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BJ는 어그로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사고조차 콘텐츠로 승화시킬 수 있으니까.'
애드리브는 물론, 설계도 특기인 편이다.
이번 돈슨 본사 레이드 콘텐츠는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됐다.
"결과가 제법 나쁘지 않죠?
<예, 근데…… 좀만 말 좀 살갑게 하시지. 그때 제가 너무 당황해 가지고.>
"화난 유저들을 대표해서 간 건데 가볍게 하면 죽도 밥도 안되죠."
<그래서 그랬던 거죠?>
"그런 것도 있고."
<…….>
단순히 대화 몇 마디 나누고.
합시다!
해요!
이런 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당연하지.'
돈슨이 얼마나 이해타산적인 회사인데.
회사 이름부터가 돈독이 잔뜩 올라있다.
아무리 인맥을 껴도 말 한두 마디로 합의가 불가능하다.
그 점까지 충분히 상정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가 원할 만한 카드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개학 시즌임에도 전년도 같은 분기 대비 유저 수가 월등히 높습니다. 한시적인 것인지 아직은 지켜봐야 알겠지만…….>
단풍잎스토리는 방학 시즌 반짝 게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개학 때 게임을 하면 얼마나 하겠어.'
괜히 초딩 게임의 대명사가 아니다.
주유저층이 잼민이, 급식충, 학식충이다.
방학 때는 부모님이 용돈이라도 쥐어주지만, 개학 때는 컴퓨터 선만 안 끊어도 다행이다.
개학 하는 순간 유저 수가 급감한다. 단풍잎 유저들만 해도 피부로 느낀다.
게임사에서는 보다 절실하게 깨닫는다.
"유입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알죠, 알죠.>
"정말 알았으면 좋겠는데."
<…….>
수익이 걸린 문제니 말이다.
대한민국 대형 게임사 중 유일하게 방학 시즌에 매출 추이가 급변하는 돈슨이다.
지금까지는 블루 오션이 가능케 했지만, 그런 요행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리는 없다.
'경쟁 게임이 등장하거든.'
디아볼로3는 그 신호탄일 뿐이다.
더 많은, 더 강력한 해외 게임들이 물 밀듯이 치고 올라온다.
게임의 질은 물론 서비스적인 측면도 헬조선과는 비교가 안된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도 한국 게임 하기 싫다.
돈은 더 내고, 유저는 개돼지로 보는 게임을 왜 해.
이번 사태가 어떠한 계기로 작용할지는 시간이 알려줄 일이다.
딸칵!
전화 통화를 끊는다.
장연수씨랑 상의한 내용은 단순히 유저들의 화를 달래는 일만이 아니다.
개학 시즌 유저의 유입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인지시켰다.
'이런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유저들은 대부분 성인이고.'
돈슨이 환장하는 수익에 큰 기여를 한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더더욱 말이다.
시작은 무자본으로 해도, 하다 보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흔히 단풍잎은 초딩 게임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저레벨 한정이다.
고레벨부터는 성인 게임이 돼서 게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돈은 쓸 수 있어도, 개돼지는 되고 싶지 않지.'
그것이 성인 유저들의 마음이다.
이번 공약은 어느 정도 진정성이 보였다.
서민 랭커간의 양극화와 직업 밸런스를 해결했다.
전투 분석 시스템.
와 닿지 않는 이 패치는 내가 강조했다.
단풍잎의 밸런스는 곪고 곪아 터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로, 듀블은 왜 하향 안 함?
격수 주제에 생존력도 좋고
딜은 X발 미터기를 뚫을 지경이고
다른 직업에 비해서 너무 단점도 없고 좋은데
└꼬우면 뭐다?
└돈을 많이 쓴 만큼 좋은 거잖아. 니가 걔들처럼 많이 씀?
글쓴이― 썼음……. 히로 스공 7만임
└그래서 누가 전사 하래? 깔깔!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혹은 무책임하게 우기는 유저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태가 도적의 회피율이 100%가 됐던 기현상이다.
'무한 회피가 도적의 컨셉이라는 병신들까지 있었지.'
그런 병신들 때문에 팔불신 같은 진짜 병신 직업들이 기를 못 편다.
게임인 이상 OP는 있을 수밖에 없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다.
전투 분석 시스템은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준다.
롤로 따지면 딜량을 보는 것이다.
누가 봐도 저게 챔이냐?
그런 소리가 절로 나와도 딜량이 안 보이면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이제 보인다.
유저들이 밸런스를 감시할 수 있다.
앞으로는 사기적인 신규 직업 출시에도 눈치를 보게 된다.
딩동―♪
이는 더 이상 방학 시즌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것과 이어진다.
어그로를 위해 무작정 OP직업을 안 내놓아도 기존 유저들이 탄탄한 텃밭을 구성한다.
"오빠 봄이에요 봄이! 봄이가 왔다구요!"
"그래."
"꾸웨엑……."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우리 봄이도 개학에서 자유롭지 않다.
급식충이 가진 운명인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저 이제 여한이 없어요."
"그래."
ㅋㅋㅋ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됐다.
맛있는 걸 꾸역꾸역 꾸역꾸역 처먹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방학을 보냈다.
'그렇겠지.'
방송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었다.
한동안 내가 간섭도 안 해서 메뉴 선택과 행동거지도 자유로웠다.
"뱃속에 그지 새끼가 들었나!'
"꾸웨엑…… 너무 아파요."
먹은 만큼 운동을 할 리가 없다.
통통해진 볼따구가 찹쌀떡처럼 늘어난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가르쳐줄 시간이다.
* * *
BJ는 어그로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이를 능동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방송을 키우는 BJ들도 있지만, 머리를 굴려 효율적으로 어그로만 쏙 빼먹는 이들도 존재한다.
─먹방은의진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의진이 왜 또 기운이 없누
"아뇨, 그냥 요즘 방송이 뜻대로 안돼서 새로운 콘텐츠를 짜야 하나 고민이 많네요."
―시청자 또 뺏김 ㅠㅠ
―김군 때문에……
―하 진짜 대기업이면 다냐!
―ㅊㄲㅇ
BJ의진맨은 먹방의 부상과 함께 날아올랐다.
자체 콘텐츠인 운식당이 먹방과 요리를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안타깝게도 콘텐츠엔 저작권이 없다.
인방의 세계에선 시청자 많은 놈이 갑이다.
다시 한 번 김군에게 콘텐츠를 강탈 당하며 수모를 겪는다.
─의진맨은 진짜 ㅄ이냐?
허구헌날 김군한테 뺏기네
왜 지 콘텐츠 하나 못 지키는 거지
└대기업 상대로 싸우기라도 하게? ㅋㅋ
└숨 죽이며 참는 수밖에 없지
└롤 하면 탑이나 할 놈임
└음식은 정글러도 탐낼 만큼 맛있게 하는 놈이 답답하네
먹방은 최근 파프리카TV에서 가장 핫한 콘텐츠다.
초기에는 발 빠른 BJ들이 재미를 보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대기업BJ들이 치고 올라온다.
방송의 규모에서 상대가 안된다. 방송적 투자도 단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승부를 볼 만한 게 콘텐츠 차별화인데.
『목요일 오후 10시 쿤식당 오픈합니다.』
연예인 김군의 먹방 콘텐츠 Comeback!
창의적인 요리와 신랄한 비평이 공존합니다
김군 마음대로~♪ 「쿤식당」
입장료 안내
☞그날의 MVP, 혹은 별풍선 200개로 룰렛 구입하여 김군의 요리를 맛볼 기회를 얻으십시오!
이조차 비슷하게 베껴 사용한다.
이미 성공이 보장된 포맷을 대기업BJ가 사용하자 실패를 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김군은 선두에 서있다.
비록 수박 겉 핥기이긴 해도 왕년에 연예인이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야~! 먹방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그래요? 선배님이 시범을 좀 보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라면은 이렇게 젓가락으로 한 번에 다 떠서. 야무지게 먹어야징~!"
―저게 입에 다 들어가넼ㅋㅋㅋㅋㅋㅋ
―구와아악!
―역시 식신ㄷㄷ
―비호감이 두 명이나 있누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일단 게스트 섭외력이 엄청나다.
비록 안 나가긴 했어도 KBS 개그맨 출신이고, 안면이 있는 연예인이 제법 있다.
연예인의 특성상 휴식기가 길다.
용돈을 벌 겸, 최근 화제가 되는 인터넷 방송이 뭔지도 알 겸 김군의 방송에 출연해준다.
─오늘 쿤식당 레전드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식신 정주나 왔음!
김군 인맥 ㅁㅊㄷ ㅁㅊㅇ
└무도의 정주나?
글쓴이― ㅇㅇ
└헐 정주나는 너무 거물인데
└정주나랑 김군 둘 다 KBS 개그맨 출신이라 선후배 사이라나 봐
먹방이 유행을 탄 건 예능이 먼저다.
정주나는 '식신로드'의 메인MC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현재 그의 위상은 식신 그 자체로 먹방의 神으로 군림한다.
그만한 연예인이 출연한 것이다.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고, 안 그래도 대기업인 김군의 방송에 날개를 달아준다.
『먹방』― 카테고리
1. 예능인[김군] ↑7
2. BJ하와와 ↓1
3. 철꾸라지 ↑11
4. 사채업자♬ ↓2
.
.
.
그런 상황에 개학까지 겹친다.
BJ하와와가 방송을 접자 경쟁을 할 만한 BJ도 남아있지 않다.
"내가 워낙 방송 질에 신경 쓰다 보니 새 콘텐츠 받아들이는 게 늦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어?"
"형님이 질을 워낙 밝히긴 하죠 헤헤."
"뭐 이 새끼야?"
먹방계를 가볍게 평정한다.
방송을 마친 김군은 직원들을 데리고 룸을 잡는다.
대기업급 BJ는 대부분 방송을 도와주는 이들이 데리고 있다.
'어우, 이 새끼는 지만 잘난 줄 알아.'
'그렇게 잘되면 보너스나 챙겨주던가!'
트렌드 교체가 빠른 인터넷 방송의 특성상 BJ 혼자 콘텐츠를 짜는 게 힘들다.
시청자의 기대치가 높은 대기업은 방송 퀄리티를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도현과 시우는 그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월급은 짜고, 비위 맞추는 건 짜증 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고 김군을 보좌하는 이유는.
"빨리 주문 안 넣어? 형 목 칼칼해 뒈지겠다."
"평소 먹던 걸로 할까요? 골든 블루에 안주 세트."
"그거 말고. 그 익태 형님이 마시는 발렌타인 30년산 맛있더라."
"와~ 30년산!"
"형님 오늘 통 크시네요. 괜찮겠어요?"
"닥치고 시켜!"
떨어지는 떡고물이 달달하다.
직원 월급은 적게 줘도, 먹고 마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으휴, 욕심도 많은 도야지 새끼.'
'그래도 덕분에 호강한다 크크.'
한 병에 100만 원.
룸살롱에서는 높은 가격이 책정된다.
김군 일행이 있는 퍼블릭은 그나마 싼 편이지만 텐프로 같은 곳에서는 200은 잡아야 한다.
자릿값과 가오값도 포함한 가격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귀한 술도 마시고, 같이 온 아가씨들한테도 센 척도 할 수 있으니 한 번 맛 보면 못 헤어나온다.
"오빠들 무슨 일해?"
"대박이다~ 돈 진짜 잘 버나 봐!"
"방송쪽 일 하고 있지."
"에이~."
"이 년들아 진짜라니까? 이 형님 연예인이야!"
물론 들러리다.
김군은 거만하게 앉아 온더락으로 따른 발렌타인 30년을 맛본다.
골든 블루와의 차이점이 느껴지진 않지만 목구멍에 넘어가는 화끈한 느낌이 좋다.
'이 정도는 마셔줘야지. 내가 누군데.'
올해 초 방송이 조금 휘청거렸다.
경쟁자인 철꾸라지와 갑자기 치고 올라온 오정환의 영향이다.
이제는 한 배를 타게 되긴 했어도 완전히 아군이 된 건 아니다.
특히 신인에 불과했던 오정환에게 순위가 밀렸던 사건은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
"대박! 대박! 진짜 네이버에 뜬다. 연예인 맞나 봐."
"요즘은 공중파는 휴식 중이고 BJ 하고 계시지."
"저 BJ 알아요 BJ."
"안다고? 파프리카TV 봐?"
"파프리카TV는 안 보는데 페북에서 오정환 영상 본 적 있어요."
"나도 그거 봤긔! 대박이던데."
"……."
주변에서 자꾸 들려오니 말이다.
새파란 애송이와 비교된다는 사실 자체가 자존심 강한 김군에게는 거슬린다.
"야."
"네, 형님!"
"다른 년들 불러. 질 떨어진다."
"질이 어떻게 떨어집니까? 크크크크."
"장난 같아?"
"우리 뭐 잘못했어요?"
"아 오빠앙~ 잘해줄게 웅?"
뺀지를 먹으면 테이블차지를 받지 못한다.
칭얼거리는 여자들을 강제로 내보내는 직원들을 보며 김군은 볼살을 푸르르 떤다.
'애새끼가 싸가지가 없어. 서열 정리를 한 번 해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