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디아볼로3는 절대 못 만든 게임이 아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건 한두 명이 만드는 게 아니고, 수십에서 수천 명의 인력이 함께 일을 한다.
그 점에 있어서 안타까웠다.
블라자드의 내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건 2018년 이후이니 말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죽었습니다. ◈
당신의 위대한 용기는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일단 내 코가 석자라서 문제다.
하드코어 모드는 사망시 이유를 불문하고 되살릴 수 없다.
건너서는 안될 강을 그만 건너고 말았다.
'잠이 확 깨네.'
반복 사냥의 지루함을 참지 못했다.
아주 잠깐 한눈 팔았을 뿐인데.
그런 뻔한 변명은 하지 않는다.
─디아블로매니아님, 별풍선 982개 감사합니다!
그는 좋은 악사였습니다 ㅠㅠ
"매니아님 굿바이개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추모풍 정말 감사합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첫 번째 하드코어 캐릭으로 괜찮게 했다고 생각해요."
―존나 잘했지
―x를 눌러 joy를 표하십시오
―국위선양 했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
―든든하다 오정환 보유국!
일흔이 넘으면 트럭에 치어 죽어도 자연사다!
젊었으면 피했을 거라는 어떤 흑형의 말처럼 한 달이나 즐겼으면 자연사라고 생각한다.
이 캐릭으로 이룬 것도 많다.
업적이 있으면 좋은 인생이었다고 본다.
정말 캐릭터의 인생이라는 게 디아볼로3에는 존재한다.
『12.5.14 ~ 12.6.15』
◇Zl죤악사S2
◇60레벨 악사
◇플레이 시간: 205시간 38분
영정 사진 말이다.
캐릭터가 죽으면 회색빛으로 물든다.
마우스로 고를 수는 있지만 들어갈 수는 없는 마치 약 올리는 듯한 상태가 돼버린다.
'돈슨이나 NC였으면 부활 패키지 오지게 팔아먹었을 텐데.'
한정 판매 49, 900원!
아재들 이 악물고 샀을 게 눈에 선하다.
죽은 게 쪽팔려서라도 무조건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한 번은 샀을 것이다.
쿨찐짓 하고 있어도 속으로는 존나 아까운 것이 원래 사람 심리다.
걸치고 있는 아이템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못해도 수백만 원의 가치를 지녔다. 일반 유저면 그날 잠은 다 잤다.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982개 감사합니다!
한 달 동안 잘 봤는데 굿바이개는 매너지ㅋ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명예의 전당에 올려줘야 하는 거 아님?
─치즈●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다음 캐릭 뭐하나요!
.
.
.
BJ는 수금을 달달하게 땡길 수 있다.
위문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이렇듯 죽는 것도 하나의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슬슬 악사는 접으려고 했어.'
AXA 다이렉트 보험은 너무 사기다.
최초로 불지옥 난이도까지 격파했으니 요주의 대상이다.
조만간 너프가 되리란 건 굳이 예상이나 기억을 헤집어볼 필요도 없다.
─디아블로잼린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요즘 펑이조가 악사템 싹쓸이하던데 다시 시작하면 1위는 힘들 듯……
"괜찮습니다. 악사 충분히 즐길 만큼 즐겼는데 다른 직업도 해봐야죠."
―펑이조 무기만 300만원에 샀다던데
―ㅁㅊ
―걔는 진짜 돈으로 게임함
―응 어차피 되팔면 본전~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왕도가 없다.
현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돈으로 승리를 사는 짓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꼭 하나를 완성시킬 필요는 없잖아.'
XX장인.
XX풀템 끝판왕!
그런 중2병 넘치는 것들 보다 나는 효율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스타크래프트1 시절에나 종족 하나만 파는 게 당연했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여러 우물을 파야 한다. 그럴 만한 밑천도 준비해두었다.
"다음 캐릭은 소서러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소서러ㄷㄷ
―그건 진짜 쓰레긴데
―아니야 이 형은 다 생각이 있어
―오정환이 출동하면 어떨까?
하드코어 캐릭이 죽으면 걸치고 있는 아이템은 사라지지만, 골드와 보관함에 있는 아이템은 고스란히 남는다.
아예 게임을 접을 정도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좀비소서도 상당히 괜찮거든.'
AXA보다는 한 수 아래긴 해도 그에 준하는 위엄을 뽐낸다.
데미지가 다소 딸리는 대신 안정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우위다.
구조는 간단하다.
미스릴 피부와 치명타 반응의 연동.
미스릴 피부는 즉사급 공격도 최대 체력의 35%를 넘지 못하게 하고, 치명타 반응은 스킬의 쿨타임을 줄여줘 이를 무한히 지속시킨다.
체력을 최저한으로 세팅한 후 피흡 관련 아이템/스킬을 도배하면 완성이다.
즉사할 일이 없으니 받은 데미지만 꾸준히 회복하면 된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좀비가 돼버린다.
『마켄의 증오 덩어리』
전설 보구 ― 보조 장비 ― Lv.61
◇지능 +286
◇정예에게 주는 피해 +6%
◇치명타 확률 +10%
◇치명타 적중 시 자원 9 회복
◇순간이동의 재사용 대기시간 3초 감소
그를 위해 필요한 아이템들은 진작에 사모았다.
각 부위만 따지면 그리 고가템이 아니지만, 이렇듯 모이면 '좀비소서'라는 템세팅으로 불린다.
체력이 없고 치명타 확률만 높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메타의 변화를 알고 있기에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부분이다.
'유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스템 말이야.'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디아볼로는 경우의 수가 너무 적다.
몇 개월만에 밑천이 드러나고 질리게 된다.
사실 이는 모든 게임이 마찬가지다.
유저들이 작정한다면, 특히 한국 게이머가 성화면 불가항력이다. 방송과 유튜브가 성행하며 입소문 나는 속도도 빨라진다.
그래서 필요한 게 패치로 인한 메타의 격변이다.
대표적으로 옆동네 LOL.
2주에 한 번씩은 패치를 하고, 1분기에 한 번은 빅패치를 하며, 프리시즌에는 대격변으로 완전히 갈아엎는다.
그때마다 롤 망한다! 소리 나오는데 망하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게임이라는 건 예술 작품이 아니고, 스타1처럼 맵과 선수들의 실력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데엔 한계가 있다.
어쩌면 스타1과 전작들의 지나친 성공이 블라자드의 버릇을 망쳤다는 가능성을 부정하기 힘들다.
─디아블로아재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악사 죽었다며 ㅠㅠ 위로풍
"크~ 회장님 간만에 1만 개 또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행히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음 캐릭도 준비해뒀는데 괜찮으시면 같이 달려 보실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때다 수금!
―잇쇼니 하시테 데마센카?
―아베 빙의했누
물론 지나친 성공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본인이 알아서 잘 통제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디아볼로 덕분에 회장님도 전성기의 폼을 되찾으셔서 기쁜 나날이다.
* * *
PC방 점유율 40%.
디아볼로3의 흥행은 고공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기세가 꾸준하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오정환 좀비소서 미쳤다 ㄷㄷ
하드코어 악사 뒤져서
ㅈ됐구나 하고 낄낄거렸는데 소서러로 제2 전성기 열어가네ㄷㄷ└그거 개쩔더만
└진짜 좀비 그 자체임ㅋㅋㅋ
└응 AXA가 더 쩔어
└나도 연구해서 사기캐 하나 만들어볼까……
게임의 연구가 진행된다는 소리니까.
최근 전세계 디아볼로 커뮤니티에서는 이슈가 되고 있다.
새롭게 부상하는 '꿀세팅'에 대해 말이다.
─하드코어는 오정환만 믿고 가면 되냐? [7] +1
─AXA vs 좀비소서 비교 좀 [12]
─오정환 악사 뒤지고 약 파는 거 아님? ㅋㅋ [5] +3
─좀비소서 킹론상 괜찮긴 한데…… [2]
.
.
.
낮은 체력과 높은 치명타 확률.
본래라면 있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데미지는 물론 중요하지만 체력의 중요성은 그 이상이다.
불지옥 난이도의 엄청난 공격력 때문이다.
0티어 사기 직업이 된 악사조차 즉사를 피하기 위해 체력을 최대한 챙기는 것이 추세다.
「Method 공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5시간 전。
#Diavolo#R.I.P
[하드코어 악사 죽음. jpg]
인정하겠다
우리는 오만했다
외계인도, 한국인도 아닌 주제에
―KEKW
―겨우 거지새 군주도 못 잡았어? 참담하네
―오해하기 쉽지만 연막은 무한이 아니야. 그리고 악사는 스치는 순간 푹찢이고 ―지금부터라도 김치를 먹어 LOL
그 반면교사.
메소드 공대는 오정환과 같은 세팅으로 불지옥에 도전했다.
세팅에 의한 격차였다면 자존심 정도는 세울 수 있다는 계산으로 말이다.
그것이 마스터키가 아님을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막은 무한이 아니었고, 스킬 배분에 실패하자 돌이킬 수 없다.
체면은 물론 1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게임 내 재화까지 날아갔다.
이는 한동안 SNS와 래딧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동시에 악사가 가진 약점을 상기시키는 교훈이 됐다.
경매장에서 체력템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체력이 필요 없다고? 어째서?"
"미스릴 피부와의 시너지 때문인가 봐. 이론적으로도 그럴 듯하고……."
"그 한국인이 쓰고 있다면 말 다했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새로운 방식이 나왔다.
가장 먼저 아시아 서버에서 유행을 탔고, 아메리카·유럽·중국 서버에도 빠르게 번져 나간다.
메소드 공대를 포함한 각 서버의 상위권 랭커들이 경쟁하듯이 아이템을 샀기 때문이다.
패치의 여파까지 더해지자 경매장 내 아이템 시세는 뒤집어진다.
─거품펑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악사 쓰레긴데 왜 함?
"닥쳐 이 새끼야! 아 갑자기 너프하고 X랄이야 아이템도 다 샀는데……."
―너무 사기라?
―ㄹㅇㅋㅋ만 치라고
―요즘 좀비소서가 사기에요! 시세 오르기 전에 빨리 사야 함―자존심 때문에 절대 못 사죠?
새로운 1위 악사로 목에 한껏 힘을 주고 다니던 펑이조로서는 날벼락이다.
되팔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2천만 원 이상 현질을 박았다.
그것이 하루 아침에 떡락.
언젠가 떡상의 기회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장의 금전적 손실이 더 와 닿는다.
허탈할 정도를 넘어 머릿속이 하얘지기 직전인데.
─펑이조사장팬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이걸로 좀비소서 현질 가즈아!
"가즈아아아아―!!"
―바로 기운 차리누ㅋㅋㅋㅋ
―자본치료는 못 참지
―와 1만 개
―펑이조 방에서 5자리 얼마만이냐 ㄷㄷ
BJ에게는 불운조차 콘텐츠다.
새로운 육성이 간단한 디아볼로의 특성상 장비값만 있다면 직업을 쉽게 바꿀 수 있다.
그 어느 게임에나 있는 메타의 변화.
기존 유저 입장에서는 화가 나지만, 새로운 기회와 낮아진 허들은 신규 유저의 유입을 촉진시킨다.
「[네이버News] PC방 점유율 1위 디아볼로3! 전세계에서 화제가 되는 이 게임!」
「[패치 분석] 디아볼로3 대규모 패치 감행……. 악사 전성시대 종결, 소서러 시대 개막」
「[게임 리뷰] 증명했다! 악마의 게임 디아볼로, 전세계 유저들을 게임 중독에 빠뜨리다」
불지옥 난이도의 지나치게 빠른 격파는 자극이 되어 패치 방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게임의 수명을 어느 정도 상승시킬 만큼 말이다.
"자 따라 해봐 오른~."
"루시안."
"그게 아니지~ 다시 해봐 마오카이."
"칼리스타."
"으헝헝……."
"역시 더샤이야! 절대 양보 따윈 없지."
그것으로 메울 수 있는 구멍에 한계가 있을 뿐이다.
디아볼로3는 제작 초기 단계부터 삐걱거렸고, 이는 게임의 완성도에 크나큰 균열을 만들었다.
뒤늦게 패치를 한다고 커버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각 부서 간의 대립도 여전하다. 사업팀과 개발팀은 물론, 중간 관리자와 실무자도 손발이 안 맞는다.
대외적 이슈는 아주 잠시 동안 그들의 방향성을 일치시켜 주었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불과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적신호가 울려온다.
마침 학생들의 방학과 맞물리는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