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봄식당은 매주 2일 개업한다.
주말에 밥 맥여서 돌려보내는 가벼운 콘텐츠다.
탁!
탁탁!
양배추와 양파를 가볍게 채썬다.
딱히 대단한 요리가 아니다. 누구나 가끔 해먹을 법한 샐러드다.
"저는 토끼가 아니에요."
"전채 요리야 전채 요리. 풀코스의 시작 단계."
"풀 코스 싫어요! 고기 코스가 좋아요."
"……."
―이걸 들키넼ㅋㅋㅋㅋㅋㅋㅋㅋ
―풀이 얼마나 싫었으면……
―아니ㅋㅋ
―봄이 능지 괜찮나요?
무거운 음식 전에 가볍게 먹기 좋다.
요즘은 고깃집 가도 밑반찬으로 하나씩 나온다.
'그런 데서 주는 건 마요네즈 범벅이잖아.'
우리 봄이가 먹기에는 열량도 높고, 건강에도 별로다.
참기름과 식초로 향을 하고, 소금을 조금 뿌려준다.
간장과 설탕까지 배합하면 흔히 먹는 오리엔탈 드레싱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즐겼으면 해서 뺐다.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사각! 사각!
강판을 사용해 얇게 슬라이스 한다.
트러플이라는 버섯의 일종이다.
샐러드 위에 가볍게 뿌리자 색감도 좋아지고, 고급스러운 느낌도 든다.
─봄이의알파카,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아니, 저 비싼 트러플을 샐러드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0개 감사합니다. 비싸긴 한데 방금 100개 주셔서 적자 메꿨어요."
―트러플이 뭐임?
―나무위키) 한국어로는 서양송로버섯이라고 한다. [2]
―트러플 아시는구나!
―세계 3대 진미 ㅄ들앜ㅋㅋㅋㅋㅋㅋㅋㅋ
세계 3대 진미라는 홍보용 문구도 있다.
나머지 두 개는 캐비아와 푸아그라다.
'빼빼로 데이처럼 상술이지.'
가격이 비싸긴 한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작은 병에 1~2만원으로 재미삼아 즐겨볼 만한 금액이다.
내가 먹는 것은 그러하다. 우리 아이가 먹는 것은 조금 신경 썼다. 중국산이 아닌, 가장 품질이 좋은 이탈리아산으로.
"독특한 향이 느껴지긴 해요."
"그래?"
"근데 저는 버섯 중에서 팽이버섯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해요."
"……."
―애가 그럼 그렇지
―내다 버린 3대 진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까브라……
―샐러드에 넣어서 그런 거 아님?
비싼 식재료니까 비싸게 조리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감자튀김이나 계란 후라이처럼 담백한 음식에 뿌려 먹는 고급 후추 같은 거야.'
간이 센 음식에만 안 뿌리면 된다.
캐비아는 숟가락으로 잘도 퍼먹길래 줘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너 가성비 쩌는 여자구나?"
"한 봉지 500원이에요."
어디까지나 방송 콘텐츠다.
독특한 식재료와 조리법이 시청자 입장에서는 흥미가 인다.
실제로 공중파 요리 예능은 맛보다 비주얼쪽에 초점을 둔다고 한다.
개인 방송도 작은 예능이다. 콘텐츠 기획에 예능 포맷을 참고하기도 한다.
물론 예쁜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에 봄이도 잘 먹는다.
─봄이의삼촌팬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혹시 다음 주말에도 하나요? 제발……
"삼촌팬님 500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예, 반응이 좋으면 주말마다 해볼 생각이에요."
"다음에는 고기 주세요 제발."
―제발!
―팬도 BJ도 훈훈하네
―급식보다 맛있게 만들기 힘들 듯ㅋㅋ
―그저 ^급^
아무리 잘 만든 콘텐츠라도 자주 보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공중파 예능도 그럴지언데 인방은 더할 수밖에 없다.
'규모도 훨씬 작고, 방송 회수는 더 많아서.'
그렇게 단점이 있는 만큼 장점도 있다.
시청자들이 BJ에게 관심을 많이 가진다. 작은 뱁새의 아름다움을 어필하는 것이다.
스토리가 엮인 콘텐츠는 롱런 하기 좋다. 방송의 흥행뿐만 아니라 장기 콘텐츠의 획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
나로서는 바라지 마지 않는 결과이지만.
까톡!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 * *
보라판의 이권은 막대하다.
이미 수많은 업체들이 경쟁을 펼치고 있고, 그 규모는 해가 지날수록 배 단위로 커진다.
'미리미리 사업을 해둔 보람이 있는 거지.'
심익태는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챘다.
먼저 시장에 들어왔음은 물론, 사업 기반을 지키기 위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기업BJ들을 통제해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내가 보니까 뭐 별일도 아니더만……."
"아니, 저는 뭐 별일이래요? 호들갑 떠는 건 형이잖아요!"
이는 실제로 정답에 한없이 가까운 판단이었다.
인터넷 방송이 부상함에 따라 방통위도 규제 수준을 점점 높여간다.
선정성만으로 해먹던 벗방 등은 할 수가 없게 됐다.
팝콘TV 등으로 옮기면 되지만, 아무래도 파이의 크기가 다르다.
다른 업체들이 헤매는 사이.
심익태는 차별화를 꾀해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앞으로도 그 노른자를 계속 먹고 싶은데.
'작작 좀 싸워 새끼들아…….'
그 대기업BJ들이 문제다.
한 명, 한 명이 워낙 개성이 강하다.
한데 뭉쳐두자 별일도 아닌 것으로 싸움이 일어난다. 물론 사소할 수 있는 균열이다.
하지만 어떻게 번져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조용히 돈을 벌고 싶은 심익태로선 머리가 아프다.
"나는 널 리스펙트해. 인방에 정주나를 게스트로 섭외한다? 파프리카TV가 아무리 커졌어도 너 말고는 아무도 못하는 거야."
"아! 질척거리게 왜 그래요. 술 챘어요?"
"이 스끄그……."
얼마 전 일어난 오정환과 김군의 대립.
팬덤간의 단순한 자존심 싸움 같지가 않다.
당사자들도 적잖이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방송 시간대와 퀄리티에서 보인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했다.
김군을 불러두고 점잖게 타이르고 있는 이유다.
힘들게 쌓은 공든 탑이 고작 내부 분열로 무너지면 그것만큼 웃긴 일도 없다.
'그냥 날 잡고 패는 게 제일 편한데 X발!'
개 패듯이 군기를 잡아 놓은 철꾸라지와 달리 불가능하다.
사업 규모가 커지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지며 골머리를 썩인다.
자신이 강요한다면 표면적으로는 화해를 시킬 수 있다.
그것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들어가십시오 형님."
"그래, 너도 내가 말한 거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고. 정환이는 내가 어떻게든 잘 말할 테니까."
"아 별일 아니라구요!"
"스브스끄그……."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둘이서 술자리를 가지고 타이르기까지 했음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다음 날.
출근을 한 익태는 머리가 아프다.
숙취도 숙취거니와 골머리 썩는 일도 여전하다.
힐끔―
그런 심익태의 옆에 대걸레가 보인다.
정확히는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는 서은의 씰룩거리는 엉덩이다.
'하 고년. 내가 숙취만 아니었어도.'
심익태의 볼도 씰룩거린다.
원래부터 탐스럽긴 했지만 최근 들어 더 애틋해졌다.
확실히 어려서 그런지 성장하는 맛이 있다.
그 탱탱한 살결에 손을 올리려던 찰나.
"이년이……."
"아 거기 계셨구나~ 죄송해요 히히. 금방 마를 건데 괜찮죠?"
슬쩍 피하며 대걸레로 자신의 신발을 퍽퍽 때린다.
실수가 아닌, 고의라는 것은 뻔하다.
처음에는 만만하기만 했던 년이 어느새 대가리가 컸다.
'썅년이 가슴이랑 엉덩이만 커지면 됐지.'
슬쩍 조금만 만지려는 걸 잘도 피한다. 어쩌다 작정하고 쓰다듬으려고 하면 돈을 요구한다.
그렇게 돈맛을 알려주는 계획이긴 했지만.
"오빠한테 안 혼난 지 좀 됐지?"
"음~ 좀 되긴 했죠? 보름 정도."
알기만 하고 빠져들진 않고 있다.
용돈벌이쯤으로 생각하는지 심드렁하게 푼돈만 받고 끝낸다.
'어린 년이 색기가 올라서 2차 단골이 최소 수십은 환장하고 붙을 텐데.'
자신의 눈에도 찰 만큼 맛있어졌다.
점찍어두고 관망하고 있던 보람이 있다.
그런 인재가 썩고 있으니 애가 탈 만도 하다.
"오빠 여자 고파요?"
"확 마! 니가 코앞에서 궁뎅이를 흔들어 대니까 그렇지."
"아~ 히히. 그럼 쥬아 언니 어때요? 요즘 한가한 것 같던데."
"……."
물론 그녀도 인재다.
그것도 자신이 알아보지 못한.
최근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여캠 중에서도 에이스 축에 낀다.
'……그년하고 하면 쥐어 짜여.'
남자를 족히 수천은 상대했을 년이다.
테크닉은 물론 성욕도 엄청나다는 게 평소 걸음걸이만 봐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런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순수한 년을 먹고 싶지, 닳고 닳은 년과 굳이 엮이고 싶지 않다.
속내가 무서워서라도 건드리기 찜찜하다.
'쳇, 똑같은 연놈끼리 좀 처놀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쥬아가 자신이 좋아해 마지 않는 정환을 눈독 들이고 있다.
평소 장부 관리는 물론, 여캠들의 뒤치다꺼리도 전담하고 있는 서은은 상당히 많은 걸 안다.
그녀들 입장에서 자신은 잡부.
별 의미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처리하고 싶은 여자다.
"혹시 그 언니를 상대하는 건 무섭다거나? 히히."
"이 년아! 걔는……, 걔는 걔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잔말 말고 가서 일이나 해! 머리 아프니까."
"웅~ 네. 알겠어요. 근데 저 다음 주부터는 출근 못하는데."
"뭐?"
서은이 익태의 아래에서 일했던 건 빚을 갚기 위해서다.
오정환을 꼬셔 오며 대부분 탕감이 됐지만, 남은 금액도 적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것도 과거의 일.
급료도 받았고, 용돈벌이도 짭짤했다.
남은 금액은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만 해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저 이제 곧 개학이라 바빠요~."
"뭔 급식도 아니고 개학이야!"
"제가 급식이면 오빠는 잡혀갔죠 히히."
"……."
이제 곧 학교를 가야 하기도 하다.
그전에 이쪽 세계로 넘어오게 만들려 했던 익태로서는 벙찐다.
생각보다 잡무를 너무 잘해줘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주말에라도 출근해."
"괜찮아요?"
"뭐……, 없는 것보단 낫지 크흠."
"급료는요? 히힛."
"알아서 잘 챙겨줄 테니까 가서 일이나 해 일이나!"
"네~ 알겠슴다!"
"야, 잠깐."
"?"
같은 여자다.
외모도 반반하다 보니 여캠들과도 통하는 게 있다.
진짜 노예도 아니고, 일만 굴리다가는 나중에 간혹 문제가 터진다.
그녀들의 고충을 미리 들을 수 있는 서은의 존재는 각별하다.
더욱이 오정환의 새끼 손가락이기도 하니 그 가치는 배가 된다.
'이 년만큼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어.'
김군과 오정환의 트러블.
그 해결책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반쯤 업계에 들어와 있고 목줄도 잡고 있으니 이번 사태를 말해도 될 것이다.
"오옹~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환이는 뭐래?"
"딱히? 아 하나 있다!"
"뭐?
"본업이 연예인인 형님? 이라고 대단한 분이다 어쩌다 했던 것 같아요."
"흠…… 그렇단 말이지."
당사자에게 물으면 곧이곧대로 대답 안 한다.
바로 어제 김군과 술자리를 가지면서도 느꼈다.
겉으로는 별일 아닌 척해도,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게 뻔하다.
'정환이는 정말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나 보네.'
이렇듯 지인을 통해 듣는 것은 진심일 확률이 높다.
서은이 오정환의 본심을 알려준 덕에 사태 해결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한쪽이 마주칠 생각이 없다는 게 확실하다면 싸움을 중재하는 것도 싱거워진다.
"왜 그런대요? 그냥 둘이 만나서 대화 한 번 하면 오해 풀리겠네."
"니가 한 번 넌지시 물어봐 그럼."
"히히 맨입으로요?"
"이년아! 이게 다 정환이 잘되라고 하는 거니까……."
"네~ 네~ 물어는 볼게요."
심익태는 서은을 통해 오정환의 의중을 떠본다.
적의가 없다는 것만 확인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
술자리라도 가지면서 좋게 좋게 풀면 될 일이다.
'진짜네, 진짜 물어보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오정환이 이미 알고 손을 써두었다는 사실은 서은만이 아는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