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75화 (175/846)

175화

프로먹방러

세상에 성공한 여캠은 정말 많다.

하지만 절대 다수는 롱런하지 못하고 그저 그런 한 명의 여자BJ로 남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건 윾소나겠지.'

데뷔 1, 2년차에는 상위권에 꼽히던 외모.

점점 무뎌지기 시작하더니 몇년 지나자 동네 아줌마가 돼버린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이가 없는 정도를 넘어 의학적 소견을 알고 싶을 정도로 역변한다.

단순한 노화라고 보기에는 힘든 변화는 다 이유가 있다는 소리다.

BJ라는 직업이 가진 특이성.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지만.'

갑자기 돈이 엄청 생긴다.

일반 직장인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벌어들인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생활 패턴이 단기간에 크게 변한다.

앉아서 방송만 하니 운동량도 적고, 먹는 양은 크게 늘어 몸 관리가 점점 버겁다.

그것이 한꺼번에 확―!

외모가 역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욱 더 안타까운 건 그렇게 한 번 무너지면 끝이라는 것이다.

'진짜 잔인한 말이긴 한데 그게 현실이야.'

원래 현실은 잔인한 법이다.

나도 당연히 어쩌고저쩌고 좋은 말 해주고 싶지만 어설픈 위로에 지나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힝……."

"세 바퀴 더 뛰고 와."

"그치만, 그치만! 너무 힘들어요. 저 진짜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요……."

"알아따따! 두 바퀴만 더 뛰어 그럼."

"진짜요? 정말 마지막이에요?"

우리 봄이를 굴리고 있다.

호수를 낀 작은 공원.

둘레 1km의 가장자리를 아장아장 뛰어다니는 모습을 관찰한다.

'여자 외모는 한 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가 없어.'

30대 후반이 넘어서도 예쁜 연예인들.

20대부터 미친 듯이 관리를 해온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두말하면 입만 아프다.

아직 파릇파릇한 10대지만 빨라서 나쁠 것은 없다.

소아비만에도 도움이 되고, 당장 찌고 있는 살도 좋은 느낌으로 뺄 수 있다.

─봄이사냥개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솔직히 원래 네 바퀴 하려고 했다 ㅇㅈ?

"우리 봄이가 운동을 해야 건강하고 예쁜 외모를 유지할 수 있으니 협조 좀 해주세요."

―잔머리 보솤ㅋㅋㅋㅋㅋㅋㅋㅋ

―운동은 하는 게 맞지

―착한 갈굼 ㅇㅈ

―조깅도 진짜 귀엽게 뛴다

공원 벤치에 앉아 유유자적하게 봄이를 구경한다.

시청자들도 나와 같은 시야로 호수 건너편 봄이의 뜀박질을 보고 있다.

'열심히 성장을 해야 나중에 과학 시간도 진행할 수 있는 거지.'

어째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지.

새 시대의 뉴턴을 내 방송에서 키워낼 수 있다는 장대한 계획을 실현할 날은 멀어 보인다.

친구들과 달리 가성비가 안 좋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관리가 빠듯하게 필요하다.

귀여움과 도야지 한 마리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보라고인물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님도 뛰어야 하는 거 아님?

"저는 여캠이 아니잖아요."

―그건 맞지ㅋㅋㅋㅋㅋㅋㅋㅋ

―봄이 오열ㅋㅋㅋㅋㅋㅋ

―개소리 존나 잘함

―하긴 어차피 빻았으니까ㅋ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진지하게 따져도 할 이유가 없다.

내가 와꾸대장준호처럼 얼굴이 아스팔트에 갈아버린 것처럼 심각하고 몸무게가 세 자리 수인 인간 말종이면 모를까.

'평범하잖아.'

솔직히 내가 진짜 잘생기게 태어났으면 관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걸 알고 있고, 관리해봤자 웃기는 짬뽕밖에 안되기 때문에 손을 놨다.

이는 BJ의 입장을 고려한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영화/드라마/만화 주인공이 너무 잘생기고 이쁘면 이입이 안되는 것처럼 보라도 그런 것이 있다.

아무튼 그렇다.

봄이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도착하자마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봄이야."

"허어엉……."

"물 마셔."

"병 주고 약 주는 거예요."

ㅋㅋㅋㅋ

꼴깍꼴깍 맛나게 생수를 마신다.

보람차다는 듯 땀을 닦지만 이제 겨우 40분도 뛰지 않았다.

'햄버거 하나 칼로리야.'

적어도 한 시간은 더 굴릴 예정이다.

그렇게 서서히 운동량을 늘려나가 종국에는 건강한 몸으로 만들 것이다.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오!"

"마지막으로 세 바퀴만 더 뛰자."

"오빠 너무 못됐어요. 아까부터 자꾸 늘어나고 있어요!"

"눈치챘어?"

이게 다 수법이다.

한 번에 10바퀴는 힘들어도 2바퀴, 3바퀴씩 나눠 뛰면 젖 먹던 힘을 짜내게 돼있다.

평소라면 20분도 못 뛰고 주저앉을 아이를 40분이나 뛰게 만들었다.

심통이 나서 볼을 부풀리고 있지만 조금만 달래주면 된다.

"니가 요즘 많이 먹었잖아."

"솔직히 조금 찔리는 부분이 있긴 해요."

"먹은 만큼 운동하는 거야."

―아ㅋㅋㅋㅋㅋㅋ

―떡볶이 많이 먹긴 했지

―봄이야……

―이걸 인정한다고?

동기 부여 말이다.

봄이의 두뇌가 풀가동한다.

어떻게 해야 지금의 상황이 자신에게 이로울 수 있을지.

"그럼 저 많이 운동하면요. 많이 먹어도 되는 걸까요?"

"그래."

"그럼 저 뛸게요. 엄청 뛸게요! 그리고 엄청 많이 먹을 거예요!"

ㅋㅋㅋㅋ

계산을 마친 모양이다.

입가에 잔뜩 고인 침을 삼키며 희망 찬 미래를 향해 달려나간다.

* * *

최근 보라판을 강타하는 하나의 콘텐츠.

먹방은 파프리카TV 전역에 이르는 대유행을 만들고 있다.

─요즘 먹방 달리는 BJ 엄청 늘었네?

ㅈ노잼이라 안 한다더니

갑자기 왜 우두루급 태세 전환하냐?

└우두루가 뭔데 씹덕아

└ㅁㄹ

└봄이 때문 아님?

└하와와 뜨는 거 보고 감 잡은 거지 뭐

주목을 받아온지는 꽤 오래됐다.

실제로 많은 BJ들이 따라해 보기도 했지만 적응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윾신은 엄청 오래 해왔다며?

콘텐츠 베꼈다고 욕 먹는 거 아님?

마음속에 장전돼있던 브레이크가 풀렸다는 느낌이다.

「보라) 밤프리카. 탕수육+짜장면+차돌박이짬뽕 먹방」_ ?892명 시청

「보라) 부산폭격기. 보충제 먹방 풀코스 갑니다!」

_ ?1, 274명 시청「보라) 오정환. 여캠 먹방」_ ?5, 102명 시청.

.

.

거리낌 없이 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먹힌다.

BJ입장에서는 아직 어색할 수 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타인과 밥을 먹는 느낌이다.

문제가 되었던 건 선입견뿐이다. 그것이 벗겨지자 흥행이 쉬워지고, BJ들은 맛있게 먹기 위해 더 노력한다.

─요즘 겜비들도 먹방 하네

상도덕이 없나 상도덕이 ㅉㅉ

└ㅄ

└상도덕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

└너 윾빠지?

└그만큼 날먹 콘텐츠니까 개나 소나 하는 거지

그 여파는 다른 BJ들에게도 미친다.

먹방을 보라BJ만 하라는 법도 없고, 일반BJ들도 시도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냥 방송을 키고 음식을 먹으면 된다.

평소라면 절대 안 할 짓도 유행이라니 한 번 해본다.

─먹방 볼 만한 거 꽤 많아졌는데?

[파프리카TV 먹방 카테고리. jpg]

웃긴 게

뭘 봐도 윾신보다는 맛있게 먹음

└이거 ㄹㅇ임

└애초에 윾신처럼 맛없게 처먹기도 힘들어

└팩트) 윾신이 먹방 1위였다

└윾신 이 새끼는 노력을 안 함 ㅉㅉ

즉, 판이 넓어진다.

재능 있는 BJ가 속속들이 발견된다. 그에 따라 먹방에 관심도 날이 갈수록 커진다.

파프리카TV에서 주류를 차지한다.

SNS에서도 먹방에 관한 해시 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졌다.

「인싸이트」― 찌라시 뉴스 미디어

1시간 전。

#하와와#먹방#초밥#맛집

[회전 초밥 먹는 봄이. jpg]

BJ하와와가 추천하는 맛집이라네요?

―얘 진짜 잘 먹음!

―짤만 봐도 먹방 왜 보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네

―ㄹㅇ 계속 보게 됨

―커엽다 ㄷㄷ

물론 그 중심에는 BJ하와와가 우뚝 섰다.

먹방BJ로서 가장 이름을 떨치는 정도를 넘어 하나의 표준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봄이에요 봄이! 봄이가 왔다구요! 저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참았어요. 그리고 승리했어요! 종아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만큼 맛있게 먹을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봄이야!

―오정환은 캔커피 빨면서 놀았는데

―맛있게 먹고 행복해지자 ㅠㅠ

어째서 먹방을 보는지.

어떻게 해야 시청자가 좋아하는지.

특히 BJ들 입장에서 와 닿을 수밖에 없는 표현력을 자랑한다.

'와 엄청 맛있게 잘 먹네.'

'저렇게 한 번 해보면 나도…….'

'아니, 그냥 음식 사서 먹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제대로 이해한 이들도 있다.

반대로 수박 겉핥기만 한 이들도 많다.

중요한 건 그들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스노우볼이 대차게 굴러간다.

* * *

수많은 BJ들이 먹방판에 뛰어들었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파이가 커진 것이지만, 그 부과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충신지빡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제 욕하기도 불쌍하누ㅠㅠ

"저 쭈꾸미 같은 새끼는 어그로 끌 거면 100개는 쏘고 해!"

―에혀

―정 들었누

―먹방보다 어그로 끄는 게 재밌는 방송ㅋㅋ

―좀 쩝쩝거리면서 먹지 마요……

먹방의 평균 수준이 크게 상승했다.

BJ들이 많아지고, 경쟁이 심화되며 자연스레 발전한 것이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인 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최근 윾신의 방송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였다.

'지들이 먹방에 대해 뭘 안다고.'

본래부터 수준이 높지 않았다. 그 자신이 발전하려는 의지도 없다.

시대의 흐름에 묻혀 사라지는 건 당연했다. 보다 빨라졌을 뿐이다.

BJ하와와에 의해 먹방판이 활성화되자 윾신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진다.

─먹방 창시자라는 윾신 방송 봤는데

진짜 별 거 없네

있는 식욕도 사라질 수준이고 시청자랑 하도 싸워대서 못 보겠음└원래 원조집은 별 거 없음

└거품 뽀록난 거지

└심지어 윾신이 원조도 아님ㅋㅋㅋㅋㅋ

글쓴이― ㄹㅇ?

그에 따라 수면 밑에 묻혀있는 부정적인 정보들도 드러난다.

엄밀히 따지면 유행을 시킨 거지, 창시자는 아니라는 이야기 말이다.

그가 대세였을 때는 지장이 없었다.

팬덤이 나서서 실드를 쳐주고 덮어준다.

대세 반열에서 내려가자 까들의 발언력에 힘이 실린다.

─윾신 먹방 역겨운 거 나뿐임??

아무 이유 없이 한대 쳐버리고 싶은 건 나 뿐인가?

└언냐 나두긔!

└ㄹㅇ 숟가락으로 머갈통 때리고 싶음ㅋㅋㅋㅋㅋ

└일단 처먹는 게 너무 드러워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몰상식한 고릴라

윾신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먹방 창시자의 명성이 사라지자 점멸 빠진 야스오처럼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오정환 덕인진 모르겠지만…… 요즘 윾신이 예전 같지 않긴 합니다."

"음……."

"우리 애들이 좀만 수고해서 작업하면 될 것 같은데요?"

심익태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윾신의 방송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여론까지 등을 돌렸으니 구워 삶는 것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

'너무 오래 걸리긴 했는데.'

철꾸라지였다면 길어도 일주일 안에 개판을 내놨을 것이다.

서로 격한 언쟁이 오갈 때 건수 하나 잡아서 영구정지를 먹이면 된다.

남수길 대표 이사와 이야기가 끝난 부분이다. 뒤처리는 알아서 해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후폭풍은 분명 거세다. 잘못하면 러브샷으로 따라갈 수도 있다.

윾신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 오랫동안 질척거릴 게 분명하다.

그럴 염려가 사라졌다.

아다리가 잘 맞은 덕분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훨씬 스마트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오정환이 생각보다 일을 잘해줬네요."

"그러게."

"너무 일을 잘해서 놀라울 정도긴 한데."

부하 직원의 속뜻을 모를 리 없다.

일을 잘해도 너무 잘해.

깨끗한 일을 하는 게 아닌 심익태는 그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늑대를 견제하려다 호랑이 새끼를 키워서는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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