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말이다.
사람이 한 음식만 먹고 살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어렸을 때 고기맛을 알게 되면 찬투정을 부려보잖아.'
나 고기 없으면 밥 안 먹음!
회귀한 게 아닌 이상 해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야채 없이 햄반찬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떡볶이가 전처럼 맛있게 느껴지지 않아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그런 거예요……."
ㅋㅋㅋㅋ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질린다.
평소에 안 먹던 풀반찬을 찾아서 먹게 된다.
'나이 먹어봐. 다 그래.'
미나리가 땡기는 날이 온다고.
오히려 고기는 안 먹어도 별로 상관이 없다.
이는 입맛의 변화라기 보다는 인간의 몸이 가진 신비함이다.
필요한 영양소를 얻을 수 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아무리 음식이 기호를 탄다고 해도 뇌가 지시하는 근본적인 욕구를 거스르긴 힘들다.
"어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이 그리워졌지?"
"그건 절대 아니에요."
―절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호박
―엄마 음식이 마음에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토끼 아니라잖아ㅋㅋ
어머님께서 이 콘텐츠를 허락해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상상을 어디 봄이만 해봤겠어?
어차피 실패할 걸 알기도 하고.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평소에 꾸역꾸역 미련하게 먹던 아이가 깨작깨작 먹고 있으면 숟가락 마렵지.
고기 반찬은 대충 해도 맛있지만 채소 반찬은 장 보는 것부터 일이다.
나도 먹어봤는데 어머님 맛이 아주 괜찮다.
'음식을 만들 때 손으로 이루는 솜씨에서 우러나오는 맛'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손맛 말이다.
─군필여고생쨩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포기하면 벌칙 있나요? ㅋㅋ
"벌칙은 없고 대신 어머님이 해주는 맛있는 식사를 삼시세끼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저 하루만 더 해볼게요."
물론 그런 것도 있다.
어린아이들은 쓴맛에 대한 감수성이 훨씬 강해서 어른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고.
'내가 쓴맛 감수성이 부족한 걸 수도 있겠지만.'
우리 봄이의 찬투정을 고쳐보고자 기획한 콘텐츠다.
많이도 필요 없고 숟가락만 안 마렵게 하면 어머님도 만족하실 것이다.
"저 야채도 은근히 잘 먹어요. 우리 엄마 음식은 솔직히 문제가 좀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걸 잘 먹는데?"
"저 김치 잘 먹어요!"
"김치녀야?
"??"
―의식의 흐름
―필터 좀 거치라고ㅋㅋㅋㅋㅋㅋㅋ
―봄이 김치녀였어?
―요즘은 철꾸보다 이 새끼가 더 또라이임
기본적으로 어머님들이 자식에게 원하는 바가 많긴 하다.
나라고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정 문제는 정답이 없으니 서로 타협점을 잘 찾았으면 좋겠다.
'여하튼.'
우리 봄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세상은 불과 나흘만에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1주일을 기획한 장기 콘텐츠 치고는 그 끝이 영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예상하고 있던 만큼 진짜 목적은 찬투정을 고치려는 게 아니다.
봄이가 찬투정을 할수록 어머님도 자주 뵈고, 봄이도 나한테 매달리니 일석이조다.
"봄이야."
"봄이에요……."
"어머님이 해주는 맛있는 식사를 삼시세끼 먹기 싫지?"
"가끔은 괜찮아요. 그치만 삼시세끼는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ㅋㅋㅋㅋ
봄이가 숟가락으로 대가리를 맞을 날이 머지않은 듯싶다.
그 날을 조금이라도 늦추고자, 혹은 점진적으로 변화를 꾀하고자, 그냥 우리 봄이랑 놀고 싶어서 기획한 콘텐츠다.
* * *
인터넷 방송은 어그로.
그 두말하면 입 아픈 기본적인 원칙은 의외로 지켜지기 힘들다.
「[SS기획] 여신·먹방·논란이 한 곳에! 화제의 아프리카 BJ들」
「[MC뉴스] 욕하고, 벗고, 때리고, '별풍선' 주면 무조건 OK?」
「[CTS TV] 도 넘은 인터넷 방송 이대로 괜찮은가? 별풍선 주면 간장 '먹방'」
.
.
.
이른바 '선'을 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그로를 끌고 싶은 거면 길바닥에 볼 일을 보던가, 땅에 떨어진 음식이라도 주워 먹으면 된다.
─철꾸라지광팬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이걸 손으로 1분 컷하네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1분 맞잖아연~ 내놔요 내놔!"
――철꾸라지한테 스피드컷 미션을 거네
―『진심 먹기』
―진짜 더럽게도 잘 먹는다
―역시 푸파 본좌!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파프리카TV에서 가장 유명한 BJ인 철꾸라지의 주특기다.
테이블에 음식을 깔고 손으로 비벼 원시인처럼 퍼먹는다.
먹방에서 한 단계 나아간 '푸드 파이트'라는 자신만의 콘텐츠로 진화시켰다!
그런 해석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일반인들 시야에서는 역겹기만 하다.
「인싸이트」― 찌라시 뉴스 미디어
1시간 전。
#철꾸라지#먹방#BJ
[철꾸라지 손으로 라면 먹는 짤. jpg]
이런 먹방은 좀……
―X발
―혐짤 표시 좀 ㅡㅡ
―항상 논란이라는 그 BJ네
―파프리카TV는 쟤를 왜 정지 안 시키는 거임?
TV가 주류를 이루던 과거부터 입지는 두터웠다.
생방송 투데이, VJ특공대, 먹거리 X파일, 식신 로드 등 음식을 콘텐츠를 삼는 방송은 항상 인기가 있었다.
즉, 뜨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먹방'은 대세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일부 악성BJ가 그 골목을 어림도 없지! 하며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윾신 먹방은 확실히 차원이 다르긴 하네
철꾸라지보다 훨씬 맛있게 먹는 걸?
└정말 그렇구나
└먼지에 비벼 먹는 것보단 당연히 낫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손으로만 먹지 마……
└ㅅㅂ 왜 반박이 안되는데
인터넷 방송의 이미지는 시궁창이었다. 먹방에 대한 접근성도 덩달아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틀어막을 수는 없고, 시간이 흐르자 대세 반열에 올랐다.
그 최대 수혜자는 윾신.
선점 효과가 든든하게 인기를 보장해주었다.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 그에게 요행이 지속될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필연이다.
─3연 떡볶이 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
─삐슝빠슝! 떡볶이만 먹는 여자가 있다?
─아니 이걸 진짜로 하네
─아무리 그래도 1주일 떡볶이가 가능함?
.
.
.
보다 빨라졌을 뿐.
최근 먹방의 중심은 BJ하와와에게 있다.
복귀부터 이어진 탄탄한 징검다리와 그녀 본인의 먹성은 환상의 콜라보를 이룬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극적이다.
인터넷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시청자들이 날이 갈수록 그녀의 방송에 몰려드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다 진짜 일주일 채우는 거 아님?
아 진짜 난 이틀도 못할 거 같은데
└이틀이 뭐야 하루면 물림
└응 여자들은 떡볶이에 환장해~
└복스럽게 먹어서 좋더라
└아무튼 커여워!
바로 표정 변화다.
시청자들은 대부분 성인이고, 이 콘텐츠의 결말을 짐작하고 있다.
요는 과연 얼마나 버틸지.
하루하루 달라지는 그녀의 반응을 즐긴다.
이를 보러 오는 시청자 수도 점점 불어만 간다.
─충신지빡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윾신이 이제 5천 따리도 힘드누
"저 쭈꾸미 같은 새끼는 또 들어왔네. 매니저는 저런 새끼 블랙 안 하고 뭐 하는데?!"
―블랙은 매니저 권한에 없습니다
―애꿎은 매니저한테 성내누
―인성ㅉㅉ
―개념도 먹방함?
그만큼 점점 줄어든다.
윾신의 방송은 유의미할 수준의 타격을 받았다.
비교하기 좋아하는 어그로도 부쩍 늘어나 신경이 상당히 거슬린다.
'그래봤자 메뚜기도 한철이지.'
뭔가 특이한 방송이 생기면 시청자가 몰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대부분 오래가지 않고, 식상해지게 되면 돌아올 것이다.
그 기점은 떡볶이가 질릴 때쯤.
한 음식만 퍼먹을 수 없으니 당연하다.
윾신의 예상은 결과적으로 반쯤 들어맞았지만.
「인싸이트」
3시간 전。
#하와와#떡볶이#먹방
[봄이 1~4일차 반응. gif]
1주일간 떡볶이만 먹는 미션 받은 여캠의 표정 변화
「곧은봄」
3시간 전。
#떡볶이녀#먹방
[4일차 봄이. jpg]
떡볶이녀도 1주일은 못 참네ㅋ
「날아라곰탱이」
3시간 전。
#하와와#먹방
BJ하와와 먹방 보는 사람 있어요?
너무 귀엽고 잘 먹음!
.
.
.
그것이 인기의 종식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떡볶이 외길 인생의 콘텐츠가 결국 끝났음에도 시청자 수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봄이에요~! 오늘은 사이드 메뉴를 먹어볼 거예요. 사실 엄청 먹고 싶었는데 떡볶이만 먹어야 돼서 못 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봄이야……
―우리 봄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참치김밥 먹자 참치김밥
시청자들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행은 탔어도 생소한 사람이 훨씬 많다.
매일매일 챙겨보게 되면서 먹방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비록 콘텐츠는 실패했지만 홍보 효과는 탁월했다는 것이다.
고정 팬층이 형성되며 BJ하와와의 먹방은 안정적으로 흥행이 유지된다.
─충신지빡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제 4천따리도 힘드누 ㅠㅠ
"저 쭈꾸미 같은 새끼는 또 와서 X랄이네! 이번에야 말로 블랙을 하던가 해야지……."
―하고 말하던가
―매니저도 빡쳤네ㅋ
―돈 줘서 블랙 안 하는 거임?
―하긴 요즘 풍도 안 터져
그에 반해 윾신의 방송.
시청자 수가 돌아오기는 커녕 더 감소한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윾신도 위기감을 느낀다.
'아니, 씨…… 왜 그러지.'
물론 위화감이 생기는 정도다.
애초에 대기업이기 때문에 시청자가 반토막이 나도 여전히 많고, 경쟁 상대도 24시간 방송을 하는 게 당연히 아니다.
『현재 시청자 순위』
1. MC윾신_ ?7, 059명 시청
2. 예능인[김군]_ ?6, 974명 시청
3. LetTheKillingBegin_ ?2, 102명 시청
BJ하와와의 방송이 꺼지면 낙수 효과를 본다.
먹방을 더 보고 싶은 난민들이 윾신의 방송에 몰리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시청자가 확 올라가니 있었던 위기감도 망각하고 만다.
변화는 물밑에서부터 서서히 일어난다.
* * *
방송이라는 건 정말로 쉽지 않다.
아무리 잘해도 한계에 봉착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가지를 해야 돼.'
한 우물만 파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임BJ인데 하고 있는 게임이 워낙 흥행이라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겪게 된다.
─행복한봄이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요즘 먹방은 봄이가 최고인 듯ㅋㅋ
"100개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헐~ 감사합니당!"
―졸귀탱
―진짜 잘 먹음!
―먹방이 신의 한 수였지
―윾신하고는 비교가 안됨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눈이 높아진다.
고착화된 BJ는 대부분 이에 맞추지 못한다.
어지간히 재능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여러가지를 두루 잘하는 편이 낫다.
'재능도 없다면 결과는 뻔하다는 거지.'
윾신의 방송적 영향력을 줄이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본래라면 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퇴물화를 가속화시킨다.
보다 높은 수준의 방송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글자 그대로 시간 문제.
여유를 가지고 접근해도 된다. 아니, 그렇게 함이 옳다.
방송이 쉽지 않다는 건 우리 봄이도 예외가 아니다.
"봄이야."
"봄이에요~."
"요즘 살 맛이 나지?"
"시청자분들도 좋아해주시고 방송을 하는 보람이 있어요."
"먹고 싶은 걸 다 먹을 수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사실 조금 그래요."
ㅋㅋㅋㅋ
꾸역꾸역 잘도 처먹는다.
먹방을 하는 것이 정말 천직이다.
재능도 뛰어나니 먹방을 대표하는 BJ가 되는 건 꿈이 아니다.
'하지만 인생은 등가교환이지.'
처먹는 게 있다면 찌는 것도 있는 법이다.
사람인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안 그래도 급식을 잘 먹어 통통해진 볼따구가 터질 지경이 돼버렸다.
"그럼 맛있게 먹었으니까."
"네!"
"다이어트 해야지."
"넹?"
우리 봄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