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먹방의 본좌?
윾신.
파프리카TV의 1세대 BJ다.
차후 완전히 몰락해 말로가 초라해지긴 해도 무시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철꾸라지나 양땅도 1세대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1.5세대로 분류된다.
윾신은 그보다 더 이전부터 방송을 해왔으며, 인터넷 방송을 하나의 직업으로 바라본 최초의 BJ 중 하나다.
<짬뽕 국물! 짜장 면발!>
무엇보다 '먹방'.
말 그대로 스트리머가 음식을 먹는 방송의 통칭이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신박한 개념이었다.
대체 왜?
그걸 왜 하고, 그걸 왜 보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해외에서는 'Mukbang’이라는 고유 명사로 만들어 부를 정도다.
─[U]시장행님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진짜 맛깔나게 잘 드시네요!
<어이구야! 시장이 오랜만에 100개 고맙다~!>
―이게 먹쇼 본좌인가ㄷㄷ
―진짜 처먹는 걸 방송하네
―ㅊㄲㅇ
―쩝쩝충 극혐
윾신의 방송.
수천 명의 시청자가 그가 음식을 먹는 걸 보고 있다.
파프리카TV 최초로 먹방을 시도한 BJ로 이름이 높다.
'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아니고.'
사실 누구나 한 번은 해볼 법한 것이다. 방송을 켰는데 배고파서 라면 하나 먹었다.
윾신 이전부터 먹방을 한 BJ가 한둘일 리 없다.
그렇다면 윾신은 뭘까?
롤로 따지면 '파랑이즈'의 창시자는 어떤 골드지만, 이를 대중화시킨 사람은 외국 프로 선수라는 느낌이다.
대기업BJ 중에 처음으로 먹방을 콘텐츠화시켰다.
'먹쇼'라는 명칭으로 차별화를 시도했고, 그것이 먹방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도 틀린 말까진 아니다.
─충신지빡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우리집 개보다 더 드럽게 처먹으시네요
<뭐? 처먹어?? 너 고소할 거야 이 새끼야아―!!>
―고소ㅋㅋㅋㅋㅋㅋ
―아몰랑! 무슨무슨 죄로 고소할 거라고 ㅡㅡ
―ㄹㅇㅋㅋ
―밥상에서 숟가락으로 대가리 존나 처맞긴 했을 듯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물론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딱히 식욕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그런 감상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섣부르게 판단하긴 뭣하다.
'여하튼.'
윾신의 방송을 보고 있다.
손자병법 3장 모공(謀攻)편의 결구처럼 일단 상대를 알아야 한다.
나하고는 세대 차이가 나는 BJ다 보니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딱히 위협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블루오션의 특수가 아니었다면 방송적 성공은 어림도 없었을 거라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배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며칠 전, 심익태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윾신의 방송적 영향력을 축소시켜 달라고.
'드문 일도 아니지.'
BJ 한 명을 묻는 일.
좀 더 우회적으로 표현하면 타BJ를 공격하는 것 말이다.
실제 커뮤니티에서는 팬덤간의 싸움이 하루에 열댓 번도 더 일어난다.
─요즘 쿤견들 왜 이렇게 나댐????
철꾸라지한테 개처맞고
시다바리 되기로 한 주제에
요즘 너무 선 넘는 거 아님?
└ㅊㄲㅇ
└처맞는 건 니 학창 시절이고
└철빡이들은 ㄹㅇ처맞아야 말을 들음
└BJ들끼리는 친하기만 한데 팬덤끼리 꼭 X랄이네
평소에도 싸우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게 보라판 팬덤이다. BJ의 의사까지 더해지면 팬덤은 광분할 명분을 얻는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싸움을 일으킨다.
철빡이 같은 애들이 작정하고 물고 늘어지면 진짜 어지간한 BJ들은 멘탈부터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보통 철꾸라지한테 일을 맡기는데.'
사고 치는 것 하나는 전문 분야다.
이미지도 더 나빠질 게 없는 수준이라 뭔 짓을 해도 괜찮다.
그런 3D 업무를 내가 맡게 된 것이다.
대체 무슨 의도로?
고심을 해볼 만큼 생각이 깊은 인간이 아니다.
당장 놓여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급선무다.
"헉!"
"봄이야."
"죄송해요…… 저도 가끔 이러는 제 자신이 싫어요."
"알면서 왜 그래."
캐비아 사건 이후 눈치라는 걸 갖게 된 봄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닭꼬치를 내려놓는다.
둘마트에서 사온 것으로 데우지도 않아 차가울 텐데.
'도야지도 아니고 증말.'
우리 봄이가 원래부터 식탐이 많긴 했지만 최근에는 좀 과하게 미련하다.
내 집에 오면 일단 냉장고부터 뒤지고, 어디에 어떤 음식이 있는지 외우고서 몰래 빼먹는다.
"아우 진짜!"
"꾸웨웩……."
돼지 멱 따는 소리처럼 들리잖아.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라서 두피가 아주 감칠맛이 예술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먹었으면 열심히 크기라도 해야지.'
친구들과 달리 가성비가 썩 뛰어나지 않은 아이다.
하지만 착한 아이고, 먹는 걸로 뭐라 하는 것만큼 서러운 게 없다.
"그치만, 그치만……!"
요즘 석식이 안 나오는 거예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그런 거예요……."
물론 나름대로 사정은 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 단축 수업을 한다.
자습도 하고, 영화도 보고 놀자판이다 보니 석식도 스킵된다.
'어머님이 해주는 건강한 식사가 마음에 안 드나 보네.'
뺀질나게 내 자취방에 드나드는 이유다.
에스키모들이 울타리 하나 없는 눈밭에서 암염을 미끼로 순록을 키운다고 하는데, 나도 음식을 미끼로 봄이를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봄이 사료값이 아까운 게 아니다.
보다 바람직한 방향을 능력을 살리고자 할 뿐이지.
개똥도 충분히 약에 쓸 수 있다.
"봄이야."
"봄이에요……."
"맛있는 거 먹을까?'
"맛있는 거! 맛있는 거! 근데 제가 먹어도 되는 걸까요?"
"그래, 마음껏 먹어."
일을 할 시간이다.
* * *
보라판의 평화는 종식되었다.
디아볼로3라는 공통 콘텐츠가 그 실효를 다하자 다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즈즈즈즈기요? 오정환씨?"
"네."
"악사 사기라면서요? 근데 왜 한 방에 죽어연? 대가리에 든 게 없으세여?!"
"손가락이 있는 기준으로 사기인데 아예 없을 줄은 몰랐죠."
"마아아아아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들키네
―뇌세포도 없음ㅋ
―ㅊㄲㅇ
물론 그 중심에는 철크루가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한 달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시청자층을 자랑한다.
한동안 독주가 끝나지 않으리란 건 명백하다. 하지만 그것이 보라판의 독식을 의미하진 않는다.
철크루의 합동 방송이 끝나자 이전과는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보라) MC윾신. 원조 먹쇼! 닭똥집 후라이드 매운맛」_ ?12, 092명 시청
「보라) 예능인[김군]. 여캠이 집에 옵니다! 의상 ㄹㅈㄷ」_ ?8, 920명 시청
「보라) 와꾸대장준호. 오랜만에 치킨 무 국물 10연샷!」
_ ?3, 892명 시청.
.
.
한 달 동안 다른 보라BJ들이 손가락만 쪽쪽 빤 게 아니다.
수요는 항상 있을 수밖에 없고, 꾸준히 보라를 진행해온 이들이 치고 나간다.
그 정도는 당연히 계산에 둔다.
철크루의 인지도와 파급력이라면 회복도 순식간이다.
오히려 복귀 효과로 방송 어그로를 톡톡히 끌 줄 알았는데.
"짬뽕은 국물이오. 짜장은 면발이다~!"
―맞지 맞지
―맛깔나게 먹네
―이분이 먹방 창시자 맞나요?
―화석 같은 BJ지ㅋㅋㅋ
윾신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삼대장이라 불리는 만큼 인기는 있고, 고정 시청자층도 나름 탄탄하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퇴물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철크루의 공백과 한 가지 요행이 그를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려두었다.
─요즘 윾신 존나 괜찮지 않음?
혼자 밥 먹는 거 심심해서 켜뒀는데 습관됨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대리 만족도 되고 ㅇㅇ
└운식당이나 보지
글쓴이― 그건 반쯤 요리 방송이라 ㅂㄹ
└정글러도 못 참는 운식당의 매력을 모르네
└먹방은 윾신이 원조긴 함ㅋㅋㅋㅋ
바로 먹방 때문이다.
이 당시 시청자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했고, 대다수의 이들은 선입견 때문에라도 보지 않았다.
그것을 시간이 해결해준 것이다.
갑작스레 트렌드로 부상하자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진다. 윾신의 인기가 수직 상승하는 결과를 만든다.
『애청자 증가수」
1. MC윾신 ↑12
2. 오정환 ↓1
3. csMax ↑1
4. LetTheKillingBegin ↓1
.
.
.
먹방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는 콘텐츠다.
하고 있는 BJ들이 이미 많고, 다른 BJ들도 그냥 음식 하나 시켜서 적당히 떠들면 된다.
그것이 생각만큼 쉬운 리이 아닐 뿐이다.
먹방이 생소한 건 BJ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식 자리도 불편한 마당에, 나만 바라보는 시청자들 앞에서 밥을 먹는다?
체하기 딱 좋다.
심지어 적절한 리액션과 대화까지 병행해야 한다.
"해물이 아주 실~하네. 이런 건 그냥 먹지 말고 옳지! 초장에 찍어서……."
―오
―초장 준비 잘했네ㅋ
―침 넘어간다……
―다른 먹방BJ랑 수준이 다르긴 함!
쌓이고 쌓인 경험은 확실한 선점 효과를 누리게 해준다.
원조를 찾는다는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성까지 더해지며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문어는 당연히 쌈장에 먹어야지 이 새끼가……."
"지금 그런 거에 화낼 때가 아닙니다!"
그것이 달가워 보일 리가 없다.
안 그래도 윾신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심익태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오정환 이 놈은 움직일 생각이 있는 거야?'
당초 생각했던 계획은 팬덤의 크기로 찍어 누르는 것이었다.
철꾸라지가 가장 잘하는 짓이고, 오정환도 공신력을 바탕으로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안 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윾신의 입지는 커진다.
안 좋았던 이미지도 인기에 힘입어 점점 개선되는 추세다.
공격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역풍을 고려해 목표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초조함을 삼키던 심익태에게 어처구니없는 소식이 전해진다.
공지― 『봄이와 먹방 콘텐츠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오정환입니다
길었던 폐지 줍기를 끝내고, 새로운 콘텐츠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시청자들에게도 말이다.
최근 디아볼로3는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오정환이 어떤 콘텐츠를 할지 이목이 모아지고 있었다.
[Best Comment]― '봄이와' 乃227
[Best Comment]― 봄이가 본체네 ㄹㅇ 乃185
[Best Comment]― 먹방도 봄이도 너무 기대됩니다! 둘이 합치면 더 ㅎㅎ 乃74
더군다나 BJ하와와의 복귀.
두 달 전, 엄청난 파급을 불러일으켰다.
파프리카TV는 물론 정치권까지 술렁이게 만든 그 여파는 아직까지도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와와 방송 복귀 떴다ㅋ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 방송 공지. jpg]
오정환이라 먹방 예정ㅋ
└이왜진
└믿고 있었다고 쥐엔장!
└정치권 섭외 1순위 여캠 ㄷㄷ
└그저 ^급^
난리가 날 만도 하다.
공지가 올라가기 무섭게 퍼날라지며 화제로 자리 잡는다.
수많은 팬들이 그녀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먹방'.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콘텐츠다.
이를 대세BJ로 손 꼽히는 오정환과 하와와가 진행한다?
─하와와 먹방이 진짜 신의 한 수인 게
[오정환과 뷔페 갔던 봄이. jpg]
얘 진짜 잘 먹음
그때도 먹방 하면 잘하겠구나 생각했는데 타이밍까짘ㅋㅋㅋㅋㅋㅋㅋㅋ└오정환이 설계한 거지
└봄이가 뭘 알겠냨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콘텐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짬
└기대된다!
커뮤니티에서는 벌써부터 기대가 무르익는다.
반응을 봤을 때 방송 흥행은 이미 보장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심익태로서는 복장이 터질 뿐이다.
'아니, 내가 무슨 방송 경쟁을 하라고 시킨 줄 아나…….'
하고 많은 콘텐츠 중 먹방을 고른 이유가 무엇인지.
일을 시킨 장본인인 만큼 대략적인 사정이 짐작은 간다.
설명이 부족했다는 생각 또한.
따지고자 핸드폰을 들자 트라우마가 머릿속을 스친다.
말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두 번은 하기 싫은 수치스러운 경험이다.
'X발.'
매우 떨떠름함에도 심익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