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디아3가 컨트롤이 겁나 필요한 게임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지만, 리스크를 감수한 사냥에 대한 리턴은 상당히 쏠쏠하게 책정돼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존나 이상하다니까.'
이게 얼마나 게이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요소인데.
달빛조각사 같은 겜판소처럼 실력만 받쳐주면 남들보다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만들어 놓고 못 쓰게 해놨다는 것이다.
레벨이 올라간 후에는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다.
레벨이 낮은 캠페인 구간에서는 이렇듯 잘만 이용하면.
◈생존◈
「생명력 3.9%로 살아남음!」
「경험치 보너스+ 6974」
추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몰이 사냥까지 겸하자 레벨업 속도가 통상의 3배를 웃돈다.
─거품펑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2시간 반 먼저 시작한 펑이조보다 레벨 높네ㅋㅋㅋㅋㅋ
"100개로 팬클럽 감사합니다. 그분이 게임을 설렁설렁하시나 보죠"
―개빡겜 중인데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맥이네
―노예들 동원한 거 모름?
―아 그저 ^거품방울톡톡^
훨씬 앞서 스타트를 끊은 펑이조를 따라잡는데 성공한다.
물론 아이템은 여전히 누더기나 다름없는 걸 걸치고 있지만.
'악사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디아3 초창기 최고의 OP 소리를 듣던 직업이다.
기본 DPS 자체가 월등하여 템부족은 문제가 안된다.
빈약한 생존 능력은 컨트롤로 커버하며 사냥을 이어나간다.
<디아볼로가 수정 회랑의 빛을 꺼트리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형태를 잃어갑니다! 그 빛이 영원히 꺼져 버린다면…….>
"천사들 평생 뭐 ㅈ되는 건가? 심영처럼."
―심영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고자라니!
―디아가 김두한이었어?
―아니, 영화 감상 그만하라고 ㅡㅡ
동시에 캠페인도 진척된다.
무아지경으로 해나가 보니 어느새 챕터4의 마무리 단계에 도달했다.
'스토리가 맛이 가있긴 한데 몰입감은 있어.'
디아3의 참 오묘한 부분이다.
분명 잘 만들었는데 잘 만든 게 아니야.
어쨌든 최종 보스인 디아볼로를 쓰러뜨려야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는 카이팅으로 해결했지만, 보스까지 그런 반꼼수가 먹혀들진 않는다.
<일곱 악마는 내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내가 바로 군단이다!>
광역기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보스답게 CC기도 안 먹혀서 가붕이 마냥 농락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걸 전제로 공략을 하면 되지.'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펑이조와 달리 나는 직업 이해도가 있다.
디아볼로 레이드에 맞는 최적의 스킬셋을 완성시켰다.
끼릭― 촥!
끼릭― 촥!
자동 쇠뇌에서 화살이 발사된다.
설치만 해두면 자동으로 딜이 누적된다.
다른 스킬도 유도탄이 달린 것으로 세팅해뒀다.
─보라의神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겁나 치사하게 하네ㅋㅋㅋㅋㅋ
"아 닥치세요. 1만 개가 걸려있는데."
―1만 개는 ㅇㅈ이지
―지금 미션 걸린 거 합하면 거의 2만 개임ㅋㅋㅋㅋㅋㅋ―개씹 얍시……
―중요할 때는 안전빵으로 가네 ㅉㅉ
광역기 패턴이 너무 많다.
웬만큼 조심해도 딜을 박다 보면 한 번은 휩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예 딜 욕심을 버려야 돼.'
물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 정도까지 안 해도 된다. 아이템은 여전히 누더기고, 악사는 물몸 중의 물몸이다.
그런 스펙으로 최종 보스를 도전하는 것부터가 무리다. 컨트롤과 숙련도에 자신이 있어도 주제 파악은 항상 해야 한다.
<네가 알았고 사랑했던 모든 이들과 함께 죽음을 맞아라.>
심지어 하드코어.
죽으면 재도전도 할 수 없다.
수준급 프로게이머도 레고를 삼키는데 내가 뭐라고 자존심을 세워.
3페이즈에 들어가 더 많은 공격이 쏟아지지만 안정적인 스탠스를 유지한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고 디아볼로를 격파하는데 신중을 기한다.
콰직!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실수는 한다.
또 삼켰다 미숙아!
데프트 선수의 마음이 백분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바닥에서 1초만에 생성되는 뼈 감옥. 간발의 차이로 피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그대로 디아볼로에게 먹혀서 원콤을 당하게 되는데.
―뭐야?
―?? 안 아픈데?
―펑이조처럼 거품딜인가
―연막 켰잖아 ㅄ들아
이건 롤이 아니다.
악사는 연막을 켜면 3초간 즉시 무적이 된다.
AXA 다이렉트 보험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는 이유다.
'지금은 레벨이 낮아서 마음대로 못 쓰는데.'
나중에 만렙이 되면 거의 반무적이 돼버린다.
악사가 가진 진정한 사기성을 맛보기도 전에.
<결국 필멸의 존재가 두 세상이 파멸하는 것을 막고 대악마를 쓰러뜨렸다. 영원히…….>
최종 보스가 무릎을 꿇는다.
드높은 천상에서 떨어져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다.
시네마틱 영상의 퀄리티는 훌륭해도 큰 감흥까진 없는 장면이지만.
─디아달린다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인정합니다……
─kcs4301님, 별풍선 424개 감사합니다!
이걸 진짜 한 번도 안 죽고;;
─디아블로아재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수고해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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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BJ와 시청자간의 약속이 쏟아진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 * *
조금 아이러니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하여 생각해보면 사실 당연한 결과다.
「[BBC NEWS] 디아볼로3 한국 상륙 6시간만에 순직」
오정환이 이루어낸 최초 격파. 이슈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BJ들간의 경쟁까지 불붙으며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그 이상으로 논란이 번진 곳이 있어서 문제다.
기사가 뜬 곳은 한국이 아니다.
북미와 유럽 등지의 디아볼로팬들은 단체로 멘탈이 나갔다.
「npc.EXE」
30분 전。
#DiavoloⅢ#Cleared
얘들아…… 한국에서 디아볼로 벌써 죽었대. 6시간도 안 걸려서
「Tan Roysius Adonis」
31분 전。
#Diavolo#R.I.P
한국 게이머는 심각하게 돌았다. 오직 6시간만에 디아볼로를 죽이고 스토리 라인을 끝냈다
「Todd Wellington」
33분 전。
#DiavoloⅢ#Fucking#Korean
한국에서 디아볼로3를 끝낸 첫 번째 사람이 나왔다. 당연히 이 사람은 우리들 대부분과 같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
.
빨라도 너무 빠르다.
예상했던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것도 있겠지만 사실 가장 큰 건 손도 대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Sorepeong」
41분 전。
#Diavolo#WTF
미국: 디아볼로3 아직 출시 안 됨
한국: 이미 다 깸
LOL
―KEKW
―왜들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상이라도 주나?
―한국인들은 '첫 번째'가 되고 싶은 거야. 난 게임을 즐기면서 내 페이스대로 플레이하겠어 ―망할 한국인들 내게도 기회를 달라고!!!
왕십리 전야제에서 세계 최초로 출시되었다.
그 말인 즉, 다른 나라는 구할 기회도 없었다는 소리다.
블라자드는 글로벌 게임사.
디아볼로의 팬은 세계 각지에 존재한다.
정식 출시가 되는 단 하루도 기다려주지 않았으니 오열이 나올 만도 하다.
「Ahmad Fidaus Azmi」
1시간 전。
#Diavolo#R.I.P
블라자드는 디아볼로3를 만드는데 수 년이 소요됐고, 한국인은 6시간도 안 걸려서 끝냈다
「cheeeweng」
1시간 전。
#Diavolo#R.I.P
블라자드는 6개월을 예상했는데 한국인은 디아볼로 죽이는데 6시간도 안 걸렸대!
「Shoo_notforwear」
1시간 전。
#Diavolo#R.I.P
한국인들은 디아볼로4가 필요함
.
.
.
혼돈의 도가니.
여러가지 확인되지 않은 정보까지 퍼진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Lv. 5의 한국어 정보는 구글 번역도 제대로 듣지 않는다.
해외의 디아볼로팬들은 패닉 상태로 몰고 가며 엄청난 이슈를 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슈성이란 측면에서 한국도 뒤처지는 법이 없다.
─오정환님의 디아볼로3 최초 격파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디아볼로3 최초 구매에 이어
온갖 패널티를 딛고 최초 격파를 한 오정환님께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합니다 ―디아볼로3 유저 일동―
―스토리 본 건 자체 패널티 아님?
―자체 패널팈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대단하긴 하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먹네
당연히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다.
최초 격파가 누구인지.
커뮤니티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거니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승자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온갖 패널티를 주렁주렁 달고도 실력으로 극복했다.
그 모습에 전율이 들지 아니할 수가 없다. 디아볼로3 유저들은 물론 하이에나들도.
─속보) 디아볼로3 인기, 연예인은 물론 정치인도 `관심`더불어민주당 정동영: 도대체 디아볼로가 뭐길래 젊은층이 이래 야단일까요? 직접 해봐야 알 건가?
동양대학교 진중권 교수: 최단 격파 소식 놀랍습니다. 한민족, 정말 위대한 민족입니다 오락하던 디붕이들 어리둥절……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저분은 안 끼어드는 데가 없누
└정치하러 가세요
└이슈 터지니까 정치인들이 게임판도 기웃거리네
사회 현상이다.
수천 명이 모이며 뉴스까지 나가니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화두가 된다.
그 중심에는 오정환이 있다.
최초 구매와 더불어 최초 격파까지 이뤄냈다.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다.
─홍진호의재림님, 별풍선 222개 감사합니다!
2등도 잘한 거야!
"닥쳐 X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22개라서 살았다
―단풍잎에 이어 디아도 2위누
―그저 ^2^
아쉽게 경쟁에서 밀려난 펑이조 또한.
비록 1등은 하지 못했어도 낙수 효과는 충분하다.
디아볼로3의 화제성 탓에 방송만 키면 수천 명이 들어온다.
'두고 봐라.'
물론 장본인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한다.
1위, 2위 이전에 오정환을 꺾고 싶다는 마음으로 불타고 있다.
한 번 패배하기는 했어도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디아볼로가 무슨 점프킹이 아니다.
디아볼로를 잡은 것은 이 게임의 시작에 불과하다.
* * *
최초 구매, 그리고 최초 격파.
디아볼로3를 한 건 딱히 기록 욕심 때문만이 아니다.
'숙제잖아.'
Homework.
블라자드 코리아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그쪽에서도 시험적인 것이었고, 액수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선례가 된다. 업계에서 소문이 퍼진다면 두 번째, 세 번째도 올 수 있다.
물론 첫 번째인 지금도 절대적인 기준에서 적은 금액은 아니다.
─ada1622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소문 듣고 왔습니다…… 개쩌시네요 선생님
"아다님 클라쓰도 개쩌시네요. 500개로 통 큰 팬가입 감사합니다."
―아닼ㅋㅋㅋㅋㅋㅋ
―맥이누
―그걸로 팬가입 말고 다른 거나 떼지
―국위선양 개쩔긴 했어~
인센티브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을 본 시청자 수에 비례해 얼마를 더 주고 그런 게 있다.
'계약 사항에는 없었는데 화제가 되었다고 얹어준 것도 있고.'
여러 집 살림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하튼 생각한 대로 되니 상당히 재미지다. 특히 해외에서 논란이 됐다는 부분이 말이다.
"요즘 뭐 이야기가 많은데 그 정도로 어려운 건 아니에요."
과장된 측면이 있다.
개발자들이 6개월을 예상했다 카더라!
글자 그대로 카더라고, 노말 난이도는 누가 하더라도 하루 내에 깰 수 있다.
똥손인 펑이조가 나와 경쟁한 것만 봐도 그러하다.
어째서 그런 루머가 생겼나?
굳이 추측을 해보자면 불지옥 난이도 격파에 걸린 내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몇 달이나 걸릴까? 사내에서 실제로 내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몇 달?
―지금 상황 보면 달 단위 아닐 것 같은데ㅋㅋㅋㅋ
―꼴리네
―ㄹㅇ 이런 건 예상 박살내줘야 꿀잼임
그렇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숙제를 받아서 시작하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잘 만든 게임이고 인기도 많다.
'그리고 경쟁이라는 게 재밌어.'
가장 최선두에서 달리는 감각 말이다.
타격감 있는 샌드백과 목표까지 생겼다.
한동안 날로 먹을 수 있는 콘텐츠가 굴러들어 온 것이 가장 큰 인센티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