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70화 (170/846)

170화

"오빠 봄이가 왔어요……."

"그래.

"봄이가 와버렸어요!"

"그렇구나."

"꾸웨엑……."

감동의 재회를 가진다.

자그마한 봄이의 대가리를 꽈악 깨물자 싱그러운 봄 향기가 코끝을 찌르는 듯하다.

'여러 의미로.'

오랜만에 보는 봄이의 얼굴은 초췌…해지기는 커녕 통통해졌다.

급식이 아주 꿀떡꿀떡 잘 넘어간 모양이다.

훌륭한 급식충의 본보기다.

급식 사태의 해결 이후 이따금 쪼르르 찾아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췄고, 근 한 달은 얼굴도 보지 못했다.

"시험 잘 봤어?"

"잘 본 거예요~."

"오빠 덕분이야?"

"오빠 덕분이에요~."

"그럼 여기 쪽 해야지."

기말고사 때문이다.

중간고사 성적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맛있어진 급식 덕이 있는지는 몰라도 결과가 좋았다니 다행이다.

쪽!

우리 봄이의 미소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보람이 있다.

이전처럼 다시 촉촉해진 입술이 볼에 살포시 닿는다.

"봄이가 왔기 때문에!"

"때문에?"

"굉~장히 맛있는 걸 먹을 거예요."

"그래, 그래."

물론 본인도 속셈이 있다.

땡그랗게 뜬 눈동자를 굴리며 능글맞게 나를 쳐다본다.

내가 사 달라면 사주는 그런 사람.

'맞지.'

어쩜 이리 귀여울 수가 없다.

봄이와 두 손을 마주 잡고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맛있는 거 먹을까?"

"맛있는 거! 맛있는 거!"

"그래~"

우리 봄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세상.

시험이 끝난 봄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내 자취방에 제집 드나들듯 오다닌다.

정말이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오빠, 오빠 빵을 왜 단팥빵밖에 안 사와요?"

"그래."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인생을 손해 보는 거예요~"

"그렇구나."

무엇이든 도가 지나치면 좋지 않다.

우리집 식량 사정이 지난 겨울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철저한 조사를 시작한다.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깨물어 먹는 것밖에 없어요."

"그래."

"요즘은 퍼 먹는 게 맛있는데~ 가끔은 쭈쭈바도 나쁘지 않은데~!"

"니가 사 그럼!"

"꾸웨에엑!"

식탐이 보통이 아니다. 냉장고 안을 나보다 더 빠삭하게 꿰고 있다.

놀러 오면 일단 하는 일이 냉장고를 열어보는 일이니 말 다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한창 꾸역꾸역 처먹는 게 낙일 나이다. 복스럽게 먹는 모습은 입가를 절로 흐뭇하게 만든다.

"봄이야."

"봄이에요."

"냉장고 안쪽에 작은 통 못 봤니? 이렇게 열어서 따는 구조인데."

"저는 아모고토 몰라요."

"그렇구나."

하지만 복스러운 것과 미련한 것은 한 끗 차이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봄이가 끄윽― 작은 트름을 딸꾹질처럼 내뱉는다.

'그래.'

최근 집에 큰 쥐새끼가 한 마리 살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사두었던 먹거리가 자꾸 자꾸 사라진다.

"그치만, 그치만!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건 괜찮잖아요."

"그래."

물론 잔반 처리반 느낌도 있다.

혼자 살다 보면 남는 음식물이 안 생길 수가 없는데 우리 봄이가 게눈 감추듯이 해치운다.

멀쩡한 것도 해치워서 문제다.

음식 가지고 쪼잔하게 굴고 싶지 않지만 나도 내 기호품이 있고, 기분에 따라 반드시 먹어야 할 게 있는데.

"완전 까매서 맛이 가기 직전이었어요."

"그래."

"연어알은 신선할 때 먹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맛은 어땠니?"

"의외로 비린 맛도 없고 고소한 게 꿀맛이었어요!"

"그렇구나."

"꾸웨엑……."

대신 다른 것을 먹는다.

봄이 대가리도 손에 꼽는 기호품이다.

안타깝게도 미성년자이라 술과 함께 먹을 수가 없다.

'이 자식아!'

보통 고도수를 마신다.

위스키나 보드카 등은 안주와 함께 먹지 않는다.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 걸치는 느낌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안주는 물. 술의 향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매운 음식은 향을 죽여서 먹을 수가 없다.

"안 상한 거 알았으면 그만 먹어야지."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거예요. 저도 저 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나도 못 멈추겠다 이 자식아!"

"꾸웨엑―!"

그래도 가끔 입이 심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가벼운 안주를 몇 개 준비해두는데 가장 선호하는 건 송이버섯이다.

'잘게 찢어서 기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그만이지.'

배 터지게 먹는 게 아니라 몇 입 깔짝이다.

보관까지 용이하다 보니 혼자 사는 입장에서 매력적인 식재료다.

캐비아도 같은 맥락이다.

뚜껑을 꼭 닫으면 최대 한 달까지 상하지 않아 조금씩 안주로 아껴 먹을 수 있다.

"이건 말이야. 혀에 10알 정도 얹은 다음 입천장으로 눌러 터트려서 고소함을 맛보는 거야."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맛있어요~."

"숟가락으로 맞아 볼래?"

"꾸웨엑!"

세계 3대 진미!

실상은 그 정도로 비싸진 않다.

10g의 작은 용량이 피자 한 판 가격으로, 먹는 양을 생각하면 그렇게 부담 가는 액수는 아니다.

매우 괘씸해서 그렇지.

할 줄 아는 게 꾸역꾸역 처먹는 것밖에 없나.

정말 석기시대에 태어났으면 매일매일 등짝 스매쉬가 끝이지 않았을 아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다.

밥만 처먹는 식충도 돈을 벌 수 있다.

화이트 칼라를 말하는 게 아닌 글자 그대로의 의미다.

* * *

파프리카TV.

셀 수 없는 방송 종류를 자랑하지만 인터넷 방송 공화국이지만 수익의 90% 이상을 '보이는 라디오'에 의지하는 기형적인 구조다.

별풍선 유도가 쉬운 콘텐츠라서.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지나치게 인위적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규모의 검은 돈이 조직적으로 연계되고 있다.

"형님 이번 달 수입이……."

"수입이 왜?"

"너무 좋습니다. 카드깡 하던 애들이 막히니까 별풍깡 하려고 난리거든요~!"

"크크크크!"

일명 '카드깡'.

카드로 물건을 결제하고 물건 대신 현금을 받는다.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고액 수수료를 감수하고 맡기는 일종의 돈세탁이다.

하지만 카드사도 바보가 아니다.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막으려고 한다.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포위망은 더 촘촘해진다.

'우리야 뭐 당일 정산도 가능하니까. 미친놈들 돈 빨아 먹긴 딱 좋지.'

그러다 보니 정산에 시간이 걸린다.

초급전이 필요한 이들은 '별풍깡'을 찾게 됐다.

안 그래도 20~30% 까이는 수수료가 더 높아지지만 '따서 갚으면 그만'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마친다.

업체들의 주수입원이기도 하다. 하위 업체가 보는 재미는 딱 그 정도.

상위 업체는 바람잡이, 허세풍 등으로 2차 가공까지 시켜 더욱더 큰 목돈을 벌어들인다.

"근데 진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왜 너무 잘 벌려?"

"아니, 그게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BJ가 있어서요."

"흠…… 그건 확실히 문제지."

심익태가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보다 스마트할 뿐이지.

직접 여캠을 키워 불법 자금이 훨씬 윤활하게 돌도록 만들었다.

본래라면 중간 수수료로 나갈 돈도 자신이 먹는다. 움직이는 돈의 규모도 직접 관리가 가능하니 보다 많은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

'윾신 이 새끼가…….'

그래봤자 결국 불법이라 문제다.

수 틀리는 순간 차게 될 건 쇠고랑이다.

푼돈으로 장난치는 놈들이 사기꾼이고, 10억 이상은 경제사범이라 높여 불러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당연히 안 걸리는 편이 속 편하다.

"그러니까 윾신님이……."

"어차피 그 새끼랑은 일 안 하니까 그냥 말 까."

"네! 걔가 요즘 회사랑도 사이가 틀어지고 입지가 좀 애매해졌잖아요?"

"그렇지."

"언제 한 번 막 나갈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요즘 뒤숭숭합니다."

보라판의 삼대장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윾신은 철구라지, 그리고 김군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아니, 방송 연차를 따진다면 그 둘보다도 위인 선배격이다.

이 업계에 대해 누구보다 빠삭하다.

그만한 인물이 통제가 안 된다는 건 큰일이다.

파프리카TV는 물론, 심익태를 포함한 업체들에게도 말이다.

이러한 일이 처음일 리가 없다.

한두 번의 불화로 무너질 업계라면 진작에 사달이 났을 것이다.

대처 방법은 메뉴얼화되어 있다.

"방법은 그게 가장 좋겠지?"

"예, 근데……."

"근데 뭐?"

"그만한 거물을 묻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죠."

"……."

유명인을 묻는 가장 좋은 방법.

일단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발언을 트집 잡거나, 유언비어 유포하는 등 여론을 교란시킨다.

그렇게 실드를 벗겨낸 후, 실수를 했을 때 맹공을 퍼붓는 것으로 정·재계에서는 흔하게 쓰인다.

이는 굉장히 전문적이고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고작해야 범죄자 무리가 흉내 낼 스케일이 아니다.

하지만 판이 작은 만큼 흉내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어지간한 BJ라면 어렵지 않게 매장시켜 버린다.

'삼대장급은 일이 어떻게 번질지 몰라.'

윾신은 시청자도, 인지도도, 영향력도 막대하다.

주먹구구식으로 나섰다간 뒤처리가 감당이 안 된다.

이런 일에 굳이 앞장서서 독박을 쓸 이유.

심익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윾신이 사라지면 보라판은 자신들의 것이다. 삼대장을 무려 둘이나 보유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제 추측이지만 남수길 사장님도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그 형님도 전부터 이를 갈고 있었으니까."

파프리카TV측에도 진작에 찍혔다.

자신들이 한 번 손을 봐주면 마무리는 믿고 맡길 수 있다.

'형님이 허락만 해주면 나도 못 나설 거 없지.'

심익태는 남수길과 형·동생을 하는 사이다.

서로 상부상조하기 때문이지만 언제 토사구팽 당할지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빚을 만들고, 자신의 영향력도 확대시킨다.

파프리카TV 내에서 입지를 보다 공고히 다질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 내린다.

"철꾸형한테 미리 연락 넣을까요? 슬슬 방송 끝났을 것 같은데……."

"아니, 오정환이야."

"네?"

"정환이도 큰일 한 번 해봐야지. 이 기회에 책임감이란 것도 배우고."

계획은 간단하다.

BJ들을 동원해 윾신의 영향력을 축소시킨다.

보통은 철꾸라지가 궂은 일을 도맡지만 오정환에게도 맡겨볼 생각이다.

'세상 무서운 줄 알아야 주제 파악을 하는 거지.'

개 패듯이 패는 게 약인 철꾸라지와 달리 오정환은 머리가 잘 굴러간다.

업계의 무서움을 경험시키면 어설픈 폭력을 쓰는 것보다 어련히 잘 이해할 것이다.

"정환아 나다."

<예, 형님>

"굉장히 중요하다는 선약은 끝냈고?"

<네, 덕분에 제 시간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크흠! 알면 됐고. 그럼 이번에 말이야……."

바로 전화를 걸어 업무 내용을 전달한다.

지금까지 맡긴 일거리가 한둘이 아닌 만큼 에둘러 설명할 필요도 없다.

물론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이야기다.

여캠 합방은 오정환의 특기지만 이번 것은 아예 상상도 못해봤을 일이다.

'못 한다고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다른 업무를 맡길 때 강제력이 생긴다.

철꾸라지와 달리 오정환은 이용 가치가 높다.

홍보를 맡길 여캠도 쌓여있으니 어느 쪽이든 심익태에게는 이득이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뭐,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아닙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방법에 관해서는…….>

"믿고 맡길 테니까 귀찮게 설명하지 마!"

괜히 말 섞으면 머리 아픈 부류의 인간이기도 하다.

들었어야 했는데.

후회를 하게 되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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