석이 진행하는 방송은 훌륭하다.

얼핏 과격해 보여도 시청자 전원이 장난이라는 걸 인지한다.

─봄이의삼촌팬님, 별풍선 2000개 감사합니다!

우리 봄이 그만 괴롭히고 맛있는 것 좀 사맥여요ㅠㅠ

<아~ 2천 개 정말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사주려고 했죠~!>

―응 아니야

―입에 침이나 바르고 ㅉㅉ

―봄이 얼굴에 화색이 도네

―아ㅋㅋㅋㅋㅋㅋㅋ

그렇기에 가벼운 분위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다 알고 있으니까. 자극적인 방송을 진행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프로 불편러들이 생X랄을 하거든.'

어그로는 끌되, 불편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은 프로 작가와 방송인들도 매번 골머리를 썩는다.

이를 동시에 해내고 있다.

방송의 포맷은 물론 진행을 하는 것까지.

일반BJ들과 동수준으로 전락한 김군과는 비할 바가 안된다.

<저 맛있는 거 사주시는 거예요?>

<그래.>

<맛있는 거! 맛있는 거!>

<아우~ 진짜.>

일반 시청자들은 몰라도, 방송 관계자의 눈에는 구분이 된다.

연기를 하는 건지 찐텐인 건지 말이다.

'뭐 사흘 굶겼나?'

침을 질질 흘릴 법한 얼굴로 해맑게 웃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진심으로 와닿는다.

실제로도 한참 어린 나이로 보인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연습생의 평균 시작 나이는 만 13세~ 15세.

원하는 인재상을 뽑는 길거리 캐스팅은 조금 늦어도 상관없다.

<제가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걸까요?>

<어제도 먹었잖아.>

<그치만, 그치만! 떡볶이는 언제 먹어도 맛있는 거예요~.>

'초등은……, 아니고 중학생 정도 되려나?'

그런데 현재 나이까지 어리다.

연예 기획사에서 매기는 인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게 측정된다.

꿀꺽!

진성은 어느새 입안 가득 모인 침을 삼킨다.

자신을 제외하면 인터넷 방송까지 챙겨보는 관계자는 없을 것이다.

노다지를 발견한 심마니처럼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계약 제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별풍선을 만 개쯤 쏘고 의사를 물어보고 싶다.

근질근질하던 손가락을 심사숙고 끝에 참는다.

혹시 모르기 때문이다.

실물이 별로였다는 두 번의 실패 사례가 있었다.

또 실망하는 것보다 신중을 기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던 차.

<맛있는 거 먹으러 가니까 좋아?>

<좋아요. 굉장히 행복해요. 그치만…… 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의 짧은 행복이라는 걸 생각하면 시무룩해져요.>

―정말 시무룩해 보이네

―한바탕 봄꿈?

―봄이의 꿈……

―라임 보소ㅋㅋㅋ

화면 속 아이가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다.

감탄스러우리만큼 와 닿는 표정 변화다.

'대체 뭐가? 혹시 가정 사정이 어렵나?'

보는 이로 하여금 걱정이 안 들 수가 없게 만든다. 저것이 만약 연기라면 일류 배우도 꿈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심각한 사정이 있다면 신경 쓰인다. 데뷔 자체가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다음 주면 다시 학교에 가야 돼요.>

<그래.>

<학교에서는 맛없는 급식을 먹고, 집에 가면 엄마가 차려준 건강식을 먹어야 돼요. 너무 슬퍼요.>

<그렇겠지.>

'……??'

엄청나게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 * *

봄이가 가진 진짜 고민.

그것은 바로 학교의 급식이었다.

'급식충이 급식충한 거지.'

우리 봄이가 건강식을 준다고 곧이곧대로 처먹을 만큼 순순하지 않다.

새벽에 냉장고를 털거나, 나한테 찾아오는 등 특단의 대책을 취했을 것이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시험 기간의 고등학생은 개인 시간이 전무하다.

평일에는 야자까지 빠듯하게 돌리고. 주말에도 학원으로 스케줄이 꽉 차있다.

봄이가 유별난 게 아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원래 그렇게 산다.

나만 해도 해가 다~ 지고 난 후에야 겨우 하교를 하고, 그 길로 학원까지 가야 했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식사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해결한다. 급식이 맛없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집밥까지 건강식을 차려주니 입술이 댓 발 나올 만도 하다.

'먹는 것이 삶의 낙인 봄이한테는 심각할 문제일 만도 해.'

만날 때마다 한 끼 배부르게 먹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봄피셜: 일장춘몽에 불과하고, 다시 맛없는 식사로 돌아가게 된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겠다.

봄이의 행복을 이뤄줄 초대형 원기옥을 모아 터트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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