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77화 (177/846)

177화

보스몹이 체력을 숨김

방학이다.

우리 봄이에게도 뜻 깊은 시간이지만 이는 세간에서도 마찬가지다.

방학만 되면 유난해지는 어떤 게임은 특히 말이다.

─메이플아재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새로운 보스 나왔던데 미션 ㄱㄱ?

"100개 감사합니…… 아~ 회장님이시네!"

―디아아재 아니었음?

―본닉

―폼 돌아왔누ㅋㅋㅋㅋ

―회장님도 똥3은 못 참았다……

단풍잎스토리의 업데이트는 방학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딩 게임의 대명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이기도 하다.

'방학 직전에 반에서 화제잖아.'

그거 봤음?

단풍잎 새 직업 나왔음!

반 애들끼리 모여서 길드 만들자ㅋㅋㅋ

돈슨답게 학생들의 어그로를 끌 만한 패치를 잘한다.

구체적으로는 무언가 엄청난 것의 정체가 공개되고, 새 직업이 나오고, 경험치 관련 이벤트로 유입 장벽을 허문다.

빅뱅 패치 이후로는 더욱 가감이 없어졌다.

그럴 듯한 거 아무거나 구겨 넣는다.

초기에는 대형 사건급이었던 신규 직업도 이제는 방학마다 진행하는 단골 행사다.

─메린이에용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번 보스 미쳤음ㅋㅋ 진짜 절대로 못 깸

"그래요? 근데 그 말 너무 많이 들어서 신물이 나올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한테?

―오정환 모르시는구나!

―늅리둥절ㅋㅋ

하지만 대형 보스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핑크린이 추가된지 벌써 2년이 흘렀다.

난공불락이라 일컬어지던 것도 옛말이 되었고, 유저들도 슬슬 새로운 보스를 원하고 있다.

'정확히는 그렇게 느끼도록 유도한 거지.'

디아볼로3가 급속도로 쇠퇴한 이유. 콘텐츠 부족이라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프다.

RPG 게임 대부분이 겪는 문제로, 단풍잎스토리도 예외가 아니다.

게임사들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다. 불지옥 난이도가 미친 듯이 어려웠던 것도, 카오스 라테일과 핑크린의 난이도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절대 깰 수가 없도록 만든다.

유저들이 쳇바퀴를 구르게 만들고, 인심 썼다는 듯 대형 패치를 해서 격파 타이밍을 조절한다.

사실은 다 손바닥 위였다는 이야기다.

─신규 보스 나온 건 좋은데

돈슨 또 보상맵 안 만들어 놓은 거 아님?

카텔 사태 또 일어나면 레전듴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 디아 하러 가야지

└똥3은 좀……

└차라리 똥3이 낫지 유저 개돼지 취급하는 게임보단

└멍꿀! 멍꿀!

이미 커뮤니티에서는 관련 화제가 떠들썩하다.

본래라면 들키지 않고 진행했겠지만, 나로 인해서 그 꿍꿍이가 발각됐기 때문이다.

'공밀레가 되고 있는 개발자들한테는 조금 미안하긴 해.'

일정을 당겨야 한다는 건 개발자가 더 고생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방조도 엄연히 공범의 일종.

먹고 살기 위해서 양심과 타협을 했다면 그 업보도 짊어짐이 옳다.

물론 지난 일이다.

이제 와서 시시콜콜 따질 만큼 내가 받은 게 없지는 않다.

돈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나로서도 좋기도 하다.

"그래도 새 보스가 나왔다면 깨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죠."

―크

―이걸 오정환이 출동하넼ㅋㅋㅋㅋㅋ

―또 ㅈ됐다 개ㅈ슨!

―미션 걸리는데 당연히 해야지~

회장님과도 말이다.

단풍잎스토리BJ로서 응당 가져야 할 목표이기도 하니 일석이조의 콘텐츠다.

* * *

초·중·고등학생의 방학.

따질 것도 없이 돈슨의 최대 성수기다.

실제 매출도 방학을 낀 1분기와 3분기가 가장 도드라진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대형 게임사 중 돈슨만이 유일하다.

그만큼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이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회사 내부의 상황도 굉장히 바쁠 수밖에 없다.

"부장님 오정환과 관련된 보고서가."

"잠깐만! 나 위장약 좀 먹고."

"……."

개발부 부장 장연수는 신경이 곤두서있다.

지난 겨울 방학 당시 일어나 여러 사건들로 실추된 신용을 회복하려면 이번 여름 방학의 패치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그 최대 난관이다.

아니, 유일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오정환과 엮여서 피눈물이 난 사건들은 정말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다.

"보고해봐."

"이번에 추가된 신규 보스 시리우스 있지 말입니다."

"한데?"

"그렇습니다."

"하;"

특히 카오스 라테일과 핑크린 사태는 악몽이었다.

그 뒤처리도 뒤처리지만 크리스마스에 집도 못 가고 죽어라 일만 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위가 쓰리다.

물론 자업자득이라는 말도 틀리진 않지만.

'토끼공듀 같은 새끼들만 아니면 우리도 그러고 싶지 않아.'

게임사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다.

디아볼로3가 괜히 만성적인 콘텐츠 부족에 시달릴까?

콘텐츠 개발은 순수하게 개발자의 업무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개발자 갈아넣는 게 어느 게임사나 마찬가지긴 해도 K―강제징용이 있는 한국보다 덜할 수밖에 없다.

진성 게이머들한테 업데이트 속도는 느리게만 느껴진다.

자신들은 일정을 어떻게든 맞춘다.

야근과 철야를 베이스로 깔고 들어간다.

그렇게 해도 부족한 구멍을 메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꼼수를 썼을 뿐이다.

"이번에는 괜찮아."

"정말 괜찮은 게 맞겠죠?"

"……."

"아니, 그게 그;; 지난번에 워낙 사태가 커질 뻔했다 보니."

한 번 더 일어난다면 곱게는 안 끝난다.

자신의 안위는 그렇다 치고 회사 차원에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호시탐탐 노려오는 하이에나가 워낙 많다.

정치권의 주요 샌드백 중 하나인 게임 업계는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입장이다.

'인생.'

절대 깰 수 없게 내놓은 보스를 기어코 깨버리기에 일어나버린 참사다.

지난번은 유야무야 덮었지만, 요행이 또 일어나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만전의 준비를 다졌다.

"보상맵이 없다거나 그런 문제는 절대 없어."

"아 그런가요? 고생하셨네요."

"그래."

"만약에 깨져도 문제는 없다고 운영팀에 전달해 두겠습니다."

"깰 수 있다면 말이지만 흐흐."

"네?"

무슨 일이 있어도 깰 수 없도록 말이다.

안전벨트의 안전벨트를 아주 두둑하게 둘러두었다.

'사실 그때도 억울했어.'

카오스 라테일과 핑크린은 빅뱅 패치 때 보완 업데이트를 할 계획이었다.

플랜이 그렇게 짜여 있었는데 한 달 남짓 한 사이에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다.

차라리 좀 더 일렀다면 긴급 점검이라도 들어갔겠지만, 미친 듯이 바빴던 시기에 인력을 돌릴 수도 없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외통수를 맞았다.

"그런데……."

"왜?"

"깰 수 없는 난이도로 설정해둔 거면 유저들이 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요?"

"흐흐."

"?"

무식하게 난이도를 높여두면 쉬운 일이다.

겨우 그 정도 대처로 됐다면 개발자 해먹기 쉽다.

유저들의 불만이 안 생길 리가 없고, 공론화 되면 골치 아파질 여지가 있다.

'내가 그런 걸 생각 안 했겠냐고.'

쥐구멍 하나는 반드시 파둔다. 그런 점에 있어서 장연수는 빈틈이 없다.

직급에 비해 젊은 나이인 그는 게이머들의 심리를 아주 잘 안다.

오정환에게 수모를 당하며 더더욱 철저해졌다.

* * *

방학 시즌이 기다려지는 건 유저들도 마찬가지다.

방학마다 대형 패치가 이루어진다고 학습을 했고, 특히 고레벨들은 신규 콘텐츠를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다.

─돈슨이 미친 새끼들인. EU [17] +5

─이걸 진짜 깨라고 내놓은 건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 +3─디아도 안 하고 단풍잎만 달려왔는데 현탐 오네요 [112] +74

─김유신 : 계백 막겠다 [2]

.

.

.

기대가 큰 만큼 실망 또한 크다.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가 현재 불타오르고 있는 이유다.

"아니, 제가 분명히 깼다니까요?"

몇몇BJ들이 참전하며 화제는 더욱 크게 번졌다.

인터넷 방송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생방송의 특성상 신뢰성이 높다는 것도 한몫한다.

다다다다다―!

챵챵! 챵챵!

그러니까 방송을 했다는 소리다.

BJ네글자는 공대를 구성해 최초로 신규 보스 '시리우스'에 도전했다.

굳이 따지면 선례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영상 기록물로 남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커뮤니티에서도 당연히 관심을 가진다.

설사 깨지 못하더라도 재미있는 구경거리고, 유의미한 정보도 축적될 것이다.

BJ본인도 방송 어그로를 목적으로 시리우스에 도전한 거였는데.

"어? 어? 생각보다 할 만한데? 이거 깨겠는데?"

―ㅈ밥이었넼ㅋㅋㅋㅋㅋㅋㅋㅋ

―최초 격파 가자!

―와 ㅁㅊ

―깨면 1만 개 쏩니다^^ (구라ㅎ)

깰 수 있다면 당연히 깨는 게 좋다.

정체불명의 공격들이 떨어지는 폭우 속에서 꾸역꾸역 시리우스의 체력을 깎아내고 또 깎아냈다.

[운명의 수레바퀴의 힘으로 현재 맵에서 부활하시겠습니까?]

캐시템의 힘으로 말이다.

첫 레이드인 만큼 사상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그런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깰 만한 가치가 차고 넘친다.

t없e맑은자zi존 : 헐 깨겠당

X최강x유진이짱z : 아나 ㅅㅂㅋㅋㅋㅋㅋㅋ

고추왕S2 : 이거 깨면 우리가 최초?

vs아긔공쥬vs : 내일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자랑해야긔~

흥분한 건 BJ만이 아니다.

공대원들도 가슴이 두근두근댄다.

자신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가슴이 부푼다.

그만큼 상징성이 크다.

현재 게임계에서 단풍잎스토리의 위상은 높다.

급식충 게임의 대명사답게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는 게 씹가능이다!

'아니, 이거 깨면 진짜 오정환보다 더 유명해지는 거 아니야?'

물론 가장 손이 떨리는 건 BJ 본인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방송 어그로로 가볍게 시도한 레이드가 성공하기 직전이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돈슨 운영자가 전화를 건다거나, 긴급 패치로 시리우스의 난이도를 올려버린다거나.

어느 쪽이든 사실상 도르는 따낸 것이나 다름없다.

시리우스의 최초 격파자로 유명해지고 방송도 특수를 맞으리라 함박 미소가 지어졌지만.

"응?"

―?

―뭐지

―체력 늘어나는 거 나만 봄?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

돈슨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무난하게 깨는 듯했던 레이드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을 맞이한다.

─신규 보스 '시리우스'의 절대로 깰 수 없는. EU

[시리우스 15분 32초 체력 2%. jpg]

[시리우스 15분 31초 체력 47%. jpg]

유저가 깨려고 하면 체력이 차오르기 때문에 ^오^

※출처: BJ네글자 방송

└바로 그거였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피가 차면 못 잡지

└돈슨 이 새끼들 천잰가?

└신규 보스를 코돈빈이 좋아합니다!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다.

단풍잎스토리에는 여러 종류의 보스가 있고, 지금까지 축적된 데이터도 상당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현상이다.

잡기 직전에 체력이 갑자기 차오른다. 그 어처구니없는 기현상에 의해 제한 시간을 전부 소비한 BJ네글자는 보스방에서 쫓겨났다.

이후로도 수차례 도전해봤으나 Fail.

다른 공대들도 같은 이유로 패착을 맛본다.

신규 보스인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만.

─시리우스는 공략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버그일까?

지금까지 나왔던 보스들은

아직은 못 깰 만하네~

공략을 찾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런 느낌이었는데 시리우스는 그냥 아예 모르겠다

└그래도 돈슨이니 뭔가 있을 수도?

└돈슨이니 ㅇㅈㄹㅋㅋ

└돈슨이니 버그일 가능성이 높겠지 개돼지인가

└멍꿀! 멍꿀!

뭐 싸고 뒤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한 기분이 안 들 수가 없다.

인터넷 방송의 유행으로 고레벨들의 고민을 일반 유저들도 공유하게 되면서 화제는 점점 커져만 간다.

그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수수께끼.

이미 적잖이 풀어본 사람이 존재한다.

커뮤니티에서 혹시나 하던 이야기가 나오던 이유였다.

─속보) 오정환 단풍잎 복귀 선언ㄷㄷ

오정환의 등장과 함께 색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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