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딩동―♪
다음날 아침.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귀찮아서 가만히 있자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네.'
남자는 퍽퍽! 느낌이고, 여자는 보다 날카롭다.
아무래도 근력이 다르거니와 부딪히는 부위도 손등 뼈를 세운다.
자주 오시는 택배 기사님이 바뀐 게 아닌 이상 누구인지는 확인할 것도 없다.
침대 위에서 억지로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준다.
"오빠……."
리아가 다소곳한 자세로 하복부에 손을 모으고 서있다.
평소처럼 달려들지 않는 게 뭔가 찔리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씻고 왔네?"
"방송이 너무 늦게 끝나서……, 오빠 자고 있을까 봐."
"오빠 자고 있을 때 뭔 일 있었던 거 아니야? 응?"
"아, 아니에요! 아무일 없었어요 정말로."
일단 집안으로 들인다.
그것만으로도 내부의 공기가 달라진다.
킁킁 맡자 비누 냄새가 아플 정도로 코끝을 찌른다.
샤워를 마치고 바로 온 듯하다.
의상도 훨씬 야한 것으로 갈아입고 왔다.
손잡이처럼 잡기 좋은 살덩이가 손가락 사이를 마렵게 한다.
"그, 그게……."
"응?"
"자꾸 쳐다보긴 했어요. 몇 번 은근슬쩍 터치하려고도 하고."
애지중지 떠받들여지는 가슴이다.
새하얀 피부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핏줄이 비친다.
먹음직스럽긴 하지만 아침부터 과식을 하진 않는 편이다.
"방송 끝나고 엄청 껄떡대긴 했어요."
"그래서?"
"뭔가 쎄해서 졸리다고 하고 모범 택시 불러서 갔어요. 새벽이라."
몸이 달아올랐는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들이댄다.
내 허벅지와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손이 엄한 데로 향한다.
"오빠."
"응?"
"저 요즘 혼자 하는 것도 참았어요. 여기 꼭 닫혀있어요. 넣어서 한 번 확인해보세요 헤헤."
골반을 꼼지락거리며 야하게 붙어온다.
하이힐을 신으면 내 키만한 녀석이 그러니 섹시하긴 해도 귀엽지는 않다.
안타깝게도 그럴 생각도 없다.
찰싹! 찰싹!
엉덩이를 때려서 진정시킨다.
플레이의 일종이라 생각했는지 자세를 잡지만 아니다.
그대로 허벅지와 허리를 잡고 들어서 침대에 던진다.
"아 짐승♡"
"짐승은 발정 나있는 너고."
"토끼는 항상 그렇대요. 저 토끼 같지 않아요?"
손으로 귀를 만들면 따먹어달라고 안달을 한다.
옷까지 벗기자 자꾸 아앙~ 거리며 교태를 부린다.
떡 칠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야."
"네!"
"잘 자."
"?"
본래부터 살집이 꽤 있는 편이다.
겉보기엔 말라 보여도 뼈가 얇고, 지방층이 은근히 두텁다.
'안는 느낌이 좋아.'
운동을 하며 탄력까지 생기자 더 좋아졌다.
다키마쿠라인가 뭔가 하는 베개처럼 안고 자기 딱 좋다.
"술잔에 이어 베개……. 나는 베개……."
정기를 빨리지 않는 여가 타임이다.
* * *
실제로 그렇다.
위스키의 향은 소량의 물을 첨가했을 때, 그리고 상온으로 맛봤을 때 가장 두드러진다.
몇몇 애주가들은 온더락도 금기할 지경이다.
별맛 없는 아이스크림도 녹으면 엄청 달달하다.
마찬가지로 위스키도 온도가 낮으면 향이 죽고, 온도가 높으면 향이 살아난다.
쭈웁!
쪽, 쪽―
내가 리아를 술잔으로 쓰고 있는 이유다.
상온과 소량의 물, 이 두 가지가 측면에서 봤을 때 최적의 음용법이다.
'아님 말고.'
혀에 묻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 맛본다.
두툼한 고기 같아서 은근히 안줏거리로도 제격이다.
"이 살덩이도 어떻게 못 먹나?"
"오빠 가끔 너무 아재 같아요."
"……."
평화로운 휴식이다.
점심으로 해물 칼국수를 시켜 먹고, 입가심으로 위스키를 마신다.
그런 느낌의 노닥거림이다.
리아도 잘 어울려주고 있지만 한 가지가 몹시 불만인 듯하다.
"근데요."
"응?"
"어제 보니까 김군 오빠한테는 비싼 술도 주던데."
"왜? 너도 마실래?"
"우웅~! 충분히 마셨거든요?"
자신한테도 선물을 달라.
여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밝히는 그것이다.
'저번에 준 장난감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네.'
좀 더 큰 걸 선물해줘야 하나.
아니면 뒤쪽에도 관심이 생긴 건가.
장난감의 종류에 대해 고민을 하던 찰나.
"저 목걸이 같은 거 하나 사주면 안돼요?"
"목걸이?"
"오빠 분신이라고 생각하고 매고 다니게요 헤헤."
이미 그러고 다니는 년이 주위에 하나 있다.
물론 그건 목걸이가 아닌 가죽으로 된 초커이긴 하다.
아무튼 사주는 게 어렵지는 않다.
평소 사고 안 치고 잘해주고 있으니 상으로 말이다.
그 이전의 이야기다.
"뭔가 오해가 있는데."
"주기 싫어요? 싫음 말구."
"아니……, 봐봐."
잔뜩 삐져서 볼을 부풀린다.
이런 솔직한 점이 귀여운 아이다.
170 가까운 장신에 은근히 날카로운 눈매로 저런다는 게 미스 매치긴 하지만.
'나도 막입한테 고숙성 양주 주기 아까워.'
김군한테 발렌타인 30년이 더욱 미스 매치다.
그리고 가져갈 것이 없기도 했다. 알고 보니 빈 병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편의점에서 발렌타인 12년을 사서 내용물을 바꿔 놓았지."
"……그걸 속아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많이 마셔봤다.
내가 술잔에 따른 횟수 만큼 리아의 입에도 있었다.
양주 맛을 은근히 잘 알고 있다.
'그 정도는 김군도 알고.'
바꿔 넣은 정도로는 부족하다.
맛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그럴 때 쓰는 것이 바로 이 마법의 하얀 가루다.
준비된 잔에 발렌타인 12년을 따른다. 그리고 티스푼 끝으로 미원을 살짝 떠서 넣고 젓는다.
"맛이……, 좀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어?"
"그렇지. 제대로 느꼈어."
위스키 본연의 향이 증폭된다.
맛 자체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무엇보다 입안에서 피니시가 길게 남는다.
'미원 많이 쓴 식당 가면 입에 쩍쩍 달라붙고, 감칠맛도 오래 남잖아?'
똑같이 적용된다는 이야기다.
대충 알갱이 하나에 1년 정도 잡고, 아홉 톨 넣으면 발렌타인 12년이 21년이 되는 셈이다.
"그게 말이 돼요?"
"말이고 자시고 마셔봤잖아."
그렇게 간단히 따질 이야기가 아닌 것도 맞다.
하지만 위스키를 잘 아는 사람도 느낄 만큼 유의미한 변화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 기행을 유행시킨 사람이 현대 카드 회장이니 말 다했지.'
맛을 모르는 김군이라면 충분히 속여 넘기고도 남는다.
5만원짜리 김치찌개 끓여주느니, 5천원 짜리에 미원 듬뿍 넣어서 만족시킨다.
"위스키에 김치찌개 비유는 좀……."
"별 거 없어. 저숙성은 겉절이고, 고숙성은 묵은지라고 보면 돼."
"씨이!"
그냥 외국 술이다.
있어 보이는 마케팅을 잘했을 뿐이지.
'그리고 한국에 고도수가 사라졌을 뿐이지.'
일제 시대와 군사 정권을 지나가며 전통주의 씨가 말랐다.
그 대체재로 희석식 소주가 널리 퍼지며 한국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다.
그렇다 보니 어색하고, 지나치게 멀게 느껴진다.
알고 보면 그냥 외국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술로 김치와 별 다를 게 없다.
"발렌타인 파이니스트인데 발렌타인계의 겉절이라고 할 수 있지."
"우우우~!"
저숙성도 저숙성만의 매력이 있다.
실제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위스키다.
'나도 겉절이는 없어서 못 먹어.'
물론 숙성연도가 높아야 향이 더 좋아지는 것은 맞다.
하지만 김치가 그러하듯 꼭 고숙성만 골라서 먹을 필요는 없다.
위스키 자체가 15~20년 사이면 익을 만큼 익는다.
30년 제품이 특별하긴 해도, 그것만 골라서 먹을 가치까진 안된다.
"제 목걸이도 동대문에서 짝퉁 사올 거죠?"
"설마."
"몰라요. 약속해주기 전까진."
술잔이 삐졌다는 듯 입을 벌리지 않는다.
어차피 파이니스트는 물을 섞는 것보다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게 낫다.
움푹 파인 쇄골에 따르자 밑의 계곡에까지 고이며 천연의 술잔이 완성된다.
"맛있어요?"
"그래."
"술 마셔서 안 서는 거 아니에요?"
"죽어볼래?"
"아앙~ 침대에서 해주세여 헤헤."
머금고 있는 것만으로도 취했는지 혀가 꼬여있긴 하지만 분위기는 편하다.
술잔으로서 향도 남아있어 애주가 입장에서는 좋다.
'피곤해지면 베개로도 쓸 수 있고.'
정말 만능이다.
리아와 보내는 휴식은 즐겁다.
목걸이 하나 사주는 정도는 긍정적으로 고려한다.
* * *
오정환과 김군의 불화.
그 폭퐁우가 지나친 후에도 여전하다.
보라판이라는 대지는 1년 365일 항상 뒤집어지지 않으면 만족 못하는 재난 지대다.
─이걸 간장으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장으로 샤워를 하네
─역시 인방 대통령!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
.
.
항상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 게 없으면 뭐라도 채워 넣는다.
화제의 공백을 메꾸기라도 하듯 철꾸라지가 자신의 주력 콘텐츠를 진행한다.
"끼요오오오옷―!!"
―X발 저걸 부어버리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철화백
―작품이네 그냥
―철통령이 돌아왔다! 철통령이 돌아왔다! 철통령이 돌아왔다! 철통령이 돌아왔다!
1L들이의 간장통을 자신의 머리에 뿌려 사워를 한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세슷대야에 간장을 담아 벽지에다 뿌려댄다.
「보라) BJ철꾸라지. 간장맨이 돌아왔다! 레전드 방송 가즈아!!」
_ ?31, 892명 시청
엄청난 시청자가 몰릴 만도 하다.
인터넷 방송의 규제 강화, 자신의 이미지 개선 등 여러 이유로 사리고 있던 철꾸라지가 다시 본격적인 행동을 개시했다.
─간장킹철꾸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우리 철꾸라지가 맞습니다 ㅠㅠ
"간장킹님 1만 개 끄야아아아악!! 1만 개 너무 감사합니다! 리액션으로 워터파크 보여드리겠습니드앍아아―!!"
―간장을 다 붓는다고?
―씹혜자 리액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면 1만 개도 킹정이지!
―저거 들 수나 있나 ㄷㄷ
그의 오랜 팬들로서는 기다리지 마지 않던 상황이다.
세숫대야에 업소용 간장을 콸콸콸 들이붓는다.
그 양이 못해도 족히 4L는 되어 보인다.
쏴아아―!
두 팔을 벌벌 떨며 자신의 머리 위까지 기어코 든다.
그대로 쏟아내자 폭포수처럼 흘러넘친다.
좁은 방안에 워터파크가 개장한다.
"끼야아앗~! 파닥파닥! 파닥파닥!"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저거 어떻게 치우냐……
―늒네들 정신 못 차리네
―이게 바로 인방 대통령이야 이 말이야~
수질이 조금 심각하긴 하지만 말이다.
워터파크, 아니 간장파크에서 헤엄치는 철꾸라지의 모습은 기괴하기를 넘어 이 세상 것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화력요청] 갠방갤 일동은 선언합니다
인방 대통령은 역시 철꾸라지라는것을……!
쿤견 쳐내~! 간장도 30년산 아니면 못 마실 새끼 엌ㅋㅋ환견 쳐내~! 기개도 없는 새끼 김군한테 쫄아서 빌빌대더만ㅋㅋㅋ└갠방갤은 우리 가축들이 점령한다!
└철빡이 새끼들 돌았누
└응 갠방갤러 90%는 철꾸라지 지지해~
└ㅊㄲㅇ
그것이 철꾸라지 방송의 진면목이다.
자신의 포텐셜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다시 파프리카TV 내 입지를 공고히 한다.
커뮤니티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왕년의 텐션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이런 짓을 지금까지 안 한 또 하나의 이유는.
"으아아……, X발 냄새!"
"빨리 청소 아줌마 안 부르고 뭐 하는데?!"
그 뒤처리가 만만치 않다.
철와대라 불리는 스튜디오 내부에는 간장 쉰내가 떠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저번에 왔던 아줌마가 ㅈ까라는데요?"
"돈 받고 청소하면서 뭐 일을 가려."
"배가 부른 거죠~."
"너 청소 아줌마랑 사고 쳤냐?"
"미쳤어요?"
락스를 들입다 부어 대청소를 해도 근 한 달은 창문을 열어놔야 할 정도다.
청소 아줌마들도 당연히 싫어하고, 스튜디오를 써야 하는 철꾸라지도 후각은 있다.
"근데 청소는 둘째 치고 또 기사 나요 이러다."
"이미 떴을 걸?"
"빼박이지 크크."
"도 넘은 인터넷 방송 이대로 괜찮은가!"
"……."
지능도 있다.
일반인들이 간장으로 샤워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철꾸라지도 모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인터넷 방송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나보다 돈도 못 버는 새끼들이 뭘 안다고.'
그만큼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호적수 김군이 치고 올라오고 있고, 오정환의 기세는 꺾일 기미가 안 보인다.
상대적으로 자신의 위상이 줄어든다.
어떻게든 다시 차이를 벌리지 않으면 마음속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
무리수를 둬서라도.
자신의 방송폼을 끌어올려야 한다.
파프리카TV의 대통령으로서 위엄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곧이야?"
"곧입니다."
"흐음……, 목줄을 어떻게 연장시키지."
리아가 소속된 업체의 사장.
유광석도 내용은 다르지만, 나름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자리 잡은 여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년이 아니라 달에 억 단위로 쏟아진다.
그래서 보통 특별 관리를 한다.
'대화로 할까, 아니면 강제로 몰아붙일까.'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당연히 그 내용은 불공정하고, 업체쪽 말을 따르도록 강제시킨다.
방송에 대해 잘 몰라서.
그리고 거액의 빚이 있어서.
다른 여캠들은 그런 방식으로 묶어두었다.
"철크루 소속이 됐기도 하고, 애초에 워낙 커버려서…… 어설프게 건드는 건 아무래도 힘듭니다."
"약점은?"
"처음부터 많이 빌린 게 아니라 그런 점까지는 신경을 못 썼거든요."
이마저도 부족하면 약점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리아는 그렇게 심한 채무자가 아니었고, 이 정도로 뜰 거라고는 당시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필 철크루라니. 심익태 그놈이 있는 곳인데.'
파프리카TV에는 자신 말고도 여러 업체가 있다.
이처럼 큰 거위라면 그쪽도 분명 욕심을 낼 것이다.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제한된다.
그렇다고 잠자코 놔주기에는 아깝다. 그녀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막대하다.
업체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그보다 0을 하나 더 넣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업체들이 이를 눈치채기 전에, 눈독 들이기 전에 사태를 끝내야 한다.
보다 강력하게 얽힌 계약으로 자신들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럼 이 방법은 어떨까요?"
"무슨 방법?"
"그녀 스스로 업체에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겁니다."
"스스로? 그게 가능해?"
"일단 들어나 보시죠."
어떻게든 벗을 수 없는 목걸이를 채워야 한다.
방법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