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시리우스 여제 이후로도 수많은 보스 몬스터들이 출시된다.
아니, 시장 가면 보이는 모르는 채소 마냥 보스들이 막 굴러다닌다.
'이상한 게 막 나와.'
하지만 하나 같이 공략하는 보람이 없다.
패턴도 너무 뻔하고, 피지컬이나 머리 쓸 요소도 없고.
외관만 바뀐 거지 결국은 단단한 데이터 덩어리에 지나지 않다.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시리우스 여제가 쉽다니ㄷㄷ
"진짜 솔직히 말하잖아? 내가 해적이니까 그나마 컨트롤 하는 거지. 나로, 듀블이었으면 동전 꼽고 술 마시면서 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주메 씹가능
―ㄹㅇ 도적들 회피 너무 사기야
―난 어렵던데……
물론 케바케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봤자 아이템 조금 더 맞추면 극복되는 모바일 게임 수준이라 그렇지.
'롤로 따지면 상대가 인베에서 3킬 먹고 시작한 정도는 좋다 이거야.'
혹은 전적을 보니 부캐거나 프로게이머거나.
조금 짜증이 날 수 있을지언정 게이머로선 불타오른다.
문제는 3킬이 아니라 126342킬을 처먹고 와서 딜이 안 박힌다.
브론즈나 챌린저나 똑같이 스공 몇천만 맞추기 전에는 트라이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나친 파워 인플레로 인해 서민과 랭커의 격차가 초초초―극심해지기 때문이다.
─님들 단풍잎 다시 시작하려는데 재밌나요?
무자본으로 간간히 해보려고요 ㅇㅇ
└ㄴㄴ 현질 필수
글쓴이― 헐 왜요
└200부터 사냥도 못할 걸? ㅋㅋㅋㅋㅋ
└랭커 스공 억 단위인데 님 스공 100만임 ㅅㄱ
지금도 서민과 랭커의 차이가 5배~10배 정도 난다.
이것도 심한데 차후에는 그냥 안드로메다 은하가 있다는 걸 언급하기도 민망해진다.
뿐만이 아니다 X발. 밸런스도 개막장이 된다.
일례로 도적 직업이 보스, 일반몹 가리지 않고 회피 100% 사실상 무적이 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폐해가 보스 몬스터의 단순화를 불러일으키는 거지.'
돈슨의 한계라기보다는 지나친 파워 인플레의 영향이 막대하다.
스공 500배!
개발자가 열심히 만들어봤자 단순한 스펙 차이에 파훼가 돼버린다.
그래서 맷집이다.
체력만 무식하게 올린다.
이러한 현상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RPG의 약세에 일조한다.
─클템이현역임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그럼 롤하는 거 어떰? 피지컬겜 씹가능인데
"100개 팬가입 감사합니다. 지금 제가 빡치긴 했는데 다른 게임을 논할 단계까진 아니라."
―롤이 뭔데 씹덕아!
―저거 씹덕겜임
―롤 아시는구나! 동방프로젝트의 키리사메 마리사와 콘파쿠 요우무를 챔피언으로 만든 게임으로 진.짜.겁.나.재.밌.습.니. 다 ―씹덕 쳐내!
게임이라는 게 클리어했을 때 희열이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돈X랄을 하는 유저들도 돈X랄을 한 보람이 있어야지.
나는 돈X랄로 챌린저를 이겼다!
근데 그 챌린저들이 게임을 안 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단풍잎을 진지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시간 때우기용 모바일 게임 취급이지.'
돈슨 신작이 나와도 아무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금 유도도 과금 유도지만 게임에 깊이가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저번에도 이러다 들켰잖아요. 이번에는 속이려는 의도가 확고하게 느껴져서 더 화나요. 유야무야 넘어갈 사안이 제 생각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진짜 어처구니가 읍다 증말
―유저를 너무 개ㅈ으로 앎
―롤로 갈아타죠?
―롤충 쳐내라고 ㅡㅡ
아쉬움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옛날 메이플은 이렇지 않았다.
한 명의 올드 유저로서 통탄스러운 변화다.
'보다 나은 방향이 분명 있었을 텐데.'
나 하나의 힘은 분명 미약하다.
지난번에는 그 점을 인지하고 물러났다.
그때보다 훨씬 힘을 키웠고, 여론의 격분도 심화시켰다.
스카니아 연합군을 조성한 진짜 이유다.
고작 나 한 명의 문제로 끝내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안다.
공론화야말로 유저가 휘두를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 아니 돈슨 본사로 가서 따져봅시다."
―오오
―가는 거 방송하자!!
―가서 패드립 박죠
―그냥 청와대 가면 안됨?
유저 무서운 줄 깨닫게 만든다.
* * *
오정환의 만렙 달성부터 이어진 초유의 콘텐츠.
시리우스 여제의 격파는 전무후무한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개돼지겜 ON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결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 꼬우면 캐시하라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 돈슨이 이럴 리가 없습니다ㅠㅠ.
.
.
설마 하던 상황이 나와버렸기 때문이다.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과거의 기억과 겹치며 유저들의 분노를 한계까지 자극한다.
─결국 돈슨은 또 미구현 상태에서 방치해 놓은 거임
그걸 숨기기 위해서 무한 힐 박아 놓고ㅋ
정확히는 50번 힐인데 초특급 호화 멤버인 스카니아 연합군이 47초 남기고 깰 정도면 사실상 깨지 말라는 수준 └요령껏 50번인 거 알던가~
└어그로 뭐임
└어그로는 무슨 비꼬는 거지ㅋㅋㅋㅋ
└돈슨ㅁ리ㅏㅁㄴ어ㅗㄹ하ㅓㄴㅇ모러ㅏㅣㄴ오라ㅣㅓㅗㄴ(메모장 킴)
화가 난다.
빡이 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돈슨 게임을 하는 유저 중에 돈슨을 좋아하는 유저는 없다.
단풍잎스토리 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에서 X랄이란 X랄은 다 한다.
블리자드의 블빠나, 유비소프트의 유빠 같은 대형 게임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사 팬덤이 전무하다.
─님들 롤이나 하러 가죠ㄱㄱ
요즘 롤 개뜸
이스포츠화도 되고 있는데 왜 안롤?
└씹덕겜 Out
글쓴이― 돈슨겜은 씹덕겜 아님? 자체 애니메이션이나 만들면서 └아 그러네 └그런 근본 없는 겜 말고 디아나 하자!
그러니까 아쉬울 때 실드 쳐줄 사람도 없다.
오히려 타 게임의 팬들이 이때다 싶어 달려들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홍보한다.
물론 세상은 넓고 개돼지는 많다.
일부 극성 팬덤은 이번 사태를 넘기고자 한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두 번 터진 것도 아니잖아?
─야이~ㅎㅎㅎ 그래서 단풍잎 안 할 거야?
재미있게 해놓고 유치하게 왜 그래~
└말투 개ㅈ같네
└ㅗㅗ
└안 해 X발아!
└이 새끼 ㅈ같아서라도 롤해야지
시간이 갈수록 커뮤니티의 여론은 악화되고, 이탈 현상까지 보인다.
그 규모가 범상치 않다.
일부 논란이 아닌 전체 여론이 뒤집어진 경우는 아무리 돈슨이라도 처음이다.
"전방위적으로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규모가 좀 커요. 이미 여러 커뮤니티에도 퍼날라지고 있고 난리도 아닙니다."
"……."
총괄 디렉터로서 보고를 받는 장연수의 표정이 씁쓸하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고 있었기에 그 충격은 배가 된다.
'X발…….'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다.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절대 못 깨도록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랄까 봐 안전 장치를 교묘하게 걸어두었다.
그 벨트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
길면 2년, 짧아도 반년은 버텨줄 거라 생각했던 시리우스 여제가 너무 단기간에 격파된 영향이다.
"몇 주 지나면 잠잠해지지 않을까?"
"확실히 메뚜기도 한 철이라곤 하지만 글쎄요. 그 메뚜기한테 완전히 뜯어먹힐 가능성도 있어서."
"……."
돈슨은 대기업에 준하는 거대 직업이다.
중국, 대만, 유럽, 미국 등 세계 각지에 진출하여 사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유형의 사고를 쳐봤고, 그 데이터도 가지고 있다.
'…….'
무조건 싹싹 비는 게 상책.
현지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 미운 털이 박히면 회생이 힘들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고, 보다 헬적화가 가능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벌써 가을이구나. 니가 나를 떠난 그 가을~.」
구체적으로는 전화를 한다.
오정환과는 한 번 교섭했던 이력이 있다.
그의 영향력이 막대한 만큼 사태 진화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어떻게든 설득해야 한다. 다른 뚜렷한 대안이 없다.
장연수는 필사적으로 자신이 꺼낼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선보였지만.
"이번에 이벤트 추진하는 게 있는데 정환씨가 굉장히 적격이라……."
<말씀은 고마운데 제가 무슨 비선실세가 아니잖아요. 하라는 데로 유저들이 다 하게.>
"어떻게 말씀을 좀 해주시면 여론이 수그러드는데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지난번과 달리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가 목석 같다기 보다는 사태 자체가 워낙 크다.
어떤 일이든 재범에게 더 높은 형량이 부과된다는 사실은 공통적이다.
'애초에 너만 아니었어도…….'
그 밀고자가 동일 인물이다.
장연수로서는 마음속 깊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결국 아쉬운 건 자신이고, 그가 아니면 사태를 해결하는 일이 더욱 요원해진다.
<부장님이잖아요. 높은 분이 직접 설명을 해주시면 유저들의 마음에 조금은 와 닿지 않을까요?>
"이번에 디렉터로 부임했습니다."
<아이고~ 승진 축하드립니다!>
"……."
책임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지기도 했다.
지난번에는 사고의 뒤처리를 한 정도지만,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하게 체크메이트가 걸렸다.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겠냐고.'
단순한 자존심 문제가 아니다.
가벼운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입장이다.
자신의 말은 단풍잎스토리를 넘어 돈슨을 대변한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된다.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 그리고 정치권까지 눈치를 볼 대상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사태를 방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나왔는데 자네 생각에는 어때?"
"글쎄요. 되려 화제를 키울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흠……."
무엇을 선택해도 애매한 상황이다.
어느 쪽이 차악인지조차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
이럴 때 돈슨에서는 침묵이라는 선택지를 고르기도 한다.
'그것도 애매해.'
평소 같은 상황이었으면 그랬을 것이다.
몸집이 워낙 거대해 어느 정도의 타격은 감수가 된다.
문제는 그 이상의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게 업계 동향이다.
디아볼로3와 LOL 등 경쟁 게임이 위협적이다.
점유율이라는 건 한 번 뺏기면 복구가 쉽지 않고, 돈슨은 그들에게서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위이잉~!
머리가 깨질 듯이 고민하던 찰나.
장연수의 스마트폰이 갑작스레 울린다.
또 어떤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건지 이마가 찡그려졌는데.
「연수씨 바빠요?」
―괜찮아요ㅎㅎ
―무슨 일이에요?
「기사 봐서요……. 힘내시라구」
최근 좋은 느낌으로 무르익고 있는 민하씨였다.
벌써 기사가 떠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리지만 그 이상으로 위로받는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이렇게 힘들 때 자신을 생각해준다.
카톡으로 그녀에게 이번 사태를 토로한다.
「개발자분들은 정말 힘드시겠어요.」
―그렇죠
―유저들은 몰라요
「사실 저도 듣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설명할 계기만 있다면 유저분들도 이해를 해주시지 않을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녀의 업무는 개발직이 아니다.
일반인의 의견에 가깝고, 참고할 여지가 분명 있다.
개발자로서는 알 수 없었던 여러 부분이 보이게 된다.
'확실히 솔직한 이해를 구한 적은 없었지.'
그냥 장연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힘든 때일수록 달콤한 목소리가 더 와닿는 법이다.
어차피 무엇을 고르든 정답이란 선택지는 없는 상황이다.
물론 우발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책임자라는 건 결코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원들과도 충분한 토의를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많다.
하지만 결국 결정권자는 자신.
한 번 돌아가 버린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