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신작 게임이 나온 것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하나의 '사회 현상'이다.
엄청나게 유명한 노래와 패션처럼 문외한인 사람들도 알게 되는 그런 파급력 말이다.
─오늘 학교에서 처음으로 친구랑 대화했음!
디아볼로가 대체 뭐길래 난리냐고 물어보더라
나 게임 잘하게 생겼다면서
└그래서 대답해줌?
글쓴이― 어림도 없지ㅋ
└왜 얼굴이 상상 가는데
└인싸쉑 지 혼자 씹덕들 아는 거 몰라서 당황했죠? ㅋㅋ
당연히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난다.
그 대작 게임의 후속작이 나온다고?
출시되기 한참 전부터 커뮤니티는 뜨거웠다.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전작과는 어떤 점이 다를지.
그런 외국 게이머들이나 따질 법한 화두가 아니다.
─디아 나오면 X발 1주일간 밤새야지
집에 식량이랑 빈 페트병까지 다 준비해둠ㅋㅋㅋㅋㅋㅋㅋㅋ└당연한 거 아님?
└빈 페트병은 왜
└아 X발 오줌 담으려고 미친 새끼
글쓴이― 블자겜은 원래 미쳐서 해야 하는 거 모름?
흥행한 전례가 워낙 많다.
블라자드 게임은 반드시 대박을 친다!
그 성공 공식이 아직은 힘을 잃지 않았던 시기다. 그런데 사회 현상까지 돼버린 것이다.
게이머들이 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하다. 나오기만 하면 밤을 새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RPG 게임에서 앞서간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한 가치를 지녔는지 경험으로 배웠다.
특히 그 이전에는 없었던 BJ라는 인종은 말이다.
"아 형님들 나오면 당연히 하죠! 사자마자 택시 타고 돌아가서 방송 킬 겁니다!"
최근 파프리카TV에서 게임BJ들이 핫한 이유다.
금전적, 혹은 시간적 사정으로 디아볼로를 플레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바로 BJ의 방송을 보는 것이다.
출시되기도 전부터 북적이고 있다.
─와우랭커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파프리카 대표 와저씨인 사멜이 디아를 ㄷㄷ
"내가 와우저긴 해도 디아는 해야지."
―코건 ㅇㅈ이지
―디아는 못 참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사멜 블빠임
―당일에 바로 하실 건가요??
사실 BJ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헐, 디아가 나와?
블라자드는 팬이 워낙 많은 게임사다. 개중에는 당연히 BJ도 있다. 한 명의 게이머로서 당연히 하고 싶다. 그렇지 않던 이들까지 혹하게 만들 정도다.
─펑이조학식팬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게임값 줄 테니 제발 ㅠㅠ
"펑이조학식팬 500개 고맙다! 근데 수수료 따지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수수료 주면 약속 지킴?
―이걸 믿네ㅋㅋㅋㅋㅋ
―펑이조가 지킬 리가
―런각 잡으면 뒤진다 진짜 ㅡㅡ
본래 단풍잎스토리 1위 BJ로 유명세를 떨치던 펑이조.
오정환의 등장 이후 2위 이하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물론 그는 최근 게임 쪽에 소홀하다. 그 틈을 타 어느 정도 성세를 회복했다. 하지만 1위를 자처하기엔 스스로도 미흡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내가 디아볼로의 근본이 되면 되지!'
최근 커뮤니티를 달구고 있는 게임이다. 시청자들도 자꾸 해보라며 떼를 쓴다. 이전이었다면 거들떠도 안 봤을 선택지.
지금의 펑이조에게는 한 줄기 동아줄과 같다.
본래의 자리로 자신을 되돌려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야외) 양땅. 왕십리 나왔습니다. 말리지 마세요」_ ?6, 974명 시청「야외) 펑이조. 왕십리 광장 텐트 쳤다. 질문 받음」_ ?3, 892명 시청
「야외) 빅도서관. 디아볼로 전야제 함께 즐겨요!」
_ ?1, 892명 시청.
.
.
같은 생각을 한 BJ가 한둘이 아닐 뿐이다.
이만큼 이슈가 되는 일은 드물고, BJ는 어그로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수많은 BJ들이 디아볼로 코인에 올라탔다.
안 그래도 혼잡한 왕십리 광장은 BJ들간의 신경전이 더해지며 혼파망을 이루고 있다.
10! 9! 8! 7!……
바로 이 순간을 위함이다.
마치 제야의 종이 칠 때처럼 수천 명의 인파가 하나가 되어 소리친다.
10년 동안 게이머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디아볼로3가 드디어 출시된다.
사람들이 우르르 계산대에 몰려간다.
특히 BJ들은 나갈 루트까지 계산하며 눈치를 본다.
다른 BJ보다 1초라도 빨리 플레이해서 시청자들을 모을 작정이다.
<여러분이 10년간 기다려온 디아볼로3의 최초 구매자가 나왔습니다!>
그 치열한 신경전이 허무하게 끝난다.
디아볼로3의 최초 구매자가 나온 것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만큼 그 자체는 특이할 것도 없지만.
"아니, 저거…… 오정환님 아니야?"
―ㅇㄷ?
―최초 구매자!
―헐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방송 어그로를 먹기 위해 나온 수많은 BJ들. 그들의 카메라와 눈을 통해 실시간으로 증명된다.
오정환이 디아볼로3의 최초 구매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오정환 휴방 이유 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BJ들 눈물의 방종!
─오정환: 어제 아침 7시 전부터 기다렸다
─SBS 뉴스 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BJ가 먹네
.
.
.
커뮤니티를 통해 1차적으로 알려진다.
특파된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며 공중파 뉴스에까지 떠들썩해진다.
"701번 대기자님 디아볼로3 구매 축하드립니다. 고객님은 승리자에요!"
"됐고 빨리 주기나 해요 X발!"
―응 오정환은 1번
―땡깡 부리누
―그럼 그렇지ㅋㅋ
―펑이조 인성 나오쥬?
반대로 대기를 하던 BJ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본래라면 자신들에게 떨어져야 할 부러움과 관심이 오정환에게 쏠린다.
물론 디아볼로3의 출시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다.
전야제 구매자는 남들보다 하루 빠르게 플레이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방송 어그로가 보장되지만 투자한 시간 대비 아쉬움이 생긴다.
'X발 두고 봐라.'
몇몇은 이미 방송을 끄고 런했다.
평소 같았으면 누구보다 빨리 포기했을 펑이조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오정환에게 밀리기만 하는 건 더 이상 사양이다.
이번 기회까지 놓치면 다음은 또 언제 올지 모른다.
디아볼로3 같은 초대박 게임이 흔하게 나올 리가 없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집으로 향한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구매를 했다고 끝이 아니다.
진짜는 디아볼로로 방송을 하고, 처음으로 디아볼로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현재 오정환이 제대로 ㅈ된. EU
KBS, MBC, SBS에서 인터뷰 줄 섰음
지금 바로 집 가서 게임 해야 되는데ㅋㅋ
└아ㅋㅋ ㄹㅇ ㅈ됐네
└지금 한가하게 9시 뉴스 나올 때가 아닌데
└어휴 2등부터는 이미 집 가고 있는데 ㅉㅉ
└근데 왜 눈물이 나지?
최초 구매자의 영광.
그로 인한 어그로는 분명 엄청날 수밖에 없다.
기존 게이머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까지 이름을 알리는 기회다.
하지만 그만큼 게임의 시작은 늦어진다.
수많은 언론사가 인터뷰를 청하고 있고, 거기에는 당연히 시간이 소요된다.
그사이 다른 구매자들은 스타트를 끊는다.
같은 게임을 하는데 진도 차이가 난다면?
심지어 최초로 격파하고 꿀팁까지 뿌린다면?
오정환에게 쏠린 이목을 고스란히 빼앗아올 수 있다.
<아니, X발 왜 이렇게 패치가 늦어!>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님들 베타테스트 정보 있는 사람 훈수 좀 둬주세요 훈수 좀~.>
왕십리에서 서둘러 복귀한 BJ들.
남들보다 한 시라도 빨리 깨기 위해 안달이 난다.
파프리카TV 게임BJ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다.
이는 세간에서 그렇게 회자된다.
악마의 게임.
일반 게이머들 뿐만 아니라 스트리머들까지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 금단의 유혹이라고.
* * *
악마의 게임.
처음에는 분명 그렇게 불렸다.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유명무실해진 수식어지만 말이다.
'무슨 프렌치카페도 아니고.'
근데 이 당시에는 정말이었다. 전작의 인기가 워낙 엄청났기 때문이다.
블라자드 자체가 친한국적인 행보를 밟아온 영향도 있다.
국뽕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RealFact다.
왕십리 전야제.
세계에서 가장 먼저 디아볼로3를 구매할 수 있는 이벤트도 말이다.
─디아블로아재님, 별풍선 2000개 감사합니다!
빨리 달리자!
"방송 킨지 1분도 안 됐는데 갑자기 2천 개를…… 아~ 회장님이시네! 닉변 하셨구나."
―디아블로아재ㅋㅋㅋㅋㅋ
―아재 서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빨리! 빨리! 빨리!
그 진정한 승자가 되어서 돌아왔다.
방송을 키자마자 시청자 수가 미친 듯이 올라간다.
'나름 재밌었지.'
9시 뉴스에 나오는 일이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다.
잔뜩 즐기고 돌아왔는데 방송까지 잘되니 일석이조다.
새로운 게임.
그것도 숙제를 받은 게임을 별도의 포장 없이 즐길 수 있다.
나로서는 충분히 만족하는 상황이지만.
─디린이1호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다른 BJ들 이미 다 시작했어요 ㅠㅠ
"아 그래요? 게임이 재밌나 보네."
―당연히 재밌지ㅋㅋ
―악마의 게임 아님?
―지금 남들은 빨리 깨려고 난리인데……
―어차피 늦긴 했어
시청자들은 그렇지 않다. 채팅창 민심이 뒤숭숭하다.
BJ로서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다.
'팬덤들간의 자존심 싸움이라는 게 있어서.'
보라판과 마찬가지다. 게임판도 대기업들은 신경전이 오간다.
이렇듯 대형 화제가 있을 때 누가 가장 앞서가나.
너희 집엔 금송아지 없제?
그 영향을 팬들도 받게 된다. 마치 메호대전처럼 팬들끼리 싸우는 것이다.
유치하긴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팬문화다.
내 팬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면 실망시켜서야 섭할 노릇이다.
끼룩~ 끼룩 끼룩 끼룩!
까마귀 우는 소리와 함께 게임이 시작된다.
디아볼로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피부를 타고 흐른다.
―오오!
―사운드 개쩐다ㄷㄷ
―역시 블라자드
―오정환은 이제 시작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어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정성스레 만든 사이버 수면제 같은 느낌이지만 말이다.
'아니, 일단 사운드부터 잠이 와.'
끼룩끼룩은 인정한다.
문제는 기본 BGM의 밍밍함이다.
디아볼로2의 어둡고 칙칙한 그 미스터리한 느낌을 전혀 계승하지 못했다.
"제가 거의 하루 반을 돗자리 깔고 기다려서 최초 구매자가 됐는데…… 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최초 격파도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그러네……
―진짜 개힘들겠다ㅠㅠ
―근데 그래도 해야지ㅋㅋㅋㅋㅋ
―악마의 게임이잖아! 개꿀잼인데!
BGM은 잔잔하며 끊임없이 반복된다.
타격음은 밋밋하며 단조롭게 끊어진다.
유저들의 귀에 자장가로 들릴 만도 하다.
'RPG게임에서 소리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데.'
그 이유는 차후에 밝혀진다.
한마디로 디렉터가 병신이었다.
디아볼로가 어떤 게임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만들었다.
블라자드 내부의 파벌 싸움과도 이어진다. 사내 정치가 게임 퀄리티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대작 게임이 수면제가 돼버린 건 여러가지 사정이 복합된 결과다.
─바바리안매니아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야만전사 할 거죠? 야만전사 할 거죠? 야만전사 할 거죠? 야만전사 할 거죠?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직업 추천해주시고 계신데 저는 처음부터 악사 하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왜?
―단호박
―악사 ㅈ구린데 수도승 하지 ㅡㅡ
―훨윈드의 로망을 모르네
설사 그렇다 쳐도 일단 해야 한다.
숙제이기도 하거니와, 게이머로서 남들한테 지는 건 혀 깨물고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못 참는다.
'그래서 두 시간 패널티 준 거야.'
몇 번이나 깨본 입장에서 일방적인 양학은 흥이 떨어진다.
패널티를 좀 달고 하는 편이 나로서도 스릴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