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69화 (169/846)

169화

냉장고의 약탈자

디아볼로3는 절대 못 만든 게임이 아니다.

하지만 잘 만들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패치를 통해 보완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매번 늦고 유저들과의 소통도 아쉬운 측면이 컸다.

'망하게 된 건 불가피한 흐름이었다는 거지.'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신호음이 들려온다.

콘텐츠가 부조카당!

스토리가 이상하당!

어느 게임에서나 있을 법한 불만보다 더 유저들의 힘을 빠지게 만드는 건.

─디아블로매니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골드값이 똥값이에요 게임이 망하려나 봄

"그러게요. 무슨 짐바블로3도 아니고."

―짐바블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짐바브웨 아시는구나!

―인기가 떨어져서 그런가

―헐……

바로 게임 내 화폐의 인플레이션이다.

RPG게임이라면 대부분 안고 가는 문제지만 디아볼로는 그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워낙 인기 게임이다.

게임 시스템상 매크로가 안 걸린다.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며 작업장들이 골드를 찍어내듯 뱉었기 때문이다.

물론 반등의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디아볼로3의 판매량과 이름값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늦더라고 고치면 되는데 블라자드는 그조차 안 하고 최악의 악수를 둔다.

─DBD7353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겜블만 살렸어도 이 지경은 안됐다 ㅇㅈ?

"씹인정인 부분이죠 그건."

―골드 인플레는 확실히 사라지겠네

―생각만 해도 싼다

―올ㅋ

―틀딱들 풀발기 성공!

한 마디로 우틀않.

탈빵의 씨맥도 "아 이건 좀;;" 할 만큼 미련하기 그지없는 억지를 부려왔다.

유저들의 피드백을 어금니 꽉 깨물고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근데 이게 디아볼로만의 문제가 아니야.'

이 시절 블라자드 게임들이 전부 그러했다.

대표적으로 스타2.

전작의 위상을 봤을 때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해외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무조건 뜰 수밖에 없다.

지지 기반이 얼마나 탄탄한데 이걸 말아먹어.

그 어려운 걸 블라자드가 해냈다는 이야기다.

1. 손대는 게임마다 망친 밸런스 디자이너 DK 앉혀두기

2. 스타1과 다른 유즈맵 시스템 밀어붙이기

스타1 유저의 절대 다수는 무한맵과 유즈맵만 한다.

유즈맵 유저가 곧 유입이고, 팬층이 되는데 이를 틀어막았다. 래더의 밸런스는 개판으로 유지해 프로씬도 시들시들하게 만들었다.

'e스포츠로 뜰 만한 가능성을 싹 다 잘라버렸다는 거지.'

유저들도 바보가 아니다.

인기 게임급 되면 정말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건설적인 비판을 내놓는다.

이걸 수용하기만 해도 소위 말하는 평타는 친다.

까놓고 말해서 돈슨. 얘네가 운영을 잘해서 메이플, 던파, 카트, 바람 등이 롱런 하고 있을까?

절대 아니라는 사실은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미워도 다시 한번!

그 X랄하면서 소 잃고 외양관이라도 고치니까 복귀 유저들이 먹여 살리는 것이다.

나이 들면 신작이 손에 잘 안 잡혀서 익숙한 거 하려고 하거든.

딸칵!

딸칵!

덜그락―!

진짜 할아버지, 할머니들 소일거리마냥 끄적거리고 있다.

놀랍게도 현재 디아볼로3의 가장 핫하고 대중적인 콘텐츠다.

─디아블로2개월차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폐지 주우면서 폐지 줍는 방송 보고 있음ㅋㅋㅋ

"100개 감사합니다. 저도 현자타임 씨게 오네요."

―폐지 씹것ㅋ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어이가 없음

―보스몹 드롭률을 올리면 안되나?

―팩트) 보스런보다 득템 잘 나옴

여러가지 도전적인 기록을 세우는 과정은 이미 다 끝났다. 만렙 유저가 할 수 있는 건 아이템 맞추기밖에 안 남았다.

'사냥하는 것보다 상자나 돌무더기 뒤지는 게 득템 확률이 더 높다 보니 생긴 기현상이지.'

이를 통칭 '폐지 줍기'라고 부른다.

유저들도 어이가 없어서 붙인 별칭이다.

이게 싫으면 하루종일 경매장을 뒤져보는 것밖에 없다.

심지어 이 또한 사냥보다는 효율이 낫다.

득템은 사냥이 아니라 '경매장에서 병신이 싸게 올린 템 사는 거다' 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하루종일 게임에서 폐지 줍고 있는 건 할 짓이 아닌 것 같고, 디아도 슬슬 질리는데 다른 콘텐츠 생각해봐야겠네요."

―폐지겜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겜이냐?

―토끼공듀…… 당신이 옳았어

―토끼공듀 의문의 1승

―리아 젖이나 주무르러 가죠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전작이 훌륭한 게임들이 대체 왜 망했지?

그럴 만한 이유가 이중·삼중으로 첩첩한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볼수록 망하게 된 것은 인과응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닌 것도 맞아.'

막상 내가 디렉터로 들어간다고 해도 어디부터 어디까지 손대야 될지 막막하다.

그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맞불 작전이 정답에 가깝다고 본다.

무작정 많은 패치를 한다. 유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만 선택적 수용한다. 개발사는 튀어나오는 문제만 다듬어주는 식으로 밸런스를 조정시킨다.

실제 LOL이나 메이플 등 롱런하는 게임들이 쓰는 방식이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일단 게임사가 부지런해야 하는데 블라자드는 해당 사항이 없다.

정해진 말로를 걸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게임사고, 여러 지탄을 받긴 해도 잘 나간다.

나 따위가 걱정한다는 게 우습겠지만 한 명의 게이머로서 안타까움이 있을 뿐이다.

─블앤소꿀잼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블앤소 오픈한다는데 각?

"저도 그 소식 듣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NC는 좀 그래요."

―현질 때문에?

―돈슨 게임하면서 NC 까는 건 좀

―돈슨 홍보대사자너~

―암 상도덕이 있지ㅋㅋㅋㅋ

수작으로 평가 받는 NC소프트의 신작 게임이다.

무협이라는 이색적인 요소를 도입해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 시도 자체는 처음이 아니지만 중요한 건 퀄리티다.

높은 타격감과 액션이 받쳐줘야 하는데 블앤소는 이를 충족시켰다.

상업적 흥행 또한 거둔다. 방송 콘텐츠로 나쁜 선택은 아니다.

아재 게임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여하튼.'

최근 한 달간은 거의 디아볼로만 하고 지냈다.

철크루 활동은 쉬고 있다.

디아가 꿀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철꾸라지와 김군 등도 숟가락을 얹었기 때문이다.

리아는 알아서 잘 춘다.

여캠에게 합방은 인지도 쌓는 용이고, 혼자 방송하는 게 수금은 훨씬 잘된다.

심심하다고 지저귀지만 디아 하자고 하면 입을 다문다.

평화로운 나날이다.

* * *

인터넷 방송은 콘텐츠 순환 속도가 빠르다.

어떤 것이 엄청난 이슈가 됐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들시들해진다.

─요즘 철꾸라지랑 김군 디아 안 함?

오정환 팔아서 디아 열심히 하더니

오늘 보니 젖 주무르고 있네

└꿀 다 빨았잖아ㅋ

└걔네가 진심으로 게임 했겠음?

└수금용이지

└보라 원투데이 보누

특히 인기BJ들은 민감하다.

보통BJ들은 고정 시청자를 데리고 방송하지만, 인기BJ들은 유동 시청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요즘 디아볼로 뜬다던데?

평소라면 자신의 방송을 보러 올 이들이 다른 곳으로 샌다.

이를 붙잡기 위해서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기BJ의 숙명이다.

─디아 노잼이다

─악마의 게임은 슈벌ㅋㅋㅋㅋㅋㅋ

─악마도 이거 하다 졸겠는데?

─폐지 줍기는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거냐 ㅡㅡ

.

.

.

반대로 대세가 아니라면 칼같이 버린다.

헤비 유저들은 몰라도 라이트 유저들 사이에서 디아볼로3의 평가가 낮아졌다.

게임 내 콘텐츠도 바닥이 났다.

그 흐름에 부합하여 원점 회귀를 택했다.

보라판에서 다시 활동하기로 입을 모은 것이다.

철꾸―「오는 수요일 철와대에 모인다. 이의 있나?」

정환―「있습니다」

준호―「저도요」

준호―「?」

김군―「있대잖아ㅋㅋㅋㅋㅋㅋ」

철크루의 단톡방.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수월하지 않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수장은 당연히 철꾸라지였지만.

'이 새끼가?'

그동안 디아볼로 콘텐츠를 진행했다.

보라BJ인 그들이 게임판에서 영향력을 행세하기 위해서는 오정환의 이름값이 필요했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오정환의 발언권이 강해진다.

철크루 내 서열이 이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다.

철꾸―「뭐 디아 더 하게?」

철꾸―「그거 완전 ㅈ망했더만」

정환―「점유율 30%가 ㅈ망은 아니죠」

철꾸―「마아아아아아―!!」

김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경전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애시당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들이다.

이해타산에 의해 뭉쳤어도, 이전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다. 언제 다시 타오를지 모를 불씨 말이다.

만에 하나 도화선이 불붙어도 아쉬운 입장이 되지 않도록 평소에 신경을 쓴다.

익태―「무슨 일이 있는데?」

익태―「이것도 일인데 확실히 말해야지」

정환―「선약이 있습니다」

익태―「중요하냐?」

정환―「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익태―「그럼 됐다」

물론 그런 분열은 탐탁지 않다.

철크루의 실질적 수장인 심익태가 그런 BJ들의 속내를 모를 리 없다.

'내가 니들 머리 꼭대기에 있는데.'

그리고 이는 심익태가 다분 의도했던 흐름이기도 하다. 철크루의 득세로 철꾸라지의 머리가 커지면 통제하기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소속 인원들이 서로 견제하게 만든다.

준호는 방송감이 전무해 성장이 더디지만 오정환은 쓸 만하다.

"오정환이 요즘 대세긴 합니다. 디아볼로가 한풀 꺾여서 어떻게 될지 또 모르긴 한데……."

"그렇지.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지."

"그래도 좀 너무 크는 거 아닐까요?"

"……."

너무 쓸 만해서 문제다.

새로 나온 신작 게임, 심익태도 추억이 돋아 근 한 달을 날려먹은 디아볼로를 평정했다.

최초 구매, 최초 격파, 최초 불지옥 난이도의 정복까지 모든 위업이 오정환의 손에 이루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잘 키웠으면 잘 써먹으면 되지.'

철꾸라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이용 가치가 높다.

지금은 게임을 하고 있어도, 일거리를 쥐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보라BJ로 되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부하 직원의 우려도 일리가 있다.

한 새끼가 너무 머리가 커지는 건 좋지 않다.

그 점은 심익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본격적인 일거리를 슬슬 맡겨볼 생각이다.

* * *

디아볼로는 날이 갈수록 주춤하다.

BJ로서 할 만한 콘텐츠도 바닥이 보인다.

단풍잎이면 주문서라도 갈거나 보스레이드로 대박이라도 노렸겠지만.

'디아는 보스 레이드의 의미가 딱히 없어서.'

처음 깰 때나 감동이 있는 거지.

근본적으로 레이드 규모가 너무 작다. 무식하게 세다는 점도 아이템 질이 올라가면 상쇄된다.

한 달이라도 간 게 어찌 보면 기적이다.

대격변급 패치가 있으면 좋겠지만, 할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콘텐츠를 알아봐야 한다.

딱히 걱정할 것도 없는 일이다.

다른 걸 하고 싶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워낙 수면제 게임이다 보니 한 달이나 하면 좀이 쑤신다.

'평화롭긴 해.'

물론 나쁘진 않다.

좀이 쑤신다는 건 그만큼 평화롭다는 방증이다.

치열하기 그지없는 보라판보다 삶적으로 여유가 훨씬 충만하다.

하지만 안위해서는 안 된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BJ의 세계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했을 리 없다. 디아볼로를 하면서 몇 가지 짜둔 게 있다.

그런 것보다 당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다.

6월 말.

대단히 큰 상징성을 가진 날짜다.

길었던 평화에 파국이 찾아오는 건 시간 문제에 불과했다.

딩동―♪

냉장고의 약탈자가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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