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오빠."
"응?"
"오빠~."
"왜 이 썅년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채 대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입은 움직이고 있다.
"오빠 저 사랑해요?"
"글쎄."
"그럼 저 좋아해요?"
"좋아는 하지?"
나는 움직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아니, 움직인다는 감각 자체가 없다.
"오빠, 오빠아 흑흑, 으허헝……."
"○○아, 왜 그래?"
"저, 저 살기 싫어요. 죽고 싶어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화는 진행된다.
눈앞에 보이는 여자들을 달래주고, 그리고 곧이어 다른 여자가 찾아오고.
뭔가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기묘하다.
머리가 애써 떠올리는 걸 거부한다는 느낌이다.
"빨리 넣어줘요 빨리……."
"오늘따라 왜 그렇게 칭얼대."
"오빠꺼 넣고 싶어서……. 제가 그런 짓 하고 다녀도 오빠는 저 좋아해줄 거죠?"
마지막 한 마디가 뇌리에 깊숙이 스며든다.
그와 동시에 눈이 번쩍 떠진다.
째액! 째액―!
재잘거리는 새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힌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리아도, 서은도 아니었고.'
개꿈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마음속 한 구석이 무겁다.
벌컥벌컥!
차가운 생수를 컵에 따르지 않고 마신다.
입가에 줄줄 흐르지만 개의치 않는다.
평소부터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니지만.
'…….'
무덤덤하다.
꿈의 내용은 분명 있었던 현실이다.
현재가 아닌, 회귀 전의 내가 겪은 것.
사람의 뇌는 괴로웠던 기억을 자동으로 잊는다고 한다.
괴로웠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희미해진다.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삭제해 버린다.
그럼에도 심층 의식에는 남아있어, 계기가 주어지면 언제든지 수면 위로 부상한다.
'글쎄.'
딱히 짚이는 것이 없다.
그냥 잠자리가 사나웠던 모양이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맑은 정신으로 잊으려던 찰나.
카톡!
카톡! 카톡!
핸드폰이 세차게 울린다.
* * *
파프리카TV의 여캠.
예쁜 여자BJ가 캠 앞에 앉아 편하게 돈을 쓸어담는다.
일반적인 인식은 딱 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여캠한테 별풍 쏘는 열혈들 심리가 뭐임?
미친 새끼인가?
뇌에 우동사리가 들었나?
물소짓 할 거면 건설적으로 하던가 무슨 만지지도 못하는 여자한테 └과격하긴 한데 이 말이 맞지 └열혈 호구 모름?
└현실에서 너무 외로우니까 인터넷에서 해소하고 싶어하는 심리라 들었는데 └오우 클템인 줄
그 큰 돈을 어째서?
열혈 한두 명이 쓰는 돈이 적게는 수백 만원, 많게는 수천에서 수억도 넘어가다 보니 종종 화제가 된다.
공중파 매체에서도 취재를 하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 없이 암암리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매상은 어때?"
"짭짤합니다~ 월초에 바람잡이 한 번 돌리면 월급쟁이 새끼들이 등골 쪽! 빼먹을 수 있죠."
"흐흐흐."
여캠 시청자가 아무리 물소가 많더라도 백만원, 천만원이 어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들의 지갑을 여는 방법에 대해 빠삭하게 꿰고 있다.
방송의 관리와 트러블을 맡는 직업매니저.
열혈팬의 후원 심리를 자극하는 바람잡이.
업체가 부리는 직원들이 열혈들의 별풍 심리를 자극한다.
얼마나 더 타이트하냐, 안 하냐의 차이지.
모든 여캠들이 일련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모든 열혈들이 일련의 방식에 낚여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아 하람 형님!"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바쁜 와중이었음에도 칼같이 받는다. 진심이 아니라면 나올 수가 없는 반응이다.
'인생이 메이플 같은 형님이신데.'
여캠의 열혈팬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세간에 흔히 알려진 열혈 호구 내지 별풍 셔틀, 다른 하나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큰손'이다.
딱히 드문 개념도 아니다.
실제 백화점에서 VVIP(초우량고객·Very Very Important Person)들은 일반 고객들과 차별화된 여러가지 서비스를 받는다.
이를 테면 전용 주차 공간 및 발렛 서비스, 1 대 1 쇼핑 도우미와 명절 선물 등.
1년에 수천 만원 이상을 사용하는 VVIP들을 위해 갖가지 것들을 선사한다.
<어 광석아~ 좀 오랜만이지?>
"형님! 좀 서운합니다……. 우리 애들 중에 형님 좋아하는 애들 진짜 많거든요. 오시기만 하면 저희가 다 연결을 해드리는데."
VVIP 1%가 매출의 25%를 책임진다.
그런 기형적인 매출 구조는 여캠 시장이 더하다.
막말로 시청자가 20명이어도 열혈들이 잘 쏴주면 직장인 월급을 웃돈다.
업체들이 큰손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고객 명단을 만들어서 애지중지 관리할 정도다.
이는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으로 빨아먹는 관계가 아니다.
<내가 요즘 지수한테 빠져있었거든. 알아?>
"아~ 알죠. 저희 업체 소속은 아니지만 지수도 예쁘죠. 그래도 우리 애들도 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여캠님! 별풍 몇 개 쏴야 섹스 가능?
열혈 입장에서도 대놓고 물어보기 뭣하다.
업체가 중간 다리 역할로서 여캠과 열혈을 매칭시켜준다.
서로간에 Win―Win.
물론 목이 마른 건 업체 쪽이다.
파프리카TV의 여캠 시장은 갈수록 커져가고, 경쟁자는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네, 형님! 말씀만 하십시오!"
<내가 듣기로 리아를 너희가 데리고 있다고 하더라고. 응? 아끼는 건 아는데 나도 상당히 진심이야. 형 마음만 먹으면 끝장나는 거 알잖아.>
"……."
어지간한 요구라면 수용한다.
단가가 맞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유광석이 가지고 있는 큰손 명단 중에서도 하람은 손에 꼽는 VVIP다.
'왜 하필 리아야. 다른 산삼 같은 애들 많은데.'
리아는 분명 자신의 업체 소속이다.
하지만 계약 연장을 아직 안 했고,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에 가깝다.
무턱대고 윽박지를 수도 없다.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신세다.
그런 광석에게 하람은 솔깃한 제안을 던진다.
<음~ 알지. 알지.>
"저희가 사랑의 큐피트가 되어드리고 싶은데……, 리아는 너무 특수한 케이스라서요."
<광석이가 힘든가 보네. 그럼 우리들이 좀 도와줄까?>
"어, 어떻게 말입니까?"
VVIP급 열혈은 여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속된 말로 잠근다.
별풍선을 쏘지 않으면 수익이 메말라 버린다.
아 그럼 다른 호구 구하면 되지.
그렇기에 그들은 집단을 이룬다.
열혈 단톡방을 겨우 자랑이나 하자고 만들었을 리 없다.
<애들아~>
<왜 그러세요 하람 형님>
<징그럽게…….>
<형이 큰 건 하나 물어왔잖아>
<탄환 여유 있는 애들 있지?>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ㅋㅋ>
<쏠 년이 없죠>
아무리 업체가 있다고 해도, 일부 여캠들은 말을 잘 안 듣는다.
계약서가 가볍거나, 단순히 변덕이 심한 여자들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VVIP라도 뭐 어쩔 수가 없다.
한낱 열혈 호구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그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 * *
잠에서 깨자마자 난데없이 울린 카톡.
발신인은 리아로부터였다.
하루에 열댓 번도 더 오는 만큼 의아할 것도 없지만.
<오빠 저 어떡해야 할까요…….>
오늘은 조금 특별하다.
전화 너머 리아의 목소리가 고민에 차있다.
"정리를 하자면 그거 아니야."
<네.>
"남자랑 자고 싶은데 콩알이 커서 부끄러워서 그럴 수 없다고.>
<^%@#$#$!>
스피커로 이해하지 못할 괴성이 들려온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전부 알았다.
'올 게 온 거지.'
서은과 달리 리아는 빚의 액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 점은 이미 전해 들었고, 업무의 강도도 매우 낮다.
이야기를 해본 결과.
여캠의 실태도 잘 모를 정도다. 업체측에서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 아, 아니라니까요! 오, 오빠는 제 얘기 듣기는 한 거에요?!>
"왜 이렇게 말을 더듬어. 응?"
<제, 제, 제가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흥분하지 마. 그러다 또 커질라."
<@$#^@$^@!!>
그대로 끝.
빚도 갚았으니 더 이상 방송을 안 해도 된다.
그렇게 놓아주기에는 너무 큰 물고기였다는 이야기다.
<후우……. 후우……. 저 분명히 말하는데 그때는 제가 좀 미쳐서 그랬던 거고요. 다시 원상복귀 되었거든요?>
"못 믿겠는데~."
<아 진짜!>
"그럼 찍어서 보내보든가ㅋ"
<자, 잠깐만 기다려봐요 진짜.>
리아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뭐 하다 흥분한 건진 몰라도 일단 사진은 얻어냈다.
"이거 어디 올려서 물어봐도 돼?"
<#%@^&^!>
"고막 떨어지겠다 이 년아."
<나 진짜 진지한데 크흑, 흑흑…….>
조금 장난이 과했나 보다.
목청껏 울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해도 쓰레기짓이긴 했다.
'근데 어쩔 수 없어.'
여캠의 세계가 그러하다.
업체측에서 많은 것을 바란다.
이른바 '베개 영업'을 시키려고 든다.
연예계에도 소문이 무성한 그것이다.
보다 작은 세계라고 할 수 있는 BJ업계에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만 뚝!"
<뚝 하게 생겼어요? 흐흑…….>
"오빠 믿잖아."
<바보멍청이해삼멍게말미잘…….>
빚은 당장이라도 갚을 수 있다.
그래서 업체는 리아를 옭아매기 위해 꼼수를 썼다.
일단 장비를 압수한다. 그 외 세부적인 관리도 손 놓겠다.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효과는 가시적이다.
'갑자기 옷이 빨개 벗겨진 느낌이지.'
그게 없으면 어떻게 방송을 진행해야 할지.
차후의 미래처럼 인터넷에 잘 정리돼 올라와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봐도 모른다. 여자들 대부분이 컴맹이기 때문이다.
설사 이를 해결해도 방송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업체 측이 이를 통보해왔다.
리아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이유가 대략 정리가 된다.
"그러니까 자기들이랑 다시 계약을 하라고 했는데."
<네…….>
"계약 사항을 물어보니 열혈들이랑 잠자리도 가져야 되고 여러가지가 있었다는 거 아니야?"
<네, 맞아요……. 저 어떡하죠.>
그 열혈들도 깜짝 놀라겠네. 곤니찌와 인사라도 한다면 말이다.
'더 놀리면 뺨 맞겠지 아무래도.'
그대로 방송을 그만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아니, 최선의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캠 수익도 괜찮고.
비밀도 보장해준다고 하고.
1, 2년 빠듯하게 하면 창업 자금이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발을 들이면 끝이다.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알고 있기에 나도 진지하다.
'강압적인 방법을 썼다면 직접 도와줄 수가 있는데.'
업체측에서 짱구를 굴린 모양이다.
일이 조금 귀찮아지긴 하겠지만 괜찮다.
어차피 늦든 빠르든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리아를 진정 내 것. 나의 크루에 들이고자 한다면 한 번은 건너야 할 강이다.
그 시기가 조금 일러질 전망이다.
"지금 한가해?"
<뭐……, 바쁘진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만.>
"그럼 기다려. 오빠가 지금 갈 테니까."
<네? 제 집에요?>
실사를 구경하러 간다.