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악마의 게임
별풍선 1만 개를 선뜻 내민 스폰서.
그 의뢰주가 바라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그녀는 스타가 될 수 있는 아주 유망한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지 말고 언제 한 번 만나서…….>
사이비 다단계 같은 이야기였다.
자신이 무슨 연예 기획사 대표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니가 사장이면 나는 회장이지.'
1만 개나 쏘셨으니 어이구 사장님~ 반쯤 믿어주는 건 립서비스로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믿어 달라는 건 당연히 별개다.
심지어 봄이를 맡겨 달라니?
막말로 인신매매단이면 어쩌려고.
진짜로 연예 기획사라 하더라도 사기꾼이 워낙 많은 업계다.
<저희 히트 엔터테인먼트 한 번 검색해보시면 믿음이 가실 겁니다!>
"아~."
<회사 차원에서 책임지고 미래의 K―POP 스타로 발돋움시킬 테니…….>
"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연락 드릴게요."
미련 없이 통화를 끊는다.
만에 하나 정말 연예 기획사 사장이고, 봄이를 차세대 K―POP 스타로 키우고 싶은 걸 수도 있겠지만.
'걔는 K―빡대가리라서 안돼.'
내가 그 방향을 고려 안 한 게 아니다. 봄이 정도 외모면 연예인도 노려볼 만하다.
보다 큰 대양에서 퍼덕퍼덕 헤엄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렇지.
연예계는 BJ업계와는 비교도 안되게 어지럽다. 똥강아지 같은 봄이가 살아남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침 질질 흘리면서 얻어먹을 수 있는 건 일반인들 사이에서다.
다 탑급인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특별 대우가 없다.
오히려 이용하기 딱 좋은 호구로 낙인 찍힌다.
'그리고 연예계는 인맥과 운이 90%야.'
개인적인 독단과 편견에 의하면 그러하다.
지들끼리 해먹기로 손에 꼽히기가 정치, 경제계와 함께 삼대장이다.
연예인 자식들이 금방 성공하는 이유다. 인프라가 워낙 훌륭해서 없는 능력도 만들어버린다.
일반인들은 떠봤자 운이 좋거나, 금세 퇴물이 되는 케이스다.
물론 리스크가 높은 만큼 리턴도 크다.
봄이의 포텐셜을 고려하면 도전 가치는 충분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볼 뿐이고, 그보다 더 관심을 끌고 있는 건.
『받은 편지함입니다. (읽지 않은 쪽지 9통)』
「건강식품 광고 문의드립니다!」
「스폰 문의 드립니다 [견적서]」
「안녕하세요, 여캠 지유의 매니저 박도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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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풍선 1만 개의 의뢰주 말고도 여럿 있다.
최근에는 합방 제의 비중이 높기는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스폰 문의가 더 활발하다.
'그 스폰 말고.'
물론 여캠들은 그 스폰 문의도 받는다.
안녕하세요 장기 스폰 의향 있으세요? 월 400 3회, 1회 추가 시 팁 얹어드리고 비밀 보장 가능합니다! 이런 식으로.
여하튼 내가 받고자 하는 건 정상적인 스폰이다.
지금까진 건강식품과 컴퓨터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드디어 원하던 쪽에서도 받았다.
─스폰 문의 드립니다 [견적서]
오정환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게임 개발사 블……
돈슨과 협업을 해온 보람이 드디어 싹을 틔운다.
* * *
오정환의 방송으로 야기된 이슈.
급식 파동은 한동안 SNS를 뜨겁게 달구었다.
시간이 지나며 꺼지는 듯했지만 그만 엄한 곳으로 옮겨 붙었다.
─현재 핫해경 vs 유주민 상황. jpg
핫해경: "무상 급식이 한국고 사태 만들었다"
유주민: "무상 급식은 국가 급식, 국가 급식은 헌법이 규정한 의무교육"
둘이 박 터지게 싸움 ㄷㄷ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돼버렸누
└이기는 편 내 편
└둘이 주먹이 운다 찍으면 안됨?
└오정환이 이런 거 진행 잘하는데ㅋㅋㅋㅋㅋㅋㅋ
한국고에서는 해결됐어도, 여전한 중·고등학교가 더 많기 때문이다.
본래 있던 논란과 합쳐지며 정치권의 주요 화제로 부상했다. 표밭인 학부모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치고 박고 싸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당초 사태에 불을 붙인 시청자들의 관심사는 옮겨갔다.
그들 대부분은 성인이고, 급식보다는 다른 쪽에 비중을 둔다.
─아니, 아직도 해본 사람 안 나옴?
해적판이라도 풀릴 만한데
아무 소식도 없으니 진짜 미치겠네
└기다려 앉아 엎드려
└아직임ㅋㅋ
└10년을 기다렸는데 이걸 더 못 기다리나
└어차피 나오면 질릴 때까지 하게 될 텐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게임에 말이다. 최근 커뮤니티는 하나의 화제로 극성이다.
보통은 이 정도로 이슈가 되지 않지만 이번 사태는 특별하다.
20대뿐만 아니라 3·40대 사이에서도 난리가 났다.
수많은 게이머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있는 그 게임의 이름은.
「경쟁작 디아볼로3 발매에 엔씨소프트 급락」
「디아볼로3’가 뭐길래? “새 샤넬백이 12년만 나온 것”」
「디아볼로3 D―1 전야제 행사, 왕십리 광장 포화 상태!」
.
.
.
디아볼로.
대한민국 성인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작게는 시험을 망치게 했고, 크게는 수능 같은 중대사까지 그르쳤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가 없다.
지나고 보니 추억이 아닌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그 게임의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성인들조차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만들었다.
"블라자드 엔터테인먼트가 10년만에 돌아온 디아볼로3의 국내 정식 출시를 기념하며 전야제 행사를 열었습니다!"
2012년 5월 14일
서울 왕십리 민자역사 앞.
5천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집합해있는 이유다.
길고 긴 대한민국 게임 역사에서도 이례적이기를 넘어 전무후무하다.
단순한 게임 출시에 대규모 집회급 인원이 모여든 것은 말이다.
"수많은 게임폐인을 만들어 일명 악마의 게임으로 불렸던 디아볼로! 행사장의 열기로 볼 때 이번에 발표하는 디아볼로3 역시 전작의 명성을 이어가기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슈 수준을 넘어 하나의 '사회 현상'화 되었다.
게임업계에 지극히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주요 언론사들마저 깜짝 놀라 취재를 왔을 정도다.
드론 카메라에 잡히는 수천 명의 인파.
인터넷상에서의 소동이 과장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구매자들이 가진 강렬한 욕망이다.
"제가 어제 9시에 왔는데 순번이 274번이에요."
"어제 9시요? 그렇다면 밤을 새셨다는 말……."
"예! 처음으로 살려면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아쉬운 마음이 남네요."
고작 게임 하나 사려고?
비게이머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된다.
게이머 입장에서는 이만큼 중요한 순간이 없다.
"여기가 2000번 정도 됩니다! 안심하셔도 돼요! 여러분은 승리자 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행사 진행 요원 하나가 머릿수를 가늠한 후 소리 지른다.
그 2천 명에 포함된 이들은 하나가 된 듯 목소리를 높여 환호한다.
그 2천 명에 아쉽게 들지 못한 이들도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기대한다.
준비된 한정판의 수령은 4천 개.
개인당 구매 제한이 2개이니 자신한테도 차례가 올 수 있다.
무려 10년간 기다렸던 역대급 대작의 후속작은 게이머들을 미치게 해버리기 충분했다.
"진짜 1등은 누구일까?"
"대체 몇 시에 와야 1등이 되지."
"거의 하루를 꼬박 새야 될걸?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구매자들을 단숨에 친구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떠드는 공통된 화제.
바로 이 자리의 진정한 승자에 대해서다.
승부의 세계에서 2등은 꼴찌하고 똑같다. 선동열 감독의 명언처럼 디아볼로3의 첫 구매자에게는 온갖 혜택이 주어진다.
반면 2등 이하는 2천 등이랑 다를 것이 없다.
아주 조금만 늦게 와도 도로아미타불.
그렇다고 너무 빨리 오는 건 글자 그대로 미친 짓이다.
그런 치킨 레이스의 승자가 과연 누구일지 곧 모두가 알게 된다.
<디아볼로3의 출시를 지금부터! 여러분의 뜨거운 환호! 함성과 함께 시자아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
조금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막이 오른다.
* * *
회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것이지만 사실 골똘히 고민해보면 별거 없다.
'기껏해야 비트 코인 사는 정도겠지.'
내가 무슨 100층짜리 타워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신이랑 싸워서 절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돈을 좀 더 벌고, 삶이 보다 윤택해지는 정도다.
인생의 목표가 돈인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할지 모른다.
나 같은 경우 인생이 극단적으로 변할 것 같진 않다.
심지어 버는 돈의 액수도 많아야 수백억 단위다.
'그걸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트 코인을 사본 적도 없는 놈이야.'
비트 코인의 창시자가 100만 개 정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100만 개? 와~ 10조원이 넘네!
하지만 이를 현물화할 수 있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1000개 정도 팔았던 사건이 있었다.
그날 비트코인 가격은 30% 떡락하고 말았다. 암호 화폐는 소유자가 누구인지 특정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팔 수도 없거니와, 그 정도 자산가는 세계 정보기관에서 추적을 받는다.
FBI나 CIA 같은 영화에서나 보던 이들이 집에 똑똑~ 하는 것이다.
'신나서 비트 코인 대량 구매했다가는 인생 종 칠 수도 있어.'
그런 귀찮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물론 살게 안 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평소 회귀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진 않은데.
와아아아아아아~!!
광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린다.
근처 대학교 학생들은 참으로 곤란할 것이다.
그 넓은 왕십리 광장에 사람이 빼곡하고, 그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여러분이 10년간 기다려온 디아볼로3의 최초 구매자가 나왔습니다!"
크게 좋은 점은 없지만, 적당히 좋은 점은 차고 넘친다.
대체 몇 시에 줄을 서야 1등을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데 모를 수가 없지.'
최초 구매자는 전날 아침 7시부터 줄을 섰다.
넉넉잡아 6시 45분에 도착했고, 디아볼로3를 최초로 구매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개발자의 친필 싸인이 적힌 케인의 기록을 비롯해 다양한 기념품이 건네진다.
그것은 빙산의 일각.
수십 개의 기사가 오를 것이며, 공중파 뉴스에 나올 인터뷰도 촬영할 것이다.
찰칵!
찰칵! 찰칵!
BJ로서 엄청난 홍보 효과가 기대된다.
벌써부터 카메라의 셔터가 요란하게 터지고 있다.
'실제 최초 구매자는 블리자드에서 특채를 해줬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진짜인지 아닌진 몰라도 어차피 나는 관심 없다.
게임사로부터 받을 숙제의 보상금이 조금이라도 오른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렇다.
하루 종일 줄을 서 최초 구매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유다.
시간을 알고 있어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앞으로의 방송 진행에 필요하다. 기왕 새로운 게임을 방송한다면 이슈성을 확립하는 것이 옳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여러가지 기념품도 쏠쏠하게 챙겼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디아볼로3를 세계 최초로 구매하신 거잖아요~~ 기분이 분명 좋으실 텐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전세계 수면제 회사들의 주가가 급락할 것 같네요."
"네?"
"제가 최근 주식에 관심이 좀 생겨서."
약간의 현탐이 오는 것은 불가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